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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교수의 '욕망', '날라리' 여배우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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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교수의 '욕망', '날라리' 여배우를 만나면…

[김여진+김두식] '<연애>·<욕망해도 괜찮아>' 북 콘서트

마흔을 넘긴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해도 괜찮다"며 '달달한' 시간을 가졌다. 한 명은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배우고 한 명은 법학부 교수이자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쓴 유명 저자다. 두 사람에겐 각각 배우자가 있다.

오해는 금물. <연애>(클 펴냄)를 쓴 배우 김여진과 <욕망해도 괜찮아>(창비 펴냄)를 쓴 경북대학교 교수 김두식이 출간 기념행사로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두 책의 제목을 합쳐 주제는 '연애해도 괜찮아'. 마침 날은 전설의 커플이 만난다는 7월 7석이었다. (음력은 아니지만!)

1부 김여진의 강연과 김두식(질문)-김여진(대답)의 대화, 2부는 그 순서를 바꾸어 진행된 이날 행사는, 200여 명의 독자들이 자리한 가운데 유쾌하고도 격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애인과의 데이트 장소는 늘 서점이었"던 '모범생' 김두식과, "현재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2박3일간 서로 그동안 해온 연애 이야기만 했다"고 말하는 '날라리' 김여진은 색(色)을 드러내고 계(戒)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고백'의 세계로 안내했다.

다음은 행사의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프레시안(최형락)

김여진 "나를 키운 건 8할이 연애다!"

배우 김여진은 스스로 "연애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말한다. "솔직히 난 연애로 여기까지 왔고, 연애로 컸다"고 고백한다. 그의 기억력도 연애 친화적이라 "어린 날을 돌아보면, 1년에 딱 한 사람씩만 이름이 생각난다." 또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도 연애 친화적인 듯하다. "열세 살 쯤 만약 감옥에 갇힌다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상상해봤는데, 거기서 누구 한 명을 좋아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무엇보다 그는 연애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엄청나게 노력해도 겨우 5퍼센트 정도이지만, 유일한 변화의 가능성은 사랑에 빠졌을 때 주어진단다. 그는 "다행히 현재 내 남편도 연애가 만들어낸 사람"이라며 "연애 초기에 2박3일 동안 서로가 지금까지 한 연애 이야기만 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래서 매력을 느꼈다는 남편에 대해 "그가 만난 그 여자들이 없었다면 남편은 '그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 한다.

사실 그의 일도 마찬가지다. 연예인은 사랑을 받아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니까. "아무리 이창동 감독이 나를 택해주길 바라도 그는 문소리 씨를 택한 것처럼"이란 비유가 나오자 객석에선 그녀의 솔직함에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녀의 첫 책에는 영화 <박하사탕>에서 함께 한 이 감독의 차기작(<오아시스>)에 자신만 캐스팅되지 못해 큰 상처를 받고 문소리에 대한 질투에 휩싸였던 일화도 등장한다.


▲ <연애>(김여진 지음, 클 펴냄). ⓒ클
"연애로 인해 좌절에서 헤어 나오고 추스르는 과정을 겪었고, 그러다 보니 웬만한 일에선 크게 힘들지 않더라고요. 그걸 거듭하면서 자라고 튼튼해져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그러면 다른 곳에도 눈이 돌아가게 되더군요. 그게 2011년의 일입니다."

성인간의 만남과 사랑, 일에서의 환희와 좌절. 이 말고도 그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연애'가 있다. '2011년의 일'은 그가 해고당한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을 돕기 위해 '날라리 외부세력'을 만들어 활동한 일, 희망버스를 타고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을 만나러 영도에 갔던 일을 말한다. "어떻게든 만나러 가고 싶고, 뭐 잘못 될까봐 노심초사했던" 기억과 그가 펼친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그는 "일종의 '연애질'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연애>는 차디찬 홍대에서, 뜨거운 영도에서 노동자들과 그녀를 포함한 '날라리'들이 나눈 연애담이기도 한 셈이다.

