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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 셀카' 말고, 이런 셀카 시작해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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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짱 셀카' 말고, 이런 셀카 시작해 볼래?

[최원호의 美美하우스] 웬디 이월드·알렉산드라 라이트풋의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

나는 먹고 살 길이 없어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던 사진학도였다. 회사에 들어간 뒤 첫 1년은 그 미련을 떨치려고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사진 찍기가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다시 들었지만 그때부터는 어떤 '예술적' 욕심도 품지 않았다. 그저 돌아다니다가 그림이 될 만한 장면을 보면 서둘러 담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포기하지 못한 것뿐인 취미 사진가였다. 그래서 알고 지내던 사진가께서 일반인 대상의 평일 사진 수업을 참관하라고 제안하셨을 때, 거기가 딱 내 자리인 것처럼 들렸다.

참여해 보니 실제로도 취미 동호회 특유의 호의로 가득한 편안하고 즐거운 수업이었다. 어느 날 사진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중년 여성이 숲에서 찍어 온 사진들을 보여줄 때까지는 그랬다.

그녀는 인화한 사진을 늘어놓으며 예쁜 사진을 찍고 싶은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 숲 사진들은 철조망을 두른 벽이나 장막처럼 보였다. 위장막 같은 그림자가 날선 잎과 뾰족한 가지들로 가득한 프레임 위를 덮고 있었다. 햇빛마저 날카롭게 돌출하는 강렬한 장면들이었다. 나는 이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의도된 것인지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별로 예쁘지 않은 풍경들만 찍혀서 좀 속상하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실패한 사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공격적인 형상들을 배치함으로써 일종의 방어막을 구성하는 독특한 감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일관된 주제라고 보아도 좋을 정서를 정작 그녀 자신은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이 자꾸 주의를 끌었다.

스타일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장면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열어젖힌 내면의 풍경이 아닐까. 사회적으로 강제되거나 약속된 '말'을 의식적으로 발화하는 대신에 의식 아래의 뭔가가 기표들을 이용해서 암호를 발사한 게 아닐까.

그때부터 사진 속의 사물들은 낯설어졌다. 그곳은 이제 평범한 숲이 아니라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로 가득한 인생의 단면이었다. 여러 겹의 가시와 커다란 그림자들로 뒤얽힌 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덤불 뒤에 파묻힌 이야기를 캐내고 싶었다.

▲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웬디 이월드·알렉산드라 라이트풋 지음, 정경열 옮김, 포토넷 펴냄). ⓒ포토넷

그러나 '사진을 찍어봅시다' 유의 캐주얼한 수업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파고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업을 듣는 이들은 합의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저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니 한번 발전시켜 보는 것도 좋겠다는 흔한 조언이 오갔을 뿐이다. 나는 아주 오래 살아남은 고슴도치를 떠올렸다. 마음속에 고슴도치를 키우면서 자신이 무엇을 키우는지를 모르는 조용한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저 숲 사진은 내 마음 속에 빚더미처럼 자리 잡았다. 우리는 저 마음의 바리케이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사진 수업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차마 복잡한 감정으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더라도 나를 응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철학자나 사상가들의 사진론이나 에세이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가득하지만, 그런 책들은 대개 탐독가를 위한 것들이다. 실제로 과제의 형식으로 삶을 담아내도록 훈련시키는 책, 롤랑 바르트나 수잔 손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사진과 인생 사이의 비밀스런 연결을 학습시킬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어지간한 예술 책들을 아우르는 직종 종사자로서, 내가 알기로 그런 책은 없었다.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웬디 이월드·알렉산드라 라이트풋 지음, 정경열 옮김, 포토넷 펴냄)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표현을 달리해 보겠다. 두어 달 전에 출간된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는 사진을 찍을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쉽고 정확하게 지시하는, 우리가 구해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한 권이다.

인터넷 서점 등에서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의 소개 글을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사진과 사진을 통한 글쓰기를 통해 (…)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 아이들의 놀라운 경험 (…)새로운 교육법…." 게다가 실제로 책의 도입부 역시 미국 초등학교에서 실시된 자기표현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한다. 그렇다.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는 사진을 통해 아이들에게 보다 폭넓은 표현력과 관찰력을 길러주는 교육 프로그램 안내서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LTP(Literacy through Photography)다. 사진을 통한 글쓰기다.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은 문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능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시각 매체인 사진을 함께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이 프로그램은 어른들에게도 비슷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 사진은 타성에 젖어 점점 좁아지는 언어 표현의 세계 바깥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LTP는 유소년 교육 프로그램 이름이기 이전에 사진이 언어와 상호작용하면서 선사하는 가능성을 축약한 말인 셈이다.

