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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도 불순부정한 우익인가요?"

[해방일기] 1947년 10월 10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1947년 10월 10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기협 : 오늘은 말씀 듣기에 앞서 최근 발표하신 글 '순정우익(純正右翼)의 집결'을 살펴보겠습니다. 해방 다음 달에 내신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 이후 처음으로 정치적 입장을 총체적으로 밝히신 글이군요. 2개 절로 된 글 중 뒤쪽 절반을 옮겨놓겠습니다.

우익을 끌고 좌우 합작에 종사하던 자, 합작 성취치 못한 데서, 당연 순정우익에 집결 웅거하여, 써 천하의 변국에 대기할 것이라고 한 것은, 내가 순정우익의 집결을 논한 전항(前項) 문의(文意)의 주지(主旨)였었다. 이제 더 한번 이를 논하고, 중앙 노선 문제까지도 약간 구명하여 둘 필요 있다.

미소공위는 목하에서 우선 결렬로 보게 된 바이고, 유엔 총회의 조선 문제 상정도 그 성과 어찌될는지, 유엔 총회에의 조선 문제 상정은 우리의 독립 현안을 국제적 평화 공작으로 해결 완성하려는 최후의 기회인만큼 그 귀추 매우 중대할 새, 남조선의 단독 보선(普選) 안도 대기 보류된 상태이라, 조선의 정치 사회는 바야흐로 그 재편성의 긴급 사태에 맞닥뜨려 있다.

중간 노선이란 그 '중간'의 어구부터 단연 배격의 요(要) 있는 것은 오늘 재론치 말자. 소위 극좌 극우의 편향 노선 있음에 비추어 진정 민주주의 노선은 그 상대성에서 당연 중앙 노선 되나니, 이 의미에서 중앙 노선은 그 어(語)와 의(義) 아울러 가하다.

다만 중앙 노선의 노선 됨이, 민족 자주 노선이요, 독립 기본 노선이요, 신민주주의 사회 건설의 토대 위에 구축 현현되는 신민족주의 노선인 것이며, 이는 실로 비교 상대를 모름짓지 않는 독자적인 민주 독립 노선인 것이니, 좌와 우를 논할 바 아니다. 다만 세간(世間) 이미 좌익 노선이란 자 존속되어 있음에서 민주 독립 노선이 순정우익 진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현 순간에 있어 구태여 순정우익을 선양할 의의 없으나, 요컨대 그 본연 고유한 성격에 환원한 형태인 것이다.

1945년 8·15 당시 건국준비위원회 있어 나는 당시 퇴각에 제회(際會)한 일제의 세력이 최후 발악적 유혈의 대참극 있을 것을 방지코자, 첫째 공안의 호지(護持), 둘째 모든 현유 세력과 기구-자재-기획-문헌의 보관 관리와, 셋째 해외에 있는 임정 및 혁명적 제 집단의 입국 조정을 기다리는 것 등을 목표로 응분의 노력을 할 것을 그 본령으로 하고, 민족주의자의 주동 하에 좌방의 협동적 연합을 함을 의도 및 획책을 하였었다. 그러나 현실은 도리어 이와 전도되고, 종래에는 민족진영 측의 참가 거부조차 있어, 나는 차선(次善)에 나와서 '건준'을 스스로 이탈하였다.

따로이 국민당을 일으킨 것은, 순정한 우익 즉 전(全) 야전(野戰)에서의 중앙 노선이었었다. 우남 이 박사를 맞이하여 독립축성중앙협의회를 조직할 때와, 중경 임정을 맞이하여 비상정치회의를 협력함에 있어, 또한 민족주의자 그 다수 주동이 되고 좌방 이에 협력적 참가를 상망(想望)하여, '비율'을 문제 삼지 말기를 요청하였으나, 좌방 소위 5대 5를 고집하여 필경 성취치 않았다.

그동안 탁치안이 나와 천하의 물정 소연한 중에, 혹 4당 공동 코뮈니케를 만들고 하는 중에서도, 나는 항상 반탁 투쟁의 선두에 섰었다. 그리고 비상국민회의를 주비함에 임하여 오히려 좌와의 협력을 역설하였으나, 좌 이에 난제 있어 결렬되었다. 이즈음에 나는 좌와의 협동 계획을 한동안 중단하고 우익 즉 민족주의 진영만의 연합으로 스스로 위력을 보임에서, 좌방도 조만 다시 협동을 재요구하게 될 것을 기대하기로 하였다.

제1차 미소공위 열리었으되 무위로 결렬되고, 국제 세력 하에 거대하게 제약되는 조국과 민족의 현세 안여(晏如) 좌시할 수 없는 차에, 좌의 일부에서도 그 요구 있었고, 민주의원 및 비상국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좌우 합작의 논(論) 있어, 찬부 효효(囂囂)한 중에 원의(院議) 50만의 지출로 그 비용에 자(資)함 있어, 김규식 박사와 함께 합작 노선 선양에까지 갔었다.

