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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파도마저 아프다

[기고] 강정 평화 대행진을 다녀와서

사람의 일이란 것이 어찌 보면 우연의 연속입디다. 제가 강정을 처음 안 것은 소설가 현기영 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쓴 '강정을 아십니까?' 칼럼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때 저는 강정을 제주도의 어느 아름다운 고장 정도로만 인식했고, 제주도가 고향이신 현기영 선생님의 애향심이 강정이란 마을에 닿아 있구나,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수개월 후 어느 날 밤, 저는 어느 작은 절에서 다른 시인 선생님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현기영 선생님의 전화가 도착했습니다. 아마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때라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강정에 한 번 함께 가지 않겠냐고 말이지요. 저는 그날 밤, 꼭 가겠다고 어쩔 수 없는(?) 약속을 드리고야 말았습니다.

중덕 해안가에서 우리 일행은 문화제를 주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2011년 어느 늦은 봄날이었을 겁니다. 그 때 다리가 짧은 백구 중덕이도 알게 되었고, 바로 그 구럼비 바위에 서서 출렁이는 바다도 보았고, 마을 주민 한 분이 더위를 식히러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던 모습을 통해 장년이 된 '똥깅이'(<지상에 숟가락 하나>의 주인공 이름)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번 와 보지도 않고 문화제에서 낭송할 시를 숙제처럼 썼는데, 중덕 해안가로 들어가는 길에서 써 놓은 시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는 그 시를 1행만 빼고 완벽히 복원해 내었습니다. 저는 제가 쓴 시를 외우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그 시가 정말 과제물이었음을 아프게 알게 해준 건, 다음날 4·3 공원에서 만났던 1만 5000명의 희생자 위패였습니다. 책을 통해서 4·3의 희생자가 3만 명에 가깝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3만이라는 추상적인 수를 벗어난 단독자의 죽음들 앞에서 저는 순간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탈육된 백골을 모의로 전시해놓은 것보다도 하나하나의 죽음 앞에서 심장이 부르르 떨렸던 겁니다. 북촌리에 있는 너븐숭이 기념관에는 학살당한 주민 350여 명의 구체적인 죽임이 조금 더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두 살 먹은 아이까지 말이지요. 북촌리는 현기영 선생님의 소설 '순이 삼촌'의 무대라고 하더군요.

이게 제가 처음 감각으로 느낀, 제주도의 진실이었습니다.

다시 한 달 뒤 서귀포 시내에서 있던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때에는 우리를 초빙한 분의 개인사를 속으로 울먹이며 듣고 나서 제주도에는 파도마저도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작은 무인도도 말이지요. 그렇게 제주도만 생각하면 하얗게 무너지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뒤로 저는 제주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몇 번의 결심은 아주 사소한 생활 앞에서 형편없이 구겨졌지요.

그런데 한국작가회의가 그 즈음 강정마을의 싸움에 동참하기로 조직적 결정을 내렸고, 한국작가회의의 사실적인 활동가(?) 조정 시인의 열정으로 이런저런 일을 한다고는 했습니다만 당신이 보기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네요. 알다시피 저는 문학으로 무엇을 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잖아요. 굳이 변명하자면, 제 허무는 패배의식이 아니라 문학의 한계치에 대한 자각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에 있었던 '글발글발' 행사는 최소한 외형적으로는 대단한 일이라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임진각에서 강정마을까지 릴레이 국토 종단은 사실 툭 던진 반 농담이 기적처럼 이루어진 경우입니다. 당연히 저는 신중파였어요. 검토하고 준비할 게 너무 많다는 게 이유였지만 솔직히는 그걸 감당할 능력을 자신하지 못해서였습니다.

