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번역 출간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로 우리에게도 꽤나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언어학과 교수 조지 레이코프. 2008년에 출간한 <폴리티컬 마인드>(나익주 옮김, 한울 펴냄)에서 그는 강연을 하러 미국 전역을 돌아다닐 때 이런 질문을 계속 받았다고 얘기한다.
레이코프가 받은 질문들에서 미국 민주당을 한국 민주통합당이나 민주 진보 세력으로 바꿔 읽어도 별로 어색할 게 없겠다.
왜 민주당은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는가? 늘 그런 건 아니고 이기기도 하지만, 왜 더 자주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특히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권 등장 이후에.
▲ <폴리티컬 마인드>(조지 레이코프 지음, 나익주 옮김, 한울 펴냄). ⓒ한울 |
<폴리티컬 마인드>는 주장한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아니 민주당의 가치가 실현되는 쪽으로 세상을 바꾸려면 사물이나 사상의 언어적 표현 이면의 실재(본성)를 드러내고 그에 합당한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18세기 이래의 계몽(구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 논리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버려야 한다. 왜냐? 21세기 인지 과학의 성과를 동원해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게 <폴리티컬 마인드>를 떠받치는 핵심 기둥의 하나다.
레이코프는 구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보다는 감정과 은유와 영상과 상징 등에 의해 구조화되는 사고의 21세기 신계몽주의적 프레임(생각의 틀)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이 프레임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주입)되는 언어(낱말)의 자극에 호응하는 뇌 속의 신경 회로망의 증가와 활성화가 사고 패턴을 지배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인간의 사고는 98퍼센트가 무의식적, 반사적으로 이뤄진단다.
이처럼 우리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무의식적, 반사적으로 이뤄지는 사고 과정에 대한 인지 과학적 이해 없이는 민주당이, 민주 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게 레이코프 주장의 핵심이다. 한글판 부제를 "21세기 정치는 왜 이성과 합리성으로 이해할 수 없을까?"로 붙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 전에, 프레임이란 게 무엇인가?
레이코프는 학생들에게 틀 의미론(frame semantics)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예의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과제를 화두처럼 제시한다고 했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이 과제의 핵심은 그 명제를 과제로 삼는 순간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낱말은 프레임의 관점에서 정의되며, 낱말의 사용은 그러한 프레임을 부정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에서 사람들이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만일 당신이 상대방의 프레임을 사용한다면, 심지어는 그 프레임을 부정하거나 반증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상대방을 돕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대중의 마음속에서 프레임을 활성화하고 있으며, 그들의 프레임은 다시 그들의 세계관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는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등의 레이코프 전작들을 읽은 사람들에겐 새삼스러울 게 없을 것이다.
레이코프의 얘기를 좀 더 들어 보자.
"보수주의 토크쇼의 함정은 보수적인 주최자가 질문을 하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프레임을 설정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세금 구제(tax relief)를 지지하는가?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가? 아니면 황급히 도망쳐야 하는가? 당신은 자유 무역을 선호하는가? 아니면 보호주의를 선호하는가? 우리 학교와 교사에게 학생을 가르쳐야 할 책무성을 부과해야 하는가? 만일 당신이 이 질문을 수용한다면, 당신은 그들의 프레임에 들어가 있으며 당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는 세계관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프레임을 그들의 세계관이 아니라 당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프레임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먼저 그들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당신의 세계관은 무엇인지, 그리고 반응을 어떻게 프레임에 넣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또한 단순히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으로 대답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을 프레임 만들기와 서사를 통해 유의미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논어> '자로'편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자로가 공자께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하면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
"역시 그러시군요. 선생님은 답답하십니다. 하필 이름을 바로잡으십니까?"
