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다 싶어서 벗어나보려고 하지만, 매번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상한 죄책감이 생기고,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겨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의 반항을 포기한 채 하라는 대로만 하면서 살게 된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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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심리 조종자>(크리스텔 프티콜랭 지음, 이세진 옮김, 부키 펴냄) ⓒ부키 |
심리 조종자는 정신 의학적 진단 측면에서 보자면 병적인 자기애적 인격과 반사회적 인격이 병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한 시사프로그램에서 충격적인 사건을 다뤘다. 멀쩡하고 평범하게 살던 여인이 몇 년간 실종되었다가 발견되었는데, 알고 보니 한 사람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그의 지시로 매매춘을 해왔다는 것. 이렇게 심리 조종자는 의지가 박약하거나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먹잇감으로 삼지 않고, 평범한 우리 주변의 사람을 타깃으로 한다. 빨아먹을 에너지가 충분해야 그들의 먹잇감이 된다.
이 책은 먼저 심리 조종자의 마수에 빠지는 과정을 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귀가 얇은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암시에 걸리기 쉽고, 심리 조종자들은 암시에 매우 능하다. 심리 조종자의 피해자는 그들의 정신적 식민지가 되어 버린다. 그들이 피해자에게 놓는 심리적 함정은 의심, 두려움, 죄의식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언어와 비언어적 소통을 총동원해서 피해자가 당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모든 것을 흔들어놓는다. 대화나 관점의 교환 없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면…해야 하는 거야" 하는 식으로 규정적인 말을 한다. 그리고 죄의식을 자극해서 "넌 그런 걸 어떻게 할 생각을 했어!"라면서 평소 당연하게 하던 일에 죄의식을 느끼게 한다.
단정적이고 확고하게 말을 하기 때문에 그게 피해자의 기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어도 판단의 기준점을 흔들기에는 충분하다. 또 겉모습은 싹싹하고 호감 형에 문제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처음에 피해자는 그를 믿고 따르게 되기 쉽다. 그러면서 평소 피해자가 갖고 있는 모든 기준점이 하나가 붕괴되면서 모두 흔들리게 된다.
이때의 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다. 내적 기준과 현실에 대한 객관적 시각이 심리 조종자의 논리와 거짓된 세계관으로 대체되어 버린다. 처음에는 '정말?' '그럴 리가' 하다가 그럴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하고, 그리고 이는 자신의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달된다. "날 떠나면 죽일 거야" 하고 협박을 하는 그의 몸짓, 표정, 시선 등은 피해자에게 충분히 위협적이고 두려움을 준다.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수 배의 보복이 돌아온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밀어붙여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한다. 특히 우리가 갖고 있는 기본적 세 가지 두려움을 자극하는데 심리 조종자들이 능한데 그것은 1) 이기적인 사람,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 2)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줄까봐 걱정하는 것 3) 사랑받지 못하고 거절당할까 안절부절하는 것 등의 세 가지 두려움이다.
이 세 가지를 교묘하게 흔들어 내서 삶이 두려움으로 충만하게 만든다. 그러고 나서 극단적인 위기와 어두운 미래를 강조하면서 자기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피해자가 도리어 가해자가 되게 만들고, 모든 책임을 다 지게 만드는 기묘한 재주를 부린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심리 조종자는 0을 책임지고 피해자가 100을 책임질 뿐 아니라, 모든 죄의식도 다 떠안게 만든다.
그들은 피해자를 너무나 힘들게 만들어놓고도 마치 자기가 더 받아낼 빚이 있다는 듯이 당당하게 행동한다. 이 단계가 넘어가고 나면 피해자의 삶은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한다. 먼저 심리 조종자는 피해자의 주변 관계를 잘라내서 고립시키고 삶의 조건을 악화시켜서 조종자에게 의지해서 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육체적 정신적 학대가 일어나는데, 직장의 경우 비상식적 업무와 모멸감을 주는 업무를 시키고는 곧 그 명령을 취소해버리고 정반대의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기한 내에 일을 시키고 다음날부터 들들 볶거나, '오류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을 시키고 오류가 일어나면 무능함에 대해 집중적으로 몰아붙여 정신적인 한계에 빠지게 해서 붕괴되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일은 회사뿐 아니라 가족 내에서 부모 자식 사이, 부부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친구 사이에서도 관찰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런 일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평소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정반대의 사람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피해자의 공통적 특징은 에너지가 넘치고 쾌활하고 낙관적이다. 왜냐하면 심리 조종자들은 이런 이들을 선택해 그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려 한다. 에너지가 없는 사람은 심리 조종자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전리품이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심하다 싶게 친절하고 호의적인 사람이다. 이타적, 관대하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안 좋은 일도 쉽게 잊고 원한도 품지 않는다. 누가 조금만 잘해줘도 쉽게 감동하고 고마워한다. 지나칠 정도로 착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쉽게 용서한다. 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제일 중요한 핵심은 사랑받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남달리 크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존중받고 싶은 욕구보다 클 때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존엄성'이 훼손되었다고 느낄 때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당신을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 조종자의 먹잇감이 되어 삶의 피폐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자세를 취하도록 저자는 조언을 하고 있다.
먼저 매사에 정확하고 분명하게 얘기해야 하며, 특히 용납해서는 안 되는 선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해와 타해의 위험, 위협을 가하는 것, 존중과 경외심이 결여되어 있는 태도 등이다. 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에 더 큰 무게중심을 둬야만 하고 결국 결정은 저쪽이 아닌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그래야 두려움이 자신감이 될 수 있고, 기만이나 과장없이 상대를 대할 수 있다.
그가 전형적으로 밀어붙이는 독촉과 압박에 대해서는 답변을 주기 전에 스물다섯 시간 혼자 생각하고, 결정을 바꿀 여섯 시간을 더 두는 것이 좋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즉, 이를 통해 페이스를 심리 조종자가 아닌 자기 페이스로 간다. 결정도 내가 하고, 판단도 내가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거절을 할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과 평소의 연습이 필요하다.
거절에 대한 불필요한 책임의식도 가질 필요 없고, 내가 정보를 쥔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심리 조종자의 접근을 막을 수 있고, 또 만에 하나 내가 그의 손아귀 안에 있다하더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심리 조종자의 레이더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이든 그가 챙길 영양가가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 모르나, 절대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심리 조종자란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다는 인간관계의 최소한의 상호주의적 원칙을 저버리고 오직 이기는 게임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고, 그게 통하는 사람과만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과거 공동체 생활을 할 때에는 그런 일방적 관계를 맺는 사람은 집단의 힘으로 퇴출되었지만 현대 사회의 피상적 관계 속에서는 충분히 그들이 포식자로 활동할 수 있다.
그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 어떤 이에게 피해를 줬는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파악을 하기에는 도시 공동체는 너무나 크고 파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도시적 생활은 심리 조종자에게는 좋은 서식 환경이 아닐 수 없고, 행여 그들의 마수에 잡혀 마음이 피폐해지지 않기 위한 방편을 마련하는 데에 이 책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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