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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기에 무엇이 더해져야 사랑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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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기에 무엇이 더해져야 사랑이 될까?

[박수현의 '연애 상담소']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③

은유와 동정, 바람기에서 사랑을 길어내는 지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은 토마시와 테레자의 첫 만남에서부터 죽음까지의 시간을 기록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토마시는 오직 한 사람, 테레자만을 사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떠난 테레자를 찾아 취리히에서의 안녕을 버리고 프라하로 돌아왔기 때문에 난감한 정치적 압력에 시달려야 했으며 곧 외과 의사로서의 명성과 안정을 버리고 유리창 청소부가 되어야 했다.

죽을 때까지 내적 분열에 시달리며 바람둥이 행각을 멈추지 못했지만, 그는 테레자를 위해서 일평생 치명적인 추락을 감내했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테레자가 다른 여자들에 비해 예외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토마시는 수많은 연애 상대들이 그의 "시적 기억"의 자리에 아로새겨지지 못했다고 단언한다. 그의 "시적 기억"은 오로지 테레자만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 "시적 기억"이 사랑과 무의미한 섹스를 구분 짓는 준거가 된다. 시적 기억은 은유와 동정(同情)에서 비롯된다.

테레자와 처음으로 동침하던 날, 토마시는 그녀에게서 "송진으로 방수된 바구니에 넣어져 강물에 버려졌다가 그의 침대 머리맡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14~15쪽)의 이미지를 본다. 이후 그는 지속적으로 테레자를 "아이"로 은유한다.

이 은유로, 토마시는 단번에 테레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 당시 토마시는 은유란 위험한 어떤 것임을 몰랐다. 은유법으로 희롱을 하면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21쪽)

은유는 사랑의 주춧돌이다. 한 인간의 미덕과 결점 모두를 상세히 파악하거나 그 인간의 다면체적 면모를 두루 알아채게 된다 치자. 이때 발생하는 감정은 아무래도 사랑보다는 우정이다. 그의 현실과 관계없는 은유를 창조하면서 사랑은 싹튼다.

충동에 약하고 참을성이 없는 그를 두고 '오랫동안 외로움에 떨었기에 비뚤어진 소년', '방황 끝에 이제는 한 여자만을 사랑하기를 원하는 귀환한 탕아'라는 은유를 창작해야 사랑이 싹튼다. 또한 히스테릭한 여자를 두고 '마음이 너무 약해서 상처 받기 쉬운,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라는 은유를 상상하는 순간 사랑이 싹튼다.

'백마 탄 기사'라는 상투어가 있다. 이 상투어는 여자들이 남자를 두고 상상하는 은유 중 가장 유명한 것이다. 많은 여자들은 그가 '나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줄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꿈꾸며, 그를 '백마 탄 기사'로 은유한다.

이런 면에서 은유는 판타지와 상통한다. 상대의 실상과 상관없이 꾸며낸 이미지. 상대를 이미지로 전이하는 기술은 사랑을 '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조미료다. 시적인 것의 본질은 은유이다.

은유는 현실을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변경한다. 남녀 관계를 시적인 것으로 고양하고, 누추한 현실을 몽환적인 비현실로 교체하는 것이 은유의 힘이다. 아무래도 사랑은 서사적이라기보다 서정적인 것에 가깝다. 사랑은 어느 정도 몽환적인 비현실에 근거한다.

누추한 현실을 직시하는 것보다 몽환적인 비현실에 기만당하는 편이 사랑을 더 달콤한 무엇으로 만든다. 이런 면에서 기만은 사랑을 이끌어가는 중대한 수레바퀴이다. 그러므로 시적인 상상력을 유발하는 상대를 조심하시라.

토마시가 테레자를 예외적으로 사랑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동정(同情)이다. 동정은 단지 누군가를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 아니다. 쿤데라에 따르면, "동정심을 갖는다는 것은 타인의 불행을 함께 겪을 뿐 아니라 환희, 고통, 행복, 고민과 같은 다른 모든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동정은 고도의 감정적 상상력, 감정적 텔레파시의 기술을 지칭한다. 감정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이것이 가장 최상의 감정이다."(37쪽)

테레자는 토마시의 바람기를 알고서 바늘로 손톱 밑을 찌르는 꿈을 꾼다. 이 꿈은 그녀가 그의 서랍을 뒤졌다는 사실을 누설하기도 하지만, 토마시는 사생활이 침해당했음에 분노하기보다는 그녀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 자기의 바람기 때문에 고통 받는 테레자의 마음을 자기 마음처럼 느끼면서, 자기도 손톱 밑이 아려온다고 느끼면서 토마시의 사랑은 깊어진다.

이후 동정은 토마시를 여러 차례 굴복시킨다. 토마시의 바람기에 지쳐 테레자가 프라하로 돌아갔을 때, 토마시는 처음에 자유와 해방감을 만끽한다. 테레자와의 7년간의 사랑은 피곤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토마시는 뭔가 위장하고 변명하고 비난을 감수하고 죄의식을 느껴야만 했고, 테레자는 그의 발길 하나하나를 감시했었다.

그러나 며칠 후 그는 다시 동정에 깊이 침잠한다. 테레자가 "이별의 편지를 쓰며 겪었던 감정"(56쪽), 프라하 아파트의 문을 열었을 때 "홀로 된 그녀의 슬픔"(56쪽)이 돌연히 그의 마음에 침투한다.

그는 이 동정과 싸우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결국 닷새 만에 굴복하고 만다.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테레자를 찾아 프라하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이후로도 테레자가 슬픈 꿈을 꾸면 토마시는 같은 슬픔을 더욱 통절하게 느끼며, 이를 계기로 테레자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털어버리기도 한다. "지구가 폭탄을 맞아 뒤흔들릴 수도 있고, 조국이 매일 새로운 침략자에게 약탈당하고, 그가 사는 거리의 모든 주민이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해도" "훨씬 쉽게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테레자의 단 하나의 꿈이 불러일으킨 슬픔은 견딜 수 없었다."(366쪽)

이쯤 되면 토마시가 귀엽기도 하다. 엽색 행각으로 평생 테레자를 괴롭혔지만 그녀의 슬픔을 같이 느끼는 축복 혹은 천형을 평생 등에 업고 산 토마시.

타인이란 쉽지 않은 화두이다. 오죽하면 근래 현자들이 타인을 알려고 했지만 결국 내 의식이 조작한 나의 그림자에 불과한 타인밖에 알지 못한다고 반성하겠는가. 이들이 쏟아낸 '타자'에 관한 현란한 통찰들은 아마도 상당 부분 연인을 둘러싼 고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해도 타인은 알 수 없다. 타인의 입장에 서 보지 않고 그에 관해 무언가를 안다고 발설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타인의 자리와 내 자리의 완전한 자리바꿈, 그것만이 타인에 관한 발언에 최소한의 윤리성을 부여한다.

이런 철학적 통찰은 일상의 남녀 관계의 장에서도 유효하다. 동정이란 자리바꿈을 전제한다. 타인의 자리에 내가 서 보는 것. 그래서 그와 같은 것을 느끼는 것. 어른들의 통찰은 옳다. 수많은 부부 관계 딜레마의 해법은 많은 경우, 역지사지이다.

타인의 자리에 서는 것은 의지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특별히 이성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역지사지가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토마시는 남녀 관계에서 드물게 보는 축복을 받았다. 노력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그의 의지에 반(反)해서 동정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래서 토마시는 동정을 "악마적 능력"(38쪽)이라고 일컬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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