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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아름다운 '과학 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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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아름다운 '과학 책'이라니!

[이명현의 '사이홀릭'] <10의 제곱수>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제각기 다 다르겠지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내 마음은 늘 설렌다. 뭐랄까 내가 살고 있던 일상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조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바로 그곳을 내 작은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경이로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면 한 나절 쯤 투자를 해서 그 지역의 제일 높은 곳을 찾곤 했다. 그곳이 전망대든 산꼭대기든 올라가서 조금 전 내가 지나온 바로 그 곳을 내려다보곤 했다.

시간의 높이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것이 내 발로 직접 찾아가는 여행이든 책 속을 뒤적거리는 마음 속 여행이든 간에. 과거의 시간이 쌓여 있는 높은 산이랄까 전망대랄까 그런 느낌이 든다. 나는 기꺼이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지 올라가 보려고 애를 쓴다. 그 곳에서 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이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제 막 시간의 높이 여행에 동참한 젊은이들을 내려다보는 설렘도 크다.

달에 발을 디뎠던 12명의 아폴로 우주인들 중 많은 이들이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기 위해서 달에 가고 싶었다는 고백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더 높은 곳에서 자신의 자취를 보고 싶은 욕망은 동물적 인간 본성에 속하는 것인 듯하다. 일상의 시시비비가 분해능의 한계 속에 함몰해서 어쩔 수 없이 화해해 버리는 크기. 보이는 모든 것이 무심해져 보이는 그런 크기. 어쩌면 우리는 눈으로나 마음으로나 더 넓은 곳에서 그런 크기 속의 자신을 보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높이 올라가려는지도 모른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실증적 측정도 계속 이루어져 왔었다. 하지만 지구의 둥근 모습을 실제로 눈으로 보기 시작한 지는 놀랍게도 얼마 되지 않는다. 왜? 지구가 둥글게 보일 정도로, 한 눈에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가야만 했으니까.

곡선으로 휘어진 지구의 지평선을 처음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남긴 것은 1935년의 11월 11일의 일이었다. 미국의 블랙힐스 국립공원에서 기상관측기구 익스플로러 2호가 출발했는데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인 고도 22킬로미터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세웠다. 지구의 지평선이 곡선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최초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22킬로미터 높이는 지구 전체를 보기에는 여전히 턱없이 낮은 높이였다. 기구 속에서 찍은 사진은 193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5월호 부록으로 발행되었다. 이베이 사이트에 가면 진품을 미화 12.99 달러에 살 수 있다.

지구 표면으로부터 대략 100킬로미터를 넘어서는 공간을 우주 공간이라고 한다. 그 지점을 넘어서는 곳을 다녀오면 우주인이라고 부른다. 우주 공간에서 본 첫 지구 사진은 1946년 10월 24일 미국 뉴멕시코 주 화이트 샌드 미사일 기지에서 발사된 V-2 로켓에 장착된 카메라가 찍어서 보낸 흑백 사진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 높이에서도 둥근 지구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는 없었다. 지구를 우주 공간에서 처음 본 사람은 유리 가가린이었지만 사진을 남기지는 못했다.

1966년 8월 23일 루나 오비터 1호는 달 근처에서 찍은 반달 모양의 지구 사진을 보내왔다. 지구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구의 모습을 드디어 보게 된 것이었다. 나도 그 사진 속에 있었다.

온전한 둥그런 지구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은 1972년 12월 7일의 일이었다. 아폴로 17호는 달로 가는 도중 태양을 등지고 지구의 전체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어서 지구로 전송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인류가 달로 갔던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 이후 달 근처에서 화성 근처에서 토성 근처에서 많은 우주 탐사선들이 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어서 우리들에게 보내왔다. 하지만 지구의 온전히 둥근 모습을 눈으로 본 사람은 그 이후 아무도 없었다.

1990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제안에 따라서 태양계 행성 탐사를 마치고 명왕성 궤도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우주 탐사선 보이저 1호의 카메라가 지구를 향하도록 조정되었다. 지구로부터 약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찍어 보내온 사진 속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에 불과했다. 당분간 이 정도 거리에서 지구의 사진을 찍을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진은 상당한 기간 동안 우리가 가장 먼 곳에서 본 지구의 모습이라는 기록을 유지할 것이다.

