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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귀때기청봉, 우화등선이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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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귀때기청봉, 우화등선이 부럽지 않다

[꽃산행 꽃글] 설악산 귀때기청봉에서의 꽃향기 잔치

설악산 귀때기청봉에서의 꽃향기 잔치

그곳까지 다 오른다고 해서 하늘로 오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라 해도 이른 새벽 한계령에 도착해서 부슬부슬 안개를 몸에 두르고 설악산 위 저 끝 간 데를 올려다보니 '우화등선(羽化登仙)의 한 자락을 흉내 낼 수도 있겠구나' 욕심을 부려보고도 싶어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꽃이 좋아 새벽밥 먹고 나선 산행이지만 아직도 나는 띵띵한 몸을 가진지라 등산로 입구에 서면 언제 저 정상에 오르나 부담을 아니 가질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 엉뚱한 욕심을 부려보면서 몸의 긴장을 달랜 것이다. 희붐한 새벽 안개를 가르면서 가파른 길을 올랐다. 고단한 몸을 부지런히 재게 놀리면 힘이야 들겠지만 그래도 하늘의 한 귀퉁이를 만져볼 수도 있겠구나, 기대하고서.

오늘은 설악산 한계령 휴게소에서 서북능선을 올라 귀때기청봉까지 갔다 오는 길이다. 여름날이라 다행인 것은 출발할 때 빛이 완연해서 새벽잠에서 깨어나는 사물을 그 시간에도 온전히 분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둠은 새를 낳고, 돌을 낳고, 꽃을 낳는다. 아침이면, 어둠은 온갖 물상(物象)을 돌려 주지만 스스로는 땅 위에 굴복(屈服)한다. 무거운 어깨를 털고 물상(物像)들은 몸을 움직이어 노동(勞動)의 시간(時間)을 즐기고 있다. 즐거운 지상(地上)의 잔치에 금(金)으로 타는 태양(太陽)의 즐거운 울림. 아침이면, 세상은 개벽(開闢)을 한다.

(박남수, '아침 이미지' 전문)


오늘 또 하루의 천하가 새롭게 태어나는 바로 그 현장을 생생히 목격할 수가 있다. 해서 예전 같으면 바위의 겨드랑이에 붙은 금마타리나 길가의 참조팝나무, 회목나무를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텐데 오늘은 그 얼굴을 깨끗하게 볼 수가 있었다.

▲ 참조팝나무. ⓒ이굴기

▲ 금마타리. ⓒ이굴기

강수 가능성이 30퍼센트라 했건만 산중에 들고 보니 인간 세상이 예측한 아라비아 숫자의 확률은 가볍게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았다. 곳곳에 비가 올 기미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자욱한 안개가 벌써 곳곳에 포진해서 언제든지 가랑비로라도 응결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 희미한 안개 너머로 설악산이 간직한 신비와 기운이 감추어져 있는 것 같았다. 가끔 올려다보는 하늘은 이런 나를 가소롭다는 듯 안개와 구름을 잔뜩 풀어놓고.

한계령 삼거리. 오른쪽은 중청, 대청봉으로 가는 길이고 왼편으로는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우리는 오른편을 버리고 왼편을 택했다, 작은 숲길이 이어지고 바위가 잔뜩 얼크러진 너덜겅이 나타났다. 안개도 수시로 출몰했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했다.

그 길의 어느 중간쯤이었나.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들! 털개회나무와 꽃개회나무가 활짝 피어났다. 그 꽃들의 향기가 진동하는 것이었다. 난분분 휘날리는 꽃향기가 사방에 가득 찼다. 그 세기가 얼마나 강한지 바람이 불어도 향기는 좀처럼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가늘고 부드러운 향기는 바람의 그물을 쉽게 빠져나가는 듯했다. 심술궂은 바람도 꽃향기를 모두 데리고 가지는 못했다. 천상의 정원이 따로 없었다. 설악의 한 사면이 온통 털개회나무와 꽃개회나무가 어우러져 잔치를 벌이는 중이었다.

▲ 설악산 귀때기청봉 근처에서 만난 꽃들의 잔치판. ⓒ이굴기

하늘로 뚫린 길을 기대하고 올랐건만 길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설악의 한 정상에 서면 그만큼 하늘은 멀찍이 물러났다. 하지만 내려다보는 세상은 또 그만큼 깊어지는 것이라서 정확히 서로 비기는 것이리라. 그래도 이만 한 게 어디인가. 뜻밖의 호사를 생각지도 못한 신체기관으로 왕창 누린 셈이었다.

향기에 취해 어느 모퉁이의 호젓한 길을 돌아들 때였다. 실팍한 돌이 주춧돌처럼 자리한 가운데 꽃개회나무 한 꽃송이가 탐스럽게 공중에서 뻗어나 와 달려 있었다. 꽃개회나무는 묵은 가지가 아니라 올해 새로 돋아난 가지에서 꽃이 피는데 그 특징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동시가 있다.

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이준관, '별 하나' 전문)


꽃개회나무의 아주 동그란 꽃송이는 잡기 좋은 '쬐그만' 손잡이 같았다. 혹 모른다. 저 손잡이를 돌리고 들어가면 실제로 하늘의 한 구석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침에 산에 오를 때 내심 기대했던 것이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문득 그 손잡이를 가만히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만 해도 충분하고 흡족하다. 오늘은 안복(眼福)만 누린 게 아니다. 이렇게 콧구멍 가득 꽃들의 향기를 빨아들이지 않았는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면서 꽃 손잡이를 가만히 돌려 보는 순간, 우화등선의 한 자락을 실천이라도 한 양 마음 한구석이 설악의 구름으로 올라타는 기분이었다.

▲ 꽃개회나무.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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