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의료비 45만원 넘으면 국가 몫! '낙원' 만든 정치인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의료비 45만원 넘으면 국가 몫! '낙원' 만든 정치인은?

[스웨덴 복지의 비밀] <올로프 팔메 :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연애와 정치는 쌍둥이

"한때 목숨만큼 사랑했으며, 때로 죽일 만큼 미워했고, 온갖 신경증적 혼란을 가르쳐주었으며, 각종 환멸을 선사했고 그래서 사랑이 불구를 견디는 일 혹은 기꺼이 고통에 참여하는 일임을 깨우쳐준 그, 애물단지이자 보물단지, 노회한 교사이자 철없는 아이였던 그는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초라한 아저씨일 뿐이었다.

아, 이게 웬일이야? 나는 고작 이런 사람 하나 때문에 그 널뛰기를 한 것일까? 내 널뛰기는 변화무쌍하고 사연 많고 장구했으나, 그것은 더없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한 인간을 두고 홀로 수행한 자폐적인, 일방적인 널뛰기였을 뿐이었다. 그의 현실과 별로 관련 없는 그녀만의 널뛰기. 게다가 그녀의 널뛰기에 이용된 그는 볼품없다 못해 불쌍할 지경이었다. 널뛰기 자체가 차라리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남자를 좋아하는 그녀는…"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 편 중에서))

사랑에 대한 글에서 이런 아득한 대목을 만나 나를 되돌아 본 게 며칠 전이다.

▲ <올로프 팔메 :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하수정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폴리테이아
<올로프 팔메 :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하수정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이라는 책을 만난 것도 비슷한 무렵이었다. 기시감. 논증이 필요하지 않았다. 즉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연인과 정치인에 대한 감성적 체험은 뇌의 같은 부위에서 담당하는 게 아닐까. 무서운 진지함이라는 점에서도, 섣부른 기대가 성급한 자포자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연애와 정치는 쌍둥이처럼 닮은 데가 있다.

과연 그랬다. 지극히 사소한 우연으로 모락모락 관심을 품게 됐다가, 대단히 덕 보지 못할 것 뻔히 알면서도 열정적 지지로 날밤을 새우다가, 당선 이후의 행보로 인해, 때로는 단순히 낙선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유 없이 증오가 시작되곤 했다.

왜 그럴까? 왜 대통령 후보는 그렇게 열정적인 사랑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개인적 덕성이 이유였다면 그토록 어이없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으리라. 사람을 알기 위해선 정직하게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거니까. 타산에 따르는 호혜적 협력이었다면 그토록 무조건적인 감정 소모는 없었으리라. 합리적 자아는 에너지 낭비에 고집스레 저항하기 마련이니까. 혹시 두려움 때문이었나. 내 삶을 결국 지배하고 말거라는. 정치적 결정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바꾸게 된다고 하니까.

자연스레 의문이 이어진다. 감히 정치를 감당하겠노라고 분연히 나선 분들에 대해, 우린 왜 그리 아는 게 없었을까.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리 사랑할 수 있었을까.

스웨덴 총리 올로프 팔메는 1986년 암살당했다. 가족과 영화를 관람한 후 지하철역으로 향하다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노동자의 정당인 사회민주당 출신 총리였다. 그는 소탈하고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서 현대 스웨덴과 제3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였으나, 동시에 가장 격한 증오를 받은 정치인이기도 했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자신만만한 상류층 이상주의자라는 공격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2013년의 우리 앞에 별안간 그를 소환한 것은, 기자 출신의 한 작가다. <올로프 팔메>라는 책을 건네며 그녀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매력적인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냐고.

