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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공산당 선언'을, 한 손에는 '이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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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는 '공산당 선언'을, 한 손에는 '이것'을!

[장석준의 '적록 서재'] 버트런드 러셀의 <자유로 가는 길>

글깨나 읽었다는 사람들 중에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느 철학사 서적을 보든 그는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영어권 현대 철학의 정초자 중 한 명으로 당당히 한 장(章)을 차지한다. 또 철학자들 중에서는 희귀하게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물로서, 국내에도 그가 지은 책들이 적잖게 소개되었다. 그 중에서도 그의 <서양 철학사>(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는 한때 서양 철학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첫째가는 필독서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러셀이 이해하기 쉬운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가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남긴 대표작은 화이트헤드와 함께 쓴 세 권짜리 <수학의 원리>인데, 이 책은 너무 어려워서 세상에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은 세 사람밖에 없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그 세 사람이란 저자인 러셀, 화이트헤드 그리고 이 책의 논쟁 상대였던 독일 철학자 고틀로프 프레게다.

게다가 러셀은 얌전한 철학자만은 아니었다. 한 동안 국내에는 잘 안 알려졌던 (혹은 쉬쉬했던?) 그의 면모 중 하나는 그가 '민주적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가 제1차 세계 대전에 반대하는 데모에 참여해서 감옥에 갇히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도 추방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만년에(98세나 살았다!) 핵무장 철폐 운동에 앞장서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이 운동의 상징 역할을 한 것도 현대 지성사의 상식 중 하나다.

그러나 러셀의 이 모든 행동이 돌출적인 게 아니라 자신의 이념에서 비롯된 일관된 것이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야 그의 사회주의 이념을 분명히 드러낸 저작들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펴냄, 2005년), <런던 통신 1931-1935>(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펴냄, 2011년),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이순희 옮김, 비아북 펴냄, 2010년) 등이 그런 책들이다. 이 책들에서 우리는 신념 있는 사회주의자 러셀을 만나게 된다.

단순히 유명인으로서 사회주의에 동조한 정도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처럼 후대의 좌파 운동권에게 힘을 주는 글 한 편을(미국의 독립 좌파 저널 창간호에 써준 저 유명한 '왜 사회주의인가?') 남긴 수준이 아니다. 러셀 자신이 한 명의 독창적인 사회주의 사상가였다. 같은 1870년대 생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나 로자 룩셈부르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깊이를 갖춘 사회주의자였다.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근에 우리말로 나온 그의 <자유로 가는 길>(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의 한 가지였을 뿐


▲ <자유로 가는 길>(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펴냄). ⓒ함께읽는책
<자유로 가는 길>은 문고본 정도 분량의 길지 않은 책이다. 서술도 그렇게 현학적이거나 이론적이지 않다. 러셀의 다른 에세이들처럼 위트가 넘치며 쉽게 읽힌다. 애초 집필 목적이 대중용 입문서를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에 러셀은 한 미국 출판사로부터 좌파 사상의 여러 조류들을 쉽게 소개하는 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막 반전 운동에 뛰어든 탓에 생활고에 시달리던 러셀로서는 원고료 한 푼이 아쉬운 처지라 이 청탁에 쾌히 응했다. 하지만 러셀이 1918년에 투옥되는 바람에 책이 나오는 데는 좀 시간이 걸렸다. <자유로 가는 길>은 전쟁이 끝난 1919년에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1917년부터 1919년 사이라면 세계사의 엄청난 격동기 중 하나다.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인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났고, 1년 뒤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도 혁명이 뒤따랐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던 전쟁은 이렇게 해서 종지부를 찍었지만, 베르사유 강화 회담으로 들어선 전후 질서는 상처를 치유하기보다는 오히려 덧나게 만들었다.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 곳곳에서 혁명의 여진이 계속되었고, 중국, 인도 등 유럽 바깥에서는 반제국주의 민중 투쟁의 격랑이 일었다. 우리의 3·1 운동이 폭발한 것도 이 때였다.

