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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기억은?

[프레시안 books]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이 문장은 아프리카 작가 아마도우 함파테 바가 1960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한 말이다. 소멸해가는 언어의 최후 화자 한명이 죽어갈 때 우리가 잃게 되는 것들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한 문장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소수 언어 화자 한 사람의 말 속에 담긴 것들이 자그마한 서재 하나로 축소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 게놈의 복잡성에 견줄 만한 광대한 지식체계, 인간의 진화의 비밀을 담고 있는 거대한 도서관에 견줄 만하다. 하나의 언어는 문법서, 사전, 식물 및 동물 백과사전, 노래 모음집, 이야기 모음집 등을 골고루 갖춘 가진 독자적인 도서관이다.

따라서 하나의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복합 정보지식체계를 담고 있는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 현재 6000여개에 이르는 전 세계 언어들은 2주일에 하나 꼴로 사라져 금세기 말이면 절반으로 쪼그라들 것이라고 한다.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김기혁, 호정은 옮김, 글항아리 펴냄)는 세계 어딘가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소수언어의 소멸과 죽음을 기록한 애도의 보고서이다.

애도에 요구되는 첫째 과제는 죽어가는 것들이 말하는 것을 귀 기울여 듣는 일이다. 주의 깊게 듣는 '열린 귀'와 온전하게 기록하는 '성실한 손'이 없다면 죽어가는 것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애도는 떠나보내는 것이면서 기억하는 것이다.

"이렇게 근사한 언어들이 침묵 속으로 사라져 버릴 때 그 공동체는 물론 학계가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보면서 느낀 절망감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쓰도록 이끌었다."


▲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니컬러스 에번스 지음, 김기혁, 호정은 옮김, 글항아리 펴냄). ⓒ글항아리
저자 니컬러스 에번스는 호주 국립대학교 아시아-태평양대학 문학·역사·언어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 통역사이다. 그는 호주와 파푸아뉴기니의 토착 부족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언어를 채집하고 기록한 현장 언어학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 책은 소멸하는 언어와 함께 우리가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이고, 언어의 죽음이 왜 문제이며, 우리가 이 비극적 상황에 대응하는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언어의 소멸을 다룬 여타 저작들과 이 책을 결정적으로 구분해주는 것은 이 중차대한 문제를 언어학이라는 학문담론에 갇히지 않고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저자의 뛰어난 능력이다.

자신이 채집하는 소수언어의 마지막 화자들처럼 에반스는 평범한 일상어에서 심오한 삶의 진리를 끌어내는 시적 자질을 지니고 있다. 그는 전문적 학술 언어와 음유시인의 시적 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예외적 인물이다. 사라지는 언어의 증언자들과 직접 생활하며 겪은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사례, 이들에 대한 깊은 인간적 공감, 전문적 학술역량, 일반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학문적 경계를 넘나드는 폭넓은 시야는 2010년 이 책이 출판되어 나왔을 때 받은 찬사가 전혀 과장이 아님을 증명한다.

에번스는 한국 언어학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북미 언어학의 보편주의적 경향과 달리 개개 언어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 모든 언어에 공통되는 보편자질이 존재한다는 입장은 촘스키의 생성문법이론이 영향력을 획득한 이후 언어학의 지배적 조류로 올라선다. 하지만 에반스는 세계 언어의 다양성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 무시한 채 제한된 표본에 기초하여 보편성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생한 사례로 입증한다.

예를 들어 심리언어학자 스피븐 핑커와 폴 블룸은 언어진화에 관한 유명한 논문에서 "명사에 결합하는 접사로 시제를 표현하는 언어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호주 퀸즐랜드 주 벤팅크 섬의 원주민 어인 카야르딜드 어는 동사 뿐 아니라 명사에도 시제를 표시한다.