올로프 팔메(1927~1986)는 전쟁 후 산업화의 시기에 정계에 입문해, 인생의 마지막 10여년을 스웨덴 총리로 살았다. 팔메를 말하지 않고는 오늘의 스웨덴을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삶은 정치와 정치가의 모델을 보여주는 설명서이자 오늘날 스웨덴 정치와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돕는 흥미로운 길잡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올로프 팔메를 통해 보는 스웨덴에 대한 개론서다. 팔메의 삶이 녹아 있는 20세기 스웨덴 사회의 흐름을 따라 굵직굵직한 정책 결정 과정을 살펴본다. 아울러 올로프 팔메라는 정치인에 대한 매력과, 그런 팔메를 지지한 스웨덴 국민을 보면서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와 국민의 역할을 반추하는 기회로 삼아도 좋겠다. (<올로프 팔메> 17쪽)

스웨덴이 유행이다. 복지와 경제 민주화의 이상향이라는 찬사에서부터 진한 커피나 소박한 가구까지 스웨덴 스타일에 대한 호기심이 차고 넘친다. 하고 많은 '선진국' 중에 스웨덴이 가진 매력은 대체 뭘까.

20세기 스웨덴 사회의 고민과 팔메의 삶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유럽 변방의 가난한 나라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웨덴은 지난 100년간 스웨덴 사회민주당과 스웨덴 국민들이 일구어 낸 작품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20세기의 첫 20년을 노동조합과 보통선거를 위해 투쟁했고, 2차 대전 이전까지 진행되던 극좌와 극우 간의 전쟁으로부터 스웨덴을 지켜냈고, 전후 20여 년간 복지 국가 건설과 경제 성장을 쟁취하였다. 이때 올로프 팔메가 등장했다.

올로프 팔메는 부르주아 출신의 사회주의자다. 그는 평화주의자이지만 투사 같고, 늘 약자 편에 섰지만 오만한 태도가 있었다. 저자는 그를 가리켜 '형용모순'이라고 표현한다. 자기가 가진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빼어난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으레 그런 느낌을 풍기게 될 터. 그가 여느 뛰어난 정치가들과 달랐던 점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의 강고함이었는데, 이는 그 이전에 스웨덴 사민당을 이끌던 모든 지도자가 지켜낸 일관성 있는 태도였다.

얄마르 브란팅(1860~1925, 1889년 사회민주당 창당 지도자. 스웨덴 전 총리이자 사민당 당수. 보통선거와 평등선거를 위해 투쟁했다.)은 사회주의 내부의 적으로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지켜냈고, 페르 알빈 한손(1885~1946, 브란팅에 이은 스웨덴 전 총리이자 사민당 당수. 2차 대전 당시 중립 외교로 스웨덴을 지켰다.)은 공동체주의 내부의 적으로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각각의 적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나치즘이었다. 그들은 극좌와 극우로 강렬히 대비되었으나,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 기꺼이 민주주의를 폐기했고 망설임 없이 적을 절멸시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올로프 팔메는 시장경제 내부의 적으로부터 사회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했다. 그 적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였다. 팔메는 시장을 통제하는 강한 사회와 민주적 통제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않았고, 필요하다면 과감히 경제에 개입했다. 장애인, 노령자, 미혼모, 학생, 노숙자를 국가가 직접 보호했다. 사회적 정의와 평등이 희생된다면 자유도 없다고 믿었다.

이 책에서는, 팔메가 고민하던 당시 스웨덴 사회의 과제를 엿볼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문제와도 놀랍도록 닮은꼴인 그 고민들은, 경제 민주화, 보편적 복지, 대학 등록금 등이다.

연대 임금제

저자가 소개하는 '연대 임금제'에서 경제 민주화와 평등에 관한 스웨덴 사회의 믿음이 선명히 드러난다. 경제학자 예스타 렌과 루돌프 메이드네르가 고안하여 렌-메이드네르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연대 임금제는, 비유하여 말하자면, 현대차 노동자와 쌍용차 노동자가 동일한 내용의 임금을 받는 것이다. 해당 산업 사용자 연합체와 산별노조가 대표로 노사 협상을 하고 그 결과는 산하 모든 사업장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완전 고용과 성장을 지향하기 위한 제도라고는 하나, 이런 아이디어의 실현을 위해 결정적인 것은 '함께 살자'는 의식이다. 평등한 공동체와 공동 번영에 대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과감한 정책이다. 노동자가 우연히 선택한 회사가 대박 나거나 '쪽박' 난 것이 오직 노동자 탓이겠는가. 존 롤스 식으로 표현하면, 그들이 고소득자와 체불에 시달리는 자로 갈리게 된 것은 도덕적 관점에서 '임의적'이란 얘기다. 스웨덴 사회는 이런 차이를 용납하지 않기로 결단했다. 복불복의 핑계로 도피하지 않는 공동체의 끈기가 놀랍다. 공동체의 이성과 정쟁의 상대방에 대한 어마어마한 신뢰가 필요했을 일이다.

