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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 문제에 대한 한 수필가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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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 문제에 대한 한 수필가의 증언

[해방일기] 1947년 11월 21일

일기 중에 이따금 소개하는 수필의 필자 오기영이 모처럼 신문기사에 등장했다. 경전(京電) 업무부장인 그가 전기 사용에 있어서 시민의 협력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다.

"지금 이 상태로 계속된다면 금년 내로 서울은 암흑세계로 빠질 것으로 이 위기를 타개하는 데에는 시민 여러분의 협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1) 가정마다 두꺼비집에 정당한 퓨즈 이외의 부정한 동선(銅線)을 넣지 말 것, (2) 계측기를 통하지 않는 전깃줄을 함부로 끌어 들이지 말 것, (3) 40촉 이상의 고촉(高燭) 전구를 쓰지 말 것, (4) 전열 없는 집에서는 곤로, 전기온돌을 사용하지 말 것, (5) 주상(柱上) 변전기에는 경전원 이외의 사람은 오르지 말고 고장 나면 회사에 통지할 것" (<경향신문> 1947년 11월 22일)

11월 18일 아침 이북으로부터의 송전 중단이 있었고, 한 시간 반 만에 재개되었지만 송전량을 1만5천 킬로와트 줄인다는 통보가 따랐다. 노후한 변전시설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결과였다.(<조선일보> 1947년 11월 18일) 11월 20일 밤늦게 사고가 수습되었으므로 송전을 정상화한다는 전화연락이 평양에서 옴에 따라 비상사태가 해소되었지만,(<조선일보> 1947년 11월 21일) 전력공급의 조건이 38선 북쪽에 있는 이상 언제라도 다시 터질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소집되어 있던 전력대책위원회는 11월 21일 아침에 그대로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대책이라고 나올 수 있는 것이 고작 절전(節電) 캠페인 정도였다.

전력 증산이 보다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을 텐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유력한 전력 증산 방안으로 제기되어 있던 것이 섬진강 수력발전소의 확장이었다. 일제시대에 일부 준공되어 1만5천 킬로와트를 생산하고 있던 이 발전소에 10억 원의 공사비를 들이면 1년 후에 3만 킬로와트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경향신문> 1947년 11월 21일) 10억 원의 공사비 조달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거니와, 설령 조달이 된다 하더라도 약 10만 킬로와트를 이북에서 송전받고 있던 상황에 대한 충분한 타개책은 될 수 없었다.

수필가이자 시사평론가로서 경전 간부로 일하고 있던 오기영이 전력 문제에 관한 글을 남기지 않았을 리가 없다. 1948년 7월에 발표한 글이니 이북의 단전 조치 이후에 쓴 글이지만 분단점령 상태의 전력 공급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대로 유효한 것이다. 미군정이 전력 문제에 관한 회담 상대로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문제 해결에 지장이 있었다는 지적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단전(斷電)"

교섭대상이 문제라서 남조선 인민이 단전을 당하고 암흑상태 하에서 원시적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하면 대관절 전기는 누구의 전기냐고 물어볼 밖에 없는 일이다. 허리가 잘렸다 뿐이지 조선은 조선, 조선의 전기는 조선 인민의 생존을 위하여 쓸 수 있는 권리가 조선 인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자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조선의 허리를 잘라놓은 미-소는 단 한 가지, 삼팔선을 통하던 전기마저 피차의 옥신각신 끝에 끊어버려, 이천만 생령에게서 등화(燈火)의 만족조차 상실시켜 놓는 것이 어째서 정당하냐고 물어보자는 말이다.

본시가 농업 지구인 남조선이라 공업생산이 빈약한데다가 그나마 단전이 되고 보니 생산은 2할 이하로 저하라, 이만하면 완전에 가까운 파탄이다. 그런데 교섭대상이 소련이 아니면 안 된다 하여서 단전이 계속되고 생활이 완전히 정지된다 하면 이것은 장차 미국의 좋은 상품이 쏟아져 들어와서 해결할 건가?

그는 그렇다 하고 양수, 배수의 불능으로 지금 벼농사조차 대 타격이라, 이십만 석 감수 예상이 반드시 김해평야만의 실정이 아니니 그렇잖아도 부족한 식량생산에 이것은 또 외미(外米)를 들여다가 해결할 건가? 다른 것은 다 미국 것이 조선 것보다 좋을지 모르나 쌀만은 조선 사람 입에 조선 쌀 이상 좋은 것이 없으니 외미는 첫째로 먹을 맛이 없는 것이다. 그야 굶게 되면 할 수 없이 먹을 수밖에는 없겠으나 가난한 이 나라 백성에게 그때는 또 돈이 있어야 사먹지 않느냐는 문제가 있으니 이건 '딸라' 원조에 의하여 해결할 건가?