다름 아닌 이런 격변을 마주하며 러셀은 <자유로 가는 길>을 썼다. 이 책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십수년간 서구 세계를 뒤흔들었던 세 가지 좌파 조류를 검토한다. 그 중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독일 사회민주당의 혁혁한 성장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던 마르크스주의 혹은 러셀이 파악한 그 실현 형태인 국가 사회주의다. 두 번째는 마르크스주의의 오랜 숙적 아나키즘이고, 나머지 하나는 20세기 벽두에 프랑스의 노동총동맹(CGT)과 미국의 세계산업노동자단(IWW)을 통해 기염을 토하던 생디칼리슴이다.

마르크스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슴을 동렬에 놓고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한국의 운동권에게는 낯선 접근법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만이 혁명 사상의 전부인 양 군림해왔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은 일제 강점기에 소수의 테러리스트들이나 관심을 가졌던 사상사의 화석처럼 취급되고, 생디칼리슴은 아예 그 본래 의미에 상관없이 정치에 관심 없는 노동조합 운동가들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간혹 동원된다.

그러나 러셀이 <자유로 가는 길>의 집필 의뢰를 받던 무렵의 사정은 달랐다. 이때도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던 것은 마르크스주의 쪽이었다. 하지만 아나키즘이나 생디칼리슴의 인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스페인 노동 운동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아나키즘이 주류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프랑스나 미국에서 산업 노조라는 새로운 조직 형태를 확산시키던 것은 생디칼리스트들이었다.

러셀이 이 책을 쓰던 바로 그 무렵 일어난 결정적인 한 사건이 이런 상황을 크게 바꿔놓았다. 러시아 10월 혁명 말이다. 10월 혁명 초기에 등장한 체제, 즉 노동자 대표들로 구성된 공장위원회가 주요 기업을 직접 경영하고 나라 전체로는 노동자, 농민, 병사 대표들로 이뤄진 소비에트(평의회)가 권력을 쥔 상황이 상당수의 아나키스트나 생디칼리스트들까지 볼셰비키 지지자로 만들었다.

아나키스트-생디칼리스트 운동의 몇몇 개인이 아니라 다수 세력이 코민테른 결성에 동참했고, 그러면서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흐름, 즉 공산주의에 급격히 흡수되었다. 러셀 자신 제2차 세계 대전 후(1948년)에 나온 <자유로 가는 길> 제3판 서문에서 이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보겠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의 생디칼리슴과 미국의 세계 산업노동자동맹, 영국의 길드 사회주의 등은 모두 국가에 대한 불신을 천명하는 동시에 전능한 관료주의 없이 사회주의의 목표를 실현하고자 한 운동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들은 러시아인들의 성취에 경도된 나머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몇 년에 걸쳐 모두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 책을 집필하던 1918년 1월에는 러시아 사정에 관하여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가 불가능했다. 다만 볼셰비키가 전투 구호처럼 외치던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라는 표어만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즉 의회 정치에 반대하며 조금은 생디칼리슴의 성격을 띤 정치 체제를 표방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그들이 좌파의 지지를 얻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만들어진 체제가 이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조차도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한 가지 믿음을 굳게 유지했다. 소련은 어쩌면 서유럽 사회주의자들이 그때껏 설파했던 것과 정반대의 체제일지도 모르지만, 그 형태가 어떠하든 완벽한 것으로 칭송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어떠한 비판도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에 대한 배신으로 비난받았다. 아나키스트 및 생디칼리스트의 비판은 망각되거나 무시당했고, 사람들은 국가 사회주의를 찬양함으로써 하나의 위대한 국가가 선구자들의 열망을 실현했다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14~15쪽)


통렬한 비판적 회고다. 러셀은 1920년에 소련을 방문한 뒤 곧바로 이라는 저작을 써서 혁명 이후 러시아 체제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그의 자유주의 성향이 드러난 것이라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러셀이 미련을 가진 것은 결코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아니었다. 그가 애석해 한 것은 국가 사회주의의 승리로 역사의 기회에서 밀려난 반자본주의의 다른 흐름들, 즉 반국가주의적 사회주의 사상과 운동들이었다.

