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이번에 누굴 뽑아야 합니까."
주인의 성향을 알 수 없던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둘 다 괜찮죠. 그런데 아무래도 부산을 생각하면 문재인이 낫지 않겠어요. 박근혜가 부산 챙길 리는 없고…"
그랬더니 주인은 잠시 말이 없더니 다른 데를 쳐다보며 나에게 딱 들릴 만큼 나지막하게 말한다. 사실은 나의 말에 대한 반박이었다.
"노무현 뽑아줬어도 바뀌는 것도 없데요."
순간 알았다. 국밥집 주인은 노무현을 찍지 않았고 이번에도 문재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저 교수는 어떤 생각일까' 하는 궁금증에 물어본 말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 알게 된 것은 부산 사람들의 '반민주당' 또는 '반노무현' 정서의 명분이다. 정말 사람들은 문재인을 노무현과 동일인으로 본다는 점이고 또 노무현은 부산에 해 준 게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은 부산에 해 준 게 있을까. 여기서 투표성향의 비논리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렇다. 부산의 새누리당 짝사랑에는 이유도 근거도 없다. 만날 당하고, 뺏기고도 찍어주니 이 정도면 '묻지 마 투표' 저리 가라다. '마조히즘'적 성향이라고나 해야 할까.
뽑아줬더니 부산에 준 건 배신?
부둣가의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던 제2의 도시 부산이 이렇게 지리멸렬한 이유는 지난 20년간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져 온 지금의 새누리당에 몰표를 준 때문이다. 그러니 국회의원들은 '시민'보다는 '공천'에 목을 매게 되고 당연히 시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공천을 받기 위한 '아부 정치', '눈치 정치'를 해왔다.
이들은 당 권력자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곧잘 부산을 배신했다. 지금 새누리당 선대위원회 김무성 총괄본부장은 부산에서만 4선을 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2008년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으로 지역의 불만이 극에 달했을 당시 부산시와의 당정협의회에서 "수도권 규제 완화에 찬성한다"고 했다. 김세연, 현기환, 정의화 등 다른 부산 의원들도 합심해서 수도권 규제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지 말라며 부산시 공무원들에게 호통을 치고 면박을 주기까지 했다.
이듬해에도 김무성 본부장은 신공항 입지와 관련 "신공항이 부산으로 오면 좋겠지만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동남권 신공항은 부산의 상공인들이 시작한 부산의 프로젝트였고 이는 나의 이전 칼럼에서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권력을 잡은 대구·경북(TK)이 이를 낚아채 밀양을 밀어붙이자 부산의 국회의원들은 권력자들에겐 말 한마디 못 하고 오히려 부산에게 포기할 것을 종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은 어떨까. 부산은 무능의 극치인 사람을 단지 한나라당이라는 이유로 세 번이나 시장에 뽑아줬다. '부산 시장 10년'을 채울 이 인물은 '주사급'의 비전과 행정으로 벌이는 사업마다 족족 쪽박을 찼고 이로 인해 시민에게 사과까지 해야 했다. 부산의 산과 바다를 난개발로 망쳐놓은 이 인물은 쉽게 말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꼴인 그런 분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이 참여했던 노무현 정부는 과연 한나라당처럼 부산을 모른 척 했을까. 지금 부산시의 '10대 비전'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 시절 입안된 정책들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 없어 완결을 못하고 지금껏 미래 정책에 걸어두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만든 이것들마저 없었다면 지금 부산시는 무엇을 내걸었을지 궁금할 뿐이다.
ⓒ프레시안 |
지방을 먹고살게 해 주는 대통령
부산신항은 노무현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할 때 추진한 것이다. 부산 역사상 최대 행사로 2005년 개최한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정상 회담은 노무현 정부가 아니었다면 또 서울이나 제주도로 갈 가능성이 큰 행사였다. 또 번듯한 공원 하나 없어 삭막하기만 한 부산에 대규모 시민 공원이 곧 들어서는데 이것도 노무현 정부의 배려로 가능해진 것이었다.
공원이 들어설 땅인 미군 부대 부지를 부산시가 사들이려면 공시지가 총액의 70퍼센트에 달하는 돈을 국방부에 지불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 부산시는 아파트를 대규모로 짓는 것 외인 손익을 맞출 수 없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40퍼센트로 낮춰 수천억 원을 절감케 했고 이로 인해 부산시도 큼직한 공원을 갖게 된 것이다.
부산항 개항 이래 최대의 프로젝트라는 북항 재개발과 도심 철도 이전도 노무현 정부 때 가시화 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4대강에 '올인' 하며 22조 원을 쏟아 붓는 바람에 북항 재개발은 철저히 무시될 수밖에 없었다. 10조 원이 넘는 사업인데도 국비 지원 요청액 6000억 원 중 작년까지 고착 1000억 원만 지원하더니 올해 총선이 다가오자 2700억 원만 추가 지원했다.
놀라운 것은 북항 재개발 사업에 중앙 정부의 예산 지원 비율이 고작 4.3퍼센트에 불과해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정부의 무관심을 문제 삼았다는 점이다. 그 외에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부산 상공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검토를 시작한 동남권 신공항을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가 앞장 서 '영남권 신공항'으로 둔갑시킨 후 밀양에 주려 한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다.
균형 발전, 누가 할 수 있는가
이런 설명을 혹여 노무현의 지역 편애로 보면 곤란하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 가치는 지방 분권과 균형 발전이었다. 그래서 호남의 경우 공직자 인사에서는 불만이 있었겠지만 국민의 정부 때 입안된 모든 정책을 이어서 추진했고 충청도에는 행정 수도를 건설하려 했는데 한나라당이 반대하자 규모를 조금 줄여서라도 관철시켰다. 강원도를 위해서는 도민들의 뜨거운 염원인 동계 올림픽 유치를 두 번이나 지원하면서 기업 도시, 혁신 도시를 지정해 줬다. 결국 노무현은 모든 지역에 지역 특성에 맞는 프로젝트를 선사한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지역에 중점을 둔, 지역별 정책을 만들었기에 부산도 당연히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부산신항, 시민공원, 동남권 신공항, 북항 재개발, APEC 등은 모두 '부산항 개항 이래' 최초 또는 최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은, 부산을 획기적으로 재개조할 대규모 사업들이었다. 그러나 또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무시 때문에, 4대강 때문에 또는 박근혜 후보의 낚아채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척이 없거나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진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사실 대한민국 대통령보다는 '여기' 사는 '나'를 위한 대통령이 누구냐를 고민하게 됐다. 나와 주변의 사람들이, 제자들이, 또 그 부모들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나는 '나를 구해줄 대통령'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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