① 김두식이 묻고 김여진이 답하다

김두식 : <연애>는 홍대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청소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을 때, 홍대 학생회장과 밥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김여진 씨가 '밥 한 번 먹자'며 블로그에 올린 글도 화제가 되었었죠. 읽으면서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 마음이 많이 다쳤겠죠.

김여진 : 그 친구는 저를 만났을 때 이미 많이 다친 상황이었어요. '비운동권' 학생들이 퍼런 점퍼를 입고 마치 '구사대'처럼 청소 노동자의 집회를 방해하는 장면을 누가 사진으로 찍었어요. 그게 트위터에 올라 와 한참 욕을 먹고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본인도 아마 인터넷의 반응을 보지 않았을까요.

그 친구가 되게 잘생겼어요. 이 미남 친구가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들 나름대로 논리가 있더군요. '우리들은 비운동권으로 당선됐다. 그래서 민주노총 같은 '외부세력'은 학습권을 위해 학교 바깥으로 내보내야 하는 게 우리를 당선시켜준 친구들에게 옳은 일이다. 그렇게 하면 이후엔 우리가 복직을 위해 돕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어머니들은 믿을 수가 없죠. 그분들은 노동자고, 그럼 노조에 속해 있는 게 당연해요. 그게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은 상위단체이고, 즉 불법단체가 아닌 거죠. 학교선 다만 그게 보기 싫었던 거고요.

그래서 일단 밥을 먹자고 했죠. 그런데 마지막까지 한 술도 안 뜨고 물만 마시더군요. 얼핏 봤는데 살짝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 같았어요. 정말 힘들어 보였어요. 무척 괴롭더군요. 왜냐하면 그 친구가 유달리 특별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그냥 당장 스펙과 시험, 취직이 걱정인,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게 싫을 뿐인 평범한 대학생들 중 하나인 거죠. 하지만 대표로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 거니까요.

김두식 : 1차 희망버스 때, 촬영을 마치자마자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데 조선소 들어가는 정문 담장에 드리워진 사다리가 아니라, 정문 수위실을 통해 들어갔다고 했죠. 사다리를 타지 않은 건 어떤 망설임 때문이었나요?

▲ 배우 김여진. ⓒ프레시안(최형락)
김여진 :
무서웠죠. 대학 다닐 때 했던 운동이 아직도 무서운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잡히고, 맞고, 최루탄이 날아다니고…. 그땐 사실 억지로 간 적이 많았어요. 제가 겁이 많아요. 얼어붙었죠. 영도에서도 사다리 밑에 경찰이 깔려 있었거든요. 그걸 뚫고 올라갈 생각을 하니 발이 안 떨어졌어요. 그러다 수위실 문이 열려서 사람들과 함께 몰려 들어갔죠.

김두식 : 다음날 조선소에서 나오자마자 경찰들에게 붙잡혔지요.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요.

김여진 : 네. 공교롭게도 조선소에 들어간 사람을 전원 연행하라는 방침이 떨어지자마자 처음 문을 나선 사람이 저였어요. 제가 집회 때 앞장서거나 그런 용감한 성격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나마 연예인이기 때문에 제 이름으로 기사가 나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전날 용역들에게 구타당하는 한진 노동자들 이야기를 써주길 바랄 땐 반응이 없던 기자들이, 앞 다퉈 나의 연행과 희망버스 이야기를 썼어요. 결과적으로는 고마운 일이 된 셈이었지요.

김두식 : 한국에선 명사가 사회적 발언을 하면 욕을 심하게 먹죠. 스트레스가 많은 일일 것 같은데요. 상처받지 않으시나요?