한낱 스태프 역할만 하는 것에도 저는 이렇게 소심하기 짝이 없답니다. 결과적으로는 사람에게 잠재되어 있는 어떤 열정을 읽어내지 못한 꼴이 되었지요. 아무튼 순전히 열정으로 작가들은 강정까지 가고야 말았습니다. 아, 미안해요. 작가들이 뭐 대단한 일 했다고 내세우자는 게 아니에요. 지난 주 잠깐 참가했던 강정 평화 대행진을 상기해보자고 한 게 긴 세설을 낳았군요.

ⓒ프레시안(손문상)

이번 평화 대행진 기간에 제가 걸었던 구간은 다른 구간에 비해 무척 수월했고 코스도 가장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언제나 제주도는 전혀 상반된 마력으로 다가오지요. 탄성을 거듭 터뜨리게 하는 아름다움과 씻기지 않는 아픔이 그것입니다. 아마도 이 둘의 낙차가 마력의 정체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불가해함 앞에서 인간의 정신과 논리 같은 건 무화되어버리곤 하잖아요.

그렇다면, 제주도에 대한 제 느낌에는 어느 정도의 퇴폐미가 섞여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비윤리적이거나 강정 마을 사태에 대한 비본질적인 무엇이 아니라 제가 창조한 다른 제주도일 겁니다. 인간의 인식이 보통 대상에 대한 표상이거나 유아(唯我)적인 관념이라고 정의되기도 하지만, 다른 세계의 창조라는 주장도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감히 용감해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구럼비는 15퍼센트 정도가 훼손되었는데요, 그 아픔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놓고 이제 평화 공동체를 만들자는 대안이 제출되었습니다. 제 식으로 이해하기로는 해군 기지 '반대'에서 평화 공동체에 대한 '찬성'으로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상상력이 움직인 겁니다. 뜨거운 햇볕 속을 걸으면서 거듭 문학이 단지 그럴듯한 메타포나 유미적인 문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문학보다 앞서가고 있었어요. 앞서가는 그 뒷모습을 작가들은 단지 언어화할 뿐이지요.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뒤떨어졌다는 것을 솔직히 받아들이기만 해도 문학의 역할은 그리 왜소하지 않을 거라고 저는 아직 믿는 쪽입니다. 근데 이거 근사하지 않아요? 반대에서 찬성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수동에서 능동으로!

이게 이번 평화 대행진에서 제가 본 강정 마을의 눈부신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마을 주민들의 아픔과 고달픔을 읽지 못했어요. 혹 생길지도 모르는 섣부른 감상과 되지도 않는 위무를 미리 차단하려는 자기 본능이 아니랍니다. 이미 그 분들의 영혼은 저 같은 무명 시인을 압도하기 시작했거든요.

결국 도움을 준 게 아니라 도움을 도리어 받은 격입니다. 해군 기지를 건설하려는 이들은 마을 주민들을 절대 못 이깁니다. 설령 현실에서는 이긴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이미 완벽히 패배했어요. 그것을 그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니까 이번 평화 대행진이 시작된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은 평화 대행진에 참여하기로 한 결심한 순간부터 오갈 교통 편 때문에 걱정이 많았고, 그것 때문에 행사 참여에 어떤 지장이 있을 거라고 미리 겁을 먹기도 했습니다. 숙영지인 김녕 해수욕장에 도착한 건 밤중이었습니다. 몇몇 작가회의 회원들과 인사 겸 회포를 푼 다음에 잠자리로 이동했지만 태풍이 남기고 간 습기가 만만치 않아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눈을 뜨니 조금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아침 식사 전까지 바다 구경을 하다가 천천히 대열을 따라 움직였는데, 오른쪽에 펼쳐진 수평선에 마음을 빼앗겨, 이것은 뭐 마치 피크닉 같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걸은 분의 말씀으로는 지금까지 한 고생에 대한 보답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제게는 피크닉이 맞습니다.)