아나키즘의 진정한 교훈을 흡수한 사회주의

<자유로 가는 길>의 제1부('역사적 배경')에서 러셀은 각각 한 장(章)씩을 할애해 마르크스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슴을 소개한다. 이 중에서 아나키즘, 생디칼리슴을 소개한 제2장, 3장은 처음 접하는 이야기도 많아 무척 흥미롭게 읽히는 반면 마르크스주의를 다룬 제1장은 다소 지루하다. <공산당 선언>을 장황하게 인용하고 있고, 마르크스가 "임금이 최저 생계비에 머물러 노동자의 빈곤이 계속되리라고 예측한 임금 철칙"을 주장했다는(63쪽) 잘못된 주장도 있다.

이미 마르크스에게 커다란 매력을 느낀 독자라면 이러한 대목에서 러셀에게 반론을 펼치고 싶어 좀이 쑤실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국가 사회주의와 등치시키는 게 너무 일면적인 해석이라고 느껴져 화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환기해야 할 것은 <자유로 가는 길>이 1910년대 말에 쓰인 책이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의 마르크스 이해는 지금보다 훨씬 제한되어 있었다. 러셀이라면 분명 흥미를 느꼈을 마르크스의 청년기 저작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수고>는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역사 유물론을 도식이 아닌 풍부한 착상들의 형태로 제시하는 <독일 이데올로기>도 아직 출판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러셀과 그 동시대인들은 주로 <공산당 선언>에, 그리고 <자본>의 특정한 해석에 기반을 둔 독일 사회민주당의 교리가 곧 마르크스주의인 것으로 이해했다.

러셀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읽을 때에는 이런 시대적 한계를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달리 보면, 마르크스주의의 국가 중심주의적 측면을 부각시킨 게 꼭 편견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10월 혁명으로 들어선 체제가 이후 실제로 국가 사회주의로 귀결된 것을 생각해보면, 러셀의 비판은 오히려 뛰어난 감식안의 증거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마르크스 자신은 아니더라도 그의 이름을 내건 운동에는 분명 국가 사회주의의 요소들이 있었고, 러셀은 이것들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것이다.

그렇다고 러셀이 마르크스주의의 라이벌을 무조건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러셀은 마르크스주의의 국가주의적 요소를 비판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지면을 아나키즘의 순진한 반국가주의적 환상을 비판하는 데 할애한다. 국가 사회주의자들이 국가와 사회는 엄연히 다르며 미래 권력의 주체는 국가가 아니라 사회여야 한다는 것을 쉽게 망각했다면, 아나키스트들은 지금 당장 국가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러셀은 대안 사회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제2부('미래의 문제들')에서 이러한 단꿈을 깨뜨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러셀은 이렇게 좌파의 대표적인 조류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점차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탈자본주의 대안 사회의 밑그림을 그려간다. 그는 이것을 "아나키즘의 진정한 교훈을 흡수한 사회주의"(236쪽)라 부른다. 이것은 국가나 시장을 활용하는 현실적인 길을 취하면서도 이 모든 노력의 종국적 목표가 바로 모든 개인의 자유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 사회주의다. 자본의 자리에 다른 어떤 집단을 들이미는 게 목표는 아니다.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은 자유로운 개인들이다. 그래서 책 제목도 '자유로 가는 길'이다.