그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하나는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 이외의 방법을 통해 더 잘 표현하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더욱 중요하다. 사진을 찍고 그 결과물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발견함으로써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없다. 그리고 당연히 그 점을 속상해 한다. 물론 카메라 다루는 기술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의 대부분은 기대와 결과물의 양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기대를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다른 양상의 결과물을 실패로 간주한다. 앞서 소개한 위협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숲 사진은 촬영자의 입장에서는 실패작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틀렸을 가능성은 없을까? 기대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는 '말하기' 위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발견'하기를 우선한다. 아래는 이 책이 그 발견을 위해 제안하는 여러 과제 중의 하나다.

-실제로 사진을 찍기 전에 무엇을 사진에 담을지 써본다. 찍을 대상에 대해 미리 글을 써보는 것은 찍게 될 사진에 대해 집중하게끔 도와준다.
-(디카 시대에는 참기 어려운 일이지만)일단 찍은 사진은 나중에 보고, 사진을 보기 전에 그 피사체의 실체를 보았을 때 어떤 느낌인지를 써본다.
-위 두 과정을 연결한다. 쓰기, 찍기, 쓰기의 순서로 이뤄지지만 순서는 바뀌어도 좋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지금 당장 해볼 수도 있다. 컴퓨터 메모장을 열고 자신에 대해 다섯줄만 써 보기 바란다. 외모 묘사건 인생 이력이건 상관없다. 그러고 나서 곁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셀카를 찍는다. 딱 한 장만이다. 그 사진을 다시 보기 전에 "나는 사진에서 무엇을 보고 싶었는가?"를 한 줄 쓴다. 그 내용을 자신에 대해 쓴 다섯 줄 뒤에 붙인다. 그런 다음에 사진을 재생해 본다.

메모장 위의 나와 사진 속의 나는 같은 사람으로 느껴지는가? 나는 보고 싶은 것을 보았는가? 만약 사진이 불만스럽다면 내가 무엇을 기대했기 때문인가? 만약 글이 허전하다고 느껴진다면 무엇을 놓쳤기 때문인가? 사진과 글이 모두 흡족하다면(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떻게, 무엇 때문에 가능했는가? 여러분이 쓰고 찍을 다음 대상은 바로 그 '무엇'이다. 그간 미처 표현하지 못했거나 떠올리지조차 못했던 그 '무엇'은 채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내면을 향한 첫 발걸음이 된다.

이제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의 가장 큰 난점을 고백할 때가 왔다.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LTP는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위에 제시한 과제만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글과 사진 사이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 특히 무의식적인 패턴은 본인이 발견하기가 무척 어렵다.

앞서 언급한 사진 수업 시간에 내 사진들을 본 어떤 분은 내게 물었다. "다른 소재는 다양하게 나오는데 왜 십자가나 마리아 상만 반복적으로 찍으셨나요?" 나는 답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그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분은 내게 종교를 믿냐고, 아니면 구원 같은 걸 기다리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래도 구원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까지는 그걸 전혀 몰랐다고, 이제부터 생각해 보겠다고, 아무래도 나는 그 문제를 중요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원에 관한 질문은 마음 속 깊이 들어왔고, 지금까지도 이 안에 머물러 있다.

굳이 사회적 연대 같은 개념까지 끌어오고 싶지는 않다. LTP가 집단 작업인 이유는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서다. 이게 최선이다. 그렇지만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이 작업을 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획된 버전은 없을까? 현재까지는 찾아볼 수 없다. 있다고 해도 난이도가 훨씬 높을 것이다. 한 명의 인간이 세계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주위에 쌓아올린 벽은 대개 생각보다 두꺼우니까 말이다.

따라서 LTP에서 '조직하기'는 사진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다. 만나고 이야기하고 때로 고백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말처럼 쉬운 얘기가 아님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말하고 보여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는 다른 어떤 사진 실습서도 말하지 못했던, 혹은 알아채지도 못했던 '보여준다는 용기'에 대해 말한다. 다른 모든 스킬에 선행하는 하나의 태도.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책을 최고의 실습서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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