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 결과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우파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을 누르고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승리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이후 16년 만에 좌파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곧이어 있은 총선에서도 사회당과 그 제휴 정당들이 승리하여 현재 프랑스는 대통령과 내각, 원내 다수파 모두 좌파다.
그런데 올랑드의 승리만큼이나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화제를 뿌린 또 다른 인물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극우파 국민전선의 여성 대표 마린 르펭이다. 그녀는 1차 투표에서 17.9퍼센트를 얻어 파시즘의 부활을 우려하는 전 세계 민주 시민들이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그녀의 정반대 편에서는 또 다른 '전선'의 후보가 바람을 일으켰다. 바로 좌파전선의 장뤼크 멜랑숑이다.
멜랑숑은 한때 지지율이 15퍼센트를 넘나들기도 했다. 비록 실제 득표율은 일부 지지층이 '결선에서 당선 가능'한 후보 올랑드 쪽으로 쏠려 11.05퍼센트에 그쳤지만, 이것 역시 결코 만만히 지나치고 말 수치는 아니다. 1970년대에 프랑스 공산당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 사회당 왼쪽에서 10퍼센트 이상 득표한 후보가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역사를 멜랑숑과 좌파전선이 새로 썼다.
물론 멜랑숑의 정치적 행진이 기획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그는 대선 직후의 총선에서 일부러 마린 르펭의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다. 총선 1차 투표에서 좌파 중 최대 다수 득표자가 되어 결선에서 르펭을 물리치겠다는 게 그의 포석이었다.
하지만 1차 투표에서 그는 사회당 후보보다 적은 21.46퍼센트 득표에 그치고 말았다. 멜랑숑은 결선 진출을 포기하고 사회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결선에서 르펭은 불과 100표 차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르펭을 떨어뜨리겠다는 대의는 실현되었지만, 멜랑숑이 그 영광의 주역이 되겠다는 구상은 실패로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멜랑숑 바람이 그저 에피소드로만 끝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비록 우회적인 방식이나마 올랑드 정부 안에 자신의 영향력을 새겨 넣었다. 가령 최저 임금 인상 건이 그러하다.
▲ <인간이 먼저다>(장뤼크 멜랑숑 지음, 강주헌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위즈덤하우스 |
이 정도 되면 멜랑숑 후보의 정책적 영향력을 얕잡아 볼 수는 없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좌파전선의 정책들을 모아놓은 대선 공약집이 최근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좌파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 하는가?"라는 부제를 단 <인간이 먼저다>(강주헌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라는 150쪽짜리 작은 책이다.
좌파전선, 어떤 정치 세력인가?
<인간이 먼저다>의 저자는 '장뤼크 멜랑숑'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정가의 상식으로 볼 때 그가 직접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좌파전선'이라는 정치 세력의 집단 저작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좌파전선이 도대체 어떤 세력인지부터 짚어 봐야 할 것이다.
2008년에 프랑스에서는 사회당 왼쪽에 새로운 좌파 정당'들'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그 중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은 반자본주의신당(NPA)이었다. 이 당의 모체는 1968년 5월 봉기 이후 끈질기게 투쟁을 지속해온 프랑스의 유서 깊은 트로츠키주의 조직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LCR)'이다.
저명한 트로츠키주의자 에르네스트 만델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은 알랭 크리뱅(전 유럽의회 의원), 다니엘 벤사이드(국내에 그의 저서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양영란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등이 소개돼 있다) 등이 이 조직의 역사적 지도자들이다.
이 조직이 운동가들로만 이뤄진 일종의 전위 조직에서 대중 정당으로 전환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2002년과 2007년 대선에서 연이어 거둔 상당한 대중적 지지(약 5퍼센트)였다. 젊은 우체국 비정규직 노동자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이 두 선거에 후보로 나서서 당시 사회당의 우경화로 열린 좌파의 빈 공간을 채웠다. 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가 아직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던 때에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자칭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두 자리 수 여론 조사 지지율을 기록하곤 하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2008년에 창당한 신생 좌파 정당은 반자본주의신당만이 아니었다. 일군의 사회당 탈당자들이 녹색당 탈당자들과 함께 만든 또 다른 정당이 있었다. 좌파당이었다.
이 해에 사회당에서는 당 대회가 있었다. 당의 여러 경향들이 각자 입장 문서(motions)를 작성하여 대의원들의 지지를 구했다. 그런데 멜랑숑이 속해 있던 좌파 경향의 지지율이 생각보다 저조했다. 이것은 2007년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세골렌 루아얄의 '제3의 길' 노선, 즉 사회자유주의 입장이 당을 장악해가는 증거로 보였다. 그러자 좌파 일부가 당 대회 와중에 탈당을 결행했다. 조스팽 내각에서 직업 교육 담당 장관을 맡은 바 있는 멜랑숑이 이들 중 가장 이름이 알려진 인사였다.
