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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당한 여성의 발칙한 반란 "맞짱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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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당한 여성의 발칙한 반란 "맞짱 뜨자!"

[프레시안 books] 저메인 그리어의 <여성, 거세당하다>

페미니즘 지식의 쾌락

겸손도 두려움에서도 아니다. 그냥, 나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뭐하는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런데도 페미니즘 책 읽기를 계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쾌락 때문이다. 정의감, 타인을 돕는다, 세상을 바꾼다…. 만일 이런 일이 있다면, 이는 내 쾌락의 우연한 그리고 매운 드문 결과일 것이다.

어쨌든, 단언하건대, 여성주의만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도 '여성스러운' 행복감(joy)이 아니라 '남성적인' 쾌감(pleasure)이다. 지적인 쾌락, 깨닫는 쾌락('열반'!), 분노와 분열과 고통이 주는 쾌락, '나쁜 사람'을 골탕 먹이는 쾌락,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비웃으며 무시할 수 있는 힘의 느낌…. 이런 쾌락은 돈, 명예, 맛있는 음식, 심지어 건강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대신 약간의 외로움, 우울함, 무시와 모욕당함, 스트레스 등은 감수해야 하는데, 이런 대우는 여성주의와 무관하게 누구나 겪는 문제 아니겠는가.

물론,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이고 세상엔 건전한 페미니스트가 훨씬 많다. 그리고 이는 내가 생각해도 '바람직한 삶'은 아니다(지금 내 건강은 엉망이다). 하지만, '바람직'의 의미가 다양해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식의 결투

▲ <여성, 거세당하다>(저메인 그리어 지음, 이미선 옮김, 텍스트 펴냄) ⓒ텍스트
"즐겁지 않은 투쟁은 잘못된 투쟁이다"(22쪽)로 시작해서 "여성들이 택한 길이 옳은지에 대한 가장 확실한 지침은 투쟁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느냐이다"(427쪽)로 마무리되는 <여성, 거세당하다>(저메인 그리어 지음, 이미선 옮김, 텍스트 펴냄)의 서술 관점은 다소 독특하다.

이 책은 남성 문화를 비판하는 관점보다 그들의 역사를 상대화하면서, 여성의 성적 표현과 능력을 주장하는데 더 강조점이 있다. 성차별에 대한 분석 초점이 현실 고발의 느낌을 주기보다는 "(남녀 모두에게) 니들 지금 뭐하니?" 그런 어조다. 의기양양하고 대담하다. 확고하면서도 깊은 특정한 관점에서만 가능한 태도다. 나는 "의기양양하다"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고리타분한 여성학 책을 상상하지 말라는 것이다(하긴, 이 표현도 통념일 뿐 고리타분한 여성학 책이 있기는 하겠지만, 나는 읽은 적은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은 대단히 지적이고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서구 인문학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다(그렇지 않더라도 옮긴이 주가 성실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러울 만큼 참고 문헌(sub text)이 풍요롭다.

이 책은 세계관의 배틀(battle)이자 지식의 결투장이다. 문장 자체가, '멍청하지만 탐욕스럽고 고상한 척 하면서 부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KO승을 날리는 듯한 역동적인 리듬감이 있다(옮긴이의 능력 덕분이기도 하다). UFC(격투기 경기)를 좋아하는 나는 신났다. 환호와 적대는 늘 동반자여서,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는지, 저자는 출판 이후 "제 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총을 맞을 가능성이 항상 있었다"(434쪽)고 한다.

여자 내시?

원제 "Female Eunuch"을 직역하면 여자 환관(宦官), 여성 내시(內侍)다. 아마도 가장 쉽게 연상되는 의문은 내시는 남성 '직종'이 아닌가?, ('페니스 없는') 여자가 어떻게 거세를 당한단 말인가? 등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의문은 왕이 남자일 때, 리비도는 남성에게만 있고 여성은 그 리비도에 반응하기만 하는 존재하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한 의문이다. 만일, 인류 역사상 왕이 대대로 여성이었고, 왕의 성욕이 왕성하고 왕의 가계도를 명확히 하려면 왕 주변의 여성들은 환관이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책은 서구 페미니즘 사조 중에서 1960~70년대를 풍미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으로 분류된다. 얼마 전 타계한 슐라미스 화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과 함께 급진주의 페미니즘 시대의 전성기를 형성했다. 세 권 모두 같은 해(1970년)에 출판되었다(이 책의 번역본은 1991년 '21세기 기념판').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의 핵심 구조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의 통제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이 여성의 몸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들에 의하면, 기존 과학은 가부장제에 오염되었으므로 진정한 과학이 아님), 여성에 대한 폭력, 성, 사랑, 외모, 결혼 제도, 심리 등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렇기도 하다.

