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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을 누가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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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을 누가 죽였는가?

[해방일기] 1947년 8월 3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1947년 8월 3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기협 : 오늘(3일) 몽양 선생의 장례식이 거행됩니다. 그 동안 이런저런 곡절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그분이 선생님께 제일 가까운 동지로 보이는데, 우선 위로 말씀 드립니다.

안재홍 : 고맙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친구라서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민족의 장래를 함께 걱정하던 그분이 이렇게 떠나버리니 그러지 않아도 험난한 앞길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막막하기 이를 데 없군요.

김기협 : 몇 달 전(1947년 3월 5일) 선생님께 여쭙던 생각이 납니다. 그분이 선생님보다 다섯 살 연상이신데, 그분 얘기할 때 선생님이 "몽양, 몽양" 하면서 동무 얘기하듯 경어를 쓰지 않는 게 좀 이상했어요. 그때 선생님이 말씀하셨죠. 그분의 대범함이 지나쳐 무책임에 이를까 걱정될 때가 있다고. 하지만 허술한 듯하면서도 큰 믿음은 확실한 분이라고.

안재홍 : 맞아요. 그분과 나는 기질이 크게 달라요. 그분은 호걸이고 나는 골샌님이죠. 생각도 행동도 젊은이 같은 분이어서 함께 일하려면 내가 노인 노릇을 맡아야 하니까, 사실 그분이 아우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죠.

2년 전 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함께 꾸리던 때가 엊그제 같네요. 우익 쪽은 호응이 미약한데 좌익 쪽에서는 열심히 달려들고 있었죠. 나는 시작 단계에서 균형을 잃는 것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좌익 쪽 참여를 좀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봤는데, 그분은 좌익이 마음껏 들어와 일하는 걸 봐야 우익 쪽도 자극을 받는다고 문을 활짝 열어놓자는 주장이었습니다.

건준이라는 모처럼의 기회를 그런 식으로 날려버리는 걸 보면서 이런 분이랑은 함께 일하기 힘들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고 생각하니 당시 한국민주당 쪽 움직임이나 콤그룹 쪽 움직임이나 그런 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몽양의 자유 방임적 방침이 그런 형세가 빨리 드러나도록 했다는 점에서 현명했던 거죠. 문제가 드러나야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김기협 : 해방 당시 국내 인물 중 가장 명망이 큰 분들이 신문사 경영하던 분들이었죠. 선생님과 몽양 선생 그리고 고하(송진우) 선생과 고당(조만식) 선생이었습니다. 1945년 말 고하 선생 조난에 이어 이제 몽양 선생이 변을 당했는데, 두 암살의 성격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안재홍 : 고하의 조난은 혼란 속의 우발적 사건인 반면 몽양 암살은 큰 힘을 가진 세력의 조직적 범죄라고 봅니다. 고하 때는 경찰력이 미비할 때라서 몇 사람만 조직적으로 움직여도 암살이 가능할 때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막강한 미군 CIC는 차치하고라도 경찰력이 왜정시대의 갑절이나 됩니다. 지난 5월에도 이번 저격과 똑같은 백주대로상에서의 습격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번 암살은 막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막지 않은 것입니다.

김기협 : 열아홉 살 소년 하나가 범인이라고 잡혀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흉수로 여기지 않습니다. 진짜 범인은 바로 경찰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재홍 :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얘기죠. 지난 3월 몽양 자택 폭파사건 때 정창화라는 청년이 범인이라고 자수했고, 경찰은 이 청년을 이용해 몽양을 잔뜩 놀려먹고 나서 도로 풀어주지 않았습니까? 경찰 개혁을 주장해 온 우리 합작파를 친일 경찰과 조병옥, 장택상이 적으로 여긴다는 것은 세상이 아는 사실인데, 그 사실이 다시 확인된 일이었죠.

이번 한지근 경우는 체포인지 자수인지도 아리송하고, 정창화의 자수보다도 더 황당해요. 장택상은 노덕술과 최운하가 자기한테 보고도 없이 한지근을 체포했다며 두 사람을 정직시켰다고 하는데, 어처구니없는 얘깁니다. 노덕술, 최운하가 장택상 모르게 움직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런 얘기 듣는 사람들은 "아, 장택상이가 뭔가 숨기는 게 있구나."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5월에 이어 백주대낮에 혜화동 파출소 부근을 범행 장소로 택한 것은 경찰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경찰의 "우연한" 행동 두 가지가 범행에 결정적 도움이 됐습니다. 첫째, 순찰차 한 대의 움직임이 몽양이 탄 차를 가로막아 속도를 줄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둘째, 범인을 추격하는 경호원을 외근 중이라는 경찰관이 범인으로 "오인"했다며 붙잡아 추격을 방해했습니다.

