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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에 오를 때 주의 사항! '똥'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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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에 오를 때 주의 사항! '똥' 관리?

[꽃산행 꽃글·29] 지리산 임걸령의 샘물맛

1

약 7년 전 늦가을. 출판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정기 산행 모임에 끼어 설악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백담사 계곡으로 올라가서 봉정암-소청산장-중청대피소-대청봉-오색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 백담사 입구에 도착하니 여덟 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황태북엇국으로 아침을 먹고 주차장에서 장비 점검을 했다. 그때는 식물의 세계에 입장하기 전이라 배낭 속 목록이 요즘의 꽃산행 때와는 좀 달랐다. 카메라, 노트, 필기구, 사탕 대신 소주, 고기, 쌀, 밑반찬이 주 품목이었다.

각자 배낭을 챙기고 등산화 끈을 조이고 등산복 매무새를 고친 뒤 백담사행 정류장을 서성거렸다. 큰 산을 오르는 것이니 약간의 설렘이 순간순간 찾아오기도 했다. 사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좀 남자 오늘 오를 산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다. 찰칵, 셔터 소리가 나고 각자 순한 표정을 풀며 대오를 흩트리는 순간. 이번 산행을 이끄는 대장격의 어느 대표님이 한 마디를 귓전에 날렸다.

"야, 이런 산행에서는 말이야, 똥 관리를 잘해야 돼!"

듣기에 따라 거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인즉슨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왁자하게 한바탕 웃음으로 반응을 처리했다.

산행은 고되었지만 마음은 순조로웠다. 단풍이 소리없이 제철을 지나가고 단풍객들이 요란하게 이미 설악산을 다녀간 뒤였다. 가을이라지만 산은 겨울 준비를 소리없이 착착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봉정암을 옆으로 끼고 돌아드니 사리탑 광장이었다. 간단히 참배를 하고 눈을 옆으로 돌리니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몸이 갑자기 거추장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가슴 아래부터의 이걸 그냥 확 내집어던지고 저 아득한 풍경 속으로 홀딱 빠져들어 볼까나.

그런 풍경에 취해 봉정암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곧 땅거미가 몰려올 태세였다. 서둘러 암자를 뒤로 돌아 아주 급경사의 가파른 길을 치고 올랐다. 어느 순간, 산장의 지붕이 힐끗 나타났다. 그때만 해도 그 산장은 민간인이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그래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게 가능했다. 이윽고 작은 평상이 보이고, 수도꼭지가 나타나고, 빈대떡 굽는 냄새와 빈대떡 뒤집는 소리가 몰려왔다. 산속이라서 모든 감각이 예민해진 탓인 모양이었다. 눈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평상 아래 물이 가득 찬 고무대야에 담겨있는 막걸리와 소주, 캔맥주에 직방으로 꽂혔다.

소청산장. 오늘 밤 우리가 묵을 산속의 집이었다. 비로소 이제 오늘은 더 올라야 할 곳이 없어졌구나, 생각하니 오늘 하루가 문득 그리워졌다. 가파른 경사를 걸어온 대견한 하루의 걸음걸이도 떠올랐다. 그리고 돌계단의 마지막 한 칸에서 힘겹게 발을 떼고 몸을 전부 산장으로 끌어올리는 순간, 자동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아, 그때 희끗희끗한 구름 속에 나타나는 설악산의 절경이란!

방 배정을 하고 저녁을 먹는 자리. 준비해 간 고기를 구우며 소주를 마셨다. 모두들 정기 산행 멤버이고 나만 처음 끼였던 자리라 그랬는지 술이 몇 순배 돌자 한 마디 하라고 부추겼다. 술기운도 들어가고 산중이라는 생각에 별 용기도 필요치 않았다. 가득 채운 술잔을 들고 한 마디 내지르고 말았다.

"아까 산행을 시작할 때, 똥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백번 공감합니다. 누구는 부처가 마른 똥 막대기라 했다지요. 저 아래 백담사에서는 아마도 똥 막대기를 화두로 삼아 정진하시는 스님이 있을 겁니다. 자, 우리 똥 막대기들, 건배!"

2

큰 산을 오를 때 챙겨야 하는 게 어디 그것뿐이랴. 정말 잘 관리해야 할 게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물이다. 큰 맘 먹고 가는 큰 산이라면 산행 시간이 길게는 열 시간이 훌쩍 넘고, 짧아도 일곱 시간은 족히 된다. 그러니 중간 중간에 식수 보충이 가능한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지리산 꽃산행. 성삼재에서 출발했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잠시 쉬고 노고단 고개에 올라섰다. 이곳에 서면 잠시 엄숙해진다. 설악산하고는 또 다른 장중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부터 도달해야할 봉우리들이 앞으로 멀리 차례로 도열한다. 가장 가까이로 반야봉이 봉긋하고 까마득히 멀리 천왕봉이 보일락 말락!

