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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타령만 하지마! 슬픔도 분노도 챙겨라!

[프레시안 books] 스튜어트 월턴의 <인간다움의 조건>

찰스 다윈(1809~1882년)의 주저인 <종의 기원>(1859년)이 간행된 것은 이미 생애에서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간이 지난 뒤인 나이 50세 때의 일이었다. 다윈은 평생에 걸쳐서 각종 동식물에 관한 연구에 몰두했으며, 관찰과 독서를 병행하여 얻은 직간접적인 지식을 토대로 여러 권의 생물학 저서를 간행했다. 다윈의 저서 대부분은 <종의 기원> 이후부터 사망 때까지의 20여 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간행되었다. 진화론 연구의 종합편인 <인간의 유래>(1871년)가 이 시기의 작품이며, 덩굴식물과 식충식물과 지렁이에 관한 단행본 저술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책이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1872년)이다. 본래는 다윈이 말년에 간행한 대작 <인간의 유래>의 일부분으로 집필한 원고였지만, 점차 분량이 늘어난 까닭에 별도의 단행본으로 간행했던 것이다. <자서전>에서 다윈은 첫 아이를 낳은 직후 "이렇게 어린 시기에도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며, 점진적이며 자연적인 기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그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162쪽)).

제목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이 저마다의 표정이며 몸짓을 통해 드러내는 감정을 연구 주제로 삼는다. 그 당시에는 다양한 얼굴 표정이야말로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이므로 창조론의 증거가 된다는 주장이 나와 있었다. 다윈은 이에 대한 반박으로 안면 근육의 움직임은 유인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색이며, 나아가 몸짓을 통한 감정 표현은 동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색임을 지적했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 표현도 모든 동물에게 공통된 감정 표현이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윈은 감정 표현이 습관, 대조, 무의식적 표현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따른다고 전제한 다음, 자신의 직접적인 관찰과 방대한 문헌상의 증거, 그리고 각계 전문가의 고견을 함께 엮어서 여러 가지 감정의 표현 방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특히 이 책의 후반부는 고통과 울음, 걱정과 슬픔, 환희와 기쁨, 놀라움과 공포 등 인간의 여러 가지 감정 표현을 상세히 서술하는 데에 할애되어 있다. 이런 감정이 지역과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여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역시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증거라고 다윈은 생각했다.

▲ <인간다움의 조건>(스튜어트 월턴 지음, 이희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2004년에 영국의 저널리스트 스튜어트 월턴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의 속편 격에 해당하는 저서를 내놓았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인간다움의 조건>(이희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이 바로 그 책이다(원제는 영국 판이 "인간다움 : 감정의 역사"이고 미국 판이 "인간 감정의 박물학"이다). 저자는 다윈이 서술한 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이라는 여섯 가지 감정에 질투, 수치, 당황, 경멸이라는 네 가지 감정을 더해서 모두 열 가지의 감정을 소재로 삼는다. 모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이 책은 독특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본문은 열 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열 가지 감정 가운데 하나씩을 다루는데, 각 장마다 한 가지 감정을 세 가지 "격변화 형식"(기본 형식, 능동적 형식, 수동적 형식)으로 다시 나누어 조명한다. 예를 들어 '공포'를 다룬 장은 '겁먹다'와 '겁주다'와 '겁난다'라는 3개의 절로 나뉘어 서술되고, '혐오'를 다룬 장은 '혐오하다'와 '혐오감을 주다'와 '혐오스럽다'라는 3개의 절로 나뉘어 서술된다. 각 절에서는 이런 감정들이 인간의 생리와 심리에 끼친 영향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도 함께 설명된다.

예를 들어 뭔가를 "업신여기고 비웃는 행동"으로 정의되는 '경멸'에 관한 장을 살펴보자. '경멸하다'에서는 이 세상을 향한 경멸이 기독교 전통과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가 설명된다. 그 능동적 형식인 '경멸해'에서는 근대에 나타난 속물근성의 본질과 사르트르의 희곡에서 유래한 "지옥, 그것은 타인"이라는 유명한 말에 담긴 상호 경멸의 의미가 설명된다. 그 수동적 형식인 '경멸당한다'에서는 경멸을 만들어내는 친근성이 권태와 무기력을 만들어낸다는 사실과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니체의 처방인 '위험하게 살라'는 조언이 설명된다.

"망신, 치욕 또는 자긍심이나 명성의 상실"로 정의되는 '수치'에 관한 장을 보자. '수치스러워하다'에서는 인간이 수치를 느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나체가 거명되며, 수치라는 감정이 일어나는 까닭은 그 배후에 인간의 양심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그 능동적 형식인 '수치를 안기다'에서는 범죄자에게 수치를 주기 위해 고안된 형벌의 역사적 사례와 <주홍글자> 등의 문학 작품에 나타난 유사한 형벌의 사례가 설명된다. 그 수동적 형식인 '수치스럽다'에서는 고행과 순교 같은 자발적 고통의 배후에 숨어 있는 마조히즘이 설명된다.