책의 서두에 인용되어있듯, 카야르딜드 어로 "그는 바다거북을 보았다"는 문장은 'niya kurrijarra bangana'인데, 과거시제를 동사인 'kurrij(보다)'에 -arra로 표시할 뿐 아니라 목적어 명사 'banga(바다거북이)'에도 –na로 표시한다.

동사가 아닌 명사에 시제를 붙이는 이런 독특한 문법체계는 다른 언어에는 좀체 찾기 어려운 특성이다. 여기서 시제는 동사에 의해 표현되는 행위 뿐 아니라 참여자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낸다. 카야르딜드 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언어에는 없는 문법을 터득하는 것이고, 이는 시제에 대한 다른 개념체계를 습득하는 것이다.

위 예가 보여주듯이, 개개 언어는 세계를 인지하는 독특한 사고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언어적 차이는 경험이라는 반죽 덩어리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범주들을 만들어내는 쿠키 칼 역할을 한다." 특정 언어에는 사물과 물질의 경계, 공간, 시간, 색채, 인과관계, 사건구조 등 경험을 조직화하는 고유한 방식이 들어있다.

"누가 무엇을 알고 느끼고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계속 기억하는" 사회적 인지능력 때문에 인간은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고 여타 동물 종을 넘어서는 비약적 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 인간이 습득한 이 획기적 능력을 배우려면 주목해야 하는 소리의 차이가 무엇이고, 소리를 의미에, 다시 의미를 소리에 연결 짓는 문법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음성, 의미, 문법, 이 세 과업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벅찬 일이다. 네 살짜리 어린아이는 한꺼번에 능숙하게 해내는 이 일을 지금까지 어떤 슈퍼컴퓨터도 암호 해독 전문가도 해낸 적이 없다.

하나의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이 세 가지가 독특하게 짜인 사고체계를 잃는 것이며, 이 체계 속에 담긴 수많은 문화적 기억과 심층역사, 그리고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을 잃는 것이다.

따라서 에번스가 언어 소멸현상에서 읽어낸 것은 언어적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와 문화와 사고가 상호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드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내게 특히 인상 깊게 다가왔던 것은 그가 시학을 포괄해 들이는 방식이다. 위기에 처한 언어들은 시와 노래와 이야기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정형화된 운율은 언어적 제약을 가져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운문과 사유를 결합함으로써 언어적 잠재력을 실현하는 뛰어난 수단이다.

복잡한 음성학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구송(口誦) 시인들은 뛰어난 음성학자였다. 그들은 운율을 맞추기 위해 음성을 세분화하고, 음절을 늘리고 줄이며, 리듬을 맞추는 본능적 지식을 갖고 있었다. "모든 언어에는 그 나름의 셰익스피어가 있다"는 말은 해당 언어의 창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시인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언어가 죽어가면서 사라지는 것이 바로 수많은 셰익스피어들의 구술시에 표현된 창조성이다.

언어와 함께 사라지는 이 모든 것들을 보존하기 위해 에번스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강조한다. 여기엔 현장 언어학자로서 소멸 언어를 기록하는 기술적 작업도 있고, 모국어 언어 화자를 양성하기 위한 실제 언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도 있다.

언어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천적 작업이 긴박하게 이루질 때 우리는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문화자원의 소멸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다. "시간과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그의 발언에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어가는" 언어를 안타까이 지켜보는 절망감이 묻어난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서 받는 전반적인 느낌은 절망감이 아니다. 언어소멸이라는 음울한 주제 사이로 소수언어들의 내재적 아름다움이 사금파리처럼 빛나고 있다. 물론 이는 소멸언어의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는 저자 에번스의 뛰어난 능력에서 기인한다.

그는 훌륭한 여행문학 작가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들은 참으로 경이롭다. 당신은 그것들을 즐겨야 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언어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기쁨을 경험하는 일이다.

이 기쁨을 체험하는데 한국어 번역본이 기여한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역자 김기혁과 호정은은 원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정확하고 품위 있는 한국어로 옮기는데 성공하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원서를 이 정도로 완벽하게 옮긴 역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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