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개월 전 '해방 일기' 연재를 시작할 때 나는 이 작업이 하나의 산책이며 하나의 대장정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하나의 여행으로 생각합니다. '산책'의 즐거움도 있고, '대장정'의 보람도 있는 길이 되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먼 길을 걸을 욕심으로 쓸데없는 힘을 뺍니다. 독자 여러분께 길동무로 나서주시기를 청합니다. (1945년 8월 1일)
이 여행의 끝을 8개월 후로 내다보는 이 시점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마음속을 오간다. 개인적으로는 대체로 만족한다. 대한민국의 출발점을 돌아보며 이 국가의 성격에 대해 느끼던 의혹을 많이 풀었다. 우리 민족은 유별나게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보통사람들의 집단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그 자리에서 겪어내는 동안 맡아 온 역할 그리고 변해 온 모습이 모두 인간적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음을 대충 확인할 수 있었다.
작업 자세를 그만하면 잘 지켜왔다는 점에도 스스로 만족한다. 지난 30개월간은 내 인생에서 제일 엄격한 구속 속에 지낸 기간이었다. 빡센 편이었던 군 복무보다도 더 빡센 생활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이만하면 떳떳한 자리에 설 수 있겠다는 보람을 길동무로 나선 독자들이 그 동안 확인해준 데 감사한다.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고 마음이 놓인 지난 가을부터 '해방 일기' 이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5년 동안 매달려 있던 한국 근현대사에서 풀려나 원래 취향의 문명사 쪽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동아시아의 20세기'란 가제로 구체적 작업 구상을 해왔다.
40여 년의 역사 공부를 통해 '근대'라는 주제에 내 생각이 집중되어 왔다.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만이 아니라 느낌까지도 근대라는 조건에 크게 묶여 있다. 그런데 근대의 조건은 허물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근대를 먼저 겪은 지역 사람들은 '탈근대'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근대를 늦게 맞은 동아시아 사람들은 변화의 징후를 느끼는 데도 뒤쳐져 있다.
근대는 '전통'의 가치를 까뭉갠 시대였다. 탈근대 시대가 전근대 시대의 복원이 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통 속에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많이 담겨 있었고, 근대라는 역사적 상황을 벗어날 때 인간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최대한 되찾기 위해서는 전통 속에서 재발견할 가치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근대 시대의 전통 중 가장 풍요로운 발전을 성취했던 동아시아의 전통은 동아시아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제공할 가치가 많은 보물창고 노릇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근대'를 하나의 역사적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이 '탈근대'의 길을 찾기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20세기에 접어들며 시작되었고,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탈근대 상황을 맞고 있다. 이슬람 세계 같은 곳에 비하면 근대적 상황을 꽤 투철하게 경험한 편이고, 유럽 같은 곳에 비하면 짧은 시간 동안에 압축적으로 경험한 편이다. 한 세기의 역사적 경험으로 '근대'를 부각시키기에 좋은 조건이다. 효과적으로 서술할 길만 찾으면 동아시아의 20세기는 '근대'의 정체를 밝히는 좋은 창구가 될 수 있다.
이 작업 구상에 나 스스로도 만족하고, 의논을 청한 분들도 모두 반가워하며 많은 기대감을 표해주었다. 그런데 10여 일 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고 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내가 바란 것은 사람이 좋아 보여서보다도, 한국 사회의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 좋은 길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보수주의자인 나는 불평등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긴다. 그러나 그 불평등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사회의 안정성을 위협할 정도로 심화되지는 않기 바란다.
20세기 내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심각한 위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식민지 체제도 독재 체제도 이 위험을 키워오기만 했다. 1987년 이래의 민주주의 체제가 약간의 효과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획기적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5년간 한나라당의 집권 아래 그 약간의 효과마저 도로 없애버리는 퇴행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1987년 이전의 독재 체제를 배경으로 하는 박근혜 정권보다는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문재인 정권이 이 사회의 순탄한 발전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이라고 나는 판단했다.