더 먼 곳에서 지구를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일까? 명왕성 궤도 근처에서 이미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는 더 먼 곳에서는 어지간히 큰 망원경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 존재일 것이다. 우리들이 지구 밖으로 나아가 도구를 사용해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보이저 1호가 보내온 사진 속 지구, 거기까지였다. 그 다음 공간은 어떻게 펼쳐질까? 이런 궁금증이 솟아올랐다면 <10의 제곱수>(필립 모리슨·필리스 모리슨·찰스와 레이 임스 연구소 지음, 박진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펼쳐보시라.

▲ <10의 제곱수>(필립 모리슨·필리스 모리슨·찰스와 레이 임스 연구소 지음, 박진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한동안 절판되었던 <10의 제곱수들>이 <10의 제곱수>로 다시 출간된 것이 무척 반가웠다. 귀국해서 대학에서 교양 천문학 강의를 처음 했던 날, 수업 진행에 대한 이런저런 소개를 마친 후 처음 했던 일이 이 책의 모태가 되었던 이라는 비디오 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과 <10의 제곱수들>은 내가 교양 천문학 강의를 할 때마다 수업 첫 무렵에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는 단골 콘텐츠가 되었다.

은 비디오나 DVD로 만들어져서 판매되고 있고 유튜브 사이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슷한 개념으로 만든 인터렉티브한 'Scale of the Universe'라는 사이트(☞바로 가기 : http://scaleofuniverse.com)에도 꼭 가서 즐겨보시길 바란다. 프로젝터가 있다면 천장에 을 쏘면서 누워서 보면 더 멋진 느낌을 얻을 것이다. 장담한다.

<10의 제곱수>는 우주의 가장 큰 구조물들이 보여주는 아주 큰 세계로부터 10배씩 그 크기가 작아지면서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1미터 정도의 세계를 지나서 아주 작은 쿼크의 세계에까지 이르는 동안 나타나는 우주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모습을 42장의 그림에 담은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10의 제곱수'이다.

마치 수직 낙하하는 우주선을 타고 내려가면서 우주의 모든 크기를 경험하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페이지에 해당 크기에서의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 펼쳐져 있다. 바로 옆 왼쪽 페이지에는 그 크기를 대표하는 우주의 구성원들에 대한 설명이 몇몇 사진들과 함께 실려 있다. 이것만으로도 <10의 제곱수>는 아름다운 책이다.

지구의 곡선을 처음 보았던 정도의 높이에 해당하는 그림은 77쪽에서 볼 수 있다. 지구의 온전한 둥근 모습이 보이는 69쪽의 그림에서는 아폴로 17호가 찍어 보냈던 둥근 지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이후 누구도 직접 자신의 눈으로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보이저 1호가 보내온 창백한 푸른 점 지구의 모습은 구태여 대응시키자면 59쪽 그림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픽셀 하나 속의 한 점에 해당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그래도 우리가 직접 인지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다. 그 바깥세상과 우리 몸 보다 더 작은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을 <10의 제곱수>는 잔잔한 물결로 우리들에게 흘려주고 있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다보면 그 작은 물결이 어느새 거대하게 몰아치는 감흥의 파도로 돌변해서 우리들 마음속을 흔들어 놓는다. <10의 제곱수>는 감동적인 책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아니 딜레마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오래 전에 나왔던 책을 다시 출판한 것이니 그 내용의 현재성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62쪽의 화성 이야기의 주체는 여전히 화성 탐사선 바이킹이다. 지금은 스피릿과 오퍼튜니티의 시대를 지나서 큐리오시티가 화성 탐사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런 이야기가 이 책에 반영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과 이 책의 원래 내용을 존중하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10의 제곱수>는 더 높이 (혹은 더 낮게) 올라가서 세상을 보고 싶은 우리들의 욕망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멋진 책이다. 아름답고 훌륭한 책이다. 책과 함께 도 꼭 함께 보기를 권한다. 가능하다면 누워서. 여전히 물러가기를 머뭇거리는 더위를 날려 보낼 스케일 큰 시원한 독서와 영상 감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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