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정부는 외교력의 실패라기보다 대의를 위해 양보했다는 뉘앙스를 내비췄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레임덕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치적으로 내세우는 '저탄소 녹색 성장'에 화룡정점을 찍을 호기를 놓쳤으니 땅을 치며 울지 않았을까 싶다. 온실 기체를 많이 배출하면서도 끝까지 의무 감축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피하려는 그간의 행태를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스런 결과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시민 사회와의 불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해외 단체 활동가들에게 보여줬던 비우호적인, 심지어 공격적인 태도를 떠올리면 다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겠다.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 회의에 맞춰 시민 사회가 준비한 대안 포럼에 참석하려던 동남아시아 참가자들이 입국을 거부당했으며, 최근에도 그린피스의 활동가들이 입국 거부를 당했고, 평화 운동가들이 추방당하지 않았던가!
최근 '환경 분야의 세계 은행'으로 불리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로 유치하는 데 성공한 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는 고무적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마치 녹색기후기금이 한국의 경제 개발 프로젝트 혹은 일자리 만들기 프로젝트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그들의 행태이다.
녹색기후기금은 개발도상국의 온실 기체 감축과 기후 변화 적응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 금융 기구로 2010년 12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1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승인되었다. 그간 초라한 협상 결과에 대한 비판을 넘어 협상 틀 자체에 대한 무용론까지 나오던 상황에서 얻어낸, 정말 몇 안 되는 성과 중 하나였다. 주요 내용은 선진국이 2010~2012년 300억 달러의 긴급 재원을 지원하고,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의 재원을 조성하기로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약속이 실제로 지켜질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에 재원 규모에 대한 생각이 달라 재원의 총규모가 어찌 될지 불명확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후 변화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녹색기후기금의 확대 요구는 더 커질 것이고 그 역할도 중요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나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과 비교해 가며 녹색기후기금의 위상을 높게 평가하는 정부나 언론의 이야기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 녹색기후기금의 한국 유치 결정은 한국이 외교를 잘해서 주는 포상도 아니고 망해가는 송도 국제도시를 살리겠다는 의도도 아니다. 한국에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것도 아니다.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아시아와 군소 도서 국가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적 조건과 한국이 그동안 이야기 해왔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가교 역할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녹색기후기금 유치 소식을 전달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평가는 하나같이 송도의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에 대한 기대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자료를 인용한 경제 효과는, 녹색기후기금 사무국 주재원의 소비지출 650억, 지역 노동자의 소비 지출125억, 국제회의 외국인 참가자의 소비 지출 342억,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지출 113억, 여기에 국내총생산에 미치는 효과 2543억, 고용 유발 효과 38억을 합쳐 연간 3812억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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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근거로 녹색기후기금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평창 동계올림픽의 100배 이상이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인천의 쾌거로 홍보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송도의 부동산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미분양이던 아파트가 속속들이 팔리고 있고 송도 개발 사업에 뛰어든 기업들의 주가가 오른다고 하니, 도대체 이 녹색기후기금은 누구를 위한 기금이란 말인가?
녹색기후기금 유치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로 한국이 인류적 의제인 녹색 성장을 주도하는 나라가 됐다고 연설했다. 그런 식의 자축에 불편함을 느끼는 게 나만이 아닐 것이다. 녹색기후기금은 답보 상태인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어렵사리 합의해 만들어낸 기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금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운영해 기후 변화로 인해 피해를 받고 있는 저개발 국가와 군소 도서 국가를 지원할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떠맡을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 사무국 유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
아직 녹색기후기금 1000억 달러를 누가 어떻게 분담할지 백지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시민 사회는 선진국들의 책임 있는 약속과 성실한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0~2012년에 제공하기로 한 긴급 지원 300억 달러는 실제로 10퍼센트도 되지 않는 20억 달러만 집행된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이 정식으로 운영된다고 해서 더 구속력 있게 집행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계 시민 사회는 선진국들이 오염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온실 기체 다배출 국가들이 그들의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오랜 시간 선진국이 개발도상국과 저개발 국가에게 빚진 생태 부채를 갚는다는 차원에서 마땅한 일이다. 이제 곧 제1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 총회가 도하에서 열린다.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을 유치해 높아졌다고 자랑하는 그 국격에 맞는 언행이 필요할 때다. 품격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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