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어떤 이는 큰 병을 앓고 나니 입에 도는 물 한 모금이 행복하다고 한다. 자신을 희생하고 주말마다 봉사 나가는 이들도 뭔가 변화된 인생을 주도하며 살아간다. 짧은 거리를 매일 수십 번 도는 마을버스 운전기사도 상냥하되 반복적인 인사는 하지 않는다. 그 역시 행복을 나눌 줄 안다. 우리는 행복의 정체가 확실히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처럼 찰나의 행복을 두고 '가치'를 생각할 줄 안다. 그래서 행복이 더 어렵고 더욱 귀한 것인지 모르겠다.
읽고 싶은 책을 찾다 우연히 서점 '정치'란에서 만난 <새로운 100년>(오마이북 펴냄)은 '행복'을 말하는 책이었다. 그가 찾아낸 행복은 추상적인 행복이 아닌, 역사의 가치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 원대한 행복이었다. 현재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대한민국 청소년들과 노인, 40~50대 여성, 정치인, 직장인, 교육인 등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는 '행복의 메시지'. 법륜 스님은 그것이 '통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너나없이 '무한 경쟁'이라는 말이 요즘 우리 사회를 도배하고 있는 처지에 스님의 '통일 행복론'은 너무 이상적인 것이 아닐까? 그렇다, 이 책의 주제는 그래서 처음부터 막연한 행복을 말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현실적인' 통일 문제에 초점 맞춰 있다. 행복은 통일의 지향점이자 다가올 미래의 창이다.
얼핏 보기에 법륜 스님은 통일을 말하지 않는 것 같다. 김정은을 두고 사라져야 할 독재자라 비난하지 않는다. 남한의 보수 세력도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규탄하지 않는다. 심지어 권위주의를 없애고자 노력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추종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 세력을 껴안지 못함으로써 북한의 인권 문제 주도권을 넘겨주었다며 그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게다가 미군이 되돌려주겠다는 전시 작전 통제권도 3년씩이나 연기시킨 보수파일지라도 그들과 화합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인권을 빼앗고 북한 주민의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간 북한 권력 체계의 특수성을 인정해주고 통일되면 지배층의 신분까지도 보장해줘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것은 통일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과거' 청산적인 통일이 아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통일을 위한' 새로운 통합과 포용력이다. 미래적인 통일이 우리가 밥도 먹고 더 좋은 밥도 먹을 수 있는 길이라고 그는 자신한다.
"자신감 속에서 북한을 포용해야 합니다. 여기서 참고할 만한 게 중국 정부의 통일 정책이죠. 중국이 대만이나 홍콩에 대해서 그렇게 포용적일 수 있는 것은 자신감 때문이겠죠. 대만과 홍콩에 대해 통일의 울타리만 크게 쳐놓고 상당한 자율성을 주는 대륙적인 포용력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206쪽)
법륜 스님은 풍전등화 같던 신라가 가야와 합의하여 통합한 것도 거국적인 포용력 때문이었다고 고찰한다(116쪽). 그때 가야의 왕족과 귀족은 신라의 왕족과 귀족이 되었고 가야왕의 후손이었던 김유신은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순교 과정이 있었지만, 신라는 가야의 불교도 받아들이고 부흥시켰다. 신라가 발휘했던 큰 포용력을 우리도 발휘해서 중국을 참고삼아 자주적으로 통일할 수 있다고 법륜 스님은 말한다. 그래서 북한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다방면의 포용 정책을 펴고, 그들이 "못 뛰쳐나가도록 크게 울타리를 쳐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야한다"고 그는 강조한다(105쪽).
역사를 품어야 행복의 길이 열린다
▲ <새로운 100년>(법륜·오연호 지음, 오마이북 펴냄). ⓒ오마이북 |
그는 "민족 통합을 위한 대 포용력"(205쪽)이 '정치'를 통해서 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란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미래를 대비하여 국민을 이롭게, 즉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나 정치인을 뽑는 시민,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적 소명의식이다.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 그는 '한민족의 뿌리 짚기'를 강조한다. 장구한 우리 역사 속에서 민족적 자아와 신념을 회복할 때, 비로소 민족 통합뿐 아니라 국제 정세를 읽고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법륜 스님은 말한다.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시대적 포부!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벌써 18년째 매년 중국에서 고구려, 발해 역사 유적지를 찾아 답사했다는 그는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한민족의 뿌리가 4000년, 5000년을 넘어 청동기 문명을 소유했던 '홍산(紅山)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 청동기 문명이 출현한 시점이 7000년 전쯤이면, 우리 민족의 기원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홍산 문명은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로선 북한과 중국에 막혀 그 연구도 어렵지만, 인류 역사서에 새로운 등장을 예고하는 문명이다.
"중국 요하강 상류에 있는 홍산 지역에서 발견된 문명인데 (…) 황하 문명보다 1000년이 앞선 문명이 발견됐죠. 지금부터 5000, 6000년 전, 더 거슬러 올라가 7000년 전 것까지 있어요. (…) 중국에서는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대혼란에 빠진 거예요. 그러다가 중국학계에서는 황하 문명과 홍산 문명(요하 문명), 이 두 개가 중국 문명의 시원이라고 (뒤늦게) 정리를 하고 있어요. 이 문명의 진짜 정체는 명백하게 환웅의 배달 나라와 단군의 조선 나라 문명입니다. 우선 시기적으로 그 유물의 추정 연대와 두 나라의 형성기가 동일합니다." (106쪽)
법륜 스님은 홍산 문명이 단군 신화의 배경이 되며, 고구려가 그 계승을 잇고 있다고 확신한다. 배달 나라를 건국한 환웅이 환인의 후예로서 한나라(여기에서의 '한'은 순 우리말로 '크다'의 뜻, 99쪽)에서 3000의 무리와 함께 가져온 세 가지 징표가 "청동거울, 청동검, 청동방울"이라고 한다(100쪽). 또한 "성곽을 쌓은 양식과 무덤 모양, 벽화 등이 고구려의 것과 거의 유사"하고, 새로운 종교가 들어와도 잘 바뀌지 않는 매장 문화가 아직 유물로 남아있다고 전한다(99쪽, 107쪽).
