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에 대한 지지 성향은 10년 단위의 세대에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확실한 '계단식'인데 이게 적용이 안 되는 세대가 바로 20대다. 20대는 30대와 함께 문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건 맞다. 그러나 20대는 세대별 지지의 흐름을 깬다. 30대와 별 차이가 없다. 심지어 다수의 여론 조사에서 20대가 30대보다 박 후보 지지 비율이 높게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20대가 40대 성향?
박근혜와 문재인의 양자 구도가 형성된 이후 <매일경제>의 여론 조사는 20대(40.3퍼센트)가 30대(26.9퍼센트)보다 박 후보를 13.4퍼센트 포인트나 더 많이 지지한 것으로 보도했다. 한국갤럽은 20대(32.4퍼센트)의 박 후보 지지가 30대(27퍼센트)보다 높다는 결과를 냈고 <한겨레>도 20대의 박근혜 지지(39퍼센트)가 30대의 박근혜 지지(36.4퍼센트)보다 높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선거의 성격이 '이명박 정부 심판이냐, 노무현 정부 심판이냐'는 <오마이뉴스>의 여론 조사에서 30대는 74.6퍼센트가 이명박 정부 심판, 16퍼센트가 노무현 정부 심판이라고 답을 한데 반해 20대는 58.3퍼센트가 이명박 정부 심판, 28.4퍼센트가 노무현 정부 심판이라고 답했다. 이는 40대(이명박 심판 53.5퍼센트, 노무현 심판 28.8퍼센트)의 응답 성향과 비슷하다.
조짐은 있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20대, 30대 지지율은 37.4퍼센트로 동일했는데 정동영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0대(17.5퍼센트)가 30대(25.4퍼센트) 보다 낮았다.
그렇다면 20대가 30대보다 보수적 투표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 언론은 최근 박 후보의 '청바지 스킨쉽'이 젊은층에 어필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20대의 역전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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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세계관은 언론보다는 부모
내가 매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묻는 게 있다. "집에서 신문을 보느냐"란 질문이다. 학생들의 사회적 관심도를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간편 척도다. 그런데 집에서 아침에 신문을 받아 보는 비율이 50명이면 10명이 안 된다. 그럼 그 10명은 그 신문을 보는가. 거기에서 또 절반이 안 된다. 그러니까 종이 신문을 보는 학생이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말이다.
신문을 보지 않는 요즘 대학생들은 결국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먼저 클릭하는 뉴스는 대부분 연예계와 스포츠 뉴스다. 김연아의 피부와 패션에서부터 연예인의 성형 수술이나 민망 노출, '꿀벅지', '쩍벌녀'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뉴스가 20대의 사고를 잠식했다. 그러나 동시에 제대로 된 언론 매체의 공급으로 채워지는 사회, 정치, 역사 등 지적 공간은 점점 축소되었다. 그러니 박원순이 여잔 줄 알았다는 대학생이 등장하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요즘 대학생의 경우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의 미래나 취업 또는 이를 위한 스펙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게다가 등록금과 용돈을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면서 사회적 관심사와 유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20대의 정치적 인식 공간은 부모가 주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밥상 여론'을 통해 부모의 정치적 성향을 주입받아 20대가 30대보다 더 '늙은 투표'를 하는 것이고, 이렇게 해서 4~50대 부모와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세트 투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20대가 30대와 40대 중간 어디쯤의 성향을 보이는 것은 결국 언론과 멀어지고 부모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현상이다.
'반항'과 '저항'을 잃어버린 20대
프랑스에서 촉발되어 전 세계를 휩쓴 68혁명이나 미국의 반전 운동, (소수자) 인권 운동, 히피 운동 등은 모두 대학생 또는 20대가 주도한 것이다. 박정희의 유신 독재를 무너뜨린 부마항쟁이나 1987년의 민주화 운동도 모두 대학생이 맨 앞에서 피를 흘리며 투쟁해 쟁취한 위대한 업적이다. 4.19 혁명을 촉발시킨 김주열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나 지금 젊은이들은 반항과 저항을 잃어버리고 순응과 생존에 매달리고 있다. 초등학교때부터 '승합차 인생'이었고 친구를 사귀어도 학원 친구가 더 많으니 청년다운 야성이 생겨날 리가 없다. 문제는 교육 기관과 교육 공간을 벗어난 일상에서도 청년됨을 일깨울만한 그 아무 것도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대중문화 연구자인 로렌스 그로스버그는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이 가능할 것이냐는 질문에 'No'라고 답한다. 이유가 의외였다. 그리고 엉뚱했다.
