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시대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자본가부터 거리의 노숙인까지 '인문학'을 말합니다. 유명 대학에서는 대기업 임원 등을 타깃으로 한 '인문학 코스'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합니다. 예전에 테일러를 추종하며 드러커를 읽던 재벌 회장은 이제는 공자, 노자를 읽고 헤겔, 마르크스를 인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의 인문학'이 아닌 '절망의 인문학'을 외치는 인문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런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이 절망의 시대에 인문학을 말할 수 있는가?" 이들은 섣부르게 '희망'을 말하기 전에, 지금 여기 절망의 세상에 시선을 돌리고자 합니다. 이런 절망을 제대로 직시할 때 비로소 거짓이 아닌 진짜 희망의 몸짓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은 지금 여기에서 인문학의 존재 조건을 묻는 이들과 '절망의 인문학' 연재를 시작합니다. 계속되는 불온한 질문에 인문학자의 치열한 답변이 이어집니다. 열한 번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인문학이 노동자의 무기가 될 수 있을까요?" 강양구 기자가 답합니다. "유한계급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문학이 어찌 노동자의 무기가 될 수 있겠습니까?" <편집자> ① 첫 번째 질문 : 미스터 잡스, 이제 그만하면 됐거든요! ② 두 번째 질문 : 안철수는 과연 인문학적 정치인인가? ③ 세 번째 질문 : 대하소설은 여전히 가능한가? ④ 네 번째 질문 : 현대 동양 철학은 가능한가? ⑤ 다섯 번째 질문 : 문학 비평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⑥ 여섯 번째 질문 : 인문학 스타 사도 바울의 정체는? ⑦ 일곱 번째 질문 : 인문학을 파는 사기꾼을 고발한다! ⑧ 여덟 번째 질문 : 사회과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⑨ 아홉 번째 질문 : 심리학은 뇌 과학에 자리를 내어 주는가? ⑩ 열 번째 질문 : 지금 우리에게 지옥은 무엇인가? |
15년도 더 된 군대 얘기다. (축구 얘기는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뒤늦게 군대를 갔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꼬이고 꼬여서 결국은 강원도 산골의 한 부대에서 26개월을 보내게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남자들 열댓 명이 마주보는 침상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일은 시쳇말로 '깨는' 경험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일은 날마다 마주치는 진짜 '민중'의 모습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봄직한 수많은 일화가 있었지만, 한 가지만 예를 들어 보자. 군대를 가기 직전만 하더라도 다소 규범적인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생활을 했던 터라서 말 한 마디를 할 때도 '성 정치적으로 올바른지' 고민을 해야 했던 터였다.
그런 내게 가장 곤욕스러운 순간은 오후 10시 불이 꺼진 후였다. 최고참이 입을 떼자마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혈기방장 남정네들이 자신의 끈적끈적한 경험담을 하나씩 꺼내 놓기 시작했다. 놀랐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강간이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그들의 고백이 모두 진실이라면, 그들은 모두 군대가 아닌 감방에 있어야 했다.
초코파이 하나에 눈빛이 욕망으로 번득거리고, 동료의 서툰 삽질 때문에 날아간 10분 휴식에 구타와 욕설로 답하는 이들이 과연 책에서 읽은 '혁명의 주체'란 말인가? 문득 경기도 인근의 공장에 투신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온 한 선배가 술만 마시면 입에 달고 다니던 얘기가 생각났다. "노동자가 쓰레기인데, 노동 운동에 무슨 희망이 있겠어!"
그는 이어서 항상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정신적, 도덕적으로 우월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열댓 명의 남정네가 모여서 여자 가수의 몸매를 훑는 텔레비전 화면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은 어떤가. 시나 소설을 읽는 게 무리라면 최소한 뉴스라도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래서야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 상식에 맞서, 그람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하겠는가?
