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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만난 체조 선수, 뭘 하나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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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만난 체조 선수, 뭘 하나 봤더니…

[꽃산행 꽃글·31] 지리산에서 만난 벌레 ②

1

또 몇 발짝 옮겼더니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바로 그 의태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녀석이 나타났다. 자벌레였다. 녀석은 자나방과 곤충의 유충으로 배다리가 퇴화되어 운동할 때 자로 재는 것처럼 움직이는 벌레이다.

의태(擬態, mimicry)란 동물이 몸을 보호하거나 쉽게 사냥하기 위해서, 주위의 물체나 다른 동물과 매우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일을 말한다. 살벌한 자연의 세계에서 몸이 약한 개체가 포식자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취하는 최소한의 동작이자, 방어적 호신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자벌레는 오미자에 붙어 있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붙어 있는 게 아니었다. 마치 오미자의 가지처럼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다. 그냥 가지처럼 아무렇게나 꼿꼿한 것만도 아니었다. 한쪽 끝은 체조 선수가 철봉을 잡고 있는 것처럼 줄기를 붙들고 또 한쪽은 잎사귀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야말로 감쪽같이 오미자 잎사귀에 달려 있는 가지거나 잎자루 같아 보였다.

자벌레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그냥 심심해서 기계 체조라도 하는 것일까. 장난기가 발동했다. 심술궂게 잎사귀에 닿은 녀석의 다리를 떼어 보았다. 그러자 자벌레는 정말로 더욱 온몸에 힘을 주고 빳빳하게 한쪽에 의지해서 공중에 곧추서는 것이었다.

▲ 기계 체조 선수처럼 줄기에 빳빳하게 붙어있는 자벌레. ⓒ이굴기

▲ 오미자 줄기처럼 시늉하고 있는 자벌레. ⓒ이굴기

자벌레가 하고 있는 동작의 비밀은 가까운 곳에서 풀렸다. 오미자의 잎사귀를 보니 원래의 잎사귀가 아니었다. 방파제에 둘러싸인 오목한 항구처럼 둥글게 파 먹힌 자국이 역력했다. 그러니 쉽게 알 수 있었다. 자벌레는 지금 오미자 잎사귀를 사냥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셈이었다. 의태란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냥을 쉽게 하는 것이다. 즉 자벌레는 오미자 가지처럼 시늉하면서 적들의 눈을 속인다. 그리고 동시에 오미자 가지처럼 보이면서 오미자 잎사귀를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마도 지금 오미자 잎사귀는 저를 갉아먹고 있는, 제 잎자루 같은 자벌레에게 경악했을 것이리라!

2

한 상 가득 포식하고 있는 자벌레와 헤어져 산행을 계속했다. 원래 벽소령을 거쳐 지리산 종주 능선에 올랐다가 형제봉으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백무동에서 서울로 가는 막차 시간이 촉박했다. 벽소령 산장과 연하천 산장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내려가기로 했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등산할 때와 하산할 때는 전혀 다른 길이다. 못 본 꽃을 보기도 하지만 분명 이 길을 내가 왔을까, 어리둥절할 때도 많다. 처음 보는 듯한 너덜겅이 나왔다. 무지막지하게 임도를 건설할 때 흘러나온 돌무더기 지대였다. 대부분 개화 시기가 지나 꽃들에게 감질나 하던 우리 일행의 눈을 확 끌어당기는 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도로 아래 경사면에 몇 그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원뿔 모양의 보라색 꽃을 촘촘히 달고 있는 그것은 정향나무였다.

처음 만난 정향나무는 절정의 개화기를 지났는지 꽃이 시드는 중이었다. 그곳에서 아쉬운 대로 몇 컷을 찍다가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개체를 발견했다. 그 정향나무는 물참대를 배경으로 몇 그루 모여 있었다. 좀 전의 것과는 달리 아주 싱싱한 꽃이었다.

나는 아주 가까이 가지 않고 조금 위에서 정향나무를 찍는 일행 두 분을 찍었다. 그들이 정향나무 근처로 이동할 때 싱싱한 향기가 물컹, 코끝을 찔러왔다. 몸이 막대기가 되어 이 너덜겅에 고여 있는 향기를 휘휘 젓는 셈이었다. 일행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만큼 향기는 뭉텅이로 확확 확산되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를 일으키듯 고여 있던 향기가 물컹 사방으로 퍼졌다. 그 향기는 정향나무를 바라보던 나의 얼굴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마치 철썩철썩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가 뺨을 때리듯 향기는 밀려와 코끝을 간질이는 게 아닌가.

▲ 정향나무. ⓒ이굴기

지리산은 큰 학교이다. 생물 시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벌레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감각이란 말이 있다. 이는 한 감각이 다른 감각을 불러와 서로 어우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내용이다. 이러한 공감각의 대표적인 표현이 있다. 말하자면 시각(푸른)과 종소리(청각)가 어우러진 것이다. 김광균의 시 '외인촌'의 한 구절이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여기는 지리산의 한 골짜기이다. "하이얀 모색(暮色)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 같은 곳이었다. 발 아래로 산 사람이 살고 있는 음정 마을이 보이고 그 이웃에는 죽은 이가 살고 있는 무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곳에 밤이 찾아오면 "외인묘지(外人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릴 것이다.

출렁이는 건 바다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철썩이는 건 파도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었다. 향기를 찍는 카메라가 있다면 아마도 정향나무 꽃향기가 두 분의 손끝에서부터 휘돌아 나와 내 몸을 징검다리 삼아 소용돌이치는 모양을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도처럼 철썩이는 정향나무의 보랏빛 꽃향기!

정향나무 둘레를 점령하고 있던 고요한 향기가 우리를 뚫고 지리산의 천지 사방으로 조용히 퍼져나가고 이제 곧 "공백(空白)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의 시계가 여윈 손길을 지어" 가리키는 오후 여섯 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3

마음이 조금은 급해졌다. 막차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어림해 보니 자벌레와 헤어지고 족히 네 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았다. 그래도 내려오는 길에 오미자와 자벌레가 있던 곳을 놓치지 않으려고 유심히 관찰했다.

오미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자벌레도 그 가지와 그 잎사귀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변한 건 자벌레가 이루고 있는 각도였다. 오전에는 수평에 가까웠지만 그새 수직에 가까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만큼 오미자 잎사귀가 깊숙이 패여 있었다.

▲ 오전에 만난 자벌레. ⓒ이굴기

▲ 오후에 만난 자벌레. 같은 잎사귀를 초승달처럼 움푹 파먹었다. ⓒ이굴기

시간의 흐름을 모두 포착할 능력이 나의 눈에는 없다. 하지만 공중에서 계속 관찰했더라면 아마도 없어진 오미자 잎사귀의 면적이 초승달 만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정리해 보자. 오늘 하루, 나나 자벌레나 점심을 먹었다. 나는 딱딱한 도시락에서 밥과 반찬을, 자벌레는 천연의 도시락에서 오미자 잎사귀를. 나는 사각의 식은 밥이었지만 자벌레는 물기가 촉촉하고 따뜻한 녹말을, 그것도 꼭 초승달만큼만!

카메라를 끄고 지리산 능선을 올려다보았다. 형제봉 쪽으로 멀리 "바다를 향한 산마루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 위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 본문의 " " 속 인용문은 모두 김광균의 시, '외인촌'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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