그러고 보니 현재도 우리는 미국의 원조 하에 살아가고 있다. 부족한 공업생산을 보충하기 위하여 운라(UNRRA) 구제품도 가져다주었고 부족한 식량 때문에 밀가루와 통밀과 또 초콜렛과 사탕도 받아먹고 살아가는 중이다.

이번 단전도 되자마자 인천, 부산에 대기하였던 발전선이 기능을 발휘하고 경전의 당인리 화력발전을 위하여, 하루 사백 톤이나 소용되는 석탄을 일본으로부터 실어다주고 있다.

물론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당인리 화력발전을 위해서 하루 사백 톤씩을 소비해야 하는 석탄 값을 일본에 줘야 한다면 우리는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에 있는 전기를 아니 쓰고 조선 사람에게 전기료를 지불하는 대신에 저, 불공대천의 원수 일본에다 석탄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우리의 아픈 심정은 어디에다 호소할 것인가.

아직은 원가조차 알 수 없는 미국 발전선의 전력료는, 그 고가의 중유로 발전한 대가는 얼마나, 무엇으로 지불해야 할 것이며 우리에게 그런 지불 능력이 있는가를 생각할 때에 고마움에 앞서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조선은 지금 미-소 두 나라의 책임 하에 점령되어 있고 전력협정도 미-소 양 주둔사령관 새에 체결되었던 것이니 이제 와서 인민위원회를 상대하라는 미-소의 주장이 반드시 무리하고, 미국은 소련을 상대로 할 것이지 인민위원회를 상대하지 않는다는 그 주장이 반드시 지당할는지는 여기서 판단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또 미국은 뒤에 생긴 백림의 단전을 예증으로 이러한 수단은 소련의 상투수단이라 하려니와 과연 그 말이 옳은지, 혹은 조선서나 독일서나 미국은 그 민족의 희생은 여하간에 소련과 싸우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그 말이 옳은지, 어느 것이 옳은지, 여기서 새삼스럽게 판단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는 지금 우리 자신으로서는 하등의 이유도, 하등의 필요도 없이 미국의 말마따나 '불의의 곤경'에 빠져서 불의의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을 지적하고 강조하는 이외에, 아무 다른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물론 미국의 결의를 이해한다면 지금 이 땅은 엄숙한 의미에서 전장(戰場)인 것이다. 삼차대전의 소음이 요란한 이때에 소련의 동방 전략선과 접촉하고 있는 남조선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당장 포화가 일어나지 않을 따름이지, 어느 때 포문을 열어야 할지 모르는 전장인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미국이 태평양 제도(諸島)의 상륙작전을 감행하고 그 찬란한 전과를 거둔 것이 모두 다 전등불이 휘황한 광명한 시야에서가 아니라 촌보의 분별이 어려웠을 암흑 한가운데서라는 그것도 알기는 하는 바이다. 하물며 전장에 무슨 공장운영이 필요하며 농경작업이 중점적인 것이랴. 허다한 신문을 인쇄하며, 문화를 선양한다는 평화스런 사업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랴. 물론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해방의 감격도 잠깐이요 이제는 다시 전장적인 암흑생태와 생산 정지를 체관(諦觀)하기에는 우리 심정은 너무나 아픔을 참기가 어려웁다.

북조선은 말하기를 조선인 대표끼리 만나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똑같은 문제로 송수가 끊어졌던 연백 수조 문제가 이번에 남조선 농민대표와 북조선 농림국장과의 직접 교섭에 의하여 - 미소 간의 교섭이 아니라 조선인 골육 간의 교섭에 의하여 송수가 개시되고 그리하여 균열 지경의 이만사천 정보에서 벼가 소생된 이 사실로써 우리는 전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그 권위상 소련과의 상대만을 주장할 필요가 있을 것이요 또 만약 인민위원회와 상대하면 그것을 승인하는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이겠으나 우리로서는 우리 자신의 생존 이상의 더 중대한 문제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력대책위원회도 생겼다 하려니와 하다면 이 대책위원회로서는 하지 중장에게 서한이나 보내는 것쯤으로 만전의 대칙은 아닐 것이다.

가라, 북으로! 가서라도 해결하라. 우리에게는 민족도의가 있다. 이 도의에 입각하면 우리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무궁화>(오기영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 128-132쪽)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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