결국 기회가 왔다. 입대한 지 1년 동안 고생을 한 덕분에 병장을 달기도 한참 전에 내무반 최고참이 되었다. 혼자서 읽던 <창작과비평>, <문학동네>에 실린 소설을 돌려 읽혔다. 점호 전 텔레비전 채널은 뉴스로 고정했다. 자기 전에는 뉴스를 본 소감도 말하게 했다. 일종의 인간 '개조'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인문학이 사람을 바꿀 수 있을까?
ⓒ프레시안(손문상) |
예를 들자면 이렇다. 전 세계에 자신의 '녹색 성장'을 전파하고자 퇴임하고 나서 자전거 세계 일주에 나선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설득해 잠시 골방(!)에 모셔 두고 학습을 시킨다고 가정해 보자. 당대의 학자들이 나서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 더 나아가 <녹색평론>의 빛나는 에세이를 읽히자.
그렇게 1년이 지난 다음에 이명박 대통령이 과연 '생태주의자'로 변신할까? 그래서 도심에 마련한 '인공 어항'에 불과한 청계천과 멀쩡한 물길을 가로 막아서 '인공 호수'를 조성한 낙동강의 보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녹색 성장'이 사실은 '잿빛 성장'의 변주였음을 고백하는 게 가능할까?
무슨 그런 얼토당토않은 예냐고 쌍심지를 켜는 이들을 위해서 다른 예 하나 더. 개인적으로 아는 한 대기업의 임원은 신영복의 열렬한 팬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나무야 나무야>를 수차례 탐독한 것도 모자라서, 연말연시에는 자신의 부하 직원을 포함한 지인에게 사다 뿌린 책만 수백 권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영복의 팬답게 그는 동서양의 인문 고전에도 밝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생전 처음 듣는 한시의 시구를 읊고,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 대목을 적재적소에 인용한다. 최근에는 단테의 <신곡>을 탐독한다며, 다시 읽어볼 것을 권했다. (나는 단테의 <신곡>을 '다시' 읽을 게 아니라 '새로' 읽어야 할 처지다!)
그렇게 동서양의 고전을 귀동냥 삼아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다가 꼭 분위기가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놓고서 얘기하다 (그는 공지영을 비롯한 그 또래 세대의 교양 결핍을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화제에 올라서 그랬다. 그 자신 수십 년의 샐러리맨 생활을 했음에도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정리 해고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한 윤활유예요. 온정주의에 휘둘려서 정리 해고를 부정하면 자본주의가 곧바로 멈춰서고 맙니다!"
이런 냉혹한 인식 속에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함께 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신영복이 말하는 '관계론'의 흔적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톨스토이를 따라 "바둥바둥 살아도 결국 땅 한 평에 묻힐 인간의 숙명"을 얘기하면서, 한국 사람의 더불어 사는 지혜 없음을 탓하던 그 인문주의자는 그 순간 어디로 간 것일까?
아마도 지금 이 얘기를 읽는 이들 중에도 비슷한 예를 수없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선생님, 사장님, 남편, 애인, 상사, 동료 등….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문 교양의 많고 적음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인문학이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면, 과연 노동자에게 인문학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노동자의 인문학'은 무엇인가?
가끔 노동조합, 진보 정당 등이 노동자를 상대로 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을 공지하곤 한다. 빠듯한 일정 속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의 목적은 분명하다. '공장, 사무실에서 고된 노동을 한 이들이 퇴근 후 텔레비전 앞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술집에서 시시덕거리는 것보다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일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앞에서 결론을 내린 대로, 인문학이 사람을 바꾸는데 무력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과연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일까? 차라리 그 시간에 좀 더 실용적인 강의들, 예를 들자면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 교실' 혹은 '노동자를 위한 건강 교실' 같은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을 최우선에 놓는 노동조합 혹은 진보 정당의 교육 프로그램이라면, 과거나 현재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자 국가, 자본과 어떻게 싸웠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상영이야말로 알쏭달쏭한 문학,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잠시 과거로 눈을 돌려 보자.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인간 해방의 주체'로 봤던 저 혁명의 세기(19세기)조차도, 결코 노동자가 (지금 통용되는 맥락에서의) 인문주의자였던 적은 없었다.
