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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맨얼굴, 이기주의 화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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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맨얼굴, 이기주의 화신들!

[철학자의 서재] 박성순의 <선비의 배반>

이상적인 정치 제도와 좋은 지도자

상당히 상식적이라서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질문과 답변으로부터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는 구태의연할 수 있지만, 사실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해결책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국가의 모습, 바람직한 통치체는 어떤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난 우리들은 망설임 없이, 국민 개개인 모두 예외 없이 광범위한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국가의 주인으로 인정받는 나라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국민들의 뜻, 민의에 따라 운영되는 자유 민주주의야말로 최고의 정치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른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적인 답변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라고, 자유 민주주의야말로 가장 탁월한 정치 제도라는 교육을 받고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사유를 통해 얻어진 결론은 아닐 것이라고 여겨진다.

비단 인류의 지난 장구한 역사를 살펴보지 않더라도, 자유 민주주의만이 인간 세계의 유일한 정치 제도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재에도 지구촌 어딘가에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완연한 왕정 국가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현 중국이 그러하듯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변형된 형태의 귀족정 또한 현존하며, 스웨덴과 같은 사회 민주주의 체제도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들 국가들 또한 아마도 자신들의 정치 제도가 매우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것이라는 대중적 믿음 아래에서 존속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해당 국가의 지속적이고 안정된 존속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정치체라는 답변이 영원 진리의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가 국가 수반을 뽑는 등의 중대사를 국민들의 직접 투표에 맡기고 사유 재산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 형태로 이행한 것을 보면 원인이 뭐든 자유 민주주의가 현 시대의 대세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것은 또 반대로, 현시대에 있어 국가 정책 결정에 민의가 보다 더 많이 반영될수록 좋은 국가라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국가는 국가 정책을 국민이 직접 선택하도록 만들면 쉽고도 적확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정치, 사회 과목을 통해 이미 잘 배웠듯이 직접 민주주의는 상세한 조건 나열은 생략하더라도 일단 소규모 그룹이나 단체의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일국가의 무수한 정책을 일일이 국민들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다. 우리는 우리의 의사를 제대로 대표해 정책에 반영해줄 국회의원과 국가 수반을 뽑을 수 있을 뿐이다.

국회의원 및 대통령 선거가 매우 중요하고 많은 국민이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들이 자신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결정하는 정책이 민의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인가에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표자로 선출된 이들이 선출 이후 국민과 밀착해 민심을 그대로 반영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국민과 유리된 채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 소속 정당에 따라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4년에서 5년마다 되풀이되는 선거 경험이 충분히 알려주고 있다. 하여, 후보자들 개개인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경험과 결정을 해왔고, 어떤 가치관과 사상을 가지고 있는가를 면밀하게 검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단 대표로 뽑히고 나면 그들은 마치 왕정의 왕과 귀족 계급처럼 때로는 의기투합하고 때로는 당리당략에 따라 갈등하고 힘겨루기를 하면서 국가 기조와 정책을 마음대로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선비의 배반?

▲ <선비의 배반>(박성순 지음, 고즈윈 펴냄). ⓒ고즈윈
소장 역사학자 박성순의 <선비의 배반>(고즈윈 펴냄)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 아래에서 조선 시대 지배층이었던 선비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 지도자들을 우리의 대표로 뽑아야 하는가, 혹은 대표자들 자신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책으로 읽힐 수도 있다. 조선 시대의 왕과 선비는 마치 현재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처럼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역사란 무릇 과거의 사건이 현재 및 미래에 어떤 교훈을 주는가로서의 가치,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가치를 가지지 않는가.

이 책은 작년인 2011년, 조선 개국기에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사대부 중심의 국가를 꿈꾸었던 유학자 정도전과 이를 제지하고자 했던 태조의 대결이 세종조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기본적 구도와 동일한 기반 아래 논지를 펼친다. 조선은 그 존속 기간 내내, 특히 중기 이후에는 명백하게 왕권과 신권의 권력 다툼, 즉 왕과 선비층인 사림 사이의 알력이 중요한 이슈였던 국가였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몰락은 외부적 요인, 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내적 원인이 결정적인 것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다. 조선 이전, 한반도를 지배했던 고려의 몰락이 그러했다. 고려 말은 무신 정권기 국가 기강의 문란이 몽고 간섭기의 친원 세력의 등장으로 심화되어 일부 권문세족들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온갖 경제적 비리를 저지르며 국가의 부를 사적으로 독점하여 민생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던 시기였다.

고려 말, 공민왕은 국가의 자주성과 왕권 회복 및 민생을 구제할 목적으로 자신을 도와줄 이들을 양성했는데, 이들이 바로 조선 시대 사대부 양반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학자 집단, 신진 사대부였다. 이들 신진 사대부들은 공민왕 사후 지방 토호에서 출발하여 국가적 영웅이 된 무인 이성계와 협력하여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웠던 것이다. 조선은 고려 말의 사회적 부조리를 극복하려는 신진 사대부들이 주축이 되어 성립했고, 이들은 조선의 국가 이념, 사상적 토대 또한 제공했다.

