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책의 영어판 표지가 인상적이다. 표지에는 그림 하나가 크게 실려 있다. 북구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어두운 풍광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집을 짓는 장면이다. 아직 미완성인 복층 건물 맨 위에는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화풍은 양차 대전 사이의 독일 표현주의를 연상시키는데, 누구의 그림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은 것인지 사뭇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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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날개의 소개를 보니, 레이다르 에울리라는 사람의 1935년도 작품이다. 나중에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본 바로는 에울리는 20세기 초반에 주로 활동한 노르웨이 화가다. 노르웨이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인 듯한데, 흥미로운 것은 사회주의자로서 노동 운동과 관련된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력은 화면의 붉은 깃발이 분명한 정치적 의미('좌파')를 지닌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 적기가 휘날리는 이 집의 정체는 무엇일까? 책날개는 화제(畵題)가 '민중의 집의 건설'이라고 알려준다. '민중의 집'? 우리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이름이다. 도대체 어떤 용도의 건물이며, 에울리는 왜 이 건물의 공사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일까? 어쩌면 그냥 비유가 아닐까도 생각된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집짓기로 형상화한 상징화(畵). 하지만, 과연 그것뿐일까?
몇 개의 역사적 장면들 그리고 이들을 꿰뚫는 공통의 장소
에울리의 그림에 담긴 '민중의 집'이 무엇인지 답하기 전에 눈을 유럽 대륙의 남쪽으로 한 번 돌려보자. 북구의 잿빛 하늘과 정반대되는 태양의 나라, 이탈리아. 이 나라는 박노자의 책 정도로나 소개된 노르웨이에 비해서는 우리에게 그나마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나라의 현대사를 담은 책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에게 참으로 생소한 공통의 장소가 출몰한다. 지금부터 그 몇 장면을 살펴보자.
장면 1.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1900년>. 20세기 벽두부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의 이탈리아 현대사를 다룬, 감독판이 무려 여섯 시간에 육박하는 '대하' 영화다.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소작농 출신 좌파 투사인 주인공 올모 역할로, 로버트 드니로가 그의 친구이자 지주 역으로 나와 20세기 초 포 강 지역의 계급 투쟁의 축도를 보여준다.
이 영화 중반쯤, 그러니까 연대로 따지면 1920년 무렵에 지주들의 사주를 받은 파시스트 세력이 날뛰는 장면이 나온다. 검은 제복을 차려 입은 파시스트 깡패들은 좌파를 겁주려고 폭행과 방화를 일삼는다. 그런데 영화에서 이들이 제일 먼저 방화하는 건물이 하나 있다. 파시스트 행동대원들은 야밤에 몰래 이 건물에 불을 지른다.
건물 안에는 몇 명의 노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불길에 휩싸여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 밤중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일생을 중노동에 시달리느라 문맹이었던 노인들은 뒤늦게 글 읽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파시스트의 공격 대상 1순위이자 늙은 노동자들이 만학의 수업을 받던 건물―이 장소는 베르톨루치가 이탈리아 현대사를 영화화면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이야깃거리였다.
장면 2. 나중에 이탈리아 공산당의 지도자가 되는 안토니오 그람시는 벽지 사르디니아 섬 출신의 고학생이었다. 그는 순전히 장학금 덕분에 토리노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이 닥치고 그람시 자신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서 더 이상 장학금을 받기 힘들어졌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매학기 시험을 계속 통과해야 했는데, 심신이 쇠약해진 상황에서 그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청년 그람시는 1916년 결국 대학을 아예 때려치우고 만다. 그렇게 해서 시골 출신 고학생은 사고무친의 낯선 도시에서 백수가 되었다. 하지만 학업을 그만 둔 그람시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는 장학금 받으려고 억지로 공부할 필요 없이, 평소 마음이 향했던 좌파 정치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 입에 풀칠하는 게 문제였다. 잠자리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 스물다섯 살의 젊은이는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의식주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나라 대학가 운동권 학생들이 동아리방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젊은 그람시가 의지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던 것이다.
