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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대한민국? 노동 운동 없이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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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대한민국? 노동 운동 없이는 불가능!"

[인터뷰] <마녀의 연쇄 독서> 펴낸 김이경

서평가는 왜 이렇게 많은지, 책에 관한 책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애써 불만을 숨기며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의문은 정당하다. '서평가' '독서가' '출판 평론가' 직함을 달고 책으로 먹고사는 서평 전문 필자가 눈에 띄게 늘어 난데다, '20대' '중국' 등 열쇳말로 나오는 서평 모음, 유명 필자들이 한 권씩 고른 '아까운 책'을 묶은 앤솔로지도 한두 권이 아니다.

지난 1년간 <기획회의>에 연재된 원고를 모아 묶은 <마녀의 연쇄 독서>(김이경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를 만났을 때 '또 책인가?'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순례자의 책>(뿌리와이파리 펴냄), <마녀의 독서 처방>(서해문집 펴냄) 등 책에 관해 '다른 기획'을 시도해 온 저자 김이경의 이력을 믿고 그 연쇄를 따라가 봤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김화영 옮김, 민음사 펴냄)에서 시작해 "앙갚음하듯" 독한 마음가짐으로 쓴 독특한 플로베르 전기인 <플로베르의 앵무새>(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열린책들 펴냄)로 넘어갔다가, 제목의 '앵무새'를 따라 환경 책인 <스픽스의 앵무새>(토니 주니퍼 지음, 이종훈 옮김, 서해문집 펴냄)로 이어진다. 이렇게 작가에서, 책의 모태로부터, 주제나 주제어의 유사성으로부터, 작품의 캐릭터(인물)에서 촉발되는 우연한 연쇄로 스물네 꼭지가 다채롭게 채워진다. 따라가다 보면 스물세 번의 연쇄 끝에 남는 건 더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 그리고 '나만의 연쇄'를 시작해 보고 싶다는 충동이다.

연쇄는 뭐고, 마녀는 뭐지?

▲ <마녀의 연쇄 독서> 저자 김이경. ⓒ프레시안(최형락)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주인공 김이경을 만났다. 오랫동안 출판사에서 다양한 책을 만들었으며 몇 권의 책을 번역한 그리고 이제는 작가로 '살아가는' 저자는 이 책에서 시도한 실험을 놓고 "책을 매개로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일종의 무의식적 자유 연상이었다"고 회상한다.

그 타래를 풀어놓고 보니 죽음, 광기, 생명, 역사, 복지 등 주로 '하드한' 분위기다. 하지만 저자 스스로는 연재를 통해 "이중적이라고 생각했던 '내면으로 침잠하는 성향'과 '시대적 문제에 대한 부채의식'이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작가를 많이 만났"고, 그래서 뒤로 갈수록 "노력하면 나도 그 근처엔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느꼈다고 한다.

늘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권리감과 의무감을 동시에 느낀다는 김이경은 책이라는 소재는 같을지언정 언제나 다른 이야기 방식을 발명하려 노력했고, 그래서 출판 기획자로서도 작가로서도 늘 기획이 먼저였다고 한다. 그저 책에 취해 책이 이끄는 대로 꽁무니를 좇은 이번 '연쇄 독서'도 본인이 먼저 강하게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그렇다면 '마녀'란 무엇인가. 연원은 2010년 낸 <마녀의 독서 처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들이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청탁을 받아 연재한 '독서 처방'을 책으로 묶을 때 스스로 제안한 서평가로서의 닉네임이다. "세상이 허용한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사람"으로서의 '마녀'이며, 그것이 독서가의 기본적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책 쓰다가 '죽을 뻔'했다고?

▲ <마녀의 연쇄 독서>(김이경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후마니타스
그 '마녀'는 연재를 하는 1년 동안 수많은 책이 이끄는 우연한 만남에 행복해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했다. 격주로 이어지는 연재가 체력적으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한 꼭지에는 단 한 권이 아니라 후보로 생각했거나 중간에 포기한 책 여러 권이 언급되며, 그 책들을 모두 조금씩은 읽어야 했다.

그렇게 검토한 책 가운데 3~4일 안에 한 권의 책을 고르면 본격적인 독서가 시작된다. 적어도 두 번을 읽고,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 1500쪽 넘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전3권, 김혈조 옮김, 돌베개 펴냄)에 이어 900쪽 가까이 되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전2권, 임효선·박지동 옮김, 한길사 펴냄)로 넘어갈 때처럼 활자 그 자체가 호흡을 괴롭힐 때도 있었다.

쉽게 읽히는 글을 위해 주요 내용을 이곳저곳에 틈나는 대로 메모하고, "남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쓰는 건지" 불안에 억눌리며 신중하게 글을 써나갔다. 오랜 편집자 생활은 그를 "마감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으로 만들어 놨고, 따라서 원래도 병을 얻었던 몸을 바닥까지 혹사시킬 정도로 초조함에 시달리면서 글짓기에 몰두하게 했다.