이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되고, 또다시 미소공위의 1년 만의 속개 있었으나, 회의적 희망관 그것과 한 가지, 공위의 사업은 또 무위로 그친 사태이다. 반탁 1건을 싸고서 세간 상응한 잡음 부동(浮動)함 있으나, 반탁의 의도, 즉 자주 독립의 의도는 이미 일반 민족 대중에게 침투 관흡(貫洽)되어 있으니, 소위 기술적 반탁 공작으로써 수립된 민주주의 통일 정부를 통하여, 하루빨리 혼미하는 대중을 민족 독립 국가에로 구제하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이 주장, 이 의도, 거연(居然) 바꿀 줄이 없다.

요는 변동되는 대국에 어떻게 독자적인 진정 민주주의=신민주주의 진영을 확립하고 염연(厭然) 관망하는 부동적인 민중까지를 고동(鼓動) 감분(感奮)케 하여, 써 민주 독립 전취의 결전장에까지 집결 매진케 하는가에 있다. 일진일퇴 일개일합하면서, 민족 해방과 민족 독립국가 완성을 염념 추구하는 것은, 전 천고 후 천고 다 비켜놓고 이 시대에 조선인으로 태어난 오등 생존하여 있는 민족대중의 공동한 사명인 것이다. 이 사명을 정통적으로 부하할 자 즉 순정우익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다시 일언(一言)한 소이이다. (<한성> 1947년 10월, <민세 안재홍 선집 2>, 210~213쪽)

민정장관을 맡고 있는 입장에서 개인의 정치적 입장 밝히는 일을 무척 조심하시는 터에 이 글을 내놓은 것은 각별히 절실한 필요 때문이시겠지요. 그 절실한 필요가 무엇인지 먼저 설명해 주시지요.

안재홍 : 나는 지금의 과도정부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개인 입장을 앞세우지 않으려 무척 조심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민의 발현이 제대로 되지 못하는 상황이 오랫동안 계속되고,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요. '신탁 통치 반대'만 하더라도, 운동 초기부터 내가 열심히 역할을 맡아온 일인데, 지금은 원래의 뜻을 벗어나 민의를 분열시키는 구실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외부 사정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요. 그 동안 3상 회의와 미소공위에 독립 건국의 희망을 걸어놓고 있었는데, 미소공위는 이제 물 건너가고 유엔 총회로 무대가 옮겨졌습니다. 미국과 소련도 조선 사정을 잘 알지 못해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 두 나라만큼도 조선 사정을 알지 못하는 나라들의 결정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조선인의 뜻을 정말 잘 발현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바라보기 힘든 형편입니다.

극좌와 극우의 행태를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는데, 잘못의 비판보다 중요한 것이 바른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민족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바른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족주의자의 바른 길'로서 '순정우익'을 제창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기는 하지만 모든 민족주의자 동지들이 함께 생각할 길이라는 점에서 개인 입장에 얽매이는 것이 아닙니다.

김기협 : '순정(純正)'이란 표현은 '불순부정(不純不正)'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 같습니다. 짐작이 가기는 하는데, '불순부정 우익'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안재홍 : 꼭 상대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원래 순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정하지 못한 민족주의가 인류 평화에 해를 끼치고 이웃과 자기 자신 모두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근세의 역사가 보여주지 않습니까? 불순부정한 민족주의는 진정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가면을 쓴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입니다.

반탁 운동을 예로 들죠. 독립 능력을 가진 민족을 신탁 통치로 묶어놓겠다는 데 항의하는 것은 지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항의하는 것은 올바른 반대가 아니죠. 좌우 합작으로 민족의 통일을 굳힘으로써 독립 능력을 키우는 노력 없는 반탁 독립 운동은 진정한 독립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이 권리만이 아니라 책임도 느껴야 올바른 사람 노릇 할 수 있는 것처럼, 한 민족도 권리만 주장해서는 올바른 민족주의가 될 수 없는 것이죠.

나는 순정한 사람이고 누구는 불순부정한 사람이라고 몰아붙일 생각 없습니다. 그러나 인물은 그 행동으로 평가받는 것입니다. 김구 선생이 위대한 민족주의자라는 데 이의를 가진 사람이 없겠지만, 그분의 반탁 운동이 미소공위 외면이나 방해로 나간다면 순정우익의 길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국민당을 바쳐 그분을 모시며 그분의 일탈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그분을 끝까지 따를 수 없었습니다. 순정우익의 길을 걷기 위해 그분을 떠나야 한다면 떠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입장입니다.