오늘 우리가 가는 길은 지리산의 종주가 아니다. 능선을 걷다가 화개재에서 뱀사골로 꼬부라져 내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음정 마을에서 자고 벽소령으로 가는 작전 도로를 탐방하기로 했다. 지리산 종주길은 노고단에서 시작할 때 너무나 평탄한 꽃길이다.

미역줄나무, 쥐오줌풀, 처녀치마, 개구리자리, 금강애기나리, 나도제비란, 큰앵초, 꿩의다리, 노루오줌, 지리터리풀, 명자순, 복장나무, 복자기나무, 나래회나무, 애기나리, 노린재나무, 개시호, 동자꽃, 쉽싸리, 미나리아재비.

▲ 큰앵초. ⓒ이굴기

▲ 개구리자리. ⓒ이굴기

▲ 나도제비란. ⓒ이굴기

돼지령까지 오는 동안 관찰한 식물들이다. 이제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임걸령이 나온다. 그곳에서 좌측으로 귀를 기울이면 물소리가 들린다. 그곳에는 샘이 솟아난다.

이 지리산의 꼭대기에 물이 쏟아지는 샘이 있다는 건 등산객에게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샘은 정갈한 분위기이고 울타리가 쳐져 있다. 그리고 국립공원에서 만든 팻말이 붙어 있다. 팻말에 그려진 어미곰과 아기곰은 발바닥을 내밀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출입 금지." 이곳은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 사는 동네이니 행인들로 하여금 물만 먹고 조용히 가라는 것이다. 울타리 덕분에 동의나물 군락이 노란꽃을 피운 채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 임걸령 샘 주위의 어미곰, 아기곰 그리고 동의나물 군락. ⓒ이굴기

목을 맘껏 축이고 물통에 물을 꼭꼭 눌러 담은 뒤 계속 걸었다. 꽃산행을 하다보면 일반 등산보다 시간이 거의 두 배로 걸린다. 우리가 걷는 만큼 서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태양도 천천히 저물어간다. 일조량에 따라 희미하게 힘을 잃어가는 꽃들을 관찰하면서 어느덧 화개재에 당도했다.

금강애기나리, 나도하수오, 죽대, 은분취, 일월비비추, 미나리아재비, 꿩의밥, 풀솜대, 큰산장대, 원추리, 나도개감채, 참바위취, 졸방제비꽃, 바위떡풀.

▲ 금강애기나리. ⓒ이굴기

▲ 졸방제비꽃. ⓒ이굴기

▲ 풀솜대. ⓒ이굴기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반선마을로 내려오니 어두컴컴한 밤이었다. 총 산행 시간=13시간 40분. 총 산행 거리=14.6킬로미터. 뻐근한 다리를 뻗고 꿈 없는 잠을 자고 났더니 바로 아침이었다.

이튿날의 계획은 지리산자연휴양림 뒤편의 작전도로를 따라 벽소령대피소-형제봉-삼각고지-연하천대피소-음정마을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지금 꽃산행에 꽃 사진을 겸업으로 하는 중이다. 그리고 발목을 붙드는 건 백무동에서 서울로 가는 막차가 여섯 시라는 것! 똥 관리, 물 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건 시간 관리였다. 그게 또한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벽소령대피소와 연하천 대피소로 가는 갈림길에서 되돌아 하산하였다.

3

얼핏 잠에서 깨어보니 고속버스는 씩씩하게 달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차창 바깥을 보니 익숙한 산의 능선이 밤하늘에 뚜렸했다.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이었다. 곧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서울에 곧 진입할 모양이었다. 물병을 찾았더니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한 모금은 남겼다. 뻐근한 다리를 앞좌석 밑으로 뻗었더니 지난 이틀간의 산행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 임걸령 샘물. ⓒ이굴기
다들 어디를 갔다 오는 것일까. 주말의 고속도로는 질주하는 차들로 넘쳐났다. 설악산에서도 오색으로 내려오는 등산객들은 대부분 경춘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강동대교에서 경춘고속도로와 합류한 올림픽대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혹은 그 밖의 강원도의 산을 다녀오는 등산객들로 관광버스마다 만원이었다.

차는 올림픽대로에서 벗어나 올림픽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강물은 조용했다. 강변의 아파트가 휘황했다. 설악산 봉정암 뒤편 사리탑보다도 훨씬 높은 것 같았다. 물론 해발로 치면 지리산 음정 마을보다는 훨씬 아래일 것이다. 버스의 실내등이 들어올 때 나는 아꼈던 물병을 다시 꺼냈다. 이 물은 보통 물이 아니다.

지리산 임걸령 샘에서 떠온 물이다. 서울의 복판에서 지리산 능선을 뚫고 솟아난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기분이란! 밍밍한 물이었지만 각별한 물맛이었다. 비로소 지리산 꽃산행도 시원하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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