선거 결과가 어떤 원인에서 나왔는지 논란이 무성하다. 나름대로 타당성 있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나는 그 어느 것도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규정하기 힘들다고 본다. 모든 요인에는 득실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각자가 크게 보는 것을 크다고 주장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일 뿐이다.
내게도 나름대로 크게 보이는 것이 있다. 이것도 코끼리의 한 부위에 불과한 것임은 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코끼리 만지는 것이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병든 코끼리를 고쳐주기 위해서라면 어느 한 부위가 특별히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왜 그 부위에서 병리적 문제를 느끼는 것인지 설명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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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요하게 보는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힘을(재력이든 정보력이든) 많이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공헌하려는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국가와 사회의 안전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인지상정이기도 하려니와, 안정과 번영을 누리는 사회의 필수조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처럼 지도층의 책임감이 박약한 사회가 재앙을 피하는 일을 나는 역사에서 보지 못했다.
왜 그럴까? 유력한 가설을 나는 갖고 있다. 식민지 체제다. 식민지 사회의 특권층에게는 자기 사회의 안보(security)를 위해 노력할 동기가 없다. 특권은 지배 국가 중심의 제국 체제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민지로 근대화를 시작한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박약한 현실은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40년의 식민지 시대가 빚어낸 이 문제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니, 오히려 더 심해진 것처럼까지 보이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해방 일기'에서 밝히고자 한 가장 중요한 문제가 그것이다. 해방이 되고 건국이 됐지만 대한민국은 완전한 독립국이 되지 못했다. 민족 사회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도태되고, 일본 제국 체제 안에서 누리던 특권을 미국 중심 제국 체제에서 다시 누리려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건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해방 일기'에서 밝혀 왔다.
건국 당시의 대한민국이 식민지 체제를 내부에 고착시켜 놓고 있던 상황을 오는 8월까지 계속해서 그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어 '대한민국 실록'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대한민국이 식민지 시대에서 넘겨받은 유산이 그 후 어떻게 지켜지고 어떻게 발전하는지 계속해서 살펴보려는 것이다.
구상을 처음 떠올린 지 겨우 열흘, 구체적인 계획을 밝힐 계제가 아니다. 이렇게 진행했으면 하는 희망 사항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이 작업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얻은 것은 지금까지 마음에 두어온 '동아시아의 20세기'의 뜻도 이 작업으로 살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동아시아'를 '한국'으로, '20세기'를 '20세기 후반'으로 공간과 시간을 줄이기는 하지만, '근대'의 천착은 이 작업에서도 중심이 될 것이다.
좋은 출발점으로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과 한홍구의 <대한민국사>가 있는데, 그분들 노력에 내 작업이 보탬이 될 수 있는 측면이 바로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현대사 서술은 정치적 입장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잘 읽히기 힘든데, 20세기 후반 인류 문명의 흐름을 서술의 바탕으로 깔아놓음으로써 독자들 생각의 범위를 넓혀드리고자 한다.
'해방 일기'가 일기의 틀로 르포 성격에 치우쳐 있었던 것과 달리 '대한민국 실록'은 에세이 성격이 강화될 것이다. 그래서 '실록'이란 말을 생각한 것이다. 1년의 작업으로 10년의 기간을 서술할 수 있다면 1948~1987년의 독재 시대를 서술하는 데 약 4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뒤 기간의 서술 작업을 계속해 나갈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대한민국 실록' 연재를 올려줄 지 아직 <프레시안>과도 의논을 하지 못했다. 나는 꼭 여기 연재하고 싶다. 이 작업을 괜찮게 생각하는 분들은 <프레시안>에 압력을 좀 넣어주기 바란다. (댓글 달아주시면 됩니다.) <프레시안>의 허락을 얻으면 2013년 10월 초부터 주 2회씩 약 30매 크기의 에세이를 올리려 한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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