마침 이들에게는 새 정당 모델이 있었다. 바로 독일의 좌파당이었다. 독일 좌파당은 구 동독의 개혁 사회주의 흐름을 이어받은 민주사회주의당을 한 축으로 하고 슈뢰더 사회민주당-녹색당 연정의 복지 축소 정책에 반발해 사회민주당에서 탈당한 오스카 라퐁텐 전 당 대표 등 구 서독 지역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 및 트로츠키주의 정파들을 다른 한 축으로 하여 등장했다. 좌파 사회민주주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좌파 세력들이 '반신자유주의' 노선을 중심으로 결집한 정당이다.
멜랑숑 등 사회당 탈당파는 이러한 독일 좌파당과 유사한 정당을 프랑스에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이 아니었다. 전통 하나로 버티고 있던 프랑스 공산당은 자신의 간판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다.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의 대표 정파인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도 반자본주의신당이라는 독자 대중 정당 실험을 이제 막 시작한 상황이어서 사회당 탈당파와 다시 당을 새로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당 탈당파는 일부 녹색당 탈당 세력하고만 힘을 합쳐 좌파당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좌파당은 당세가 미약한 대신 사회당 왼쪽 정치 세력들의 광범위한 연합 전선을 결성해서 사회당에 도전하고자 했다. 연합 전선의 주된 상대는 공산당과 반자본주의신당이었다. 그런데 공산당이 좌파당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과 달리 반자본주의신당은 이를 거부했다. 가장 강력한 이유는 공산당과 좌파당 안에 여전히 친사회당 흐름이 강해서 이들과의 연합이 자칫 급진 좌파 전체를 사회당의 하위 파트너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반자본주의신당은 최근까지도 공산당, 좌파당과 선을 긋는 독자 활동에 주력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반자본주의신당이 점점 더 대중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창당 당시의 기대와는 달리 당세가 계속 위축되고 있다. 당 통합과 달리 연합 전선의 문제에는 좀 더 유연한 대응이 필요했는데, 반자본주의신당이 이 점에서 패착을 한 게 아닌가 싶다. 반자본주의신당 안에서도 이 때문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는 연합 전선 지지파가 탈당해 '통일좌파'라는 새 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반면 좌파당과 공산당의 연합은 탄력을 받았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뒤 2010년 지방 선거에도 공동 대응했고 '좌파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이번 대선에 뛰어들기에 이르렀다. 좌파당, 공산당 외에도 반자본주의신당 탈당파인 '통일좌파', 마오주의 조직인 '프랑스노동자공산당', 공산당 탈당파 모임인 '진보대안회의' 등 좌파 소수 정파들이 좌파전선에 합류했다. 더 중요한 것은 프랑스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ATTAC(금융거래과세시민행동연합)의 주요 활동가들이 좌파전선의 지지 대오를 이뤘다는 점이다.
사실 올해 총선에서 좌파전선이 거둔 성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장밋빛은 아니다. 총 577석 중 좌파전선의 의석은 10석에 불과하다. 소선거구제(비록 결선 투표제가 있기는 하지만)인 상황에서 사회당과 선거 연합을 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대선에서 좌파전선이 보여준 가능성은 의회 밖 사회 운동에 여전히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심지어는 반자본주의신당까지도 이제는 연합 전선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하는 움직임이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먼저다>는 단순히 선거가 끝나면 망각되고 말 정세적 문건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위기의 초입인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당 왼쪽 좌파들이 도달해 있는 고민과 합의의 수준을 일정하게 대변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당의 시각을 잘 보여주는 앙리 베베르(지금은 사회당 정치인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혁명적 공산주의 동맹의 이론가였다!)의 <좌파 이야기>(임명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와 이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독서 체험이 될 것 같다.
제헌의회를 통해 제6공화국을 향하여
<인간이 먼저다>의 제1장 제목은 '부의 분배와 사회적 불안정의 해소'다. 여기에는 위에서 소개한 월 1700 유로로의 최저 임금 인상을 비롯해서 주35시간 노동 시간제, 각 기업의 임시직 및 계약직 고용을 10퍼센트 이내로 제한하는 비정규직 고용 상한제, 공공 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가 상승 목적의 정리 해고 금지 등이 제시되어 있다. 한국에서 노동 운동이 요구하고 있는 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지구화는 확실히 전 세계인의 시간대를 일치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밑에 있는 이들의 소득을 끌어올리는 조치들과 함께 위에 있는 이들의 터무니없는 수입을 깎아 내리는 정책들도 제시한다는 점이다. 모든 기업에 대해 급여 상한제를 실시한다거나 연간 최고 소득을 30만 유로(5억2000만 원 정도)로 고정한다는 게 그러한 공약들이다.