토리노 시내의 3층짜리 건물. 그 곳 지하에는 커다란 식당과 찻집이 있었고, 1층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진료소도 있었다. 사회당 활동가인 그람시는 이 시설들을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위층에는 바로 그람시의 새 일터가 있었다. 사회당 토리노 지부와 사회당 신문 <아반티(전진)>의 피에몬테 지국이 거기 있었다. 이 건물 한 채가 온통 그람시 같은 열혈 청년들의 집이자 일터였고 더 나아가 마음의 고향이었다(<안또니오 그람쉬>(주세페 피오레 지음, 김종법 옮김, 이매진 펴냄), 제12장).
장면 3.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돼 널리 읽힌 <돈 카밀로와 페포네>라는,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과레스키의 연작 소설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몇 차례 영화로까지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맡게 되는 김명곤이 해직 기자 시절에 우리말로 옮겨서 냈었고, 요즘도 서점가에서 다른 이들의 번역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가령, <신부님, 우리 신부님>(김운찬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주인공 돈 카밀로는 위의 영화 <1900년>의 무대이기도 한 포 강 유역 농촌의 가톨릭 신부다. 한때 반파시스트 투쟁에 참여하기도 한 이 왈패 신부는 이제는(1940년대 말~1950년대) 기독교민주당의 열혈 지지자다. 공산당 소속의 선출직 읍장인 또 다른 주인공 페포네는 그의 정적이자 라이벌이고 또 얼마간은 동지이기도 하다(무솔리니 정권에 맞설 때는 함께 싸웠었다). '돈 카밀로와 페포네' 시리즈는 이 두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통해 전후 이탈리아사를 풍자한다.
돈 카밀로와 페포네의 경쟁은 수도 없이 되풀이되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집짓기 싸움이다. 돈 카밀로 신부는 마을에 '민중 휴양소'라는 건물을 지어 읍민들을 불러 모은다. 이 건물에는 공연이나 회의를 할 수 있는 대집회실이 있고, 소규모 도서관도 있으며, 실내 체육관도 갖춰져 있다. 그리고 운동장, 수영장, 어린이 놀이터 등이 딸려 있다.
돈 카밀로 신부가 민중 휴양소를 지은 것은 다 페포네 읍장이 주도하여 신축하고 있던 또 다른 건물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민중 휴양소의 모든 시설들은 사실은 페포네 읍장과 그의 동지들이 만들려고 했던 건물의 그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페포네 무리보다 더 많은 돈을 끌어들여와 먼저 완공하게 된 것이다. 페포네 측이 만들려고 했던 장소는 그만큼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위의 세 장면 모두를 관통하는 공통의 장소가 있다. 영화 <1900년>에서 파시스트들이 가장 증오 혹은 질시했던 곳, 그람시 같은 혁명가에게 가정이나 다름없었던 곳, 페포네 읍장과 그의 동지들이 짓고자 했고 그래서 돈 카밀로 신부가 그 복제품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곳. 그곳이 바로 '민중의 집'이다.
옛날 책에는 '인민회관'으로 번역되기도 한 이 '민중의 집'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노동 운동, 사회주의 운동, 아나키스트 운동의 초기에 중요한 거점이자 토대였다. 벨기에에서 그랬고, 스웨덴에서 그랬으며, 스페인에서도 그러했다. 그리고 노르웨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글 서두에서 소개한 에울리의 그림 속 '민중의 집'은 그 한 사례였다. 즉, 그림 속에서 노동자들이 건설하는 '민중의 집'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분명한 실물이었던 것이다.
민중의 집에 '미친' 사람이 쓴 민중의 집 이야기
▲ <민중의 집>(정경섭 지음, 레디앙 펴냄). ⓒ레디앙 |
민중의 집은 일종의 문화 센터다. 우리가 아는 문화 센터들처럼 그 기본 설비는 집회실, 오락실, 식당, 정원 등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청이나 기업이 만들어준 것이 아니라 민중이 직접 만든 시설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몰라도 한 세기 전 유럽의 민중의 집들은 분명 그랬다.
