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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는 스웨덴? 그럼, '몸'에 주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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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는 스웨덴? 그럼, '몸'에 주목해!

[프레시안 books] 얀 순딘·샘 빌네르의 <스웨덴 공중 보건 250년사>

'비법'을 알고 싶었지만…

한국 공중 보건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데 <스웨덴 공중 보건 250년사 : 복지 국가 스웨덴을 낳은 노르딕 정신의 역사>(얀 순딘·샘 빌네르 지음, 신영전·박세홍 옮김, 한울 펴냄)라니!

서평을 부탁받고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묘한 기대도 생겼다. 이 책을 읽으면 현재 스웨덴이 보여주고 있는 우월한 건강 지표들과 모범적인 건강 정책들의 연원이 어디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말이다. 사실 보건학, 특히 건강 불평등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에게 스웨덴은 언제나 부러우면서도 간파하기 어려운, 무언가 자기만의 비법을 감추고 있는 '겸손한 전교 1등' 같은 존재였다.

▲ <스웨덴 공중 보건 250년사>(얀 순딘·샘 빌네르 지음, 신영전·박세홍 옮김, 한울 펴냄). ⓒ한울
그렇다면 책을 다 읽은 후, 과연 궁금했던 그 '연원'과 '노르딕 정신의 정수'를 찾아냈는가 하면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하기는 어렵다.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들은 이 책에서도 반복되었다. 주어진 사회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타협'을 통해 '실용주의'적인 결정을 내렸고, 공직자들은 '헌신'했으며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이건 뭐 "과외나 학원은 따로 다니지 않았고요, 학교 수업에 집중하면서 교과서를 중심으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어요"라는 답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비법을 기대했던 것에는 내심 그걸 쏙 뽑아 와서 한국 사회에 적용하고 싶다는 조바심과 위험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 무언가를 복제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실제로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분명하게 한 번 더 언급해야겠다. 스웨덴의 사례와 같은 어떤 한 가지 사례가 다른 공간, 다른 시기에 청사진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주 순진할 일일 수 있다."

이렇게 말이다. 심지어 스웨덴 국립보건원장은 추천사에서 "한 나라의 역사적 교훈이 무비판적으로 다른 나라에 이전되거나 미래를 결정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며 다른 책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엄격한 사용 설명서를 제시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 책이 소개하는 스웨덴의 공중 보건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은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나 제도라기보다 주어진 환경에 대한 그들의 '대응 방식'이며, 그것이 가능했던, 혹은 그것이 야기했던 전후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라 하겠다.

건강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

한편, 이 책이 역사를 돌아보고 인구 집단 건강을 설명하는 방식 자체도 우리에게 통찰력을 준다. 이 책은 교과서에 나오는 '역학적 변천(epidemiological transition)'의 설명 틀에 기초하되 이를 확장시킨다. 18세기 중반 이후 스웨덴의 중요한 사회적 변화들을 살펴보면서, 잘 갖춰진 통계 자료들을 이용하여 그러한 사회적 변천과 주요 사건들이 인구 집단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인구 집단 건강 수준의 결정 요인에 대한 자신들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회 조직은 특정한 역사적 환경 아래에서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이 사회 심리적·생의학적 매커니즘과 상호 작용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적·경제적 변화는 이러한 과정에 개입하고 개인이나 인구 집단의 건강을 좋게 또는 나쁘게 만든다."

그리고 건강은 이러한 결정 요인들로부터 비롯된 결과물이지만,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서로 다른 인적 자원을 단순한 하나의 모형에 집어넣을 때, 우리는 건강을 첫 번째 자원 또는 자본으로 간주해야 한다. 우리는 건강이 개인에게 중요한 (때로는 제일 중요한) 자원일 뿐 아니라 건강한 인구 집단이 가정, 지역, 국가의 부에 필수적이라고 결론지었다. 건강이 나쁘다는 것은 생산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고, 지불 주체가 개인, 가정, 지역 사회, 정부, 그 누구든지 간에 치료와 처치에 더 많은 비용을 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건강이 지켜진다면 노동과 돈은 사람의 안녕에 필요한 다른 시급한 항목에 쓰일 수 있다."

