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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지옥' 이곳, 바꾸자! 5년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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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지옥' 이곳, 바꾸자! 5년이면 된다!

[5년, 교육] 커스틴 올슨의 <상처 주는 학교>

2013년 첫 '프레시안 books'는, 향후 5년을 건너가는 데 함께 하면 좋을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5년'인 이유는 새로운 대통령과 정권이 들어서는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교차시키는 변화입니다. 여덟 명의 필자가 이 '5년'을 마주하며 책 한두 권씩을 꺼내 들었습니다. <편집자>


1.

5년이면 인생이 얼마나 변할까? 마흔을 넘기면서부터는 10년도 그리 긴 세월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쉰이나 쉰다섯이나 눈 잘 안 보이는 건 거기서 거기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릴 적엔 '오뉴월 하루 해'가 다르다는 말처럼 서너 달 차이만해도 몸집이 달랐고,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도 제일 어려운 나이는 한 살 위였던 것 같다. 그러니 어릴 적 5년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유치원생은 초등학교 4학년, 중3은 대학생이 된다.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듯이, 몸과 마음이 자라, 자기 나름의 삶의 결이 생겨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아이들이 자라난다는 것은 인생의 결이 생기는 일이니 아이들이 자라날 때, 주변의 환경을 잘 가꾸어줘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심리 상담자들이 자주 드는 예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은 '거대한 유리 원석'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같은 조각이 나올 수 있는 그 거대한 유리 원석을, 사회의 대리자인 어른은 단칼에 반쪽을 내버린다. 때로는 단 한마디 말에 그 원석은 산산조각 나버리기도 한다. 부서진 조각 크기로 줄어든 아이들의 마음으로는 작품이 불가능하다. 근근이 생존하는 일만 남아있을 뿐이다.

구체적인 어른이 아니어도, 삶의 결에 난입해 오는 일들은 많다. 초등학생 시기에 외환 위기의 어려움을 느껴본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태도로 삶을 대한다. 갑작스럽게 길 밖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마음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호황기에 별 걱정 없이 자란 아이들과는 마음의 밑그림이 다르다. 지금 20대 중반의 청년들은 일자리가 있어도 불안하고,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이 두렵다. 마음결이 형성되던 그때, 국가적인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통령은 한 명만 있는 줄로만 알고 '국부'라 부르며 자란 아이들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일렬로 줄서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자랐던 아이들의 내면에는 다른 것을 용납할 여지가 없다. 남보다 더 잘 사는 일이 공통의 목표이고, 그래서 성공과 실패는 명확히 갈린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말은, 실패한 사람들의 자조적인 위안 이상으로 해석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이런 줄서기가 흐트러지는 일이다. 사람은 다르며, 그 다름을 충분히 존중하고 인정하는 문화가 보장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2.

한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지만, 한 사람이 잘 자라려면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아야 하고, 정치적으로 자기 표현이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며, 평안함을 가진 어른들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가 이런 조건을 온전히 마련해 주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경제는 불안정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도 막혀있거나 심지어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은 이런 사회를 여과시켜준다기보다는 오히려 대변, 혹은 강화한다.

사실, 아이들에게는 이 조건들 가운데 주변 어른들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이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경제도 정치도, 권위주의도, 평등도 재해석된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타자'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어른들은 경제적-정치적 민주주의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할 수 없었고,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라고 믿느라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정신을 북돋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따옴표는 <국민 교육 헌장>). 경제적 융성과 정치적 권위주의를 몸에 가득 채우고 성장한 어른들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경제적 성공이나 정치적 권력에 대한 욕망을 내비치거나, 직접적으로 투사하게 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대략 두 가지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하나는 '범주화'이다. '너는 우등, 너는 보통, 너는 열등'. 범주화는 교육과 상극이다. 아이들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배움에 대한 기쁨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데, 범주화는 그런 감정과는 무관한 '상품의 딱지'를 아이들이게 붙여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열등아나 문제아가 이런 범주화로 인해 상처를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커스틴 올슨이 <상처 주는 학교>(노승영 옮김, 한울림 펴냄)에서 제시하는 '평범한 아이들'의 상처는 정말 작지 않다. 한 '평범한 아이'의 시를 보자(93쪽).

부모님은 제가 평범하다고 생각하세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전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일이 무척 많거든요.
…물론 지금 시작하는 건 헛수고에요.
제가 평범하다는 걸 안 뒤로 알아차렸으니까요.
나에게 특별한 것은 하나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 <상처 주는 학교>(커스틴 올슨 지음, 노승영 옮김, 한울림 펴냄). ⓒ한울림
중간에서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틈새로 빠져나가는 아이들". 별 문제가 없다고 보이는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계속 자신의 기대치를 낮추고 능력을 부인한다. 인간은 누구나 특별하고 싶은 존재다. 그런데 특별하고 싶지만 특별하지 못하다는 것을 부모가, 학교가 알려주는 것이다, '범주화'를 통해. 우등생도 "결과가 완벽에 못 미치면 자책과 우울에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측정된 결과를 위해 완벽주의를 추구하다 보면, 학교에서는 소외, 때로는 나르시시즘, 그리고 사회에서는 실패로 나가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 아이들 역시 상처는 작지 않다.

