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의 가파른 성장과 영향력의 확대로 인해 세계 곳곳에 중국 얘기가 한창이다. 거리에서, 강의실에서,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 중국 이야기를 한다. 중국에 관한 기사는 거의 매일 신문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한껏 높아진 우리나라의 경우 누구나 가까운 친지 가운데 한둘이 중국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다. 중국 얘기의 대부분은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중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일까? 경제성장은 연착륙에 성공하여 골드만삭스의 예언처럼 2025년엔 미국경제와 규모가 같아지고, 2050년엔 미국과 인도를 합해야 겨우 중국과 같아지는 시대가 정말 올 것인가? 영국 언론인 마틴 자크(Martin Jacques)의 주장처럼 세계는 중국 중심의 놀랄만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인가?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든 아닐 수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든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 나왔다. 쉬즈위안(許知遠)이란 중국의 젊은 지성이 쓴 <독재의 유혹>(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중국의 내면과 발전의 이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겉으로 드러난 몇몇 경제적 수치에 가려 중국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한 중국 담론에 대한 아픈 지적이다. 중국을 다룬 세계적 베스트셀러들의 허구성을 하나하나 들추어 공격하고 질타한다.
쉬즈위안이 보려는 것은 중국인의 삶이며, 중국인의 자유와 정의이며, 중국 정치가 안고 있는 지독한 독재의 문제이다. 중국인 모두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하면서 경제발전이란 허울에 가려진 불공정을 고발하고, 더 나아가 거기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궁극적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에 대한 비판이다.
"중국에 대해 조그만 상식이라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현재 중국의 빈부 격차는 극심하고, 사회가 형평을 잃고 있으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사회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 환경 파괴, 교육 실패가 이 모든 현상을 입증해주고 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게 된 오늘날, 사람들이 보는 것은 돈이며 중국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돈이다. <독재의 유혹>은 허위의식이 만연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된 세상에 대해 듣기 불편한 이야기를 쏟아낸 책이다. 돈이 먹어치운 우정과 사랑을 걱정하고 있으며,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공산주의의 관료적 성향에 대해 힐난한다. 그리고 실명을 거론하며 중국 안과 중국 밖의 중국을 얘기하는 지식인, 언론인의 무책임과 진지하지 못함을 통렬하게 비난한다. 비판을 위해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 내면의 문제를 짚어보고 건설적인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 <독재의 유혹>(쉬즈위안 지음,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
정치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는 인간만의 능력이다. 정치가 경제의 밑그림을 잘 그려주어야 사람들의 삶의 질은 높아진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현대사회는 경제가 정치를 이끌고 있고, 애매한 숫자들이 '인간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 "전체 역사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이처럼 유린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개발독재를 전면에 내걸고, 경제건설을 국가의 유일한 목표로 상정한 덩샤오핑(鄧小平)의 정치를 독재로 보지 않고 중국의 성공을 가져온 탁월한 선택이라고 찬양하는 모든 주장들은 "정치의 혼란, 경제의 붕괴, 사회적 압박, 개인적 절망과 같은 진실한 중국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그들의 정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은 간혹 있어 왔다. 그럼에도 '감히' 마오쩌둥(毛澤東)을 가리켜 "제3차 세계대전을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국 인구의 절반을 죽일 수 있다는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광적이고 야만적인 몽상가가 될 수 있었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의 초상화가 여전히 톈안먼 성루 위에 걸려 있음으로써 중국은 표피적인 도덕적 구속력까지도 상실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주선을 쏘아올리고 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중국의 굴기는 많은 승리자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저자가 관심을 둔 것은 그 때문에 생겨난 더 많은 실패자들이다. 돈이 모든 것을 재단하게 된 세상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중국의 대중들을 '왜곡된' 민족주의 정서로 통제하려는 중국 공산당 정권을 향한 자성의 목소리이다.
"사회가 어쩔 수 없이 광기에 빠져들 때라도 자성의 목소리가 없다면 광기는 아주 쉽게 폭력을 동반한 파괴적 행위로 변하고 만다."
중국의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는 것은 물신주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정치체제의 모호함이 빚어낸 정신적 혼란이 더 큰 문제이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중국 정권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1989년에 겨냥되어 있다. '톈안먼 사건'으로 알려진 '육사참안(六四慘案)'을 거치면서 중국 내 공산주의 신념은 철저히 파산되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장롱(張戎)이 20여 년 전 <대륙의 딸들>(오성환·황의방·이상근 옮김, 까치글방 펴냄)에서 그렸듯이 순수한 공산주의를 끝까지 유지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 중국은 순수한 공유제도 순수한 사유제도 아닌 혼란스러운 체제에다가 "전통적인 전제제도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기괴하게 혼합된 나라인 셈이다."
<독재의 유혹>은 개인의 내면적 독립으로 사회가 진보하는 쪽으로 중국사회가 변하기를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진정한 인문정신을 살려내고 체제 비판적 지식인이 절망적인 국가사회 속에 감금당하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중국을 경직에서 벗어나게 하고픈 소망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생기발랄하고 패기만만한 큰 나라로 성숙해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나라에 대한 저자의 간절한 애정이 읽힌다.
동서와 고금을 넘나드는 방대한 자료들이 예사롭지 않다. 그 저자들이 중국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와 말들의 부적절함을 예리한 언어로 가차 없이 해체시켜버리는 장면들에서 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문장과 풍부한 감수성을 담은 언어들이 적절한 번역어와 어울려 중국의 내면을 차분하고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보다 정치를 얘기하면서 여전히 경제에 갇혀 있는 이야기더미나, 지나치게 서구적 관념에 집착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게 만드는 개념어들, 정치의 존재의의 및 정치가들의 내면적 고뇌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의 부족, 중국 당국의 통제가 두려워 애써 회피하려는 에두른 표현들, 그 모호함이 자유억압에 대한 실상의 폭로와 불공정에 대한 고발을 다소 추상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암흑을 폭로하는 기자'나 '정의감이 풍부한 변호사'나 '사회적 양심을 가진 경제인'이나 '존경받을 만한 비정부 조직' 등에 희망을 거는 따위는 주장의 크기에 비해 너무 미미한 해결책이다. 문명의 동력으로서 인간의 상상력과 지적 성취가 필요하고, 중국은 이를 통해 동서양 문명을 아우르는 새로운 도약기를 준비해야 된다는 강렬한 주장이 필요하지 않는가. 이를 위해 공산당영도와 인민민주독재의 원칙은 포기되어야 한다는 말은 중국이기에 차마 할 수 없는 것인가.
"중국 정권이 세계 4분의 1의 인구를 양육한 것이 아니라, 세계 4분의 1의 인구가 중국 정권을 먹여 살려왔음도 부정할 수 없다."
중국 정권에는 독재와 엘리트정치에 대한 향수가 두터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문화'를 내걸며 중국정신의 확산을 꿈꾸는 공자학원(Confucius Academy)의 번창을 보면서 강한 중화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가 우려스러워진다.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가 한창이다. '조화사회'는 현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앞으로 구성될 지도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조화'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압살되지 않기를, 권력과 자본의 유혹에 대한 보다 많은 경계의 목소리들이 무성하게 살아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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