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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무덤 파는 생협, 진짜 버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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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무덤 파는 생협, 진짜 버릴 것은?

[프레시안 books] 김현대·하종란·차형석의 <협동조합, 참 좋다>

독사 굴로 떨어지기 직전 벌꿀에 취하다

불경에 안수정등(岸樹井藤) 비유가 있다. 절집에 가서 대웅전 벽면에 그려진 불화를 자세히 보다보면 가끔 보이는 그림이다.

미친 코끼리 떼에 쫓기던 사내가 천만다행으로 들판에 있는 우물을 발견했다. 사내는 허겁지겁 우물로 달려가 마침 우물로 뻗어 있던 나무뿌리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 간신히 코끼리 떼를 피했다. 그런데 우물 바닥에는 네 마리 독사들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게다가 나무뿌리는 흰쥐와 검은 쥐들이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마침 나무줄기에 있던 벌집에서 꿀이 다섯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사내는 이 모든 위험을 다 잊은 채 달콤한 꿀에 취해 꿀을 받아먹느라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마도 한 번쯤은 모두 들어보았을 불경의 이 비유는 찰나의 쾌락과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들의 심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부처는 이 비유를 이렇게 자세히 설명했다. 코끼리 떼는 무상을, 사내가 붙잡고 있는 나무뿌리는 목숨을, 다섯 방울 꿀은 오욕(五慾)의 쾌락을, 흰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으로 상징되는 시간을, 우물 밑의 네 마리 독사는 흙, 불, 물, 바람 등으로 화하는 죽음을 의미한다.

부처는 오욕의 근원을, 오욕으로 인한 괴로움의 근원을 파헤쳐 무상의 세상 이치 즉 나라고 하는 존재의 실상이 무상임을 깨달아 욕망에서 벗어난 대자유의 삶을 찾으라고 설파한다. 세월이란 쥐가 갉아먹지 않는 나무뿌리는 없다. 세월을 이겨내 200년, 300년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영생의 삶은 없다.

달콤한 성장의 꿀

이 세상은 물론 늘 변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로의 변화는 참으로 기이하고도 고약한 변화였다.

부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자본주의는 오욕의 쾌락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개인 삶의 최고의 가치이자 아예 국가와 사회의 최고 가치로 절대화시키는 체제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북돋아야만 유지되는 체제이고, 욕망의 성장을 충족시키는 소비의 성장을 최고의 삶의 가치로 떠받드는 체제이다. 소비의 성장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곧 붕괴된다.

대한민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서구화 근대화는 자본주의화였다. 한국은 자본주의로의 탈바꿈에 성공한 성장과 발전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람들의 모든 가치는 오직 성장 또 성장이었다. 더 많고 더 크고 더 비싸고 더 넓은 것으로의 무한질주였다. 그래서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가격과 몸에 걸친 옷과 장신구의 가격이 많고 높을수록 신분과 계급이 높아졌다.

서구화 근대화의 또 다른 방식이었던 사회주의 성장 전략을 선택한 북한은 실패했다. 사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북한의 국민 소득은 엇비슷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구소련의 붕괴 이후 북한은 성장을 멈췄고, 사회와 국가 자체가 이른바 마이너스 성장과 식량 부족에 시달리면서 수십만 명의 아사자를 낳고 말았다. 지금도 북한은 빈곤과 아사와의 투쟁을 힘겹게 벌이고 있는 중이다.

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는 게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우리는 그 극단의 현장을 이명박의 4대강 공사에서 보고 있는 중이다. 멀쩡한 강바닥을 파고 부수고 깨뜨려 거대한 인공 보를 만들면 적어도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성장은 지속된다. 그리고 다시 그 인공 보를 부수면, 해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또 성장은 지속된다. 다시 인공 보를 만들고 또 부수고 또다시 만들고 부수고 반복을 계속해도 자본주의의 성장은 지속된다.

극단의 성장 중독은 예수와 부처의 말씀까지도 바꾸어 버린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믿어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이를 적극 실천해서 우선 대형 교회 목사 자신부터 마몬의 재물을 끝도 없이 모았다. 심지어 통일교는 재벌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이 목사들의 오욕칠정은 끝도 없어 자신의 자식들에게까지 오욕칠정을 물려주려고 온갖 탈법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재산을 대물림해 준다. '장로'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끝 모를 탐욕으로 정부 예산까지 끌어다 퇴임 이후에 살 집까지 아들과 함께 신묘한 부동산 투기를 벌여 돈을 챙긴다. 가히 기독교 목사, 장로가 아니라 마몬교 목사, 장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의 성장은 영원히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아니 조만간 대한민국은 북한과 똑같은 성장의 붕괴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남한의 오래된 미래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이지만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천연자원의 고갈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만간 한국에 들이닥칠 에너지 위기와 식량 위기를 생각하면 끔찍하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은 에너지와 천연자원이 갉아먹고 있는 나무뿌리를 붙잡고 성장의 우물 안에 갇힌 채 다섯 방울 꿀을 받아 마시기에 정신이 없다.