비록 다윈의 책에서 기본 구조를 빌려왔다고는 하지만, 월턴의 책은 감정의 생물학보다는 감정의 문화사에 가깝다. 다윈의 책이 생물학적 차원에서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월턴의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화적 차원에서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감정이 단순히 타고나는 것만이 아니라 학습되기도 하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그의 접근법은 다윈보다 좀 더 포괄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다윈이 표정이나 몸짓 등의 외적 관찰에 의존한 것처럼, 월턴도 정치, 사회, 문학, 예술 등에서 나타난 인간 감정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한다.

감정의 문화사이며, 감정의 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도 월턴의 책은 흥미로운 읽을거리 노릇을 한다. 각 장의 연계성이 약하기 때문에 산만해 보이는 감은 있지만, 감정의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고찰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감정에 관한 책이야 이미 여러 가지가 나와 있지만, 대개는 감정 조절하는 방법을 설명한 실용서이다. 자기 계발 분야에 속하는 이런 책들은 대부분 감정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인생을 보람차게 살기 위해서나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억제하거나 완화시켜야 할 것으로 바라보게 마련이다.

월턴 역시 "행복만 빼놓고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내용이 하나같이 부정적"(17쪽)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이라고 해서 다 나쁘거나 불필요한 것은 아니며, 진화의 과정에서는 나름대로의 의의와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예를 들어 공포나 혐오의 경우에는 인간이 물리적이거나 위생적인 위협을 적극적으로 피하도록 도와주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나아가 모든 감정 표현은 인간의 의사소통을 더 풍부하고 원활하게 해주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부정적 감정의 과도한 표현일 것이다.

부정적 감정 중에서도 '분노'는 감정에 대한 실용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나 분노가 좋은 감정으로 여겨진 경우는 없겠지만, 스토아 철학과 기독교의 영향으로 특히나 서양에서는 분노가 사람을 짐승처럼 만드는 악덕으로 폄하되었다. "분노는 정의를 집행하는 힘"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등장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면서부터였는데, 저자 역시 공포가 사회의 접착제라면 분노는 사회의 용해제 작용을 한다고 지적한다. 즉 집단의 분노에서 비롯된 항거는 독재 타도나 사회 개혁을 불러오는 방아쇠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인간 심리에 관한 프로이트의 주장이 지지를 얻으면서 감정의 억압은 오히려 정신과 신체 건강에 해악을 끼친다는 입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은 분노의 억압이라고 여겨졌으며, 이는 종종 "김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끓는 냄비"(123쪽)에 빗대어 표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감정을 외부로 분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한 심리학자의 말마따나 "김을 빼는 것은 훌륭한 비유고, 분노가 어떻게 터져 나오는지를 정확히 포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은 차 끓이는 주전자가 아니"(124쪽)기 때문이다.

감정 표현도 적절한 선을 넘어 버리면 오히려 진정성이 없어지며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심심풀이 애도'라고 지칭되는 현상이다. "연민과 슬픔의 공개적 표현이 서구 사회에 워낙 만연하다 보니, 추모의 리본을 단다거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침묵시위를 하면서 공개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사회 문제에 정말로 동참하려는 증거라기보다는 감정을 연극적으로 재연하려는 것에 가까워졌다."(20쪽)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감정의 과잉과 억압 모두를 지양하는 기준이 필요하게 된다.

월턴에 따르면 다윈도 감정을 완벽히 조절하기는 어렵다고 시인했으며, 대신 자신이 생각하는 일종의 차선책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감정을 밖으로 드러나도록 자유롭게 나타내면, 감정은 그만큼 더 굳어진다. 반면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어찌어찌 억누를 수가 있다면, 우리의 감정은 물러진다. 격렬한 몸짓을 하고야 마는 사람은 화가 더 날 것이요, 두려움의 기색을 누르지 못하는 사람은 더 큰 두려움을 겪을 것이요, 상심에 짓눌려 지내는 사람은 마음의 유연성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이다." (18쪽)

다윈의 통찰처럼 감정이 인류 보편의 현상이라고 한다면, 감정에 대한 이해의 증진은 인류의 상호 이해를 가능케 함으로써 더 바람직한 미래를 가져오리라고 월턴은 전망한다. 하지만 그 역시 미디어의 감정 조작 같은 잠재적인 문제점을 놓치지 않고 짚고 넘어갔음을 고려해 보면, 감정의 보편성이 인류애의 토대가 되리라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는 비판도 가능해 보인다. 이 책의 제목처럼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뒤집어 말하자면 인간을 그토록 매력적인 예측불허의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감정은 그 감정과 관련이 있지만 대척점에 서 있고 그 감정의 분출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삼을 만한 도덕적 덕목의 존재를 요구한다"(21쪽)고 저자는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공포에는 용기가, 경멸에는 연민이, 분노에는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회의주의와 아이러니의 시대에 도덕성이나 정치 윤리 같은 문제는 물론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과 행동에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고 치면 감정이란 인류의 공통분모는 진지한 음미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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