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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유달산에서 이등병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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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유달산에서 이등병을 생각하다

[꽃산행 꽃글] 이등병의 편지

1

봄이라면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렸겠다. 맞춤하게 비라도 와 준다면 봄비,를 읊조렸겠다. 그러나 지금은 쓸쓸한 가을. 곧 겨울로 들어가기 직전의 날씨였다. 찬밥 한 덩어리 입에 넣으면 목구멍으로 넘기기 싫은 계절이다. 각종고지서가 쌓이는 우편함을 그래도 기웃거리며 요즘 자주 흥얼거리는 곡조는 '이등병의 편지.' 가사를 다 외울 수 없으니 그저 생각나는 대로 띄엄띄엄 한 구절씩.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시월 마지막 토요일. 목포로 식물탐사대 마지막 꽃산행이 있었다. 유달산과 압해도의 송공산을 관찰하는 여정이었다. 대청역에서 오후 3시 출발인데 집을 나서니 자유로가 꽉 막혔다. 서울 시내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렸는데 그 여파가 미친 것이었다. 목포행을 포기하려다가 혼자 KTX를 타고 뒤따라가기로 했다.

아예 늦은 김에 사무실에 들러 몇 가지 볼일을 처리하고 6시 20분 발 기차를 타러 용산역으로 갔다. 제대로 갔더라면 지금쯤 목포항에서 일행들과 어울려 세발낙지와 구수한 사투리를 안주로 달큰한 소주를 몇 잔 들이켰을 시간. 그것도 목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지역의 소주로!

지금은 저녁. 더구나 그것도 6시. 뒷덜미가 시큰해지고 그 어디 돌아갈 곳이 문득 생각나는 시각. 집 떠난 아이라면 괜히 엄마 품이 그리워 울먹해지는 시간. 비에 젖은 등산화를 끌고 용산역 로비를 지나는데 기차를 주제로 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흥얼거리며 작품들을 감상했다. "열차 시간 다가올 때 두 손 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하는데 육중한 기차가 들어오는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판잣집에 붙은 동그란 간판은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굴기

2

일행과 떨어져 혼자 목포역에 내리고, 혼자 늦은 저녁을 먹고, 혼자 여관을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리고 일행들이 신나게 놀고 있는 노래방을 찾았다. 뒤늦게 도착한 터라 주최 측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맥주를 받는데 누구의 신청곡인지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왔다.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술기운이 모자랐지만 어두컴컴한 무대로 나가 2절은 내가 낚아챘다.

도도한 흥이 흐르고 맥주 거품이 횡설수설하는 가운데 후래자인 나도 거의 기분을 맞추는 수준에까지 갔다. 더 취하기 전에 갈 곳이 있었다. 화장실 가는 척 하고 몰래 노래방을 나섰다. 다시 혼자가 되어 도착한 곳은 포장마차. 목포까지 와서 세발낙지를 생략할 순 없었다. 소주를 홀짝거렸다. 마침 손님은 나 혼자뿐이어서 여주인이 술도 따라주고 사투리로 응대도 해주는 호사를 누리면서.

기분 좋게 잤다. 잠에는 지각이 없다. 깨끗하게 일어나 간 곳은 유달산 입구. 그리 높은 산도 아니었다. 광나무, 지네발난 등 특산 식물에 대한 짧은 강의를 듣고 발걸음을 오르는데 '목포 유달산 조성 기념비'기 눈에 띄었다.

"하늘에 고개 쳐들고 노상 밋밋하게 키를 뽑는 멧부리 굽이치는 다도해를…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어찌 이 고장의 자랑과 숨결이 깃들지 않았으랴."

병풍 같은 검은 돌에 돌로 새긴 글을 따라 읽어 내려갔다. 오늘 유달산에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가 나무 한 그루를 정확히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구절에 새삼스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가슴에 콕, 막히는 구절은 따로 있었다. 풀 한 포기. 자동으로 '이등병의 편지'를 또 흥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이굴기

3

목포를 다녀오고 11월 들어 첫 주말. 지리산에 갔다. 매월 초 지리산 꽃공부를 하는 모임이었다. 이번 코스는 화암사에서 코재로 올라 성삼재로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11월에 들어서인지 날씨도 꼿꼿하게 차렷! 하는 듯 쌀쌀했다. 초겨울 기운이 물씬했다.

내가 그리도 좋아하는 화엄사 각황전에 들러 삼배하고, 그 장엄한 기와지붕을 오래 올려다보고, 국보인 삼층사자 석탑을 돌아보고, 대나무 숲길을 따라가니 구층암이 나타났다. 기둥의 고량주를 모과나무로 그대로 이용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암자이다. 대패질 하나 없이 천연의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집이었다.

고즈넉한 절. 빗질한 마당에는 바람이 불고 햇빛이 놀고. 한 켠 화단에는 모과나무가 보이고 화단에는 화살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배롱나무가 우람히 자라고 있는 옆에 화살표가 있었고, 검은 글자를 따라 저절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몰래 터지는 셔터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몹시 간절해지면 이런 엉뚱함으로도 연결이 되는가.

……아이는 큰절을 하고 집을 떠났다. 할머니께 큰절을 했다. 나도 부모로서 큰절을 받았다. 그리고 춘천으로 가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한테도 큰절을 했다. 큰절을 하는 아이의 모습이 오래 눈에 밟혔다. 큰절, 이라는 말도 좋았다. 그러다 보면 '이등병의 편지'에서도 아래 대목을 가장 자주 입술에 올렸던 것 같다. 또 흥얼거리는 노래.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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