일단 스스로 이런 시설을 만든 사람들은 이 건물을 통해 자신들이 꿈꾸던 공동체적 삶을 꾸며나갔다. 노동조합원들은 공장에서 일할 때나 간혹 파업 투쟁을 벌일 때만 서로 만난 게 아니라 민중의 집의 식당이나 오락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조합원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족들도 이 장소에 모여 같이 공부하거나 여가 활동을 벌였다. 많은 경우, 소비자 협동조합이나 노동자 진료소 등이 입주해 그야말로 생활 공동체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정치는 기피해야 할 대상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민중의 집을 처음 만들 때부터 당연한 전제였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민중의 집을 만든 이들은 좌파 정당의 당원 혹은 지지자들이거나 노동조합원들이었다. 이들은 공공연한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들이었다.
민중의 집은 좌파 정당의 초기 성장 과정에서 분명 중대한 역할을 했다. 민중의 집을 짓고 거기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만들어간 체험은 노동자들이 노동 '계급'으로 결집하는 데 단단한 이음매 역할을 했다. 또한 노동 운동의 주장이 좁은 의미의 노동자 집단을 넘어 지역 사회의 다양한 대중들로 확산되는 데도 사통팔달의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소개된 유럽 좌파 정당이나 노동 운동의 역사에서는 민중의 집 같은 시도와 경험들이 별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론 논쟁이나 당의 득표율 혹은 노동조합 조직률 추이만을 소개하는 자료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작 일상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였던 게 빠진 셈이었다. 이에 따라 좌파 정치는 계속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될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상상력 역시 제약받게 되었다.
이번에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의 민중의 집 사례에 대한 탐방기 <민중의 집>(레디앙 펴냄)을 낸 정경섭은 이런 '빠진 고리'를 감지한 최초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항상 지역 조직의 일선을 맡아온 정경섭은 유럽 민중의 집에 대한 단편적 소개들을 조합해 이 '빠진 고리'를 우리 운동에 채워 넣는 일에 나섰다. 처음부터 그의 관심은 지극히 실천적이었다. 그는 책을 내기 전에 먼저 마포에 대한민국 민중의 집 제1호부터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정경섭은 민중의 집 역사에 대한 조각 정보를 뛰어넘는 일에 나섰다. 유럽 민중의 집 현장들을 심층 탐방할 계획을 잡은 것이다. 마포 민중의 집을 만들 때에도 그는 좀 돈키호테 같았다. 아니, 성령이 임한 열혈 전도사 같았다. 완전히 민중의 집에 '미쳐' 있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미치도록' 만들었다. 그랬기에 배낭여행 값도 안 되는 예산으로 말도 잘 안 통하는 유럽 세 나라를 향해 떠나는 일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민중의 집>이라는 알찬 경험과 정보의 집약체를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진보 정당의 지역 활동가 이전에 오랫동안 기자이기도 했던 정경섭은 독자가 마치 저자의 여행에 동행하기라도 한 것처럼 생생하게 유럽 민중의 집 견학 체험을 전달한다.
최근 전 세계 협동조합 사례들을 직접 눈으로 보듯 전달해주는 <협동조합, 참 좋다>(푸른지식 펴냄)라는 책에 감탄한 바 있는데, <민중의 집>도 그에 못지않다. 이 책 읽기는 그야말로 독서 '여행' 그것이다.
<민중의 집>이 이렇게 생동감 있게 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저자가 결코 선진 문물 견학단의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정경섭은 이탈리아나 스웨덴의 민중의 집을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할 교과서로 접근하거나 정리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 사례는 우리에게 풍부한 영감을 던져주지만, 결코 한계나 도전 과제가 없지는 않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도 냉정하고 깊이 있게 짚는다.