이런 점에서 좌파전선 대선 공약은 확실히 전투적이다. 편이 분명하다. 노동자, 청년, 연금 소득자 등 신자유주의 시대에 소득과 권리가 후퇴하기만 한 이들을 편든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또한 적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임원급 사원들에 대한 급여 상한제는 이런 선전포고의 일환이다. <인간이 먼저다>는 더 나아가 이러한 자신의 적에 선명한 이름을 붙인다. 그것은 '금융 자본'이다. 서문의 언급을 보자.
"생태적 재앙, 불평등과 불안정과 빈곤의 폭발, 반복되는 민주주의의 침해, 연대와 협력에 근거한 인간관계의 추락 등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행동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원인입니다. 이 모든 재앙의 공통된 원인은 우리 시대의 본질적인 특징, 즉 금융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는 데 있습니다.
금융 자본의 지배는 겉으로 보기에 결코 흔들릴 것 같지 않지만 실제로는 허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금융 자본의 지배는 국민이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정치적 선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 자본에 과감히 맞서야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미래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7~18쪽)
금융 자본의 제압은 그럼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이 먼저다>는 우선 단기 대책으로 기업의 금융 소득에 대한 과세 방안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새로운 금융 소득 과세의 세수는 사회 보장 기금으로 쓰여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새 조세 체계를 도입함으로써 개인의 일반 사회 보장 분담금(우리의 4대 보험 개인 분담금에 해당)은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금융 불로소득을 복지 제도의 재정 기반으로 재분배하자는 것이다.
좀 더 장기적인 대책으로는 은행과 보험회사의 국유화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국·공유화된 금융기관들을 서로 연계하여 공공 금융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러한 공적 금융 네트워크는 좌파전선 대선 공약에서 현존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 대안 체제로 넘어가는 이행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공공 금융 센터는 고용과 직업 교육, 실질 성장과 환경 보호의 원칙에 따라 금융 서비스를 수행하며, 따라서 경제 운영 방향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선회시킨다. 그러자면 반드시 노동자·민중 대표가 공공 금융 센터 운영을 주도해야 한다.
"공공 금융 센터의 관리는 새로운 권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이 권력을 수행하게 될 주체는 정부 대표 및 각 기관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대표 그리고 이용자입니다. 이용자에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만이 아니라 노동자, 실업자, 계약직 및 그들의 대표가 포함됩니다. 소비자 단체와 환경 단체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중소기업 재정 지원, 주거 지원, 지방자치단체 지원, 예금자에게 돌아가는 서비스 지원 등 공익 목적의 임무 수행이 가능해집니다." (60쪽)
하지만 프랑스 한 나라만의 금융 억제로는 부족하다. 프랑스가 유럽 통화 동맹의 한 축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인간이 먼저다>는 이 문제에 대해 채무국들과 채무 상환 조건에 대해 재협상을 실시하자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SYRIZA)이 주장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 안은 셈이다. 동시에 이러한 일국적 처방의 초국적 기반으로서, 유럽중앙은행의 민주적 관리와 '유럽 사회·생태·연대적 발전 기금' 창설을 제창한다.
이 정도의 개혁도 신자유주의 시기에 형성된 사회 세력 관계 아래서는 실행 불가능하다. 설령 멜랑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좌파전선이 다수당이 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물론 이것 자체가 세력 관계의 놀라운 역전을 뜻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이 먼저다>의 '서문'이 밝히는 대로, 그야말로 '시민 혁명'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제6장 '국민 권력을 되찾는 헌법의 제정'은 그 출발점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꺼내든다.
사실상 샤를 드골의 쿠데타로 제정된 현행 '제5공화국' 헌법을 폐기하고 제헌의회와 국민적 대토론, 국민 투표를 거쳐 '제6공화국' 헌법을 제정하자는 것이다. 주요 개정 사안으로는 의원내각제로의 전환, 모든 선거에서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 실시, 남녀 동수 대표제 실현, 상원 폐지 등 정치 제도의 민주화가 포함된다.