스웨덴 판 노사정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과 연대 임금제를 도입한 후, 노동 시장은 안정되고 상생의 분위기가 확산되어 전후의 기록적 경제 성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팔메가 집권할 무렵, 빛나는 연대 의식으로 추앙받던 렌-메이드네르 모델의 맹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실 연대 임금제의 최대 수혜자는 대기업이었다. 연대 임금제를 채택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주는 급여의 중간쯤에서 연대 임금이 책정된다. (…) 대기업은 원래 주던 것보다 적은 월급을 지급하므로 자연히 이익이 늘어났다. 반면에 같은 수준의 급여를 지불할 수 없는 작은 기업은 자연히 도태되었다. (187쪽)

당시 철광석 회사 등 수출 중심 대기업은 연대 임금제도로 인해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정작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임금은 수익률에 비례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도 개선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여 1969년 철광 노조가 장기 파업에 돌입했고, 스웨덴의 안정적 노동 시장도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전국노동자연맹(LO)은 기업의 초과이익 분배를 주장하며 임금 노동자 기금안을 들고 나왔다.

임금 노동자 기금

저자는 스웨덴 사회에서 벌어진 임금 노동자 기금 논쟁을 흥미롭게 소개한다.(247쪽 이하) 연대 임금제의 부작용이 가중되자 스웨덴 전국 노동자 연맹(Landsorganisationen i Sverige, 약칭 LO)은 임금 노동자 기금을 제안했다. 이는 연대 임금제(렌-메이드네르 모델)를 고안한 경제학자인 루돌프 메이드네르가 구상한 것으로서, 이에 따르면 연대 임금제로 이득을 본 민간 대기업은 초과이윤의 20퍼센트로 신규 주식을 발행하고 이를 노동조합이 관리한다. 기업이 잘 운영된다면 노조가 기업을 접수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는 것이다. 팔메도 고심 끝에 임금 노동자 기금의 법제화를 추진했다.

팔메의 오랜 친구이자 사민주의 경제학자인 아사르 린드베크까지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스웨덴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아는 한 스웨덴이 사회주의에 이토록 가까이 갔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자본가와 보수진영이 강하게 저항한 것은 당연했다. 보수 진영은 임금 노동자 기금을 '사회주의 기금'이라 부르며 스웨덴이 동유럽 국가처럼 될 것이라 했다(248쪽). 노동자가 사장을 내쫒을 것이고, 국가가 파산할 것이라고 선전했다. 당시 "체제를 지키자"는 호소가 등장할 정도로 보수파는 경악했다. "개인의 자유를 유린할 것"이라는 광고에서도 그들의 공포가 드러난다. 임금 노동자 기금안은 일반 국민에게도 크게 공감을 얻지 못했다. 1982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7퍼센트가 임금 노동자 기금에 반대했다(249쪽).

(*필자 주 : 임금 노동자 기금의 구상은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1985년에 주장한 '자치기업(self-governing enterprise)'개념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달의 '자치기업' 노동자는 스스로 주식을 구입하여 생산 수단을 소유하게 되는 반면, 스웨덴의 기금안은 회사의 초과 이득을 강제로 회수하여 주식을 구입한다는 점에서 시장자유주의와 더 강한 긴장 관계에 놓이게 된다.)

결국 1983년 '임금 노동자 기금 설립에 관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기금의 규모가 줄고, 운용 주체도 노동조합 대신 정부로 바뀌었다. 적립 기간도 7년으로 제한되었다. 노동자가 다수 지분을 확보해 기업의 소유권을 획득한다는 핵심 목표는 좌절된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면 안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같은 주장을 하던 스웨덴 사람이, 그 나라의 총리였다니. 기금안이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이라고 믿지 않았던 사람이 43퍼센트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흥미롭다(*). 스웨덴 사회의 포용력에 감탄하게 된다. 시장경제는 종교적 도그마가 아니며, 효율과 생산력이 유지된다면 고쳐 쓸 수도 있는 거라는 실용주의와 자신감이 엿보인다.