경찰 자체가 암살을 행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떠돌고 있는데, 경찰 지휘권을 갖고 있는 민정장관으로서도 반박할 길이 없습니다. 상당수의 경찰관이 범행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은 것은 분명한 일로 보입니다.

김기협 : 경찰이 우익 테러에 협조해 온 것은 광범위한 현상이죠. 아마 혜화동의 경관들에게 "혹시 무슨 소동이 일어나도 열심히 나설 것 없다"는 귀띔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을 겁니다. 아무튼 경찰의 협조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렇다면 우익테러에 틀림없는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했겠군요.

당시에는 이북 출신 19세 소년 한지근의 단독 범행으로 처리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죠. 공소 시효가 훨씬 지난 1974년에 공범 4명이 사건 진상을 밝히고 나섰습니다. "역사를 바로잡고 원통하게 죽은 한 동지의 제사라도 떳떳이 지내기 위해" 전모를 밝히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었습니다.

그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한지근의 본명은 이필형이고 당시 21세였다는군요.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와 연계된 테러리스트 집단이었다고 하고요. 그런데 모의 과정에서 선생님과 김규식 선생도 표적으로 거론된 일이 있다고 하니, 합작파를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중 몽양 선생이 결국 표적으로 결정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안재홍 : 몽양은 여러 차례 테러를 당했고, 그중에는 좌익 테러도 있었습니다. 좌익 테러는 위협에 목적을 둔 것이었습니다. 목숨을 노린 테러는 우익의 것이죠. 아무튼 몽양에 대해서는 좌익 소행이라고 우길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겠죠. 그리고 테러를 자행하는 우익 단체에서는 '반공'을 명분으로 내겁니다. 그래서 몽양을 표적으로 삼기가 쉬웠겠죠.

그리고 좌우 합작 사업에서 몽양의 역할이 정말 컸다는 사실을 그가 떠나고 나니 새삼 절실하게 느낍니다. 우익에는 김 박사나 내가 아니라도 나설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하지만 좌익에서는 몽양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없습니다. 남로당의 지침에 묶이지 않으면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이북 지도부와도 허심탄회하게 의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어디서 다시 찾겠습니까.

김기협 : 몽양 선생을 회고한 글(<민세 안재홍 선집 2> 198~207쪽 '몽양 여운형 씨의 추억')을 "나무라고 싶다고도 탐탁스러이 생각되고, 미운 듯하다가도 그리운 인물"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오늘 하관식 후 어느 기자에게 "몽양의 하관식을 보고 돌아서는 나의 심경은 그지없이 적막하다. 허다한 훼예(毁譽)를 귀 밖으로 들으면서 오직 민족 결합을 위해 갖은 고심을 함께 하였더니, 이제는 이미 유명의 길이 갈렸구나" 한 말로 끝냈습니다.

해방 후 선생님과 몽양 선생은 건준에서 힘을 합치려다가 실패했고, 좌우 합작에 뜻을 모으던 중에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떠났어도 선생님은 좌우 합작과 미소공위 성공을 위해 매진하실 텐데, 그 전망을 어떻게 보시는가요?

안재홍 : 좌우 합작은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작년 10월의 7원칙에서 거두기 시작한 성과죠. 이번 미소공위 재개에 임해 합작을 지지하는 정당-단체들이 시국대책협의회를 구성해 미소공위 시문서를 함께 작성하는 과정에서 큰 성과가 확보되었습니다.

애초에 좌익과 우익이 갈라선 것은 독립건국을 쉽게 봤기 때문입니다. 건국은 당연히 될 것이니, 그 정책에서 평등에 중점을 둘 것인가, 자유에 중점을 둘 것인가 하는, 어찌 보면 부차적인 문제를 갖고 나는 우익이다, 너는 좌익이다, 했던 겁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는 동안 건국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니, 안 되겠다, 정책에서는 각자 욕심을 접어놓고 우선 건국부터 확실히 해놓은 뒤에 부차적인 문제는 생각하자고 뭉친 겁니다. 뭉친 우리는 좌익도 아니고 우익도 아닌 '중간파'입니다.

분단 건국을 원하는 세력들이 지금 조선에서는 기승을 떨고 있습니다. 미소공위 분위기도 다시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이제 동지 중에 목숨을 빼앗긴 사람까지 나왔습니다.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미국 측에서는 유엔 상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확실한 분단 건국의 길입니다. 중간파의 노력이 분단 건국을 막고 통일 민족 국가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 장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야죠. 실패 자체도 애통한 일이겠지만, 지금 여기 있는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역사 앞에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이 될 겁니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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