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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강한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2012 '올해의 책'] 호다카 아키라의 <달의 노래>

'프레시안 books' 송년호(121호)는 '2012 올해의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프레시안 books'가 따로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대신, 1년간 필자·기획위원으로 참여한 12명이 각자의 '올해의 책'을 선정해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장르의 이 책들을 2012년과 함께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가 말하려는 책은 올해의 책이라 일컬을 만큼 강력한 임팩트는 없다. 아직도 읽은 이가 적은지 연초에 출판됐는데도 평가가 많지 않다. 하지만 자극적인 청소년 문학 중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이대로 잊히기엔 아깝다.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하고 싶은 올해의 책은 호다카 아키라의 <달의 노래>(김미영 옮김, 시공사 펴냄)다.

이 책은 엄마를 잃은 한 소녀의 성장담이다. 아니다. 책엔 네 명의 인물이 같은 분량을 차지한다. 소녀, 새엄마, 죽은 엄마의 친구 그리고 아빠. 이들은 각기 다른 입장에서 자기 이야기를 한다. 옴니버스이면서 마라톤 같다. 바통이 건네지는 동안 소녀는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다.

타미코는 조용하면서도 좀 시니컬한 아이다. 엄마의 중병을 혼자만 몰랐다는 상처를 지녔다. 내색은 않지만 제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엄마가 무척 야속하다. 아빠와 새엄마도 곱게 보이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집 밖의 합창부 활동에 매진할 뿐. 죽음의 기억은 시험 문제를 푸는 사이에도 불쑥 끼어든다. 마음 속 응어리는 어쩌지 못한 채 작문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달의 노래>(호다카 아키라 지음, 김미영 옮김, 시공사 펴냄). ⓒ시공사
새엄마 히로코는 삶에 대한 뚜렷한 목표 없이 임시 일자리를 전전하는 젊은 여성이랄까. 언뜻 보면 생각 없고 대책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기 모습을 잘 알고 있으며 제 나름의 고민과 노력이 있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무거운 집안의 분위기를 풀어준다. 한편 히로코와 타미코 사이에 흐르는 은근한 긴장감은 작품 내내 이어진다. 그녀는 의붓딸의 인간적인 매력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진심으로 존중하게 된다.

죽은 엄마의 친구 쇼코야말로 한 사람의 성장과 죽음을 지켜본 인물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나 다른 진로로 헤어지고 결혼 후 다시 만나 서로 아이를 키우며 친하게 지내던 날들…. 쇼코는 딸을 걱정하며 죽어가는 친구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다. 시간은 흘러 보름달이 뜬 날, 타미코를 집에 바래다주다 이 길을 친구와 함께 걷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간 타미코를 지켜보며 역시 별 내색 않던 쇼코는 네 엄마가 자신의 병을 밝힐지 말지 무척 망설였다는 이야길 전한다.

무뚝뚝한 아빠 또한 실은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히로코를 새 아내로 맞이한 사연이 있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네 명의 화자는 겉으로 봐선 모르는 다른 사람의 심정을 잘 이해하게 해준다. 고인을 떠나보냈다고 해서 늘 울고 불며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순간순간 밀어닥치는 추억과 슬픔이 있고 이를 감내하며 살아간다. 어찌 되었든 삶은 계속되니까.

그런데 이들을 감싸는 게 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나타나는 달이다. 태초부터 모든 걸 안다는 듯 사람들을 지켜본다. 이 책의 제목처럼 달은 이야기의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며 결심과 대화가 오갈 때 은은한 빛으로 품어준다. 달빛 속에 타미코의 오해는 풀리고 쇼코는 추억을 환기한다. 히로코는 달을 보며 타미코의 엄마를 향해 기도하고 아기는 보름날에 태어난다. 달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미래에도 함께할 존재다.

이 책엔 직접적인 위로의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타미코를 유달리 챙기거나 이래라 저래라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캄캄한 골목을 말없이 비춰주는 달처럼 오랫동안 함께 있어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자기 위치에서 저마다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이 차분한 감동을 준다.

"눈이 강해. 아직 어린애인데도 많은 걸 알고 있는 눈이야. 슬픔도 외로움도 다 경험해 본 것 같아. 그런데 그런 경험이 자포자기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어. 강인해. 정말로 따뜻한 사람의 눈이지."

타미코를 처음 본 히로코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문장을 청소년 눈에 심어주고 싶다. 이렇게 되면 어떠니 하고. 그러나 나는 아직 이런 눈을 갖지 못했다.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삶에 대한 비슷한 두려움은 있다고 생각한다. 타미코가 죽은 엄마에게 쓴 편지처럼 말이다.

"제가 다 포기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헤맬 때, 제 등을 살짝 밀어 달라는 거예요. 영적 능력이 없어서 쉽게 알아차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든든해질 거예요. 그러면 앞으로 겪게 될 크고 작은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죽은 엄마든, 달이든 만능 해결사가 되어주진 않겠지만 얕은 믿음이라도 무언가 한 사람 한 사람 온화한 빛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슬퍼하는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자기 안에 넘쳐나는 온갖 아픔과 어려움을 제 방식대로 그러나 잘 감내해 강하고 따뜻한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꼭 그러길 바란다.

연말을 맞아 도서관에 소원나무를 만들었다. 개시 하루 만에 많은 이가 동참해주었다. 학생들의 쪽지도 보인다. "면학 A반 들어가게 해주세요.", "살 좀 빼게 해주세요." 그들 소원이길 바라며 내가 매단 글귀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다짐이기도 하다.

"밝고 강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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