제2부의 각 장은 아주 구체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이러한 논의를 흥미롭게 풀어나간다. 예를 들어, 제4장('게으름뱅이가 될 자유')을 보자. 이 장에서 러셀은 자본주의를 넘어선 미래 사회에서는 어떠한 원칙에 따라 소득이 분배되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이 물음에 대한 (국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의 답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은 분배 문제와 관련하여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사회주의는 그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실제 노동 또는 노동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어느 정도 견지하며, 연령이나 질병 때문에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경우를 제외하고 일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거나 적어도 최저한도의 생계는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반면 아나키즘은 일상적인 재화의 경우 어떠한 조건도 없이 모든 이에게 원하는 만큼 제공되어야 하며, 무한정 공급할 수 없는 귀중품은 배급을 통해 전 인구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아나키즘은 노동의 의무를 전혀 부과하지 않지만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을 즐거운 일로 만들면 인구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그 일을 떠맡을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을 강요하고자 한다." (138~139쪽)


여기에서 사회주의는 대략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라고 불렀던 것에 해당한다. 또는 현재 북유럽에 실현되어 있는 복지 국가를 연상해 봐도 좋겠다. 한편, 러셀이 인용하는 아나키즘의 구상은 대체로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사상에서 따온 것이다.

러셀이 보기에 사회주의의 분배 원칙은 사회의 존립에 필요한 기본 노동이 수행되도록 만드는 데에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일을 시키고 그 보상을 제공하는 자들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고, 이런 자들의 존재는 쉽게 그들의 독재로 귀결된다. 반면 아나키즘의 분배 원칙은 무엇보다도 자유를 강조한다는 데 미덕이 있다. 그러나 러셀은 아나키스트들이 꿈꾸는 사회가 과연 필수 생산 활동을 지속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그럼 러셀의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생필품은 모두에게 공짜라고 하더라도 그보다 값진 것은 무엇이든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제공한다"(154쪽)는 분배 원칙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모든 사람에게 생필품 구입에 필요한 만큼의 소득, 러셀의 표현에 따르면 '뜨내기의 품삯'(229쪽)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누리려면 반드시 유급 노동에 뛰어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유를 부르짖을 목소리와 노동을 이끌어 낼 경제적 자극을 한데 결합할 수 있다"(155쪽)는 것이다.

"좀 더 친숙한 용어로 설명하면, 우리가 지지하는 계획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다. 일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사람은 누구나 적지만 생필품을 구하기에는 충분한 소득을 일정하게 보장받아야 하며, 이보다 더 큰 소득은 생산된 재화의 총량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공동체가 유용하다고 인정하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155쪽)

영락없는 기본 소득 구상이다. "아나키즘의 진정한 교훈을 흡수한 사회주의"의 분배 원칙에 대한 러셀의 고민 속에서 우리는 이미 100년 전에 제시된 기본 소득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길드 사회주의자다

러셀이 국가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이라는 전통적인 대립 쌍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은 생디칼리슴이다. 생디칼리슴은 아나키즘처럼 국가와 사회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도 아나키즘과는 달리 사회를 대변할 구체적인 조직적 실체를 제시한다. 그것은 산업 단위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다.

하지만 생디칼리슴에는 아직 아나키즘의 흔적이 너무 짙게 남아 있다. 생디칼리스트들은 그들의 선배인 아나키스트들처럼 국가 없이도 노동조합만으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고 믿지만, 러셀이 보기에는 이것 역시 유토피아적 몽상이다. 그는 차라리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으로 권력이 분산되면서 동시에 이들이 민주적으로 변형된 국가와 협력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며 또한 바람직하다고 본다.

러셀이 이 책을 쓸 무렵 영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구상이 여러 논자들을 통해 제기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은 자신만의 독특한 이름까지 갖고 있었다. 그 이름은 '길드 사회주의'였다.

G. D. H. 콜을 비롯한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각각의 공장이 저마다 경영진을 선출하여 자신들의 생산 방식을 자유로이 통제"(123쪽)하길 바랐다. 여기까지는 경영권이 고스란히 노동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는 김상봉의 제안(<기업은 누구의 것인가?>(꾸리에 펴냄))이나 노동자 자주 관리 혹은 생산자 협동조합의 일반화를 주장하는 목소리와 닮았다.