톰슨의 <영국 노동 계급의 형성>과 같은 책을 보면, 그 때도 그들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이 아니라 왕이나 자본가를 풍자하는 멜로드라마풍의 극단에 열광했다. (간혹 그런 극단 공연은 흥분한 노동자의 폭동으로 이어지곤 했다!) 문자를 체득한 이들이 열광했던 읽을거리도 고전이 아니라 각종 사건을 '노동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수많은 정치 팸플릿이었다.
인문학이 노동자의 무기였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면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면) 도대체 노동자의 진짜 무기는 무엇일까? 역시 역사 속에 답이 있다. 19세기 노동 계급 의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교양 습득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밀집 지역의 선술집에서 음탕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형성되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장 사장이나 중간 간부를 도마에 올려놓고 험담을 하거나 축구 경기의 승부를 놓고 왁자지껄하게 수다를 떠는 중에 그들은 노동자에서 노동 계급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공동의 의식이야말로, 공통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집합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동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노동 운동의 몰락이 얘기되는 지금 이 시점에,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문학,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소통의 경험이다. 유럽의 노동 운동, 사회주의 운동 초기의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맨 처음 한 일이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모여서 소통할 수 있는 '민중의 집'과 같은 공간을 만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렇게 노동자가 소통의 경험을 공유하는데 인문학이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의 인문학은 지금 얘기되는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이 아니라 '노동자의 인문학'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 노동자에게 인문학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기업 임원의 인문학과는 다른 즉 노동자의 '삶의 고양'에 초점을 맞춰서 재해석된 것이어야 한다.
지금 인문학이 대다수 보통 사람의 삶과 유리된 채 유한계급의 문화 자본으로 전락했다면,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대의 인문주의자들이 이런 재해석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수백 년 전 동서양의 인문주의자들이 정리해 놓은 인문학의 정전들이 여전히 신주단지처럼 모셔지는 것이야말로 그 증거이고.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혁명 이후의 삶을 상상하며 "오전엔 사냥, 오후엔 낚시, 초저녁엔 목축,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과 토론을 하는 사회"를 예고했다. 마르크스는 비록 서양 고전의 지적 전통 속에서 자신의 저작을 집필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역시 부르주아 문화와는 다른 대안적인 문화의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다.
여기서 지금 우리가 아는 인문학과 다른 '노동자의 인문학'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말할 재주가 내게는 없다. 다만 우리가 지금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전망하고, 노동자든 민중이든 시민이든 다중이든 그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주체를 고민한다면, 그 시작은 그런 주체의 삶과 밀착된 대안 인문학을 말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 개조 프로젝트의 진실
짐작했겠지만, 군대에서 열댓 명의 후임을 상대로 진행한 인간 개조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났다. 제대 후 풍문으로 들어 보니, 내가 전역 신고를 한 그날 바로 점호 시간 전 텔레비전 채널은 뉴스에서 여자 가수의 뮤직비디오로 바뀌었다. 내무반 책꽂이에 꽂아둔 <창작과비평>, <문학동네>는 몇 개월째 굴러다니다 결국은 소각장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 신병이 들어올 때마다, 이런 얘기가 오갔다고 한다.
"야, 예전에 강 아무개라는 인간이 있었어. 그 인간은 글쎄 어떻게 갈군 줄 알아! 뉴스로 사람을 괴롭혔어. 뉴스로!" "뉴스로만 갈구면 나았게요.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설도 읽게 했잖아요. 효리 마음껏 볼 수 있는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
이제야 고백하건대, 나도 점호 전에 뉴스 대신 효리를 보고 싶었다. 15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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