다른 하나는 '말'이다. 어른들은 별 생각 없이, 아이들을 평가하고 말을 해댄다. 심지어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약자라서 그렇다. "네가 그렇지, 뭘 제대로 하겠니?", "이렇게 명쾌하고 탄탄한 글을 네가 썼을 리가 없어", "너 이렇게 공부 안 하다가 거지꼴 된다!", "음악해서 뭐 먹고 살래?", "옆집 애들은 두시까지 공부한다더라. 너는 이게 뭐냐?" 등등 예는 수도 없다.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나를 포함한 보통 부모들이, 평범한 선생님들이 소위 "아이들을 위해" 던진 말이다. 하지만 별 뜻 없는 말도, 아이들에게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그 순간 엇나가기로 작정한다. 당연하다. 뭘 좀 해보기도 전에 비난부터 받으니 비뚤어질 테다!라고 결심하는 것이다.

학교생활을 잘 못하는 애들은 그때그때 순간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나쁜 일이면 더 심하게 반응하죠. 이런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되고 자기 자신이 됩니다. 선생님들이 툭 던진 한마디 한마디가 제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129쪽)

아이들은 스스로가 '자기'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기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래서 자신이 적응하지 못한다고 느낄수록 예민해진다. 아이들이 어려울 때, 부모나 교사가 그 상황을 낙인화하면, 아이들은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표현조차 못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범주에 자신을 고통스럽게 맞춰왔을까? 아이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른들도 한때는 아이였으니까. 어른들의 '획일적 문화'는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폭압 속에서 자신을 삭제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자신의 마음과 몸을 끼워 맞춰 온 결과다. 그래서 더욱더 어른들은, 교육이란 배움의 기쁨이 아니라 희생과 훈육이라고 최면을 걸고, 내가 버틴 만큼 너희도 버텨야 한다며 다시 아이들을 좌절로 몰아넣는다.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큰 틀에서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다시 말한다.

아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환경을 만든 건 어른입니다. 그래놓고서 아이들이 빗나간다고 비난합니다. (…) 어른들에게 책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니까요. (157쪽)

3.

그러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어른들이라고 해도 막막하긴 아이들이나 마찬가지다. <상처 주는 학교>에서 다루는 사례들은 학교의 문제점을 보여주지만, 우리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토드는 교사의 말에 상처를 받고 좌절했다고 회상하지만, 중도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대학원생이 되었다. 또 소년원 출신 델마는 뉴욕의 한 대학에 입학하여 학생회 회장이 되고 뒤이어 석사학위 두 개를 취득했다. 난독증에 ADHD였던 샬럿도 브라운대학교 영문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했다. 학교가 사회의 일정한 방어막이 되고 기회를 열어주었던 것이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자신을 "구원하고, 믿어주고, 하찮은 존재라고 여겨질 때 자신의 가치를 깨우쳐주고, 자기 안의 비범한 능력을 발견하도록 도와준"(212쪽) 교사를 떠올리며 교직을 선택한다. 자신이 받은 것을 되돌려주고 싶다는 소명감, 제도적 병리를 바꾸어놓고 싶다는 의지가 교사를 선택하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이런 '낙오자'들에게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을까? 직업 안정성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교대나 사대를 선택하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학교가 평등하게 아이를 대할 것이라는 전제, 학교에 가면 아이의 가능성이 잘 피어날 것이라는 믿음은 어떤 정권이 되었건 간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은 정권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교는 학부모의 욕망과 위계적 교육 제도, 그것이 만들어낸 우리나라 고유의 교육 문화가 이미 깊이 자리 잡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전혀 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5년에 학교의 생태가 완전히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결정적인 전환은 어떤 '순간'에 온다. 시험을 풀다가 자신이 없어 울고 있을 때, 교사가 와서 "모든 시간은 다 네 거야, 걱정마라"라고 이야기해준 바로 그 순간, 첫 수업시간에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는 교사를 만나게 된 그 순간, 부모가 "학교가 틀렸다, 네가 옳다"라고 말해준 그 순간, "너는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막아준 그 순간, 아이는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는다. 그 전환의 순간이 조금씩이라도 제공된다면, 학교는 살만한 공간이 된다.

획일성과 불안감이 우리 주변을 휘감아 우리를 몰아가고 있고, 이것이 더 강한 경제 중심주의, 권력 중심주의를 낳고 있는 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만, 또 없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방어막이 되어주려는 자세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들을 둘러싼 말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형성되어온 내안의 경제주의, 마음속의 권위주의를 몰아내는 것은 길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아이들의 삶을 바꾼다. 우선 나부터 배움의 기쁨을 느껴보자. 배움의 기쁨을 느끼면,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이 보인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내 어릴 적 어떤 상처가 나를 만들었는가를 되짚어보자. 그리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자. 5년은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청년이 되기에,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의 패러다임을 바꾸기에 적지는 않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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