가령, 이탈리아에서는 '반베를루스코니 연합' 문제로 인한 좌파 정당의 분열이 각지의 민중의 집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민중의 집 중 많은 수가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노화와 함께 예전의 운동적 성격을 잃어버린 상태다. 마침 총선 시기에 스웨덴에 방문하게 된 저자는 좌파의 총선 패배와 민중의 집의 동맥 경화 상태를 오버랩시켜 스웨덴 복지 국가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무거운 고민거리를 던진다.
특히 이탈리아의 산업 도시 토리노 남동쪽에 있다는 작은 도시 아스티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도시에서는 100여 명의 젊은이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새롭게 민중의 집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의 모습은 100년 전 그들의 조상의 노력의 반복이기도 하고, 이제 막 민중의 집을 시도하기 시작한 우리와 동시대의 분투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1970년대에는 민중의 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 근처에 50년 된 민중의 집이 있는데 지금은 그냥 식당이다. 우리는 과거의 민중의 집을 복원하고 싶다. 우리는 새로운 지역 정치 활동으로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다시 정치 그 자체, 그리고 좌파정당을 신뢰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 지역 운동 네트워크를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치 상황이 이런 것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민중의 집>, 151쪽)
좌파 정당이 제대로 미쳐야 할 것
이렇게 보면, 민중의 집은 단순히 우리 운동의 빈 구석을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한때 민중의 집 등을 통해 민중의 일상생활에 깊게 뿌리 내렸던 유럽의 노동 운동도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에게도 어느덧 채워 넣어야 빈 구석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각국의 좌파가 신자유주의 물결에 계속 밀려왔던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지구화, 금융화 바람이 생활 세계를 장악해갈 때, 좌파는 이에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대중 운동의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 운동을 풀뿌리 대중의 생활 세계와 (재)접속해야 한다. 한 세기 전 그 접속의 시도는 민중의 집으로 나타났고, 이 경험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훌륭한 참고가 되어준다. 생태사회주의자 앙드레 고르는 이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기한 바 있다.
"노동조합은 사람들이 밤늦게 찾아갈 수 있는 '개방 센터'를 만들어서 모임 장소를 제공하고, 서비스와 상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민중 대학'이나 영국의 '지역 사회 센터' 혹은 덴마크의 '생산 학교' 등을 본떠서 노동자들과 실업자들―그리고 그 가족들―그리고 퇴직자들, 연금 수혜자들, 사춘기 연령의 젊은 부모들을 위해서 교육 과정과 주제 토론회, 영화 클럽, 수리점 등등을 제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보수를 받는 노동 이외에는 오직 소극성과 지루함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실제적인 방식으로 반박해야 할 것이다.
또 노동조합은 상업적 소비문화와 오락에 대해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즉, 노동조합은 애초에 자신들이 발생하게 되었던 협동조합과 결사의 전통과 노동자 계급 문화 서클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고, 또 자발적인 조직 활동과 협동적 서비스, 그리고 그들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수행할 공통적인 이해가 걸린 작업 계획에 대해서 시민들이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광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 사회에서 '문화 사회'로의 이행", <후기 자본주의와 사회 운동의 전망>(의암출판 펴냄), 385~386쪽)
수십 년 묵은 좌파 정당과 노동 운동의 관성을 타파하자면, 우리 모두 얼마간 '미쳐야' 한다. 운동의 토대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허황된 의석 수 따위에 '미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미쳐야' 한다. 민중의 집에 '미친' 정경섭의 그 열정이 <민중의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염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 나는 일부러 <민중의 집>의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지는 않았다. 독자들이 직접 이 책의 흥미로운 대목들과 만났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이 널리 읽히고 이 책을 읽은 누구나 새로운 실천의 의욕을 다졌으면 좋겠다.
사회민주주의자도 읽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도 읽고, 아나키스트도 읽었으면 좋겠다. 사회민주주의자라면 복지 국가의 참된 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라면 노동 계급의 혁명적 문화를 꽃피울 길을 찾게 될 것이며, 아나키스트라면 지금 여기에 공동체적 삶을 구현할 의지를 다지게 될 것이다. 모두들 <민중의 집>을 읽고, 민중의 집을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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