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건강 공약, 시민이 만들자
대통령 선거 분위기가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다. 여당이 이미 후보를 확정했고, 제1야당은 전국을 돌며 당내 경선을 하는 중이다.
열기는 아직 미지근하다. 국민 경선이라고는 하지만 내부 행사여서 그런가, 크게 다른 것을 내걸고 지지를 호소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중의 관심도 그저 그런 정도다.
본격적으로 선거가 시작되면, 이런 밋밋한 분위기가 좀 달라졌으면 한다. 무엇보다 명확한 미래 비전을 가지고 열띤 경쟁을 하기를 바란다. 현재를 어떻게 보고 미래를 어떻게 그리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열여덟 번째이다. 숫자 만큼인지는 모르나, 대통령 선거로 대변되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 선거가 일부 그런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분명하다.
아직 아쉬운 점도 많다. 그야말로 일회성 행사로 끝난 적이 많고, 5년마다 벌어지는 정치적 이벤트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그렇다. 정치적 이성보다는 분위기와 열정, 또는 일차원적 욕망에 사로잡혔다는 말도 설득력이 있다.
선거는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유력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참여를 토대로 해서 더 좋은 사회의 모습을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제도화한 것이다.
물론 선거는 완전하지 않다. 선거를 명분으로 삼아 비민주적 결정을 정당화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대의제가 생긴 이후 대표성과 민주성을 회의하는 것은 뿌리가 깊다.
그렇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선거를 통한 대의제가 불완전하게나마 참여자의 이성과 욕망을 동시에 반영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제도를 재조정하는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선거가 '약속'을 두고 경쟁하는 제도인 한, 특히 그 어떤 불완전한 선거도 이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흔히 사람으로 의인화된 그 약속에 대중은 미래를 걸기 때문이다.
이런 약속이, 비록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새로운 희망의 원천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때나 마찬가지였다. 차마 선거라고 할 수도 없었던, 예를 들어 체육관에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했을 때조차도 공약 비슷한 것이 있었다.
전두환 정부가 내걸었던 '민주 복지 국가'를 독재 정권의 자기 합리화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환상적인, 그러나 아주 조숙한 이 약속은 나름대로 대중이 바라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물론 이 약속은 스스로조차 기만했지만.
어떤 정부든-봉건 왕조나 극단적인 독재 국가에서도–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피치자에게 (부분적이라도) 의존해야 한다. 눈치를 살펴야 했던 것은 전두환 정권조차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약속인 공약은,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과 해결책 모두를 나타낸다. 더 정확하게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미래의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경쟁하는 대안'이 바로 공약이다. 대통령 선거 공약은 특히 더 그렇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약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예외 없이 하향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권자는 공약의 일방적 소비자 구실 밖에 할 것이 없었고, 그나마 상품의 종류도 많지 않은 가운데서 골라야 했다.
지금까지 공약이 얼마나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는가는 새삼 물을 필요도 없다. 아주 적은 수의 전문가(정치 전문가든 기술 전문가든)가 기획과 제작을 맡아 온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4대강 사업 같은 공약은 아직도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소수 '정예'에 의존하는 이런 방식이 외부의 자극과 요구에 아주 둔감한 것은 아니다. 민의를 반영한다는 이유로 표를 가진 유권자의 입맛에 맞는 약속들은 오히려 더 강조되고 선택되기 마련이다.
이익 집단의 지지를 받는 약속이 빠지지 않는 것은 개방성이 아니라 오히려 폐쇄성을 반영한다. 맥락이 다른 공약이 서로 비슷해지는 것도, 때로는 후보 개인의 경험과 취향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폐쇄적인 선거 공약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다 보니 공약은 어떤 매력이 있는가가 중요할 뿐, 숙의(또는 심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매력 있는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하향식, 소수 정예, 폐쇄성을 특징으로 할 수 밖에 없다.
공약이 사회적 합의를 위한 매개가 되기 위해서는 민주적 참여와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공약도 이런 조건을 갖추지 않는 한, 과거의 특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정상적이라면, 정당이 민주적 참여와 숙의 과정에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의 정당이 이 역할을 하는 것은 아직 어려워 보인다. 그 이유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건강 분야에서는 기성 정치 구조의 취약성이 더 두드러진다. 전문적인 분야라는 인식이 강해서겠지만, 건강이 아예 비정치적인 것으로 '찍혀'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건강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유력한 정당들도, 내놓고 공표한 적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정치 현실은 또 다르다. 많은 이들이 아주 일부 문제만 빼면 대통령 선거에서는 별로 다툴(또는 다룰) 것이 없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다. 그나마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나 비용 정도가 논란이 될까, 나머지는 더욱 하향적이고 기술적 차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비정치적이다 또는 전문적이다 하는 인식은 '오염'된 것이다. 그래도 국민건강보험은 이미 어느 정도 정치적인 것이 되었고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암, 응급 의료, 산업재해, 농민 건강, 장기 요양…. 어느 것 할 것 없이 정치적 의제라는 것을 잊고 있다.
전문성이란 것도 오해받기는 마찬가지다. 기술 영역조차 전문성이 완전히 관철될 수 없는 마당에, 건강과 보건의료가 사회적 현상인 한 가치와 판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리 사회의 대안을 만드는 것을 한계가 뚜렷한 제도 정치에만 (그리고 그 틀 안에 있는 전문가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다. 더구나 정당이 바람직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건강이 비정치화된 마당에는 시민 '권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대중과 시민이 스스로 대안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때 대안을 만드는 과정은 또한 바람직한 정치를 대신하는 것이어야 한다. 제대로 참여와 숙의 과정을 거치는, 그야말로 민주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마침 반갑게도 사회적, 정치적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 민주적 참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운이 높다. 다들 아는 대로 서울시는 이미 여러 형태로 시민의 의견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몇몇 연구소나 언론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보통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한 정책안을 만든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건강 분야의 움직임은 여전히 미미하다. 범위를 넓히더라도, 전반적으로 모색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기본이 되는 원리와 가치부터 형식과 기술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보태고 수준을 높일 것이 많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이전부터 민주적 참여가 새로운 건강 체계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조건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에 연구소를 중심으로 좀 더 체계적으로 참여와 토론, 합의 과정을 거친 공약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물론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민주적 참여와 숙의라는 '과정'에 초점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도가 새로운 건강 거버넌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싶다. 다양한 협력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싶기도 하다.
'시민이 만드는 건강 공약'이라고 이름 붙인 이 시도에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자세한 것은 연구소의 홈 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바로 가기 : 2012 내가 만드는 건강 공약)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