"너는 너무 모른다! 군자는 자기가 모르는 것은 가만히 있는 법이다. 만약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주장(말)이 정연하지 않고, 주장이 정연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성취되지 않고, 일이 성취되지 않으면 예악이 흥성하지 않고, 예약이 흥성하지 않으면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다. 형벌 적용이 올바르지 않으면, 백성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이름을 붙였으면 반드시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주장했으면 반드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군자는 자기주장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논어집주>(박성규 역주, 소나무출판사 펴냄)
"보수주의 토크쇼의 함정은 보수적인 주최자가 질문을 하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프레임을 설정한다는 것"이라는 레이코프의 얘기를 공자 어법으로 바꾸면 그건 잘못된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그 프레임이 진실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다"는 얘기다.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한 공자의 얘기는 "프레임을 그들의 세계관이 아니라 당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프레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레이코프의 얘기와 상통한다. 공자는 결국, 세상사에 이름을 올바로 붙이지 못하면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 세상을 구하려면 먼저 이름을 바로잡아줘야 한다고 얘기했고 레이코프 얘기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박근혜 대세론' 또는 '박근혜 현상'도 정명(正名) 부재 현상의 하나일 수 있다. 박근혜 현상은 프레임의 승리다. 박근혜 현상의 근저에는 한국 현대사를 '산업화'와 '민주화'로 양분한 흑백논리가 깔려 있다. 산업화-민주화 프레임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가 이룩한 성과를 상대화, 극소화하고 독재, 친일(사대), 반통일, 소수 특권이 버무려진 반민주 세력을 민주화 혁명의 해일 속에서 구출해냈다. 구출해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민주 세력을 위기에 빠뜨리고 자신들이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극적인 역전극을 연출해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산업의 고도성장이 냉전과 미·일 반공 동맹 체제 및 경제 블록 편입 등의 외부 요인들은 차치하고라도, 그들 소수 특권, 지배 세력 덕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전태일 분신과 김진숙 크레인 고공 농성이 상징하듯, 공장을 돌리고 농사를 지어 양식을 마련하고 수출을 늘린 것은 그들 소수 특권층이 아니라 살인적 저임금과 비열하고 참혹했던 노동 조건 등 그들의 전횡에 저항하며 싸운 사람들과 그 자식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산업화의 지도를 그리고 지휘한 세력의 공과를 무시해도 된다는 얘긴 아니다. 문제는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민중의 저항으로 위기에 몰린 반민주 전횡의 주역들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분리해서 등치시키는 프레임을 설정하고 산업화를 자신들의 전매특허로 독점하면서, 그것을 민주화에 대응하는 등가적 가치로 양립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산업화의 주역 자리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면서 위기에서 살아남았고 민주화는 그와 대결하거나 길항하는 그저 또 다른 세력의 또 하나의 가치로 전락했다.
이 산업화-민주화라는, 옛 장기 독재 체제 수혜자들이 설정한 프레임 속에서, 예컨대 박정희가 경제 개발의 주역이냐 아니냐, 우리가 박정희 덕에 잘 살게 됐냐 아니냐, 그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아니다 따위의 논란은, 레이코프가 지적했듯이 결과적으로 프레임 설정자들의 의도에 놀아나는 것이다. 그럴수록 박정희 향수·신화, 레이코프 식으로 얘기하면 박정희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뇌 신경 회로망을 반사적으로 자극, 증폭시키고 그것은 박근혜 신화 강화로 이어진다.
그 프레임을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것이며 그 활성화는 대중들의 뇌 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다른 무수한 연관된 프레임들을 연쇄적으로 가동시켜 프레임 설정자가 주장하는 세계관 전체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산업화-민주화 프레임은 산업화, 그 주역, 박정희, 그가 선도했다는 포항제철, 고속도로, 독일 파견 광부·간호사 신화, 농부들과의 막걸리 대작, 지독하게 가난했던 농촌 소년 등의 선견지명과 소탈·소박·검약 이미지와 얽힌 기존 신경 회로망들을 자극한다. 나아가 만주 군관학교, 관동군, 친일의 부정적 기억까지 '영웅 서사'와 '구원 서사' '가난뱅이에서 부자로' 서사와 은유와 연결되면서 희석되고 오히려 영웅 탄생을 위한 통과 의례적 긍정 모드로 뒤바뀌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북의 실패와 남의 경제적 성공, 처참했던 전쟁 체험과 극심한 반공주의 풍토가 그런 자의적 프레임 설정을 뒷받침한 토양이 됐다. 그와 반비례로 민주화와 민주화 세력은 그들의 성공과 구원 서사, 영웅 서사를 무너뜨리려는 반대자, 훼방꾼, 적으로 간주되는 프레임에 갇히기에 이르렀다. 민주화 세력=반미 친북·종북 좌파라는 허구가 사실로 통용되는 현실은 그 잘못된 프레임, 잘못 붙인 이름이 세상을 얼마나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마침내 황폐화할지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도 공화당 우파가 민주당보다 프레임 구사에 훨씬 더 유능했다고 레이코프는 얘기한다. 잘못된 프레임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름을 바로잡으려면, 그 프레임을 거부하거나 자신의 프레임을 내세워야 한다.