(*필자 주 : 생산 수단을 '소유'해야만 노동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오해는 마르크스나 하이에크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자유란 선택과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자기형성에서 찾을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되면, 새로운 전망을 얻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김상봉 지음, 꾸리에 펴냄)를 참고하라.)

몇 해 전, 정운찬 당시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이 초과 이익 분배 제도를 들고 나왔다. 스웨덴 임금 노동자 기금안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대기업의 초과 이윤은 자기 능력만으로 얻은 것이 아니어서 적절히 분배되어야 한다는 기본 착상이다. 그러나 스웨덴의 제도가 '연대 임금제에 의한 초과 이윤이라는 선물을 받았으니 그 대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제안된 것이었다면, 정운찬의 초과 이익 분배 주장은 납품단가 후려치기라는 범죄적 관행을 막기 위해 구상된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우리나라의 절박함이 더 컸다. 그런데도 43퍼센트의 스웨덴 국민이 기금안을 지지한 반면, 정운찬이 주장하는 그런 제도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이건희의 응수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사회적 협력과 공동체의 공영이라는 이상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는, 가진 것이나마 악착같이 지키자는 그악스러움이 진보적 상상력을 가로막는 법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는, 가진 것을 내놓으라는 말이 돌때마다 이단을 정죄하는 종교 재판관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등장하게 된다. 상을 줬다 뺏는 경우든, 물어내면 벌주지 않겠다고 타이르는 경우든.

보편적 복지

저자는 스웨덴의 보편적 복지 시스템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소개한다(204쪽 이하).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청소년기까지 양육수당이 지급된다. 학비가 없고 실업수당이 있다. 의료비는 병원비와 약값을 합쳐 약 45만원이 연간 상한선이다. 그 이상은 국가가 부담한다. 혜택을 받는 것은 모든 국민이다. 발렌베리든 이민자든 똑같다(207쪽, 2012년 기준).

발렌베리.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스웨덴의 삼성. 발렌베리 가(家)사람들도 같은 급식과 학교 교육의 대상이 되고 군복무를 마친다. 그래야 보편적 복지를 위한 세금 증대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이들의 자각은 물론 칭찬할 일이다. 그러나 강력한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의 존재가 없었더라도 그들이 같은 태도를 보였을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자기 절제나 의무는 공동체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법이다. 그들이 공동체와 다른 것을 먹고 다른 것을 배우고 공통의 경험에서 분리된다면, 그래서 공동체의 기대와 질책에 무관심해 진다면, 그들의 절제는 어느 순간 시혜가 되어 버린다. 선의가 변질되어도 막을 힘이 없게 된다. 보편적 복지와 사회적 통제는 연대의식의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된다.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과 약자에 대한 연대감은 선한 의지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스웨덴 사회가 보여주고 있다.

학생 수당 논쟁

저자는 스웨덴 사회가 보편적 복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확신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사건으로, 대학생 학생 수당 논쟁을 소개한다(158쪽). 1950년대 말, 대학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사민당은, 노동자의 자녀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대학 등록금을 없애고 학생 수당을 주자는 정책안을 내놨다. 그러자 보수파에서는 선택적 복지를 들고 나왔다. 요컨대 발렌베리에게는 학생 수당도 주지 말고 등록금도 다 받아서, 그 돈을 합쳐 어려운 학생에게 더 확실한 지원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층민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세금으로 생색을 내는 것이고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라는 스웨덴 시민사회의 정서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특히 의료와 교육에 대해서만은 전 국민이 일정 수준 이상의 균일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사회적 확신은 강력한 것이었다.