김여진 : 기본적으로 기사 밑의 댓글은 아예 보지 않고요. 트위터 멘션은 자주 보죠. 처음엔 인신 공격적인 멘션에 상처를 받곤 했는데, 이제 무선 말만 해도 다 '종북', '빨갱이'라고 하니 그냥 웃어넘기죠. 그러다 한 번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학살자'라 했다가 한나라당 정책자문위원이라는 아저씨한테 '미친X'이란 멘션을 받았는데. 그게 그렇게 신선하더라고요. (웃음) 거기에 '맞을지도'라는 멘트를 붙여 리트윗했는데 일이 커졌어요. 그분은 자문위원 사퇴하고, 한나라당은 공식 사과했어요. 그런데 저 좀 '미친' 거 맞습니다. 거리낄 것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사니까요. (웃음)

김두식 : 홍대와 한진에 이어, 연기·일에 대한 회고도 이 책의 또 다른 연애 이야기죠. 특히 연극 데뷔 무대에 서게 된 일화가 재미있습니다. 연극에 사로잡히게 된 여진 씨가 어느 날 신생극단의 연극을 본 뒤 "포스터라도 붙이게 해 달라"고 말한 게 입단의 계기였고요. 그렇게 포스터를 붙이고 연극을 구경하기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데뷔하게 됩니다.

중요 배역을 맡고 있었던 배우 박상아 씨가 슈퍼탤런트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어느 날 공연시간에 나타나지 않게 된 거죠. 공연 15분 전 대표가 "너 대사 다 외우지?"라며 벼락 결정을 하고, 여진 씨는 무대에 오릅니다. 이건 정말 한 편의 영화 아닙니까?

김여진 : 완전히 운이 좋았죠. 그때 그 극단은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고, 저도 노동이라기보단 헌신으로 포스터 붙이기에 임했던 것 같아요. 상대한테 아무 것도 안 바라고 퍼주기만 하는 사랑이었죠.

김두식 : 일 이야기 중에 또 인상적이었던 건, <오아시스>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인상을 받은 문소리 씨에 대한 질투였어요. 저는 매주 한 신문에서 '고백'이란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고백의 수위가 그 사람의 내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질투 같은 건 정말 고백하기 어려운 감정이에요. 상당한 내공을 가지신 거죠.

김여진 : 사실 그전까진 질투란 감정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책에서 썼다시피 한 기자가 "난 여진 씨의 <박하사탕> 때의 연기가 참 좋아서 <오아시스>도 할 줄 알았다"고 말했을 때 저도 모르게 울어버렸어요. 언젠가 법륜스님이 진행하는 집단 치유 대화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서로 마음속 깊은 얘기를 나누거든요. 그때도 이 이야길 농담처럼 꺼낼 생각이었는데 다시 눈물이 확 쏟아지더라고요.

그랬더니 법사님이 지금 당장 소리 씨한테 전화해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죽어도 못 하겠더라고요. 무섭기도 했고, 그때껏 내 안에 질투심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요. 이 얘길 완전히 털어놓은 건 이 책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소리 씨한테도 책을 보냈죠. 아직 답은 없어요. 아마 아직 못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면서도 떨리더라고요. (웃음)

ⓒ프레시안(최형락)

김두식 : 마지막으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짜 연애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김여진 씨, 연애에 '필살기'가 있나요?

김여진 : 아뇨. 연애로 컸다고는 했지만, 연애 횟수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성공적인 연애도 없었어요. 나의 '찌질함'만 확인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성장해 온 것 같아요. 실패에서 더 많이 배우잖아요.

그래도 하나 조언을 할게요. 지금 친구 사이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고백을 해버리면 친구 관계가 깨질까봐 걱정하죠. 그럴 때 전 무조건 고백하라고 조언합니다. 툭 던지듯, '나 너 좋아해'하고 말이에요. 그러면 일단 100퍼센트 차인다고 봐야 해요. 뜬금없잖아요.

그런데 차인 다음이 중요해요. 차이고 나서도 방긋이 웃으며 반갑게 그를 대하는 거죠. 그러면 다음부턴 저쪽에서 날 의식해요. 쟤 뭐지? 뭐였지? 하면서 걔가 날 관찰하기 시작하는 거죠. (웃음) 그러다 밥 한 번 먹자고 이야기하면 다 좋다고 해요. 그 사람한테 공을 넘겨준 거거든요. 받은 사람은 어떻게든 공을 처리해야 하는 거니까요.