그런데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해당 산업에 속한 개별 공장이 연합하여 구성한 전국 길드"가 "업계 전체의 거래 활동 및 이해관계 전반"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 산업의 전국 길드는 길드 의회에 서로 모여 협상과 합의를 통해 경제 활동을 조정한다. "길드 의회는 현존하는 영국 노동조합회의의 자랑스러운 후계자로서 (…) 생산자의 처지에서 공동체를 대표할 것"(181쪽)이다.

국가는 반드시 민주화돼야 하지만, 여전히 그만의 할 일이 있다. 길드 사회주의자가 보기에 그것은 소비자 혹은 지역 주민으로서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회와 길드 의회는 저마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대표하는 양대 권력으로서 동등하다. 그 둘 위에 의회와 길드 평의회의 합동 위원회를 두고 여기서 소비자와 생산자의 이해관계가 함께 걸린 문제를 결정한다."(124쪽)

러셀은 <자유로 가는 길> 곳곳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가장 바람직한 모델은 길드 사회주의라고 천명한다. 한 마디로, 러셀은 이 책에서 "나는 길드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한다. 다음은 그런 반복적 언급들 중 하나다.

"마르크스주의와 생디칼리슴은 둘 다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행복하고 바람직한 세상을 이룩할 수 있는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둘 중 어떤 것도 실현 가능한 최선의 체제로 여기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는 국가에 지나치게 큰 권력을 부여할 위험이 있는 반면, 국가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목표인 생디칼리슴은 서로 다른 생산자 집단 간의 경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하여 스스로 중앙 집중적 권력을 재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실현 가능한 최선의 체제는 길드 사회주의이다. 길드 사회주의는 국가 사회주의자들의 요구와 생디칼리스트들의 국가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국가 간의 연방주의를 지지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 여러 직종들로 구성된 연방주의 체제를 채택함으로써 가능하다." (25쪽)

러셀이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데에는 G. D. H. 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2006년판 추천사에서 러셀의 사상적 후계자인 켄 코츠(작고한 '버트런드 러셀 평화 재단' 이사장)는 <자유로 가는 길>을 집필할 당시 콜이 직접 러셀의 자문역을 맡았다고 밝힌다.

하지만 콜의 영향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자유로 가는 길>이 집필될 무렵에 길드 사회주의는 아직 미완성 상태였다. 길드 사회주의 구상의 결정판인 콜의 가 출판된 게 1920년이다. <자유로 가는 길>보다 나중에 나온 것이다.

러셀은 이미 완성된 길드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그 자신 길드 사회주의의 완성에 기여했다. <자유로 가는 길> 246쪽 이하에서 그가 제시하는 풍부하고 독창적인 대안 사회 상은 길드 사회주의의 가장 빛나는 성취들 중 하나로 기억될만한 것이다.

비록 길드 사회주의는 생디칼리슴이나 IWW 운동과 마찬가지로 지배적인 사회민주주의-공산주의 대립 쌍에 밀려 한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러셀은 만년까지도 이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1948년의 제3판 저자 서문에서 이미 76세이던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더 이상 소련 정부를 맹목적으로 숭배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사회주의에서 한층 덜 권위적인 형태를 찾고자 어쩔 수 없이 초기의 학설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초기 학설들을 소개하고 논의했다. 그 가운데 내가 지지하는 길드 사회주의는 여전히 존중할 만한 기획으로 보이며, 나는 그 학설이 다시금 인기를 끄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15쪽)

21세기 자본주의 위기의 한 복판에서 나 역시 참으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세기 초의 대위기 속에서 부당하게 박탈된 기회가 이제는 이 위대한 구상에 열리기를 꿈꾼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독자들도 이 바람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러셀의 이 책 <자유로 가는 길>을 권한다. <공산당 선언>과 반드시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서, 그 책의 빈 곳들을 메워주면서 동시에 그 해독제 역할을 할 책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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