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7월 9일 : 안재홍 선생에게 묻는다
김기협 : 민정장관 맡으면서 어려운 일이 될 줄 알고 계셨겠지만, 6월 23일 시위 관계로 겪으신 괴로움은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까지 한독당을 함께 하다가 갈라진 사람들에게 체포령을 내려야 했고, 체포된 사람들이 무죄로 판명되었으니 그 사람들은 선생님이 정치 보복을 한 것이라고 펄펄 뛸 수밖에. 체포령을 내릴 때 확실한 증거가 없었는가요?
안재홍 : 경찰 책임자들이 확실하다고 군정장관 대리 헬믹 준장에게 장담을 하니 헬믹이 체포를 요구했죠. 사태 파악은 경찰 소관이니 어쩌겠습니까.
경찰의 움직임이 수상했던 것은 시위를 구경한 모든 사람이 목격한 일입니다. 시위를 막는 게 아니라 키워준 걸로 보였죠. 나도 처음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주변 사람들을 풀어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실제로 겪은 것보다 엄청나게 더 난처한 입장에 빠질 뻔했어요.
김기협 : 더 난처한 일이라면?
안재홍 : 경찰에서 글쎄, 김구 선생을 걸고넘어진 거예요. 그분이 종로 어느 건물 발코니에 나와서 두 시간 동안 선동 연설을 했다고. 그 보고를 받은 헬믹이 그분을 체포하라고 요구하는데, 내가 확보해 놓은 정보가 있기 때문에 반박할 수 있었죠. 시위 시간대에 그분이 경교장에 계셨다는 사실을 확인해 놓고 있었으니까.
생각해 보세요. 내가 한독당에서 견뎌내지 못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김구 선생께는 지도자의 역할을 계속 기대하는 것이 있고,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분께서도 당장 미소공위 참여 문제 때문에 갈라지기는 해도 인간 안재홍에 대한 신뢰가 아주 없어졌을 수는 없죠. 그런데 경찰에서 허위 정보를 내놓으며 내게 그분 체포령을 내리라고 몰아붙인 것은 정말 악질적인 이간질입니다.
김기협 : 엄항섭-김석황 양씨의 체포령을 내리게 된 것은?
안재홍 : 내가 풀어놓은 사람들이 김구 선생의 소재는 확인해 줬지만, 다른 사람들 거취까지 모두 확인할 만큼 인원이 넉넉지 못했어요. 경찰 쪽의 유죄 주장에 대해 확고한 반증이 없는 한 경찰까지 포괄하는 행정 책임자로서 경찰 주장에 따를 수밖에 없죠. 본인들의 무죄 주장은 검찰이나 법원에서 펼치게 하고.
김기협 : 불법 시위 혐의자 체포에 꼭 민정장관 명령이 필요한가요? 경찰 책임자의 판단에 따라 체포하면 될 것 같은데.
안재홍 : 그것부터 말이 안 되는 거죠. 헬믹 준장과 경찰 수뇌부가 모두 주장과 요구는 하면서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 틈바구니에 끼인 겁니다.
경찰의 보고를 받은 헬믹은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김구 선생도, 엄-김 양씨도. 그런데 시위를 금지한 행정 명령 제3호를 민정장관 이름으로 발포했으니 그에 의거한 체포도 민정장관 선에서 알아서 하라는 거예요. 미국인 군정장관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거죠.
미국인이 나서지 않고 조선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체포를 조선인에게 맡긴다면 판단도 조선인에게 맡겨야죠. 그런데 판단은 자기가 하고 집행을 민정장관이 하라는 억지였습니다.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은 이해합니다. 그가 원래 군정장관도 아닌 대리일 뿐이었으니 하지 사령관의 눈치만 본 것이었어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이 조병옥 씨와 장택상 씨의 태도였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확실한 것이라고 들이대어 하지 사령관의 체포 요구를 이끌어낸 건 자기들이었어요. 하지는 1945년 말부터 김구 선생에 대한 나쁜 생각을 내내 갖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놓고는 내 명령서가 있어야 체포에 나서겠다는 거예요. 내 판단에 따라 체포령을 내지 않으면 미국인들과 내 사이가 나빠지고, 자기네 주장에 따라 체포령을 내면 한독당 사람들이랑 관계가 나빠지는 거죠. 그이들,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그 일만은 정말 야비했습니다.
