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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지팡이' 아닌 '친일파 미군견'이었던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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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지팡이' 아닌 '친일파 미군견'이었던 경찰!

[해방일기] 10월 21일, 대한민국 '경찰의 날'이 될 수 없다!

1947년 10월 21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며칠 전 '경찰 공약'을 내놓았다고 한다. 경찰의 날(10월 21일)을 앞두고 "경찰들의 숙원 사항을 대선 공약에 반영, 표심을 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한다. (☞관련 기사 : 박근혜, 경찰 인력 증원 등 '경찰 공약' 발표)

공약 내용이 △폭력 범죄 전담 차장직 신설 △경찰 인력 증원 △검경 수사권 분점 △경찰청장 임기 보장 △경찰관 수당 현실화, 다섯 가지라고 한다. 경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골라 뽑은 내용이다. 10만 경찰 인력이 모두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이니 그들의 표심을 노리는 마음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경찰의 덩치를 키워주고 근무 조건을 향상시켜주는 것 외에 경찰의 마음을 끌 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참 딱한 일이다. 식민지 시대에 억압의 도구로 만들어진 경찰의 이미지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 문제가 더 급하게 생각되지 않는 것일까?

'경찰의 날'부터 그렇다. 10월 21일은 '대한민국 경찰'이 만들어진 날짜가 아니다. 군정청 경무국이 설치된 1945년 10월 21일을 기념하는 날짜다. 1947년 10월 21일에도 "국립 경찰 확립"을 기념하는 행사가 성대히 열린 바 있다.

"신생 조선을 상징-국립 경찰 확립 2주년-오늘 성대한 기념식 거행"

해방 이후 왜경을 물리치고 우리 국립 경찰이 창립되어 2주년을 맞이하므로 경무부에서는 21일 상오 9시부터 시내 세종로 서울국립경찰전문학교에서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고 상오 11시부터 조 경무부장 사열 하에 분열식을 거행한 다음 이어 시가 행진을 하여 창덕궁 비원에서 다과회를 열기로 되었다. (<동아일보> 1947년 10월 21일)

1946년 10월 21일에는 이런 행사가 없었다. 그때는 대구에서 시작된 '10월 사태'로 정신이 없었을 뿐 아니라 경찰의 폭압성이 소요 사태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어서 잔치 벌일 형편이 되지 못했다.

아무튼 창립 2주년을 맞는다는 '국립 경찰'이란 게 어느 나라 경찰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대한민국 경찰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 없을 때니까. '국립 경찰'이란 것이 미군들이 말하는 'national police'를 잘못 번역한 게 아닌가 싶다. 그건 지역 경찰 아닌 '국가 경찰'을 말한 것이었는데.

▲ 10월 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경찰을 찾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 ⓒ뉴시스

해방 당시 식민지 경찰 인원이 약 2만 명이었다. 그 중 이남 지역 인원이 1만2000명가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1년 후 이남의 경찰 인원은 약 2만5000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식민지 시대에 비해 갑절로 늘어난 것이다. 왜 이렇게 많은 경찰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었을까?

경찰이 진정 '민중의 지팡이'라면 민중이 모든 일에서 경찰을 도와주기 때문에 경찰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민중 억압의 도구로 경찰이 쓰일 때 민중과 맞서기 위해 큰 경찰력이 필요한 것이다. 일제 시대보다 갑절의 경찰력이 필요하게 된 것은 미군정 통치가 일본 식민통치보다도 더 억압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경찰의 충성 대상이 조선인 사회가 아니라 미군정이라는 사실을 미군정에 의해 경찰 총수로 임명받은 조병옥은 스스럼없이 표방하고 있었다.

"우리 경찰 진용은 사회 추천에 의한 민선 기관이 아니고 그 직원은 군정관이 부여한 경무부장의 임명권에 의하여 그 신분이 보장된다. 사회와 타협하고 구합할 권리도 없고 의무도 없는 것이다. 군대와 같은 명령 계통을 가지고 규율적으로 복무를 다 함으로써 의무를 다 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앞으로 그 명칭과 기구도 경무부와 일원적 연락 아래 두고자 준비하고 있는 터이다." (<동아일보> 1946년 4월 7일)

미군정 경찰은 친일파의 거점이기도 했다. 1946년 10월 시점에서 2만5000명 경찰 중 식민지 시대의 경력자가 5000명이었다. 해방 당시 8000명이던 조선인 경찰 중 이남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미군정 경찰에 들어간 것은 물론,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인원으로는 전체의 20퍼센트에 불과하지만 높은 자리는 거의가 식민지 경찰 출신으로 채워지고 그들이 새 '국립 경찰'의 분위기를 주도했다.