결국 모든 대학생에 대한 등록금 폐지와 학생 수당 지급에는 좌우를 불문하고 동의했다. 남은 문제는 지원 액수였다. 팔메는 균형 재정에 대한 고민 끝에 학생 수당과 장기 대출을 혼합한 수정안을 제안했다. 수정안에 따르면 모든 대학생은 매달 약 40만 원의 학생 수당을 받게 된다. 수당만으로 생활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액수다. 대신 1.9퍼센트 이자에 25년 분할 상환 조건으로 장기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다(2011년 기준).

저자가 보기에 스웨덴 사회는 빈부 격차에 너그럽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든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경제적인 소득 격차가 삶의 모든 분야로 이어지고, 몰락과 파탄의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극단적 성향과 공동체 파괴적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는 우려를 덧붙인다. 보편적 복지는 사회의 불안 요소를 미리 차단하는 예방적인 역할을 한다. '법 질서 세우기'를 바라는 정치 세력일수록,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포기하지 않는 주권자의 마스터피스

대통령을 뽑았다. 내가 뽑은 적 없는데, '국민'이 뽑았다는 것 같지 아마. 기대를 모았던 어떤 분은 벌써 돌팔매에 부서지고 있다는 얘길 들은 것도 같다. 또 한 시대가 가고 또 한사람이 소모됐구나.

저자는, 영웅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팔메를 통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치인의 모델을 그려보기를 주문한다. 이 책을 통해 한 매력적인 정치인과 그를 길러낸 공동체의 분위기를 관찰할 수 있다. 올로프 팔메와 20세기 후반의 스웨덴 사회는, 위대한 정치가라는 예술품이 어떤 경로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국격을 높이자는 얘기를 귀가 따갑게 듣는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어떻게 국격을 높일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에도 팔메의 예가 제격이다. 그는 선의 힘을 믿는 정치인이었으며, 그가 그렇게 정치할 수 있었던 것은, 선의 힘을 믿는 스웨덴 시민사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치인이었으며, 그가 그렇게 정치할 수 있었던 것은, 약자와 기꺼이 연대하는 스웨덴 시민사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자의 말처럼, 결국 국민은 자기 수준의 정치인을 뽑는 것이라는 말이 이토록 가슴 아프게 다가올 수 없다(305쪽).

ⓒ프레시안(손문상)


정치는 연애다. 정치인에게 거는 기대는 연인에게 바라는 비현실과 닮은 데가 있다. 하지만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 거의 모든 정치인은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다음 대통령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을 뿐. 시민의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위대한 정치인이라는 완성품을 발견하여 당선시키는 것은 작동 불가능한 환상이라는 말이 된다. 정치인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성장을 기다려 주는 인내와 믿음이다. 끊임없이 목소리로 안내하는, 참을성 있는 주권자이다.

주권자 스스로가 불완전하므로, 정치인에게도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예지와 통찰을 기대할 바 아니란 걸 받아들일 수밖에.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건, 팔메와 그 전임 총리들이 보여주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이어야 한다. 또 공동체에 대한 연대의식이어야 한다. 우리 중 적은 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행복은 없는 거니까.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재능은 언젠가 나를 향한 칼끝이 되는 거니까.

나머지는, 위임 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정치인과 주권자 사이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협력의 몫이다. 5년에 단 한번 깨어나는 뜨거운 사랑과 처절한 절망에서 무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망각과 체념으로 선거와 선거 사이를 채우는 주권자 사이에서 어찌 위대한 지도자가 일어나겠는가.

앞서, 설익은 사랑을 말했다. 비할 바 없이 볼품없는 한 인간을 두고 홀로 수행하는 자폐적이고 일방적인 널뛰기일 뿐이라고 했다. 그 모든 감정의 일방성과 자폐성을 깨닫고 난 이후에, 진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서도 환상 대신 관심을 품어 보자. 주저앉아 헝클어진 고만고만한 모습이어도, 용기 내어 일어났으면 눈길이나 건네 보는 것도 좋다. 에누리 없이 드러난 짠한 그 모습에 미운 정이라도 붙여 보는 건 어떨까. 모를 일 아닌가. 우리 체념과 무관심의 그늘, 돌팔매로 부서진 사람들 중 또 한명의 팔메가 있었을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