협동조합이 영리 업체와 다른 점

오늘날 협동조합인 가운데 이론과 이념보다는 '사업 진척을 우선하는' 경향을 가진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태도이다. 왜냐하면 모든 조직 또는 제도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이 믿고 지지하려는 사상과 개념에 입각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알렉스 레이들로 지음, 김동희 옮김, 한국협조합연구소 펴냄, 57쪽)

20세기 초기와 같이 협동조합이 소규모 근린 조직체였을 때는 자금이 취약할 경우에도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대다수 조합은 조직이 단순하고 조합원끼리 잘 알고 있어 조합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큰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 있었다. (…) 협동조합은 단순히 힘을 키울 목적으로 성장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 조합과 조합원의 유대가 사업의 성장이라는 이유로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 대규모 조합을 작은 단위로 나누는 것이 민주적 참여와 개인의 결합을 위한 유일한 대안일지도 모른다.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 65~66쪽)

위협적인 기업 권력 시대에 협동조합이 지금 흔히 듣고 있는 것처럼, "협동조합은 다른 기업과 같이 또 하나의 거대한 사업체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 66쪽)

1980년에 발표된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은 흔히 '레이들로 보고서'로 불리며 협동조합 운동의 경전으로 여겨진다. 알렉스 레이들로는 캐나다 신용협동조합 운동의 산실이었던 노바스코샤 주의 안티고니시 출신이다. 레이들로는 자신이 직접 실천한 협동조합 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1980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총회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서기 2000년의 협동조합 운동을 전망했다.

이 레이들로 보고서는 30년이 지난 지금 읽어 보아도 날카로운 분석과 예리한 통찰력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 이 보고서를 염두에 두고 외국의 여러 협동조합 운동의 사례를 모아 놓은 <협동조합, 참 좋다>(김현대·하종란·차형석 지음, 푸른지식 펴냄)를 읽어 보면, 결국은 결사체로서의 성격을 잃지 않은 협동조합만이 살아남아 지속 가능하다는 단순명쾌한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성장의 꿀만 핥으면 한국 생활협동조합은 망한다!

▲ <협동조합, 참 좋다>(김현대·하종란·차형석 지음, 푸른지식 펴냄). ⓒ푸른지식
한국 생활협동조합 운동은 1986년 용두동에 설치한 작은 한살림 매장을 시작으로 간난신고의 위기를 극복해 왔다. 이제 한국의 생활협동조합은 자타가 인정하는 성공한 사업체로 자리를 잡았다.

2011년 한살림 조합원 수는 30만에 달하고 연간 공급액은 2200억 원에 이른다. 아이쿱은 조합원 수 11만 명, 공급액은 3000억 원이 넘는다. 한국의 생활협동조합 전체를 보면 총 65만 명의 조합원에 공급액은 6500억 원이 넘는다. 이렇게 단순 수치만 놓고 보아도 한국 생활협동조합의 성장은 눈이 부시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국 생활협동조합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뼈를 깎는 각오로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한국 생활협동조합이 영리 업체인 주식회사와 다를 바가 무엇이냐'는 지적은 어제오늘이 일이 아니다.

협동조합은 명백히 경제 사업체이다. 당연히 사업을 안정화하고, 자본주의 영리 업체인 주식회사와 경쟁력을 갖추고 사업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똑같이 경쟁 논리를 갖고 사업을 하고, 성장의 신화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영리 업체와 달리 협동조합은 자본의 힘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사업을 한다. 사람의 힘이란 조합원들의 연대의 힘이고, 조합원들이 연대해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곧 지역이다.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지역 선순환의 경제가 다름 아닌 협동조합인 것이다.

그간 한국 생활협동조합에는 지역 공동체 복원이란 시각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협동조합의 원칙인 협동조합 간 협동은커녕 매장 개설을 둘러싸고 서로 제살 깎아 먹기 식의 경쟁도 불사해 왔다. 지역 사회 기여라는 협동조합 운동의 원칙은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고는 사업체로서의 성장 신화에 일로매진해 왔다.

<협동조합, 참 좋다>에 언급된 서구의 수많은 협동조합의 사례가 말해주듯이 그리고 레이들로 보고서가 거듭해서 제기하고 있듯이 사업체라는 우물 안에 갇혀 성장의 꿀을 핥는 협동조합은 곧바로 협동조합 관료들이 지배하는 사업체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위기가 닥치면 곧바로 망한다. 위기 극복의 주체이자 힘인 조합원의 연대, 자유인들의 연합체로서의 결사체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한국 협동조합 운동은 새로운 도약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이 시점에 한국 생활협동 조합이 성찰할 지점은 다름 아닌 성장 신화의 과감한 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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