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정권 교체기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제시된 교육 개혁은 국민적 환영을 받기보다 지탄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 또 다시 교육 개혁을 주장하면 국민적 기대를 얻지 못하고 '그저 그러한 주장'이거나 '용두사미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박명섭의 <교육의 배신 내몰리는 아이들>(지호 펴냄)은 지금까지 보아 왔던 주장과 다르게, 다양한 근거와 사례를 중심으로 실현 가능한 현실적 과제에 대해 획기적인 교육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교육 문제의 핵심을 찍어내고, 예민한 부위를 도려내고 치료하는 집도 의사처럼 우리나라 교육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시원하게 보여주고 있다.
▲ <교육의 배신 내몰리는 아이들>(박명섭 지음, 지호 펴냄). ⓒ지호 |
그러다 보니, 국가가 통제하는 경쟁 지상주의 교육은 필연적으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중시하게 되고,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나 정당화하고, 학벌 숭배의 사회 풍토와 대학 서열화를 조장할 수밖에 없다. 현재, 경쟁 교육은 완화되기는커녕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성적이 대학 진학의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고 사교육 없이는 명문대 진학이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공교육비보다 훨씬 많은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라 대부분의 가정이 고통을 받는 사회적 문제를 낳기에 이르렀으며, 학교에서는 반복적이고 비창의적인 객관식 문제 풀이와 찍기 교육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평일과 휴일도 없이, 밤과 낮의 구분도 없이 학교와 학원, 독서실 등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엉덩이와의 처절하고도 기나긴 싸움'을 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삶의 현실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교실 공간에 갇힌 하루 생활을 마쳤는데도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거나 집으로 가면 또 다시 엉덩이와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 학교로 가든, 학원과 집으로 가든 아이들은 규격화된 붕어빵과 벽돌을 찍어내는 '수용소 교육'의 고정된 프레임에 갇히고 만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일상적 삶의 자유와 인권을 강제적으로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 내면의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속살의 고민과 소리 없는 아우성마저 푸른 슬픔의 일상으로 소비하고 있다." (313쪽)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사망 1위는 교통사고보다 높은 자살이다. 학업에 따른 성적과 진학 진로 고민으로 연평균 200명이 넘는 수가 자살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한국 교육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자살 현상에 관한 사회적 이목과 관심은 사회적 주목을 받지도 못하고, 모두가 경쟁 대열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는 몸짓으로 열을 올리며 앞만 보고 내닫고 있다. 이는 '치킨 게임'이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훨씬 능가하는 문제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사느냐 죽느냐를 판가름하는 생존 경쟁의 무한적 극한 경쟁이요, 막가파식 생존 투쟁의 교육으로 학교와 학생, 학부모 모두가 경쟁 교육으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에서 입시 준비와 사교육은 유치원이 아니라 태아 때부터 시작된다. 높은 성적을 얻은 승자만이 살아남고 패자는 학교 교육의 낙오자나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을 받기 때문이다. 서열에 따른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온갖 사회적 차별과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어린 나이부터 치열한 입시 전쟁을 대비하지 않으면 미래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불안과 겁박에 두려움을 느껴야만 한다. 당연히 막대한 사교육비가 지출될 수밖에 없고, 가정 경제는 휘청거리게 된다. 부잣집 자식이 아니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하기 힘들어져만 간다. 교육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낳고, 부모의 학력과 경제적 부가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설령 일류대에 진학했다고 해도 고통과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세계 2위의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생들은 정작 공부는 뒷전이고 돈벌이로 내몰려야 한다. 교육비 때문에 가난한 집안은 물론 중산층 가정까지 붕괴되는 사회적 불안의 증거들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대학생들은 졸업을 하면 더 크고 견고한 장벽에 가로막혀 소중한 목숨까지 버린다. 취업을 했다고 해도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정규직 일자리를 얻고자 하지만 그 틈새는 좁아지고 있다. 정규직 일자리는 학력과 학벌에 따른 노동시장의 불평등과 임금 차별이 고착화돼 있는 구조라 소위 좋은 일자리는 하늘의 별따기 전쟁이나 다름없다." (16~17쪽)