김두식 :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김여진 : 전 언제나 '지금'이예요. 30대 후반부터는 늘 행복한 일이 오늘, 오늘, 오늘로 갱신되어 온 것 같아요.

김두식 : 지금 푹 빠져 있는 '연애' 상대는 얼마 전 출산한 아이라고 들었어요. 출산 이후에 집에만 있다면서요. 이 자리에도 모시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저라고 뭐 아이 안 키워봤나요? (웃음)

김여진 : 올해 마흔한 살인데요. 이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그런지 더더욱 그래요. 이 아이가 제일 중요하고 다른 일은 방해처럼 느껴져요. 제가 뭐에 빠져 있을 땐 아주 푹 빠져서 절대 다른 걸 보지 못하거든요.

김두식 :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나요.

김여진 :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으면 하는데 벌써부터 '너무 기대하면 어쩌나'하고 가슴이 떨려요. 제가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약속은 엄마가 필요한 시점까지는 반드시 곁에 있어 주고,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부터는 절대 잡지 않고 뒤에서 지켜봐주겠다는 거예요. 이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더라도 예쁠 거고 사랑을 줄 수 있을 거예요.

ⓒ프레시안(최형락)

김두식 "헤어질 용기, 당신을 사람으로 만든다!"

<욕망해도 괜찮아>를 내고 얼마 후, 김두식은 미국에 있는 친한 친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너 이번에도 출판사가 하자는 대로 할 거지?" 책 속에도 등장하는 첫사랑 그녀의 이메일의 요지는 '휘둘리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김두식은 뜨끔했다고 고백한다.

'착한 사람.'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김두식은 "나는 착한 척 하는 사람일뿐, 착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매일 학교에서 집에서, 자기도 깜짝 놀랄 만한 '악마적인' 모습을 마주한다는 그가 자신의 규범적 삶을 돌아보고, 그 속을 비집고 나왔던 욕망들을 내밀하게 고백한 책이 바로 <욕망해도 괜찮아>다.

▲ <욕망해도 괜찮아>(김두식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실린 글들의 연재 시 제목은 '색, 계'. 그를 아는 사람들은 놀랐을 지도 모른다. "공부 못 하면 사람도 아닌 분위기"가 팽배한 '선생님 집'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그에겐 아슬아슬한 고백이었다. "어머니가 내가 쓴 법·교회 관련 책은 한 아름 받아 주변에 뿌리더니, 이번 책만큼은 한 권 이상 받지 않더라"는 그의 농담을 통해, 이 책이 그에게 있어선 하나의 파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어서 그가 밝힌 자신의 짤막한 연애사(史)는 애처로울 정도다. 연애할 때 여자 친구를 만나는 장소는 늘 서점(종로서적)이었고 심지어 어려운 신학 책을 읽어오라고 시키기도 했다. MT에 가지 말라고 통제하기도 했고, 밤 10시에 전화해 잘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친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한 여자로부터는 "넌 성자(聖者)병 환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혼전순결주의자였음은 당연했다.

대학에 들어와 처음 겪은 긴 연애에서 특히 자신의 오류를 많이 발견했다는 그는 "이 오류를 수정하기 위한 과정이 나의 인생이었다"고 고백한다. 오랜 기간 그 오류와 싸워 온 그는, 이제 연애 상담을 요청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사람 될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이별"이라고 충고한단다.

"연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헤어질 수 있는 용기입니다. 대부분의 연애는 자기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지 종착점이 아닙니다. 열정이 식은 후의 우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오히려 연애를 지탱하는 힘이죠. 무엇보다 혼자 있을 줄 아는 사람만이 둘이 있을 때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그는 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 위해 필요한 기술로 독서를 들었다. 스스로도 멋쩍은지 웃는 그에게, 관객들은 작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다운 마무리이자, 그가 책을 통해 넘을 선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귀여운 예고이기도 했다.