'교사'와 '학생'이 같이 출발하는 책

하지만 이렇게만 소개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은 좋은 의미에서 교과서적이다. 대안적 교과서라고 할까? 24시간 일상을 지배하는 우리의 생각. 이 책은 우리가 성별, 남자, 여자, 인간, 자연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전복, 정확히는, '바로 잡는다'.

여성학 강사라면 교재로 딱 쓰기 좋다. 이 말은 오해의 여지가 넓은데, 강사는 다 알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성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컴퓨터 사용법과 같은 수준의 지식이다. 여성주의 의식은 마치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법처럼, '유치원생'이나 '대학원생'이나 사용법을 익히는데 학력의 변수가 없다(적다).

이 책은 매우 지적인 책이지만 여성주의자도 '일반인'도 '마초'도, 똑같이 어려울 수 있고 똑같이 쉬울 수 있다. 나는 스피박이나 버틀러 같은 '어려운' 여성주의 이론을 '사회 지도층' 인사나 지식인보다, 평범한 여성들이 몇 배 더 잘 이해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해왔다. 여성주의는 지식의 논제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이해와 흥미 여부는 지식이나 학력, 심지어 여성주의 의식이 아니라 '사실'과 통념 간의 투쟁에 대한, 읽는 이의 자세에 달려있다. 통념(남성/지배 이데올로기)을 지식, 더 나아가 사상이라고 생각으로 이들에게 이 책은 "말세의 징조"요, "황당무계", "미친 무식"한 책일 수 있다(얼마 전 내가 쓴 글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내 요지는, 여성학 강사나 그 강의를 듣는 사람이나 모두 이 책의 내용과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20자평 식으로 말하자면, "성별에 대한 가장 뛰어난 안내서" 쯤 되겠다.

뼈, 털, 집착, 욕, 비참함에 대한 이론

이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소제목이 이런 식이다. 1장 몸(성, 뼈, 털…사악한 자궁) 3장 사랑(이상, 집착, 안정…) 4장 미움(증오, 욕, 비참함…). 저자의 자신감을 보라.

"이 책이 조롱이나 비방 당하지 않는다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가장 성공적인 여성 기식자(기생충)들이 이 책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재미없는 책이 될 것이다." (25쪽)

내 서평의 목적은 이 책이 널리 읽혀서, 성별/가족/섹슈얼리티에 대해 한국 사회가 보다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는 내가 글을 쓸 때 덜 검열에 시달리고, 조금은 소통이 되었으면 하고, 말이 되는 비판을 받았으면 좋겠다. 책 소개를 인용으로 대신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내 의견이다. 흥미롭기를.

"성이 본질적으로 상반된 대립 관계라는 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 동물계와 식물계는 두 성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 48개의 염색체 중 단 하나만 다른 데도, 우리는 48개 전체가 다른 것처럼 행동한다." (29~34쪽, 인간은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양성 평등 구호는 자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뼈를 딱딱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35쪽, 그럼, 아니란 말인가?)

"젖가슴은 크지만 다른 곳은 살이 안 찌는 여성은 내분비선 교란 때문이다." (40쪽, D컵 여성들에게 건강 진단을 권한다.)

"털이 남성성의 지표라고? 그런데 남성성이 가장 강한 남자로 간주되는 흑인의 몸에는 털이 거의 없다. (…) 여성이 옷을 더 많이 벗기 위해서는 털을 더 많이 깎아야 한다." (44쪽, 맞다, 겨울은 여성에게 해방의 계절이다.)

"자기 여자를 바라보며, '당신이 없으면 난 어떻게 하지?'라고 말하는 남자는 이미 망가진 것이다." (204쪽, 어떡하지?)

"서로 소통이 멈춘 누군가와 가까이 있을 때, 인간은 가장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운 사람이 느끼는 고독감은 부부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립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불신과 이기주의에서 때문이다. (…) 결혼 계약이 정서적인 안정을 제공해준다고? 안정은 개인만이 이루는 것이다. 안정에 대한 욕구는 성격의 가장 취약한 부분과 두려움, 무능함, 피로, 초조 때문이다." (313~315쪽, 이 가을 외로운 사람은 모두 이 책을 읽으세요.)

"가정주부의 일에는 결과가 없다. 그 일은 그저 반복될 뿐이다." (359쪽, 이 문장은 논쟁적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책이 나온 후 지난 42여 년 동안 페미니즘 이론은 자본주의'보다' 더 발전했다.)

"성적인 매력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여성들은 바보다. 그런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노예 상태다." (425쪽,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남자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매력은 분명 '자원'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바보'스럽기보다 불가능에 가깝다. 성공 확률이 적다는 것이다. 유효 기간은 짧고, 수요와 공급은 심히 불균형하며, 끝없이 대체재가 등장하며, 산업 재해의 위험이 크고, 투자 비용에 비해 회수의 전망은 불투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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