하지만 학교는 공장이 아니다. 지은이의 주장처럼, 학교는 좋은 상품만을 추려서 생산해 내는 공장이 아니다. 학교는 규격화된 벽돌이나 붕어빵을 양산해내는 공장일 순 없다. 그렇지만 지금 학교 현장은 어떠한가? 질 좋은 벽돌과 맛있는 붕어빵만을 찍어내려 함으로써 개성도 없고 창의성도 없는 인간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움이 앞선다. 지은이는 수차례 강조한다. 학교가 공장이 아니듯이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고. 학교와 교육은 다양한 꽃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정원이 되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자신의 고뇌를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학교는 살아 있는 생물로서 작동될 때, 교육의 상대적 자율성을 발휘하면서 창의성과 다양성이 빛을 발하는 교육을 꽃피울 수 있다. 학교는 규격화된 붕어빵과 벽돌을 찍어내는 '공장'이 아닌 다양한 꽃들로 장식되고 저마다의 향기를 뿜어내는 풍요로운 '정원'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정책이 정치나 경제 논리에 의해 짓이겨지는 불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 책이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며 그들의 행복을 가장 우선에 둔 교육 개혁이 되도록 학교 현장을 바꾸고 교육개혁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학부모에게는 '내 새끼주의'에 함몰된 이기적 교육관이나 자녀 사랑을 빙자한 대리 욕망 실현의 도구적 교육관이 아닌 '모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관' 만들기에 도움을 주고 새로운 교육 주체로 거듭나는 데 작은 조약돌이 되었으면 한다." (22~23쪽)
어느 지역의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신분을 가늠한다는 것처럼,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그 사람의 신분과 자본, 능력을 결정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지 않은가? 이제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과 사회적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종신제 신분증이자 이데올로기 그 자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입시는 대학 진학을 위한 절차적 시험이 아니라, 성공과 출세 보장, 사회적 특권 획득을 위한 학벌 따기 전쟁이며 사회 문화적 자본 획득을 위한 계급 권력 선점 투쟁이다.
따라서 대학 입시는 온 가족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겨내야 하는 치열한 학벌 전쟁이요, 빚을 내서라도 얻어야 하는 끝없는 계급 투쟁이라는 지은이의 외침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전쟁과 계급 투쟁으로서의 교육은 극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우리 모두를 패자로 내몰며, 따라서 우리의 삶 자체를 불행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한시라도 빨리 혁파해야 하는 이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 공화국에서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경쟁 논리에 의한 경쟁력'을 압박하며 그 모든 책임을 개인과 부모에게 떠넘기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정치권과 국가는 교육 개혁을 추진해 왔지만 모두가 헛발질에 불과했다. 정치 권력의 지배이념이나 정당성을 선전 홍보하기 위해 교육 개혁을 명분으로 끝없이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숱한 교육 개혁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만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을 뿐 '교육의 논리'는 찾기 어렵다." (18쪽)
<교육의 배신 내몰리는 아이들>은 교육 개혁의 절박성과 필요성을 다양한 연구 사례와 근거를 제시하며 매우 객관적이고 설득력 있게 책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다. 특히 지은이는 교육 경쟁력과 관련해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불평등 사회 구조가 경쟁력을 갉아 먹고 교육의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참된 교육의 경쟁력을 주장하려면, 무엇보다도 학교 교육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을 하루 빨리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불평등 구조를 안고 있는 사회는 불평등을 해소한 사회, 또는 불평등을 해소해 가는 사회보다 높은 경쟁력을 낳을 수 없다. 또한 불평등은 어떤 수사학적 논리로 치장한다 하더라도 평등의 가치와 효과를 넘어설 수 없다"고 단언한다.