▲ 김두식 경북대 법학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② 김여진이 묻고 김두식이 답하다

김여진 : 김두식 교수님 처음 뵈었을 때 너무 '모범생'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두식 : 교사 부모 밑에서 자란 영향이 컸죠. 그리고 형에 대한 반작용도 있었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잠깐 집을 비우면 중학생인 형이 어디선가 맥주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곤 했죠. 형이 그런 사람이다 보니… (일동 웃음)

김여진 : 그랬던 교수님이 <욕망해도 괜찮아>를 쓰게 된 동기, 아니 '용기'가 궁금해요.

김두식 :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예전 같으면 이런 행사에 나오기 전에 할 말을 미리 다 준비해 왔을 텐데, 이제 안 그러기로 했거든요. 실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사람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김여진 : 이 책, 맨 처음 등장하는 일화부터 인상적입니다. 충분히 유명하시지만, 이른바 '듣보잡'의 비애에 대해 말했어요. 출판사 회의실에서 벌어진 계간지 모임에 잠깐 들르게 되었는데, 편집장이 "김두식 교수님이십니다"라고 소개했더니 아무도 모르는 분위기였다고. (웃음) 편집자 분들이 으레 하는 착각이죠. 저자를 모두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하니까요.

김두식 : 안 그래도 얼마 전 인권연대 행사에 갔는데, 오창익 사무국장이 절 막 끌고 가더니 가수 정태춘 선생님한테 인사를 시키더군요. 오 사무국장은 "<한겨레>에 '고백' 연재하는 김두식 교수 아시죠?"라고 말했는데 정 선생이 딱 한마디 하더라고요. "…제가 요즘 신문을 전혀 안 봐서요." (일동 웃음)

여진 씨는 연예인이니까 예외겠지만, 본업이 공부나 글인 사람은 사실 어딜 가나 '듣보잡'입니다. 전 국민이 아는 저자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저자들이 '아, 나는 듣보잡이었구나' 하는 경험을 갖고 있죠. 책에도 고백했다시피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가끔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요. 저에게도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죠.

김여진 : 그런 자신의 욕망들을, 이 책을 쓰시면서 들여다보게 되신 건가요?

김두식 : 사실 그 전부터 스스로 제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낙태나 성폭행 피해 같은, 여성으로서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을 만날 때 간혹 마음속에 스리슬쩍, '조심 좀 했으면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이 스치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고통과 고난을 겪어보신 분들은 어떤 토도 달지 않고 타인의 아픔을 끌어안아주시더라고요. 거기엔 말이 필요 없고, 행동만 있을 뿐이죠. 그 분들을 보며 규범적인 제 인생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을 죽 살펴보고 분석해 간 과정이 이 책이고요.

ⓒ프레시안(최형락)

김여진 : 규범적 인생으로부터의 탈피라고 한다면, 전 검사를 그만두고 미국에 가서 육아에 전념하셨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요. 그렇게 한 이유가 뭐예요?

김두식 : 자랑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 정말로 사법시험을 너무 쉽게 통과했어요. 그 시험은 자기가 아침에 본 문제가 비중이 크게 출제되면 붙는 시험이거든요. 제 경우가 그랬어요. 그때부터 전 '아, 이 합격은 내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 검찰 조직은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조직도, 제가 어울리는 조직도 아니더군요. 마음만 먹으면 사건을 잘 처리할 수야 있겠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한 달 300건 이상 처리한다는 중압감을 이겨낼 수 없더군요. 그만두기 아깝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짧은 검사 생활이었기 때문에 미련도 부담도 별로 없었습니다. 마침 딸은 우리 어머니가 키우고 제 처는 미국 유학 중인, 가족이 말 그대로 뿔뿔이 흩어진 상황이었어요. 이걸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김여진 : 그때 전업 육아는 어떤 경험이었나요?