하지만 민주화해야 할 것이 좁은 의미의 정치 영역만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라고 이야기되는 과제들이 더 있다. 이에 대해 <인간이 먼저다>는 새 헌법에 기업 내의 노동자 경영권을 명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적어도 프랑스의 급진 좌파에게 '경제 민주화'란 분명 생산 현장, 즉 기업에서부터 노동자가 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새 헌법에서는 시민이 일하는 곳에서 시민의 권한이 강화되고, 기업의 시민권도 인정되어야 합니다. 기업 내에서 노동자는 법적으로 새로운 권리를 보장받고, 대기업의 지위는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여 재정의해야 합니다.
경제력이 더 이상 주주들의 손에만 있지 않고, 노동자들과 그들의 대표들이 기업의 투자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들은 민주적으로 논의를 거친 사회적·생태적·경제적 우선 과제를 고려하여 기업의 투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모든 전략적 결정에는 임직원 대표 혹은 기업운영위원회의 호의적 견해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해고를 유예하는 거부권과 노조가 제시한 역제안을 반드시 검토할 의무를 법제화해야 합니다." (104쪽)
프랑스 유권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멜랑숑 후보의 입을 통해 이런 메시지를 직접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의 유권자들 역시 대통령 선거라는 계기를 통해 마땅히 접해야 할 시대의 목소리다. 하지만 어쩌면 이 땅의 12월 선거에서는 이런 목소리는 장외의 외침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인간이 먼저다>는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 읽혀야 할 충분한 이유를 지닌다.
그러나 좌파의 대안은 아직 미완성
여기까지는 좋은 이야기이고, 이제는 <인간이 먼저다>의 아쉬운 점들을 몇 가지 지적해야겠다. 우선은 여전히 구체적이지 못한 대목들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금융 이외의 민간 기업 소유 구조에 대해 이 책은 "경제·산업·금융 활동의 주된 수단들을 국유화"(79쪽)한다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국유화하겠다는 것인지, 집권하면 언제까지는 어느 수준까지 국가 소유로 만들겠다는 것인지,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이 간략한 소책자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에 대해 좌파전선 쪽에 다른 정책 자료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이 책만 놓고 보면, 좌파전선은 기업의 소유 구조에 대해 여전히 '당 강령' 수준의 원칙만 있지 실행 계획은 갖고 있지 못한 꼴이다. 선동의 소재로 '국유화'를 이야기할 뿐 당장의 실천 과제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이야기다(물론 '국유화'가 과거처럼 좌파의 대안에서 핵심을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이 문제는 논외로 하자).
좌파전선의 이러한 모습은 30~40년 전의 프랑스 좌파에 비해 오히려 후퇴한 것임에 분명하다. 이때는, 후에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굴복하게 되는 미테랑의 사회당조차 좀 더 진지한 자세로 '국유화'를 약속했고 이를 실행했다. 이들은 10대 제조업 그룹과 시중 은행에 대한 구체적인 국유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좌파전선처럼 "좌파를 다시 건설"(22쪽)하는 것을 과제로 하는 세력이라면,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좌파에게 상실된 이런 측면을 보다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주류 좌파인 사회당에 대한 비판 세력에 머물지 않고 좌파의 대안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좌파전선 대선 공약이 핵 발전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지나치게 수세적이라는 점이다. 슈벤망이 <프랑스는 몰락하는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핵 발전이 프랑스의 미래 산업 중 하나라는 철면피한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권 전에 올랑드 후보가 공약한 '단계적 감축' 수준에서라도 핵 발전 폐기를 공약하는 것 역시 아니다. 단지 "프랑스의 에너지 정책에 관한 국민 대토론회를 즉각 개최"(66쪽)해야 한다는 주장만 있을 뿐이다.
'국민 대토론회'야 좋다. 그러나 "민간 핵 분야와 관련해서도 핵 폐기든 안전하고 공적인 핵에너지의 유지이든 모든 가능성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이것은 핵 발전에 대해서는 좌파전선에 어떠한 공식 입장도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평화 정책에서는 결코 이와 같지 않다. <인간이 먼저다>는 아주 단호하게 "프랑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즉각 결정"하겠다고 천명한다. "비핵화를 위한 행동"을 약속하고, "다자적 군비 축소"의 의지를 밝힌다. 또한 노골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좌파의 대안 세력이고자 한다면, 핵 발전에 대해서도 이 정도로 입장이 분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좌파전선은 그렇지 못하다.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아마도 핵 발전 부문 노동조합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는 공산당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인간이 먼저다>는, 이렇게, 프랑스 급진 좌파의 성취뿐만 아니라 그 한계와 모순도 맨 얼굴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좌파를 다시 건설"한다는 이들의 도전이 이런 점에서 여전히 미완성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이 도전이 얼핏 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하고 장기적이며 간단치 않은 과업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프랑스 좌파는 첫 발은 뗐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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