그러나 오전 11시 즈음에 도착한 너븐숭이에서 볼 때마다 힘든 학살당한 사람들의 원혼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제주도는 이렇습니다. 섬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어김없이 4·3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선무당의 입장에서 어림잡아 봐도, 해군 기지 건설 강행은 강정 마을 주민들의 아물지 않은 아픔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입니다. 참으로 씻기 힘든 악행이지요.

강정 마을의 입지 조건 자체가 큰 군함들이 들어올 형편이 안 되는데도 정부는 왜 그리 억지와 떼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대림건설이나 삼성건설에 갚아야 할 부채가 있는 거야? 하는 항간의 소문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 참여하기 전에 읽은 정욱식 선생님의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펴냄)에는 또 다른 이유가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 체제에 한국을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것은 그간의 언론 보도에 의해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의 "명시적, 잠재적 대상국인 북한, 중국, 러시아와 가장 인접해 있는 미국의 동맹국"(322쪽)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양국 정부는 한국이 오키나와와 괌을 방어하는 데 기여하는 방안도 밀실에서 논의했다. <신동아> 2011년 6월호에 따르면, '괌이나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에 미사일이 발사되는 경우에도 한국군이 이를 대신 요격해주는 콘셉트가 여러 차례 도출됐다'라고 한다. 적어도 개념 수준에서는 한·미 간의 MD 협력이 이미 한반도를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제주 해군기지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도를 펼쳐보면 알 수 있듯이, 제주도는 오키나와와 괌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327쪽)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군사 기지가 들어선다 해도 전쟁이 꼭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속삭임도 솔직히 같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꼭'이라는 부사에는 항상 어떤 주관적인 바람이 함께 들어가 있기 마련이지요. 전쟁이 일어날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쟁이 일어날 확률만큼은 부쩍 올려주는 것이 강정 마을에 지금 뚝딱거리고 있는 해군 기지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언제나 오늘에 배태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미래는 현재와 동떨어진 오지 않은 시간이라는 관념에 익숙해져 있습니다만, 사실 미래는 이미 와 있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해서 어중간한 희망을 버무려 지금 당장을 위무하려는 일이야말로 비겁한 태도이기 십상입니다.

암튼 제가 강정 마을과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거나 해서 이런 흰소리를 늘어놓은 것은 아닙니다. 오늘 할 일을 미루었을 때 언제나 미래는 우리를 배신하더라는 경험칙에 충실할 따름입니다.

제가 제주도에 있는 2박3일 동안 서울은 무척 더웠지요? 늘 그랬지만 이번 행사에도 저는 얼치기여서 밤에는 예쁜 달에 취하고 걸을 때는 수평선에 매혹되었습니다. 휴식을 취했던 함덕 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파도는 아마 꽤 오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걸었던 사람들에게 강정 마을 사람들이 이번 평화 대행진에 임하는 마음을 전해 듣고 이상한 현기증을 앓았습니다.

단순한 찬양과 맹목적인 신앙을 제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아실 테니 그 현기증의 정체를 여기서 따져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이번 행사에 잠깐 다녀와서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수동적인 해군 기지 '반대'를 넘어 궁극적인 평화를 '찬성'한다고 말이지요.

궁극적인 평화는 유토피아일 뿐이라고요? 맞습니다. 궁극적인 평화는 제도나 체제가 아닌 게 확실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타면서 내는 한낱 불꽃일 뿐일 거예요. 언제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제도나 체제를 밝히는 그것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당장 힘든 시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을 '함께 사는 것'만 한 연대를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연대는 연민이나 물질적 도움을 포괄하는 훨씬 더 내밀한 경험입니다. 강정마을과 우리의 미래와 지구별의 웃음을 위한 행동은, 단지 간절한 기도만이라도 그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짧지 않은 편지를 쓰는 것도 그 때문이기도 하고요.

기도를 보태주세요. 그리고,
노래를 함께 불러주시길….

분명히 우리 자신의 변화와 강정마을의 평화가 함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럼, 인간의 어리석음이 초래했다는 지독한 무더위 속에서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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