김두식 : 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가 너무 보고 싶다는 김여진 씨가 이해가 안 돼요. (웃음) 전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 애가 한두 살 무렵엔 확 어디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이메일 하나 쓰는 시간에도 옆에서 칭얼대지, 말도 안 통하지…. 이젠 다 커서 이런 말에 상처도 안 받습니다. (웃음)

그러다 좀 자라서 아이가 유치원을 가게 되었어요. 어느 날 아이를 유치원 보낸 뒤 침대에 나자빠져 있었는데, 외출하고 돌아 온 아내가 오후까지 아침 모습 그대로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짠했나봐요. 아무 말 없이 100달러를 쥐어주며 나가서 놀고 오라고 하더군요. 그날 영화를 보고 책을 사고 혼자 돌아다녔어요. 좀 풀리더라고요. 내가 참 단순한 인간임을 알았죠. 말은 이렇게 해도, 그 당시 경험은 제게 정말 큰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김여진 : 만일 그게 일반적인 한국 부부의 상황이고, 남녀가 역전되어 있었다면, 아마 남편은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아내한테 "너 여태 집안일 안 하고 뭐 하는 거야!"라고 윽박질렀을지도 몰라요.

김두식 : 그러게 말입니다. 제 처는 제 심정을 잘 이해해준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사실 결혼 생활이 벌써 19년차인데, 그 대부분의 시간, 제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꾹 참은 말이 있었어요. "당신은 왜 이렇게 집안일을 힘들어 해? 다른 여자들은 다 하는 거잖아"하는 불평이었죠. 결혼생활의 열쇳말이 여럿 있겠지만 제 경우엔 '억울함'이었어요. 우린 누가 봐도 사이가 좋은 편인 부부인데도 서로 억울함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서로 떨어져 생활하면서 집안일 비율은 점점 동등해져 갔고, 이 책을 계기로 저희의 집안일 비율은 과거 제가 9, 아내가 1이었던 것에서 아내가 9, 제가1 정도로 역전이 되었어요. 이 책이 그래서 고마워요. 제 처가 저를 불쌍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결혼 초창기의 과감한 투자의 열매를 지금 얻고 있는 거지요. (웃음)

김여진 : 그렇다면 결혼 생활 동안 일탈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요?

김두식 : 일탈해보고 싶은 생각은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있죠. 그런데 제가 진짜 모범생이라고 느낀 게요. 일탈을 하려면 아내의 허락을 받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일동 웃음)

김여진 : 앞으로 따님이 대학을 가서 남자친구와 여행을 가겠다고 하면 외박을 허락하겠다는 이야기도 쓰셨어요. 김두식 교수 본인은 그렇게 하지 못한 삶을 살아왔다고 했는데, 그걸 허락할 수 있는 결심은 어디에서 왔다고 보세요?

김두식 : 제 독자의 90퍼센트는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봐요. 여기 앉아계신 분들도 마찬가지지요. 규범적이고, 좀처럼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요. 그런데 그 중에서도 정말 저를 좋아하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그건 제가 써 온 순서에 따라 조금씩 선을 확장해 온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가령 지난번에 낸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고, 어떤 독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의 선을 저와 함께 넘을 수 있었어요.

제 평생, 신학을 배우면서, 몸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하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관점은 모든 관계에 적용됐고, 여자 친구와도 마찬가지였어요. 남녀가 함께 잔다고 경천동지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규범 안에 갇혀 있으면 그런 생각을 쉽게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틀을 유지하려 할수록, 몸에 대한 욕망이 저를 지배하게 되더라고요. 나와 욕망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제겐 많은 '여자 친구'가 있어요. 이분들하고의 관계와 결혼 관계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당연히 몸의 소통의 여부예요. 그런데 결혼 관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몸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지 그렇지 않은지, 좋은지 어떤지 알지 못한 채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고. 저 오늘도 기독교 신자들한테 혼나겠네요!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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