레이코프는 2007년 7월 2일 CNN이 중계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중립을 가장한 보수파 토론 진행자 울프 블리처가 설정한 프레임을 오바마 후보가 거부한 장면을 "최근 정치 관련 텔레비전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영어가 미국의 공식 언어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면, 손을 들어주시오"라는 블리처의 요구에 당시 오바마는 "(그것은) 우리를 분열시킬 의도로 제기하는 질문"이라 받아치면서 "쟁점은 미래의 이민자 세대가 영어를 배우려 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합법적이고 양식 있는 이민 정책을 내어 놓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논점을 바꿔 자신의 주장을 폈다.
인종주의적 애국자가 될 거냐 매국노가 될 거냐, 그리하여 어느 쪽을 택하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 식의 프레임을 오바마가 거부했을 때 레이코프는 "거실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고 썼다. 그렇게 보수파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았던 덕택인지 2008년 선거에서 오바마는 승리했다. <폴리티컬 마인드>는 2008년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탈고한 책이다.
레이코프는 보건의료 문제도 그것이 '건강 보험' 프레임 속에 들어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험 프레임을 통해서 볼 것이고 해당 정책도 보험 프레임에 따르게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렇게 되면 보건의료가 이익금과 관리 비용, 보험료, 보험계리사, 외부 발주, 의료 보장 기준, 이익 극대화를 위한 의료 보장 거부 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업'이 되고 돈 없는 사람들 다수가 거기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반면에 보건의료를 식품 안전이나 경찰의 보호, 화재로부터의 보호 차원의 '보호' 프레임으로 보게 되면 그것은 정부의 도덕적 임무가 되고 정부는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교육과 공적 자금 투입 등의 공공적 역량 강화에 나서게 된다.
레이코프에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 군인의 역할을 대행하면서 군인 이상의 거대 조직으로 성장한 블랙워터 같은 민간 용역 업체 육성, 의약품 임상 시험 검열 기능을 극소화하면서 그 기능을 사기업에 넘겨주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변질, 국민의 건강 관리를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민간 의료 보험 회사들에 맡기는 의료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것을 시장 자유와 효율성 강화가 아니라 결국은 "평범한 납세자한테서 부유한 투자가에게로 부를 이전하는 수단"으로 보는 '사영화(privateering)' 프레임에 집어넣는다. 제대로 된 이름 붙여주기다.
처음엔 알카에다 조직과 대량 살상 무기 제거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가 나중에 그게 거짓임이 드러나자 이라크 민주화 등의 인도적 이유를 들이댄 이라크·아프간 침공도 결국은 석유, 특히 거대 석유 기업들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그 때문에 수천억 달러의 국민 세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제대로 된 이름 붙여주기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파한다. 우선 사실, 이면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그 바탕 위에 제대로 된 이름 붙여주기, 프레임 설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세금 구제 문제도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프레임에 따르면, 세금은 무거운 짐이고, 세금 부과자는 악당, 세금을 없애는 자가 영웅이 된다. 말하자면 부시라는 영웅이 기업과 열심히 일하는 미국인 가정이라는 희생자를 큰 정부라는 악당으로부터 구원하는 서사 구조가 짜이고 그것은 우익의 양극화 경제 정책과 군사주의적 외교 정책을 정당화하고 촉진한다.
만일 이 프레임을 열심히 일하면서 세금 잘 내는 미국인 가정이 희생자고, 가능한 한 세금 내기를 회피하며 세금으로 구축된 사회 인프라 덕에 떼돈을 버는 거대 기업과 그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악당이며, 공적 자금 지원 프로그램 등 공공복지가 영웅이 되는 쪽으로 짜면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감정 이입과 보호, 책임감, 역량(사회적 인프라) 강화, 평화를 촉진하게 된다. 이 대비는 레이코프가 자주 동원하는 보수주의적 '엄격한 아버지 가정 모형'과 진보주의적 '자애로운 부모 가정 모형' 대비와도 조응한다.
표상 뒤의 진실 바로 알기와 이를 토대로 한 바르게 이름 붙이기(正名). 여기에 빠뜨려선 안 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폴리티컬 마인드>가 가장 주목한 요소, 그것은 진실 바로 알기가 프레임 전환과 세상 바꾸기로 자동 연결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18세기 구계몽주의적 이성관이 옳다면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사실을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더 올바른 판단을 하고 올바른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바로 구계몽적 이성관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라고 인지 과학자 레이코프는 얘기한다.