한국의 보건 부문이 건강 문제를 이해하는 방식은 이와 많이 다르다. 교과서에서 소개하는 원칙은 스웨덴과 다르지 않지만, 현실에서 건강 문제는 경제적 혹은 사회적인 것으로 다루어지기보다 보건의료 서비스의 문제, 혹은 흡연이나 규칙적 운동 같은 개인들의 생활 습관 문제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요인이 건강에 근본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설명은 종종 '근본주의' '비현실주의'라는 딱지를 얻기도 한다. 실제로 얼마 전의 한 토론 석상에서 나는 건강 정책으로서 노동 정책, 소득 보장 정책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가 "어디에서나 근본적 변혁만 이야기하는 구(舊) 운동권"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자원으로서의 건강 개념도 한국에서는 인권과 잠재력(capability) 측면보다 '국력'과 '생산력'으로서의 건강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곤 한다.

결코 '운동권'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스웨덴의 저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구조를 찾아 그것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역사를 뒤돌아봐도) 공중 보건 정책가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선포된 건강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때 개인을 대상으로, 규제적 방식을 통해,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개입 방식이 가장 흔하다. 하지만 경제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구조적 조건은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건강의 결정인자였다. 이러한 조건들은 경제와 복지 정책을 통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2003년에 제출된 스웨덴 공중 보건 정책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하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사회적 조건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 금연, 운동 대신에 사회 참여, 경제적·사회적 보장, 근로 환경 등이 먼저 언급된다. 이는 한국의 국민 건강 종합 증진 계획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건강 문제는 정치 문제

이러한 설명 틀로부터 저자들은 스웨덴의 독특한 경험과 뛰어난 성과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19세기 가장 지속적으로 사망률이 감소했던 시기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감자, 백신, 평화'를 제시한다. 감자는 '국민이 건강하기 위한 물질적 자본'을, 백신은 '과학적 발견과 아이디어가 성공적으로 시행'된 것을 나타낸다.

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차이라면, 스웨덴은 19세기~20세기 중반 내내 한 번도 전쟁에 휩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화는 '피할 수 있는 죽음'이 거의 없도록 해 주었고, 이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우월한 건강 지표로 나타났다. 스웨덴 사람 개개인을 보자면 이런 곳에 태어난 것이 우연이지만, 집합적으로 보면 이 또한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집합적 결정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정부의 메시지와 요구에 복종하는 듯이 보이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고집하기보다는 집단주의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의 밑바탕에는 상당한 수준의 상호 소통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천연두 예방 접종 사업의 성공 사례를 보자면, 이는 지방 의사들의 선도적인 기여 뿐 아니라 지방 행정 조직과 주민들 사이의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가 존재했던 것은 중앙 정부가 지역 공동체에게 상당한 정도로 권한을 위임했고, 지역 공동체는 그 권한을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지역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이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건강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복지 국가의 출현 또한 자치와 민주주의라는 키워드로 수렴된다.

"비록 많은 사회 개혁이 국가적 차원에서 설계·도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요구와 실천 사례들은 빈번히 개별 기초 지방 정부와 도시 지역구의 풀뿌리 수준에서 일하는 이들에게서 나왔다. 복지 국가는 실제로 이렇게 만들어졌다. 국민의 행동은 복잡한 이데올로기나 이론적 근거보다는 실용적인 이유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개혁은 지방 선거에 의해 표출되는 지역 주민의 바람과 필요에 대한 지식에 기반을 두었다. 그들은 거기서 부나 사회적 배경에 상관없이 모든 이를 위한 모자 보건, 노령 연금, 실업과 질병 보험, 교육 체계 등의 제도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스웨덴 정부는 1997년 공중 보건 국가위원회를 결성하면서 중앙 정부와 학회뿐 아니라 노동자, 노인, 이민자, 장애인을 대표하는 조직들, 모든 의회 정당들이 참여하도록 했다. 당시 핵심 과제는 국가 공중 보건 목표를 만들고 다양한 부문을 연계시킬 전략을 수립하면서 공중 보건 이슈를 '정치화'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 가장 절실한 것은 이러한 '정치화'-즉, 건강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자살률과 산업 재해 문제, 극심한 건강 불평등이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정치적 문제가 될 수 있을까?

별점을 준다면?

이 책에는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팩트로서의 정보, 곱씹어볼 만한 사회적 논란들, 문제를 설명하는 이론적 틀과 방법론 등 말이다. 하지만 서평자로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건데, 이 책은 '재미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250년의 역사를 팩트와 해설만으로 무미건조하기 이어가고 있으며, 몇몇 사건들에서는 뭔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있을 법도 한데 결코 더 이야기해주는 법이 없다.

학술 논문 모음이나 수준 높은 보고서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건강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지루하기는 하지만, 참고 읽으면서 고민하고 토론한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300여 쪽 내외의 두껍지 않은 분량도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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