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밤이었다. 전 날 내린 눈이 아직 소복하게 쌓여 있었고 달도 없는 밤하늘의 별들은 미동도 없이 빛을 내리꽂는 정말 별보기 좋은 날이었다. 내가 안내하는 별자리를 따라서 고개를 젖혀 하늘 이곳저곳을 보던 사람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눈 위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나도 혼자 서있기 뻘쭘해서 같이 누워서 별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가 카시오페이아자리에 이르렀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카시오페이아자리 근처에서 1572년에 폭발한 초신성 이야기가 나왔다.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는 운이 좋게도 일생 동안 일식, 초신성 폭발, 혜성 같은 가장 극적인 천문 현상과 직접 마주쳤었다.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것이 바로 나중에 그의 이름이 붙은 초신성 SN 1572를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쓴 책, <신성에 관하여>였다.
그 날 나는 티코 브라헤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다.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단편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한 이야기들의 나열이다.
- 티코 브라헤는 돈이 많은 덴마크 귀족 출신이었다. 성격이 더러웠다.
- 왕과도 친하게 지내서 자신만의 천문대를 벤 섬에 지어서 관측을 했다.
- 유럽 여러 곳을 떠돌면서 천문대를 만들어서 관측을 했다.
- 눈이 너무 좋아서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별들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 자신의 관측 결과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의 태양계 모형을 지지하지 않아서 자신 만의 모형을 만들었다.
- 여자 문제로 결투를 하다가 코가 날아가서 금과 은으로 만든 코 덮개를 하고 살았다. 훗날 티코 브라헤가 진짜 가짜 코를 붙이고 살았는지 알고 싶었던 실증주의자들이 그의 묘를 파헤쳐서 확인했다.
- 한 파티에서 오줌을 참았다가 독이 번져서 죽었다.
- 자신의 조수였던 케플러를 미워해서 관측 자료를 잘 내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 <티코 브라헤>(윌리엄 보어스트 지음, 임진용 옮김, 대명 펴냄). ⓒ대명 |
그 날 사람들은 내가 들려주는 티코 브라헤에 관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재미있어 했었지만 이제 <티코 브라헤>를 읽고 나니 새삼 낯이 뜨거워진다. 그래도 이제는 좀 더 정확하고 균형감 있게 티코 브라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 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 책에는 내가 알고 있던 에피소드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 오해하고 있었거나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직접적인 이야기들과 새로운 에피소드가 넘쳐난다. 특히 세상에 회자되고 있는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이야기들의 정확한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티코 브라헤의 코 이야기에 대해서는 '그 날 사건을 목격했던 모임 참석자의 후손이자 티코의 첫 번째 전기 작가의 진술'을 기록해 두고 있다.
"티코는 갑자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러 동료들 중 파르스베르크와 언쟁을 시작했는데, 채 얼마가 되지도 않아 그 둘은 흥분한 채 덴마크 말로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서로 검투를 신청하게 되었고, 곧장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 당시 나의 할머니는 그들과 같은 방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덴마크 말도 알고 있었다. 나의 할머니는 테이블의 다른 친구들에게 그 둘 사이에 실제로 결투가 벌어지지 않도록 곧장 뒤따라가서 불행한 사건을 말려 달라고 요청했다. 그 둘이 교회 마당으로 나올 때까지도 다른 사람들은 시끌벅적한 파티를 이어갔는데, 결국 티코는 자신의 코를 베어가는 칼끝의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오줌 사건에 대해서 케플러가 티코 브라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도 적혀 있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오줌을 참으며 자리를 지켰다. 비록 그가 너무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셔 방광이 곧 터질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긴 했지만, 자신의 건강 상태가 어떤가에 대한 관심보다 오히려 식사 예절을 어김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결례를 어떻게든 피하고자 했다."
<티코 브라헤>는 140쪽 정도 되는 비교적 짧은 책이지만, 티코 브라헤에 대한 유명한 에피소드들 뿐 아니라 그의 삶을 관통하는 화두를 잘 짚어내고 있다. 바로 천문학에 대한 열정이었다. 티코 브라헤는 그가 천문학 공부를 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가족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천문학에의 열정이 그를 방랑자로 만들었다.
"나는 조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과분할 만큼 많은 것을 받았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가 공부하는 것에 너무나도 기뻐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덴마크에 머무를 수가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던 그가 덴마크로 돌아온 것도 덴마크의 왕 프레데릭 2세가 벤 섬에 그만의 천문대를 지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나라에 천문대를 짓기 위한 준비가 거의 마무리 지어졌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그는 더 좋은 천문대를 건설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 프레데릭 2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덴마크에 정착했다.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늘 천문 관측을 위한 조건이었다. 티코 브라헤는 벤 섬의 영주가 되었고 거기에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우라니보르크 천문대를 지었다. 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었고 최고의 천문 관측 기기들이 만들어졌다. 당연히 최고 수준의 관측 자료들이 축적되었다.
이 책에는 티코 브라헤가 보다 정밀한 관측을 위해서 어떤 기기들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나온다. 관측 발명이 관측 자료의 질을 높이고 이를 통해서 세상과 하늘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법칙이 태동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 책에는 그가 쌍둥이였다는 사실과 평민 여성과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하고 동거를 했었다는 이야기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적혀있다. 천문 관측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으로 뭉친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와는 또 다른 모습의 영주로서의 그의 모습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그가 벤 섬의 우라니보르크 천문대를 포기하고 다시 떠난 것도 천문학 관측을 위해서였다. 프레데릭 2세가 죽고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른 후 티코 브라헤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결국 그는 가족들과 조수들과 일부 관측 기기를 이끌고 '불명예를 거부한 망명'을 선택하고 자신을 환영하는 로스토크로 떠나고야만다. 그곳에서도 그는 천문학 생각뿐이었다.
"티코가 로스토크에 머무르는 동안 그는 덴마크든 그 어디든 간에 상관없이 자신의 천문학 연구 결과를 출판할 수 있고, 가족의 신변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영지를 찾아 꼭 다시 재건하겠다는 목표를 가슴에 새겼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티코 브라헤의 가장 유능하고 충실한 조수는 케플러가 아니라 롱고몬타누스였다. 케플러는 롱고몬타누스가 덴마크로 돌아간 후에 티코 브라헤에게로 왔다. 그들은 격렬하게 싸우고 화해하기를 거듭하면서 관계를 이어갔다. 티코 브라헤의 관측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혁명에 불을 당긴 것은 케플러였지만, 불씨를 만든 것은 조국을 등지고 방랑한 끝에 축적해 두었던 티코 브라헤의 관측이었다.
<티코 브라헤>는 단편 영화 같은 책이다. 티코 브라헤의 천문학에의 열정이 전편을 흐르는 가운데 여러 사람들과 에피소드들이 물결처럼 흘러지나 간다. 그 모든 것들이 도착한 해안에는 그의 열정이 남긴 모래톱이 무심히 쌓여있었다. <티코 브라헤>는 티코 브라헤의 천문학에의 열정에 대한 균형감 있는 작은 메모 같은 책이다. 유익했다.
하지만 책의 편집은 최악이었다. 촌스러웠고 심지어는 읽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불편하고 어색했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편안한 영화를 본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재판이 나온다면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책 디자인에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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