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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백두산의 비밀 문!

[꽃산행 꽃글] 백두산 가는 길 ③

이제 개불알꽃들은 볼 만큼 많이 보았다. 장소를 달리 하여 개불알꽃 군락을 찾았다. 일행은 또 개불알꽃? 하면서도 개불알꽃 앞에 서면 저마다 엎어지느라고 바빴다.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개불알꽃을 비롯해 왕청 근처의 야산을 관찰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가는 곳이 어딘지 몰라 그저 바깥 구경을 하고 있는데 연길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백두산으로 간다.

아침 일찍 출발했다. 백두산으로 가는 마지막 마을인 이도백하로 가는 길이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면 드디어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것이다. 도중에 몇 군데 산을 관찰하기로 했다. 연길을 떠나 1시간쯤 달렸다. 좌우의 과수원에 나무들이 빽빽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를 교잡한 나무라고 했다. 이른바 사과배이다. 사과배? 어쩐지 잘 조합이 맞지 않을 것 같은데 맛이 아주 좋다고 했다.
▲ 차창으로 퍼뜩 스치는 사과배 농장. ⓒ이굴기

이윽고 용정에 들어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선구자'가 생각났다. 한줄기 해란강, 시인 윤동주, 시인이 다닌 용정중학교 등 몇 가지 단어가 순서 없이 떠올랐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그것을 한 줄에 꿸 지식을 갖지를 못했다. 멀리서 보이는 산이 비암산이라고 했다. 그 안에 일송정(一松亭)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산 정상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뚜렷하게 보였다. '선구자'를 혼자 흥얼거려 보았다.

시간이 촉박해 그냥 용정 시내를 통과해서 한참을 더 달렸다. 이제껏 길가에서 실컷 보았던 가로수는 황철나무라고 했다. 우리는 근처 야산으로 올랐다. 소를 방목하는 농장이었다. 산으로 오르는데 소가 마음껏 내깔린 똥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소똥. 아무도 거들떠도 안보는 줄로 알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소똥을 토닥이면서 어루만지듯 분해하고 있었다. 사료가 아니라 들판의 풀을 먹은 터라 역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일부는 옆으로 튀기도 하고 또 일부는 비에 씻겨 개울물에 합류하고 있었다. 웬만하면 한 철 일용하고도 남을 양식을 이 주위의 풀들이 골고루 나눠먹고 있었다.
▲ 소똥. ⓒ이굴기

또 개불알꽃 군락이었다. 그러나 이번 군락은 달랐다. 내심 궁금히 여겼던 상황이 연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제부터 개불알꽃을 관찰하면서 내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개불알꽃은 개의 불알처럼 큰 꽃을 달고 있다. 그리고 그 안은 요강처럼 제법 큰 공간이다. 비가 올 때 빗물이 가득 고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었다.

이날 비가 억수로 많이 온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비가 간간이 뿌렸다. 나는 비에 주목하면서 개불알꽃의 변화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비가 제법 몰아쳐도 지붕에 해당하는 꽃잎과 좌우에 울타리처럼 붙어있는 꽃잎이 비를 막아 실제로 불알 안으로는 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물기야 들어가겠지만 물이 고일 정도는 아니었다.

며칠 동안 내 눈을 홀랑 빼앗아 간 개불알꽃. 그 안이 몹시 궁금했다. 손가락 하나를 조심스레 집어넣어 보았다. 그 안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어떤 경지를 이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힘을 조금만 주면 찢어질듯 매끌매끌한 촉감이 만져졌다. 혹 꽃가루라도 들어 있어 무슨 냄새라도 나지 않을까, 코를 들이대고 킁킁거렸지만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 폭신한 기운을 눈치 챈 벌 한 마리가 편안히 쉬고 있는 것도 있었다.
▲ 개불알꽃 안으로는 비가 웬만해서는 들이치지 않았다. 벌 한 마리가 편안히 쉬고 있다. ⓒ이굴기

개불알꽃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번 백두산 기행에서 이젠 정말로 개불알꽃은 마지막이라고 했다. 나는 사진은 그만 찍고 우두커니 앉아서 개불알꽃을 오래 바라보았다. 개불알꽃의 잎과 턱밑에 대롱대롱 달린 물방울에 주목하면서.

그렇게 무심하려고 하면서 물방울을 볼 때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식물 이야기를 쓰면서 언젠가는 꼭 물방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었다. 그것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의 대담집,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윤상인·박이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를 읽은 뒤부터였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란 직감이 들었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편, 오에 소년은 언젠가 감나무 가지에 맺혀 빛나는 물방울을 보고 "내 자신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변해버릴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다시 말해서 "분명히 나는 가늘게 흔들리는 감나무 잎을 실마리로 해서 골짜기를 둘러싼 숲 전체를 발견했다. 그것은 언제나 잘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 죽은 것이었다. 그런 이상, 이제 나는 수목을, 풀을 주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덕분에 초등학교 교장으로부터 멍하니 주위에 정신을 판다고 낙인찍혀 언제나 두들겨 맞는 소년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내 생활의 즐거운 습관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고, 빗방울을 응시하며 보낸 어느 무렵 이후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시'를 쓰게 되었다." 그 시가 지금은 유명해진 이 4행입니다.

빗방울에
풍경이 비치고 있다
방울 속에
다른 세계가 있다

세심하게 세상을 주시하는 눈을 가진 인간, 오에 겐자부로가 이미 열 살 즈음부터 존재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오에는 초등학교 시절에 이런 경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무심코 나무 끝에 달린 물방울을 보았다. 더 자세히 보니 물방울 안에 나도 들어 있더라, 이 세계는 엄청난 세계로구나! 그렇게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저런 시도 쓰고 평생 글쓰기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문득 그 장면이 생각났던 것이다. 하늘에서 유래한 빗방울은 늘 같은 빗방울일 것이다. 소년 오에를 홀린 물방울이 지금 내 눈앞의 물방울과 같은 성분과 같은 크기일 것이다. 나는 이제 아주 늙은 몸이 되었지만 비록 늦었더라도 그 빗방울을 한번 제대로 보자, 더욱 가까이 개불알꽃으로 몸을 끌어당겼다.

개불알꽃의 턱밑에 달린 빗방울. 나처럼 늙지 않고 언제나 싱싱한 빗방울. 혹 물방울 속에 사진 찍는 내 모습이 포착될까, 여러 번 근접 촬영을 시도했지만 잘 나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면 분명 개불알꽃 물방울 안에 어떤 압축된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 있었다. 개불알꽃 바깥의 세상과 나를 포함한 또 다른 세계가 그 안에 요약되어 있었다!
▲ 개불알꽃에 달린 빗방울. ⓒ이굴기

▲ 개불알꽃에 달린 빗방울 안에 압축된 또 다른 세계.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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