"경쟁 교육에서 협력 교육으로, 국가 통제 교육에서 학교 단위 자율 교육으로 바뀌어도, 그리고 입시 교육과 사교육을 없애고, 학벌과 서열화를 해소해도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학력·학벌에 따른 노동 시장의 불평등과 임금 차별 구조가 굳건하게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 개혁의 문제는 비단 학벌과 대학 서열 체제를 포함하여 교육 문제 전반을 획기적으로 혁파한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과 연계된 불평등하고 모순적이며 차별적인 노동 시장과 임금 구조를 개선하고, 사회의 불평등 해소와 복지 수준을 높이는 문제가 전제되거나 선행되지 않으면 교육 개혁은 결국 짜깁기 개혁이거나 땜질 처방에 머무는 제도루묵이 개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10년간 900조 원가량의 돈을 벌었는데도 고용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의 고용 없는 성장이었다. 좋은 기업에서 좋은 일자리가 늘지 않았으니, 경제 성장을 해도 그 과실이 골고루 나누어지지도 않고, 좋은 학벌을 얻어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학벌 따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대학 서열화가 공고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학력·학벌에 따른 임금 차별과 노동시장의 불평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교육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아질 수 있다는 근거다." (316~317쪽)
지은이가 교육 개혁의 대상으로 적시한 내용과 그 방향은 크게 국가 차원의 정책과 학교 변화를 이끌어내야 할 정책적 과제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정치권에 머리를 조아리며 교육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범이자, 사학 재단 등과 온갖 부정 비리의 한 통속이 된 "교육과학기술부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정치 권력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적 독립 기구 성격을 띤 "국가교육위원회를 구성할 것"과, 각종 연구 결과에서 검증되었듯이 "외국어고와 자립형 사립고를 폐지"하고 "평준화 체제로 전환할 것" 그리고 "대학 등록금 반값"은 시대적 대세를 떠나서라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과제라는 것, "서울대 개편"에 초점을 둔 "국·공립대 통합안"에 대한 다양한 견해 제시와 분석을 통해 서열화의 대학 체제 개편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과정과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매우 설득적이고 시사적인 대안 제시라는 점에서 사회적 공론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다음으로 학교의 변화 촉구와 관련된 정책적 과제로는, 국가가 앞장서서 경쟁 교육과 교육의 획일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 통제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학교 단위 자치 교육의 필요성"을 예리하게 갈파하고 있다. 또 산업화 시대의 낡은 교육 패러다임에서 탈피하여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21세기 교육 패러다임과 평생 학습 체제로의 전환, "성적 위주의 대입 선발 제도"를 없애고 "학점 이수 제도"를 도입하여 중학교까지 완전 무시험제 학교 운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교육 개혁 정책이라 하더라도 학교가 바뀌지 않으면 공염불이 된다. 따라서 학교와 교사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변화 노력이 뒤따라야 되겠지만 특히 학교장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교장 자격증 제도를 폐지하고 "학교장 완전 공모제도의 도입"과 현재 78퍼센트에 머물고 있는 교원 수를 "법정 정원" 수준까지 왜 확보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교육의 배신 내몰리는 아이들>을 읽고 있노라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교육 개혁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책의 두께는 다소 있지만 문장이 쉽게 서술된 까닭에 읽기에 편하다. 더욱이 구체적 근거와 사례를 적시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시사적이고 설득적인 책이라는 느낌이다. 교육 개혁을 초점에 맞춘 지은이의 노력과 열정이 돋보이는 책이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지은이의 다음 주장처럼 말이다.
"교육 개혁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나가야 한다는 인내와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 이 책이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 개혁 의제를 더욱 정교화하는 데 교사 집단의 독서 토론과 연수용 자료로 활용하여 개혁의 내용과 방향을 세우기에 작은 도움을 주고, 학부모에게는 내 자식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모든 자식을 위한 학교 교육으로 바로 세우는 데 이정표가 되고, 정부 당국과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교육이 정치와 경제 논리에 왜곡되지 않고, 경쟁 원리에 의한 수용소 교육이 아닌 협력 원리에 기초한 행복한 교육, 즐거운 교육 철학을 만들어가는 데 생명을 불어넣는 작은 불쏘시개가 되었으면 한다." (317쪽)
지은이의 고뇌와 바람처럼 교육 개혁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확산되고 교육 개악이 아닌 바람직한 교육 개혁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른바 교육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교사 집단과 학부모, 정부 당국과 정책 입안자들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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