1946년 10월의 소요 사태에서 선동자들은 경찰을 미워하는 민심을 자극했고 이것이 상당히 주효했다. 그래서 경찰관의 희생이 많았다. 민중에 대한 발포를 거부한 양심적인 경찰관은 당국의 처단을 받았다. 항의하는 민중을 '폭도'로 보고 폭력으로 대하는 경찰관만이 그 조직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광주서장을 검거 취조 중"

광주경찰서장인 정규설은 이번 폭동 사건 당시 무기 창고를 잠근 채 직장을 버리고 무기를 쓸 수도 없게 한 죄과로 장택상 경무총감은 즉시 체포령을 내린 동시에 제1관구보안과장 김성중 외 응원대 50명을 급파하였다. 정 서장은 20일 낮 체포되어 방금 수도경찰청에서 엄중 취조를 받고 있다. (<동아일보> 1946년 10월 22일)

경찰이 친일파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에 민중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는 비판이 10월 사태 이후 쏟아졌을 때 이렇게 항변했다고 조병옥은 자랑스럽게 회고했다.

"당신네들이 대구 10월 폭동에 대해서 경무부장인 내가 친일파 경찰관들을 많이 등용하였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민심이 이탈되어 폭동이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 통치하에 있던 우리 한국에서 친일을 했다는 데 대하여 두 가지 종류로 구별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 하나는 직업적인 친일파였고 또 하나는 자기의 가족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연명책으로 경찰을 직업적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동료들은 Pro JAP이 아니라 Pro JOB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회고록>(조병옥 지음, 선진 펴냄), 164쪽)

맞는 말이다. 직업을 소중히 여기는 경찰을 조병옥은 키웠다. 직업을 위해 독립 투사 때려잡던 식민지 경찰보다 더 맹렬하게 빨갱이 때려잡는 경찰. 빨갱이 때려잡는 기세가 지나쳐서 양민까지 때려잡은 일도 수없이 많았고.

용산 참사를 비롯해 명박산성이니 물대포니 대한민국 경찰의 폭압성에 대한 비판이 많다. 그러나 2년 동안 해방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 눈에는 지금의 경찰이 조병옥의 경찰과 비교가 힘들 정도로 좋은 경찰이 되어 있다. 백성을 억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찰관의 비율이 크게 줄어들어 있다. 그러나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고 그런 이상한 경찰관들이 경찰을 지휘하고 대표하는 자리를 유난스럽게 많이 차지하는 경향이 있어서 문제다.

올바른 경찰관이라면 식민지 시대 경찰을 부끄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군정 시대 경찰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런데 군정청 경찰국 만든 날짜가 '경찰의 날'로 버티고 있는 것이 어찌된 일인가? 미군정이 백성을 억누르기 위해 식민지 경찰을 주축으로 만들었던 미군정 경찰, 그것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대한민국 경찰이 당당히 선포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국가 경찰 제도는 민주 국가에서 사라져야 한다. 민주 국가다운 민주 국가 중에는 일원화된 국가 경찰 제도를 가진 곳이 거의 없다. 경찰은 민주 국가에서 봉사 기관이고 독재 국가에서 억압 기구다. 봉사 기관이라면 각자 자기 지역사회에 속해 있어야지, 상명하복의 전국적 일원체계를 가질 것이 아니다.

사회와 타협하고 구합할 필요 없이 임명권자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조병옥의 경찰은 파시스트 경찰이었다. 독재 정치가 계속되는 동안 대한민국 경찰은 억압 기구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봉사 기관의 성격을 분명히 할 때가 한참 지났다. 극소수 정치 경찰이 요직을 독점하고 경찰의 이름을 더럽히며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 잦은 것도 국가 경찰 제도에 큰 원인이 있다. "국가 경찰은 정의상 곧 경찰 국가입니다." 1947년 7월 웨드마이어 중장이 트루먼 대통령 특사로 조선을 시찰할 때 경찰의 미국인 고문 한 사람에게 들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경찰에는 큰 발전이 필요하다. 민주 국가의 경찰로서 국민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발전이 무엇보다 먼저 필요하다. 그런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명박과 조현오가 신물 나게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것을 다 보고도 '경찰 공약'이라며 당근만 찾는 박근혜의 경찰을 보는 눈은 조병옥이 경찰을 보던 눈과 같은 것이란 말인가? 경찰을 위한 경찰 공약보다 국민을 위한 경찰 공약을 막상 선량한 경찰관들은 더 고맙게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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