이토록 쉽게 술술 읽히는 <마녀의 연쇄 독서> 밑에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을 줄 어느 독자가 눈치 챌까. 하지만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박광현 옮김, 창비 펴냄)→장 아메리의 <자유 죽음>(김희상 옮김, 산책자 펴냄)→로렌 아이슬리의 <그 모든 낯선 시간들>(김정환 옮김, 강 펴냄)로 이어지는 '죽음'의 연쇄를 따라갈 땐 "거의 늘 죽음만 생각해서, 어떻게든 박차고 나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특히 아이슬리의 <그 모든 낯선 시간들>을 놓고 쓸 때는 작가의 새로운 문체에 압도되어 자신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회의해야 했단다. 그만큼 그는 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고, 저자의 인생과 관점에 민감하게 감정이입하는 사람이라고 얘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비판하지 않기, 쉽게 쓰기의 어려움

이렇게 저자와 교감하며 쓴 서평이다 보니 자연히 독자들은 언급된 책을 한번쯤 읽어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왜 다른 서평처럼 신랄한 비판은 없는 걸까. 나쁜 책도 걸러내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이번 책에서는 유일하게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김병욱 옮김, 황금부엉이 펴냄)에 대해 쓴 글에서만 그녀의 비판적인 눈길을 엿볼 수 있다.)

김이경 본인도 독자로부터 "당신 서평엔 비평적인 부분이 없다. 이건 서평이라 할 수 없다"는 감상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확고하다.

"제 기본 방향성은 평가하고 꼬집는 것보단 배우려는 자세라고 할 수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비판이 인격적 성숙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식인들이 흔히 빠지곤 하는 오류 중 하나가 비판에 대한 강박인데, 전 비판을 통해 내 자신에게 도취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독서가 될 수 있는지를 신경 쓰는 편이죠."

ⓒ프레시안(최형락)

또 하나 김이경이 경계하는 '자기도취' 중 하나는 대중 언어에서 벗어난 어려운 글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독서가들은 종종 한 권의 책에 빠져 있는 동안, 그 책의 언어와 말투로 사고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거리감을 잃으면 자기만의 넋두리 같은 글이 나오게 마련이라는 것을 저자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학계에 발을 담근 적이 있었던 만큼, (대학원 졸업 후 얼마간 그는 강사 일을 했다.) 김이경은 이 점을 조심스러워하며 쉬운 글을 쓰려고 한다.

작가가 된 지금이나 책을 만들었던 편집자 시절에나, 그가 상정하는 적절한 수준은 "'독서가 취미라고 말하는' 정도의 사람들이 조금만 더 노력해서 읽을 수 있는" 정도다. 절대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지향하진 않는다.

"불편과 즐거움 사이의 긴장, 책 읽기"

그 말대로 독서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출판사들이 울상 지을 일도, 대학이나 시(市)가 나서 독서 운동을 벌일 일도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고전적인' 질문은 두 가지다. 그 노력을 들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유가 타당하다면, 어떻게 해야 좀 더 책 읽는 데 노력을 들이는 사람을 혹은 사회를 만들 것이냐. 진부하지만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질문을 놓고 그는 "책을 읽고 나면 그만큼 불편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읽는 순간 그 전의 순간과는 달라지게 만드는 것이 앎이다. 그러나 "그 불편을 감수하고 어떤 세계를 만났을 때 불편만큼의 기쁨, 책임만큼의 즐거움이 생긴다."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긴장이 책 읽는 행위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책으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 적어도 아무것도 모른 채 삶에 매몰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기면서 그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게 돼요.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 30분이라도 책을 들여다본다면, 최소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그는 "지행합일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이지만, 그 지향 자체는 포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언가를 읽고 감동을 받았거나 옳다고 생각했다면 그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 그 방향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자세는 잃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긴장의 줄 위에 올라 선 것이 곧 직업이었으니 그는 스스로도 "운이 좋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먹고사는 데 치여 책 근처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여기서 던져지는 두 번째 질문을 놓고, 그는 이미 이 책 마지막 순서인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토머스 게이건 지음, 한상연 옮김, 부키 펴냄)를 다룬 꼭지에서 해답에 이르는 길을 언급한 바 있다.

"(독일에선) 그림과 사진이 별로 없는 두툼한 신문이 2300만 부나 팔리고, 온통 활자뿐인 묵직한 에세이가 소설책보다 많이 읽히며 공과대 학생이 단지 로마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영어 원서로 읽습니다. (…) 어찌하면 독일처럼 '책의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보니 그 또한 노동 운동이 활발해져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소수의 경영자와 권력자가 노동하는 이들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자기 삶의 조건을 결정하기 때문일 겁니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독서 이력서 제도니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운동 같은 걸 한다고 책의 나라가 되는 건 아니란 얘깁니다." (<마녀의 연쇄 독서>, 237~239쪽)

인터뷰 중에도 그는 "독서는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힘을 기르기 위한 행위인데, 왜 베스트셀러 수십 권을 사서 하나의 시각을 전파하는 식으로 독서 운동이 이루어지는지 모르겠다"며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운동에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누구나 자기 관심 분야의 책을 쉽게 구해볼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이 많아지는 것, 도서관에 갈 시간이 나도록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해답이다. 결국 정치(자원 배분)와 운동(노동 조건 개선)의 문제인 셈이다.