18세기 구계몽적 이성관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이성적 존재다. 말하자면, 그 이성은 의식적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동일한 보편적 이성이다. 또 감각이나 지각 행위 등과는 무관하게 탈신체화되어 있다. 이성은 또한 논리적이며 감정으로부터 자유롭다. 비감정적이다. 이성은 내가 어떤 가치를 갖고 있든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치 중립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목적과 이익에 충실하다. 그것은 또 객관적인 세계 및 그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축자적 이성이다. 따라서 좀 더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사실을 알게 되면, 그런 이성의 소유자인 사람들은 '합리적 행위자 모델'대로 자신과 세상의 이익에 두루 합치하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사실이 스스로 말할 것이므로" 굳이 사실을 의도된 프레임에 집어넣을 필요도 없고 집어넣어 봤자 바뀔 것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레이코프의 인지 과학에 따르면, 우리의 이성은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신체화돼 있으며, 감정적이고, 공감적이며, 은유적이고, 부분적으로만 보편적이다. 이게 21세기 신계몽주의적 이성이다.
"신계몽은 이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실제 이성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신체화된 이성으로서, 실제 이성은 우리의 몸과 뇌와 실제 세계 내 상호 작용에 의해 형성되고, 감정을 담고 있으며, 프레임과 은유와 영상과 상징에 의해 구조화된다. 또한 실제 이성에서는 의식적 사고가 의식이 접근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방대한 영역의 신경 회로에 의해 형성된다."
'실제 이성'이란 말이 다소 모호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적 이성이 아니라 21세기 인지 과학이 밝혀낸, 현실에서 작동하는 실제에 가까운 이성이나 사고 메커니즘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그것은 결국 뇌 속의 신경 회로망 작동에 의해 좌우되는데, 그 작동의 98퍼센트는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며, 의식할 수 없으므로 당연히 통제할 수도 없다.
결국 사람의 생각을 바꾸려면 생각에 대한 의식적인 통제가 아니라(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뇌 속의 신경 회로망을 바꿔야 한다. 21세기 인지 과학은 어떤 낱말을 어떤 맥락(프레임)에서 사용할 때 뇌 속의 특정 신경 회로망들이 증폭되고 활성화되는지, 관련 뉴런과 시냅스의 수상돌기와 수용체와 신경 전달 물질들이 늘어나는지 그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레이코프는 얘기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의 정치적 의식을 민주당 지지와 민주당 후보에 대한 투표 쪽으로 바꾸려면 민주당 선호 쪽으로 활성화되는 신경 회로망들을 늘리고 그들을 자극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내야 한다. 바로 프레임 설정을 제대로 하고 그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낱말(말)들을 사용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화당 우파와 같이) 구원 서사나 영웅 서사, '가난뱅이에서 부자로'처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정적이고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21세기 신계몽적 서사들을 동원해야 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말을 하라. 다시 또 말하라, 계속 그 말을 하라. 힘차게 말하라. 생기 있게 말하라. 한 목소리로 말하라. 어디에서나 말하라. 많은 진보주의자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출연해 그 말을 계속하라."
이름을 제대로 붙여준 뒤 그에 걸맞은 말을 골라서 쓰게 하라. 그런 말을 중복적으로, 누적적으로 많이 하면 할수록 관련 신경 회로망은 더욱 늘어나고 더욱 활성화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레이코프가 보기에는 그런 일을 잘 해온 쪽은 민주 진보 쪽이 아니라 보수 우파 쪽이다. 보수 우파는 이미 오래전부터 18세기 계몽주의적 이성과 합리의 한계를 본능적으로 간파하고 프레임 전쟁을 선도해 왔으며, 그 전쟁에 필수불가결한 언론 미디어와 여론 선도 지식인들을 장악해 자신들이 설정한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말을 하고 또 하게 하고 끊임없이 줄기차게 얘기하게 했다. 공화당이 벌인 문화 전쟁의 실체가 그것이며, 그 덕에 공화당은 선거에서 더 많이 이겼다.
연말 대선에서 여론 시장의 70~80퍼센트를 흔드는 보수 매체들을 장악한 쪽이 유리할 것은 불문가지다. 그런 판에 프레임부터 먹히고 들어간다면?
정책이나 민심, 대내외 정세보다 말과 사고, 의식의 전환 쪽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한 레이코프식 분석에 일말의 회의가 없지 않으나, 분명 설득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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