"There is no music!(음악이 없다!)"
다소 상징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근거가 있는, 통찰력 있는 주장이다. 1970년 전후의 전 지구적 격변을 이끌었던 인권 운동, 평화 운동, 히피 운동은 대중음악이 이끌었다. 밥 딜런,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나 도어스의 짐 모리슨은 당시 청년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음악'이 없는 시대
가정이긴 하지만 이들 대중음악인들이 없었다면 당시의 정치 변동은 가능했을까. 모르는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시의 격변은 이들의 음악이 없이는 그려지지가 않는다. 음악이 없었다면 그런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른 대중문화 장르가 할 수 없는 역할이다. 제임스 딘의 영화는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변화다.
이들 대부분이 마약 중독 등으로 20대에 요절한 이후 밥 말리나 너바나가 명맥을 유지했지만 이들 역시 죽고 난 지금 저항과 도전으로 젊은이들을 묶어줄 만한 음악은 없다. 그리고 지금 서구의 음반 시장은 '정신'의 세계에서 '스타일'의 세계로 변신했다. 다른 대중문화 장르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생성될 수 없는 이유다.
이는 한국 사회에도 딱 들어맞는다. 지금 한국의 대중음악은 자본주의의 전위다. 과거 적어도 대학생들에겐 운동가도 있었고 민중가요도 있었다. 수많은 통기타 가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아이돌 가수 세상이다. 부와 인기를 위해 학대와 착취가 횡행하는 공간이고 획일화된 소비 영역이다. 방송에 의해 완벽하게 길들여진 대중문화 장르가 됐다. 심지어 인디 밴드조차 방송 출연을 인기의 발판으로 여기게 됐다. 가장 다양하고 저항적이어야 할 대중문화 장르가 세속에 가장 충실한 문화가 된 것이다.
2012년 한국, '영상'이 반항하다
이렇듯 대중음악에서 저항의 색채가 탈색된 지금 젊은 층에게 사회적, 역사적 인식을 불어넣어주려는 시도가 영화계에서 나오고 있다. <26년>과 <남영동 1985>가 그것이다.
이 두 영화는 1980년대의 이야기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지금의 20대들은 이 시기의 일들을 잘 (또는 거의) 모른다. 알더라도 조작되거나 왜곡된 내용을 역사로 알고 있다. 이 둘은 상업 영화의 형식을 빌려 과거의 사건을 알리려는 저널리즘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아니지만 최근 가장 '핫'한 것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이라는 시리즈 영상물이다. 이승만('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정희('Fraser Report(프레이저 보고서)')의 맨얼굴을 완전히 드러내는 영상물이다. 내용도 깔끔한데다 시간도 40여 분 정도라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한 추천이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닌다고 한다. 10여 일 만에 유튜브에서 50만 뷰를 기록했다. (중장년층 설득용(?)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끄는 것은 결국 대중문화의 몫이 된 듯하다. 수많은 연예인, 유명인들이 나섰던 인증샷 놀이는 이번에도 확산될 조짐이다. 영향력을 알 수는 없지만 몇몇 교수들도 학생들의 투표 독려에 나섰다. 캔 커피 사주는 사람도 있고 모의 투표를 통해 학생들의 관심을 높이려는 이도 있고 또 동영상을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20대가 궁금하다
19~30세까지가 전체 유권자의 38퍼센트를 차지하고 50세 이상은 40퍼센트를 차지해 외견상 세대 간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 대 진보의 지지 비율은 40퍼센트 대 30퍼센트라고 한다. 그런데 연령이 낮을수록 투표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니 진보는 항상 기울어진 경기장에서 위를 향해 뛰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다.
이번 대선 최대 관심사는 2030세대의 투표율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더해 과연 20대가 30대보다 진보적 투표를 할지, 아니면 보수적 투표를 할지가 더 관심이 간다. 이들을 분리해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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