마흔에 편집자가 되어…

독서가나 서평가의 정체성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궁금한 게 성장 배경이다. 유년 시절 아버지의 커다란 서재 속에서 놀았다거나,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혔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어렵사리 구한 전집류를 읽고 또 읽었다거나 하는 책벌레로서의 추억이 그득하다. 아름답고 솔깃한 한편, 듣는 사람을 주눅 들게도 만든다.

김이경은 고개를 내저었다. 문학 소녀가 아니라 "혼자서 놀아야 할 때만 책을 읽"었고 "하나의 놀잇감으로만" 책을 접했다고 한다. 지금도 글이 막히면 실내 야구장에 달려갈 정도로 "몸이 먼저인" 사람이고, 독서가들에게 흔한 장서 수집벽도 별로 없다.

학업을 마치고 나서 바로 책 세계로 뛰어들어 젊은 시절을 불태운 것도 아니었다. 틈틈이 번역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시간 강사였고 사회 운동에도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동안 믿어 왔던 사상적 지표가 와르르 무너지는 걸 경험하면서 "대체 무엇을 통해 세계를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30대에 스무 살로 돌아간 듯한" 열병을 겪으며 마흔을 맞았고,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로부터 편집자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일하는 동안 "기획은 좋은데 저자 섭외가 도무지 안 되어서" 직접 쓴 어린이 그림책 <인사동 가는 길>(김수자 그림, 김이경 지음, 파란자전거 펴냄)로 작가로 데뷔했다. "회사 일은 기본적으로 남의 일"이라 생각하는 그는 "그만큼의 노력을 나 자신에게 들인 적 있는가" 하는 물음을 놓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 두고 나서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글쓰기에 들어간다. 편집자였기에 누구보다 편집자의 눈을 신뢰했고, 완성된 <순례자의 책> 초고를 몇 개 출판사에 보내 직접 연을 만들었다.

이토록 늦게 피어난 그가 출판 기획, 편집, 번역, 창작, 독서회 강사 등 "책 관련된 일 중 서점 주인만 빼 놓고 다 했"을 정도로 출판 세계에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언가를 버리는 결정이 빨라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일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스타일이고, 충분히 했다 싶으면 미련 없이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정든 출판사도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는 느낌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아직도 자신을 편집자로 보는 친구들이 '다시 편집하자'고 회유하지만, 그는 "다시 돌아갈 것 같았으면 애초에 그만두지도 않았다"고 선을 긋는다.

현재로선 '작가'라는 일과 그 정체성에 최고로 만족한다는 김이경은, 일방적인 선망의 관계로 오해하기 십상인 편집자에서 작가로의 '변신'에 대해 "작가는 '되는' 게 아니라 작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아주 작은' 서평가의 역할

뒤늦게 시작해 천천히 원하는 길을 밟아 온 김이경의 향후 계획은 당분간 소설 창작에 집중하는 것이다. 소설 쓰기는 자기 내면을 비교적 자유롭게 펼칠 수 있기에, 다른 사람의 글을 이해했는지에 대한 불안이 쫓아다니는 서평에 비하면 훨씬 쉽고 쾌감 있는 작업이란다.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문법, 새로운 글쓰기"로 자신을 시험대에 올려놓는 데 몰두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남은 인생을 사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책은 안 읽힌다는데 서평 모음은 오히려 더 많이 나오는 상황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그것을 '쉽게 읽히는 요약본만 찾으려는' 세태로 요약하는 분위기를 놓고 이 서평가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실제로도 "남이 쓴 책에 대해서 쓰는 것은 그만 하고 창작을 하라"는 충고를 듣는단다. 그의 대답은 인터뷰 내내 일관했던 대로 소박하고도 분명했다.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면서 좋은 책이 묻히는 일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걸 원망할 순 없죠. 저도 그렇지만 누구든 이 세상 모든 책을 다 볼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걸어간 독서로(路)의 '팁'을 준다면 내 책을 찾아가는 연쇄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 가운데, 정말 좋은 책을 독자에게 한 번이라도 더 소개해 주는 게 제 원칙이에요. 일단은 딱 그 정도의 역할이면 되지 않을까요."

ⓒ프레시안(최형락)

● 김이경이 좋아하는 작가는…

"에세이를 쓰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나도 그 경지에 이르렀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는 모델은 서경식과 버지니아 울프입니다. 그들의 글은 오직 문학적 재주에서만 나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들에겐 범인이 흉내 낼 수 없는 배짱과 용기, 지혜가 있습니다. 문학 작품으로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주제 사라마구, 이탈로 칼비노 등의 작가를 좋아합니다. 한국어 저자로는 '여전히 난공불락'이라 생각하는 조세희, 내 청춘을 흔들어 놓은 김수영이 떠오르네요. 최근 작가로는 박민규와 황정은을 좋아합니다. 특히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민음사 펴냄)는 좌절감을 느끼면서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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