이 책을 통해서 배달민족의 시원을 확인해보는 작업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한 장, 한 장 책을 넘길 때마다 민족적 자긍심과 자각을 일깨운다. 그리고 그 마음이 통일로 향하는 '정치다운 정치'를 꿈꾸게 한다. 꼭 통일에 관심이 없더라도 수수께끼 같은 신화이야기와 고대사에 관심 있다면, 이 책에 수록된 역사 대목(4장과 5장)을 추천한다. 특히 정치가 마냥 골칫거리로 여겨진다면, <새로운 100년>은 그에 사려 깊고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통일 정책이 왜 북한 정부와 티격태격하는 것인지, 북한 사회주의는 러시아, 중국 사회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우리나라에서 보수니, 진보니 하고 싸우는 진부한 이야기들마저도 역사적으로 시원스럽게 정리되었다. 해방 전후사에 얽힌 긴 정치사도 독자는 한 번의 호흡으로 아주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읽는 동안 정치에 대한 살아있는 꿈을 꾸게 한다. 희망을 갖게 한다.
남북 통일의 시너지 효과는 '1+1=2'가 아니다
<새로운 100년>은 다만 하나의 대담집이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그런데도 법륜 스님의 말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넓은 대양을 알아가는 것만큼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알고 있는 북한의 곤란은 핵 문제, 인권 문제, 식량·배급 문제, 연료·환경 문제 등에 국한되어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하지만 생존 문제의 절실함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그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통일에 접근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식수 오염입니다. 전기가 없으니까 상수도가 제대로 가동이 안 되어 깨끗한 물을 못 먹죠. 도시조차도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오수와 우수가 구분이 안 됩니다. 그래서 상수도와 하수도 시설 개선이 필요합니다." (204쪽)
법륜 스님은 무작정 평화 통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단계적인 통일 정책을 펴서 북한 주민 스스로가 "'우리끼리 따로 살지 말고 남한과 합하는 게 좋겠다'는 선택을 하도록" 적극 유도하고자 한다. 남한이 판을 키우면 경제적 양극화도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266쪽) 북한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며 전쟁을 방지하고, 나아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열등의식까지도 없앨 수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그의 시대적 조망은 통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통일된 한국을 이루고 종국에는 우리가 동북아의 주체가 되는 것으로 방향 지어져 있다.
"저는 통일이 우리 경제를 한 번 더 성장시켜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통일이 된다면 지금의 한계(예컨대 일자리·고령화·저출산·환경·영농·어업·에너지 송달·국력·국방비·창의성·경제 효과 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통일은 우리 민족이 동북아 지역공동체를 중심적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줄 겁니다." (243쪽)
그가 말하는 "새로운 시대"의 종착역은 우리 스스로 동북아 지역에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두 단계로, 첫째 우리가 통일을 하고 7000만의 인구와 21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급 규모의 국가로 도약하는 것이다(248쪽). 북한 지역의 개발로 한반도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국가 위상을 세계 주요 8개국(G8) 정도로 올린 다음, 둘째로 중화 경제권에 흡수되지 않기 위해 통일된 한국과 일본이 경제 공동체를 만드는 것. 중국, 러시아의 연해주를 연결해서 유럽연합에 버금가는 경제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249쪽).
고구려·발해를 꿈꾸는 자, 통일을 꿈꾸자
그가 말한 대로 "통일 한국이 만약 일본, 동북 3성, 연해주,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동북아 지역의 공동체를 주도한다면, 그것은 곧 고구려의 옛 영광을 되찾는 것이나 다름없다"(114쪽). 그러나 이는 거대한 투자이고 원대한 꿈이라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법륜 스님은 우리가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해 이 꿈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시대적 흐름이 우리 통일의 염원에 부응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계주도권이 현재 중국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는 해라 간섭하는 힘이 약해지고 있고, 중국은 뜨는 해지만 아직 간섭할 만한 정도는 아닙니다. 이 세력 변화기에 통일의 기회가 왔다는 것이죠." (87쪽)
통일은 100년을 내다보는 중심축이다. 이것은 "발해가 멸망한 기점으로 거의 1000년 만에" 우리에게 다시 온 기회다(74쪽). 지금은 "중국이 부상하고 있되 아직 미국이 물러난 것도 아닌, 중국의 패권이 크게 부상하기 전"에 해당한다(87쪽). 그래서 법륜 스님은 '이번에 누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양극화를 고심하며 통일문제를 추진해 나가겠느냐'가 이번 선거의 관건이라고 한다(89쪽).
<새로운 100년>은 우리 사회의 시대적 바람을 역사 속에서 읽어내고 있다. 낡은 것을 개선하기에 치중하기보다는 새로운 비전 정립에 승부를 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예리한 시대감각과 미래에 대한 민족적 포부 그리고 사회문제를 꿰뚫는 그의 뛰어난 통찰력을 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현실 정치로 이어지는 민족의 정체성 회복은 한민족의 자부심과 소망을 되찾아줄 만하다. 가슴 뜨거워지는 꿈 하나, 뭉클한 미래를 향한 통일의 단초가 되어준다. <새로운 100년>은 개인 한 사람을 위한 꿈이 아닌, 인간적이면서도 원대한 '우리의' 행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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