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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의 눈물 "아빠를 죽인 건 쓰나미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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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의 눈물 "아빠를 죽인 건 쓰나미가 아니라…"

[프레시안 books] 모리 겐의 <쓰나미의 아이들>

'기록하기'는 중요한 작업이다. 언제고 기록을 들쳐보며 지나간 일을 되짚을 수 있고, 따라서 기억에만 의존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실수도 방지할 수 있어서다. 역사 기록을 계속해서 들추다 보면,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교훈을 얻기도 한다. 기록이라는 작업만으로도 지난 일이 자연스레 정리되고, 과거에서 미래로 한 발짝 더 나아갈 힘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에 막 뛰어든 어린 아이들에겐 일기 쓰기를 가르치고, 상처가 많은 어른들에겐 '치유의 글쓰기'를 권장하는지도 모른다. '기록'에는 놀라운 힘이 있으니까.

일본의 탐사 보도 전문 기자 모리 겐은 지난해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 사상 초유의 재난을 겪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그가 내린 답 역시 '기록'이었다. 모리 겐은 재해 현장을 6개월간 돌아다니며,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만났다. 특히 그는 생존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끔찍한 재난을 겪으며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린 아이들. 모리 겐은 그 아이들에게 '그날의 기억'을 글로 적어주길 부탁했다. 이렇게 모인 115명 아이들의 작문과 70여 가족의 이야기 중 특히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책 <쓰나미의 아이들>(이선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에 담겨 있다.

▲ <쓰나미의 아이들>(모리 겐 지음, 이선미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쓰나미의 아이들>에서 아이들은 '재난과 재난 이후'를 각자의 방식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육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밀려오는 시커멓고 커다란 쓰나미, 쓰나미를 피해 온 힘을 다해 높은 곳으로 달리던 순간, 바닷물이 무릎까지 차버린 집에서 집기와 식량을 건져냈던 일, 쓰나미로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들에 관한 일화, 불편만큼이나 재미와 교훈도 있었던 대피소 생활 등. 자신들에게 닥친 이 영문을 알 수 없는 재해를 아이들은 자신이 이해한 대로 글로 썼다. 짧고 서투른 글이지만, 슬픔과 분노, 그리고 희망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결코 단순하지 않다. 책에 실린 열 개의 이야기는 모두 한 날 한 순간을 가리키지만, 열 개 모두 각기 다른 이야기다.

초등학교 2학년 스즈키 도모유키는 지진이 일어난 때를 '5교시 국어 시간'이라고 기록했다. 도모유키는 할아버지, 할머니, 형과 대피소에서 머무른 지 3일이 지나서야 엄마를 만났다. 그리고 4월 10일 돌아올 거라 믿었던 도모유키의 아버지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아이는 아빠를 화장하던 날을 떠올리며 "아주 슬펐습니다. 나는 아빠 같은 야구선수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저자는 책에서 아이들에게 끔찍한 경험을 다시 끌어내는 '차마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작문을 부탁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모유키의 보호자가 "이제 아이는 이겨냈다"고 말하듯, 글쓰기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쓰나미의 아이들>을 읽고 있으면, 글을 쓴 아이들이 자신과 가족들이 입은 피해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믿었음이 자연스레 느껴진다. 2011년 3월11일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도모유키의 이야기는 책 <쓰나미의 아이들>이 없었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평생 잊지 말자"는 한 아이의 다짐은 책을 읽는 사람에겐 "우리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아리가 되어 가슴을 울린다.

왜 그들이 피해자인가

<쓰나미의 아이들>은 때로는 재난 영화처럼 전개된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합심해 재난을 극복해나가는 뭉클한 이야기도 있다. 끝끝내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들도 있다. 하지만 감정을 약간 내려놓고 이성을 유지하며 책을 보면, '슬픔'이 아닌 '분노'가 치민다.

초등학교 2학년 나카무라 마이의 아버지 다케노리는 쓰나미로 부모님과 남동생을 모두 잃었다. 간이 안 좋아 휠체어를 타던 아버지와 간질이 악화되어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던 남동생은 자신들보다 몇 배는 빠른 쓰나미를 피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 때만 쓰는 목장갑을 손에 낀 채로 목숨을 잃었다. 책은 다케노리와 그의 가족들 외에도 다른 등장 인물들의 직업과 건강 상태, 소득 수준 등에 대한 정보를 대강이나마 제공하는데, 대체로 별로 좋은 수준의 조건을 가지지 못한 경우들이다.

재난 영화의 주인공들은 보통 젊고, 강하며, 막강한 재난 앞에서도 주인공들은 살 길을 기어코 찾아낸다. '인간 승리'를 보여줘야 영화가 성립해서겠지만, 어쨌든 현실에서는 그런 인간 승리보다는 나약한 인간들의 실패가 더 많은 법이다. 대지진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일본 북동쪽 해안가는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버린 노인들의 동네가 많다. 쓰나미와 같은 자연 재해가 벌어질 때 '휠체어를 탄 노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걸까?

도호쿠(東北) 지방 평균 임금은 지진 이전에도 전국 최저 수준이었다. 그런데 재난 이후 인구가 급감하고, 방사능 위험으로 지역 생산물 판매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 가운데는 유일한 소득원이 최악의 피해를 안겨준 핵발전소인 곳도 있다. 이제 이 지역들은 재난 이후, 돌이킬 수 없는 '게토'가 되는 것은 아닐까. <쓰나미와 아이들>에 등장하는 생존자들과 함께.

자연 재해가 발생하는 데에는 인간이 힘을 쓸 도리가 없다지만, 자연 재해를 대비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게다가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세운 것은 결국 인간의 오만한 결정이었다. 과학자들은 복잡한 계산을 통해 핵 발전 사고 가능성은 아주 적다고 했다지만, 그 작은 확률은 쓰나미 앞에서 초라했다. 자연 재해를 예측할 수 없다면, 핵발전소의 사고 발생 가능성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어야 맞다.

한국도 현재 가난한 지역만을 골라가며 핵발전소를 뚝딱 뚝딱 건설 중이다. 이내 그 지역의 유일한 소득원은 핵발전소가 될 테고, 지역 주민들은 불안 속에서도 소득을 유지하기 위해 그 지역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일본보다 자연 재해에 대한 준비가 덜 되어 있는 한국에서, 예측 못한 자연 재해가 일어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 인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가난하기에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또 그 위험으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는 구조다.

<쓰나미의 아이들>에는 이런 얘기가 담겨 있진 않다. 하지만 책 속엔 지극히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나이가 젊거나 부자이지 않아도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민주적 사회가 아닌가. 재난에서 최대 약자인 '휠체어를 탄 노인'을 구할 방법, 가난한 지역이 너무도 위험한 핵발전소를 마지못해 수용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방법,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핵발전소 짓기를 포기하고 다른 방도를 모색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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