<선비의 배반>의 저자 박성순은 이들 신진 사대부들이 적어도 조선 초기에는 진보적인 사회 개혁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었음을 지적한다. 신진 사대부들은 고려 말의 극심한 부패를 일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선을 개국한 만큼 여민(黎民), 즉 백성을 위하는 길을 유학자들이 걸어야 할 길로 생각했다. 이들은 사전(私田)을 금지하고 토지를 국유화하여 백성들에게 고루 분배하고, <주례>의 만민평등 사상에 입각하여 천민을 해방시켜 양인의 수를 늘리는 등의 정책을 생각해내었으며 또한 실행하고자 노력했다. 따라서 조선 초기 유학자 관료 그룹은, 관학파 학자들로서 이들은 부국강병 위주의 공리(功利)를 추구하는 면이 강했으며, 따라서 기술도 조선 중·후기와는 달리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조선이 빠르게 강력한 국가로서 안정적인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실질적 이로움을 중시하는 관학파 관료들과 왕 사이에 의기투합이 있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선비들의 변심과 함께 조선 또한 유약해져 갔으며, 유학은 공리(功利)가 아니라 공리공담(空理空談), 허울 좋은 명분론으로 변질되어 간다. 조선 초 건국 공신들의 개혁에 대한 열망은 이들이 권력을 안정적으로 쥐게 되고 행사하게 되면서 변질된 것이다. 이들이 다시 권문세족화되면서 고려 말에 횡행했던 토지 겸병이 일어났고, 이들은 광대한 농장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이들 훈구파의 전횡에 반기를 들고 등장한 이들이 이후 조선의 주요 지배층이 되는 사림들이다. 중종반정을 통해 크게 입직한 조광조로 대표되는 이들 사림은 <주례>를 중심으로 공리(功利)에 치중했던 관학파와는 달리, 사람의 정신 수양과 도덕을 강조하는 <심경>을 매우 중시했다. 사림은 고려 말, 의리와 충심을 들어 조선 개국에 반대하거나 미온적이었던 정몽주를 상징으로 하는 일단의 유학자 그룹의 대를 잇는 이들이기도 했다.

중종반정을 통해 훈구파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사림은 이때부터 왕에게 <심경>을 경연의 주요 과목으로 삼을 것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심경>의 강요는 표면적으로는 군주가 도를 닦아 성(誠)을 이루면 하늘의 뜻을 깨우치는 것이며 이로써 그 백성이 교화되어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입각한 것이다. 이는 백성의 뜻은 곧 하늘의 뜻이라는 "천인 합일설"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명분일뿐 <심경>의 강요는 정도전의 총재론(冢宰論)에 입각하여 어리석을 수 있는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재상, 즉 선비들의 지도 아래에 두려고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심경>은 사림들의 왕권 견제의 한 수단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왕의 독재와 어리석은 독주를 관리들이 견제한다는 사고는 사실 매우 훌륭한 것이며, 왕의 잘못된 판단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사림들이 왕권의 견제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썼다는 것에 있다. 이들 사림은 도의적 명분과 허울뿐인 도덕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고, 자기들 안에서 끝없이 분열하고 당쟁을 일삼으면서 이후 조선이 약해져 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저자 박성순은 '선비'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끊임없이 수행하고 청렴, 청빈, 절제, 검약의 정신으로 삶 자체를 이상화한 이들"이라는 이미지가 허구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이 성리학적 자기 수행의 강조를 왕권을 억압하고 국정을 농단하여 사대부 독존의 사회 체제를 굳건히 하고자 하는 이기적 욕망에 따라 움직였으며, 따라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비에 대한 좋은 이미지에 반하는 선비들의 실제 행태가 일종의 '배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속이기와 당하기

박성순의 <선비의 배반>은 좋은 정치 제도와 지도자란 공리(空理)가 아닌 공리(功利)를, 명분이 아닌 실익을, 한 줌의 무리가 아닌 백성 전체의 민생 안정을 좇는 제도와 그것들을 추구하는 지도자라고 말한다. 조선은 왕조 국가였지만 어쨌거나 민심과 여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 유학에 기반을 두고 성립한 국가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민이 관을 선출하여 민심을 정책화하고자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이상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기성 정치인들과 현실 정치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어떤 이상을 내세운다. 예컨대 누구나 정의, 평화, 복지 같은 것을 내세우는 식이다. 이 같은 단어들은 매우 아름답다. 평화를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에 뭉클해져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 단어는 또한 매우 추상적이다. 중요한 것은 도대체 어떤 정의, 어떤 평화, 어떤 복지인가의 문제이다. 또 그렇게 구체화된 정의와 평화와 복지가 과연 이 땅에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필요로 하는 것인가를 따져보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함은 물론이다. 더불어 '어떻게' 그것들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 또한 그러하다.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단어나 당위적 도덕주의 같은 것은 자위나 기만적 위안은 될지언정 현실 안에서는 매우 무력한 허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 후기의 마지막 단락은 꽤 인상적이었는데, 아마도 이것이 기존 기성 정치인들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일군이 다양한 정치 세력들과 정치인 후보자들,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이 가슴에 새기고 스스로를 한 번 정도는 돌아봐야 할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여 다음과 같이 직접 인용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조광조 일파는 (…) 청신성을 장점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미숙함과 이에 못지않은 정치적 야망이 혼합된 순수함과 교활함의 이중적 인격체로 파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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