김기협 : 상대적 의미라면 '중간파'란 말이 더 뚜렷하죠. '중간'을 '좌와 우' 양쪽의 중간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 해석으로는 '중간파'란 것이 하나의 이념으로 존재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회주의자니 회색주의자니 하는 비난도 나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중간'이 극좌와 극우의 편향을 피한다는 뜻이며 '중앙'이란 말이 더 적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편향성과 대비되는 상대적 의미에서 '중앙 노선'이 곧 민족 자주노선 이요, 독립 기본 노선이라는 주장입니다. 좌와 우의 선택은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취향의 문제인 반면 편향성은 오류를 품은 것이고 그 오류를 극복해서 중앙 노선을 세우는 것은 당위의 문제라는 것이죠. 이 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안재홍 : 그렇습니다. 해방된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과제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실현입니다.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입장이 좌익,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입장이 우익이죠. 제대로 된 좌익은 민족주의를 인정하고 올바른 우익은 민주주의를 존중합니다. 어느 쪽을 중시하고 앞세우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나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될 수 있는 것이고, 결합될 때라야 진정한 민주주의, 올바른 민족주의가 실현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패망으로 해방을 맞은 지금 상황에서는 민족주의가 인민의 마음에 더 분명히 나타나 있고, 따라서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것이 민주주의 성취를 위해서도 더 순탄한 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나랑 다른 판단으로 민주주의를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존중해 드리면서 타협과 합작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극좌와 극우는 이런 타협과 합작의 범위를 벗어나는 주장입니다. 상대방을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을 자기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성공'보다 '승리'만을 바라보는 자세죠. 민주주의의 진정한 실현을 바라는 좌익도 민족주의의 진정한 실현을 바라는 우익도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이처럼 건실하지 못한 자세가 크게 유행하는 것은 외세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소련의 힘을 업거나 미국의 힘을 빌리면 통합된 민심을 이루지 않더라도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극좌도 극우도 '민족 자주 노선'과 거리가 먼 것이죠. 미-소의 점령 상태 때문에 이런 풍조가 일어난 것인데, 이 풍조를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리의 급선무입니다.

김기협 : 극좌와 극우의 외세의존 성향에 대해서는 김규식 선생도 금년 신년사에서 지적한 말씀이 있었죠.

일부 노선은 국제에 있어서 친소 및 반미의 행동을 취하는 동시에 국내에 있어서 자기네의 독점 정권의 수립을 기도하였다고 평하는 이가 있으며, 또 일부 노선은 친미반소의 행동을 취하고 동시에 국내에 있어서 일부 독점 정권의 수립을 몽상한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습니다. (…) 이 두 노선은 (…) 우리 민족의 자주적 입장을 망각한 것이며, 민족적 통일 단결을 파괴하는 것이며, 미소 양국의 조선에 관한 진정한 협조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1947년 1월 4일, <한국 현대 민족 운동 연구>(서중석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571쪽에서 재인용)

선생님께서 중앙 노선이 '민족 자주 노선'이란 말씀을 하시니까 최근 결성 움직임을 시작한 (1947년 10월 4일, 8일 준비위원회 개최) 발기회를 가진 '민족자주연맹' 생각이 납니다. 좌우합작위의 발전적 해소를 전제로 한 이 움직임이 김규식 선생을 준비위원장으로 앞세우고 두 차례 회의를 군정청(중앙청) 회의실에서 연 것으로 보아 미군정 측의 엄호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참여 범위도 합작위보다 확연히 넓어지는 것 같고요. 홍명희 선생의 참여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그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가요? 선생님의 이번 글도 이 움직임에 고무된 것 아닌가요?

안재홍 : 미소공위의 이번 파탄을 보며 모든 민족주의자들이 위기의식을 단단히 느끼고 있습니다. 조선 문제가 유엔 총회로 넘어갔다는데,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들 결정에 맡긴다니, 미소공위만큼보다도 어려운 길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유엔 총회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고 하는데, 소련이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고요.

합작위가 출범하던 작년 여름에는 상당수 민족주의자들이 한민당에도 몸담고 있었죠. 그런데 그 후의 사태 진행 앞에 민족주의자들은 갈수록 불안해졌습니다. 좌익은 지하 운동에 쏠리고, 이승만 박사와 한민당은 단독 정부도 불사한다는 태도를 노골화 해왔습니다. 홍명희 씨 같은 분도 합작위에 대한 부분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접어놓게 되었습니다.

민족자주연맹이 진정한 민족주의자를 모두 결집시킬 것을 나는 기대합니다. 아직 섣부른 말씀일지 모르겠지만, 김구 선생도 드디어 올바른 민족주의자의 길로 돌아올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합니다. 이승만 박사와 더 이상 길을 함께 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으실 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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