김기협 : 엄항섭 씨는 김구 선생의 최측근이고, 김석황 씨는 그쪽 행동대장으로 알려진 인물이죠. 구체적 증거가 없어도 그 날 시위에 관여했으리라고 심증이 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이 점을 의식했는지 지방에 가 있는 등 알리바이까지 갖춰놓고 있었죠. 그런데 경찰 보고는 그들이 현장에서 시위를 지휘했다고 하는, 전혀 터무니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며칠 안 되어 풀려났어요. 경찰이 한독당과 선생님을 표적삼아 조작된 보고를 한 것 같습니다.
안재홍 : 경찰이 내게 표적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조병옥 씨와 장택상 씨에게 표적을 두어 왔으니까요. 10월 소요 때 조미공위에서도, 그리고 민정장관직 수락할 때도, 나는 경찰 개혁을 미군정의 가장 급선무로 지적해 왔고, 조-장 양씨의 퇴진을 그 첫 번째 조치로 요구해 왔습니다.
미소공위 재개 전까지는 두 사람을 퇴진시켜야 한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해 왔습니다. 지난 달 미소공위가 열릴 때가 되어 속으로 생각했어요. 두 사람을 퇴진시킬 전망이 없으니 내가 퇴진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그러나 막상 미소공위가 열리게 되었는데, 민정장관 자리에서도 할 일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여 참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퇴진은 그 시점에서 일단 포기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김구 선생과 한독당을 상대로 음모를 꾸민다는 것은 나도 뜻밖입니다. 선생은 반탁을 명분으로 미소공위를 방해하는 일에 이승만 박사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데 속셈에는 차이가 있죠. 이제 조병옥과 장택상이 선생을 음해하는 것을 보니 이 박사가 선생과 갈라서려는 모양입니다. 선생께서 '입정 추대'의 환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자세를 되찾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김기협 : 그런 전망이 있다면 엄-김 양씨의 체포령 발령을 거부함으로써 한독당 인사들의 오해를 피하도록 버티셔야 할 일 아니었나요? 두 사람이 시위를 지휘했다고 선생님이 믿을 만한 증거를 가져오든지, 아니면 경무부장이나 수도경찰청장의 직권으로 체포를 하든지 하라고 경찰에게 요구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군정장관 대리 헬믹에게도, 하지 사령관이나 당신이 그 사람들 유죄를 확신한다면 당신들이 체포령을 내려라, 나는 그들의 유죄를 확신하지 못하겠으니 체포령을 발령할 수 없다고 버틸 수 있지 않았습니까?
안재홍 : 사실에 있어서 나는 두 분이 시위와 관련이 있다는 강한 심증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유죄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할 수 없었죠. "확실한 정보"라는 경찰 주장에 대항하려면 나도 어느 정도 확실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습니다.
내가 검사라면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기소를 거부할 수 있어요. 판사라면 무죄 판결을 내릴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사법관이 아니라 경찰까지 지휘하는 행정관입니다. 내 휘하의 경찰이 확실한 정보라고 주장하면 일단 거기 따라야죠. 잘못된 정보로 판명되었을 때 책임을 지우더라도.
그리고 군정장관에게 체포령 발령을 미루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당장 몇 개 도지사 발령이 필요한데, 그런 고위직 발령은 민정장관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발령 대상자 중에 있거든요?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조선인이 한다고 하는 자세를 미국인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김기협 : 발령 대상자 중 누가 그런 주장을 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정일형 씨죠? 그 동안 인사행정처장으로 군정청의 조선인 간부 중 최고 실력자였다가 선생님이 민정장관으로 들어오면서 그 아래가 되었고, 이제 충남지사로 가게 되었으니 무장 해제를 당하는 셈입니다. 그를 지방으로 내보내는 것은 인사 쇄신을 위한 선생님의 첫 조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안재홍 : 정일형 씨와 잘 아는 이들이 주변에 많아서 그분이 좋은 사람이란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적으로 좋은 사람이라도 공적인 책임 면에서는 다를 수 있지요. 어떤 일이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인사 운영에서 꼭 지켜야 할 원칙을 아무것도 갖지 않은 사람 같습니다. 자기 손으로 부정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부정을 저지를 만한 사람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본인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도 나쁜 사람한테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이죠. 아는 사람의 부탁이면 가리지 않고 들어주다 보니까 군정청 고급 직원 중에 기독교인이 많고 서북 사람이 많게 되었습니다. 특정 범위의 사람들이 너무 많으면 파벌 성격을 띠게 되죠.
정 씨 개인의 문제보다 제도상의 문제로 봅니다. 인사행정처란 부서가 군대식이죠. 사령관 마음대로 하는 군부대에서는 인사를 총괄하는 부서를 두지만 과도 정부처럼 방대한 조직의 인사권을 한 부서에 집중시킨다는 데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인사행정처를 없애고 정 씨는 마침 빈 지사 자리로 보내는 건데, 그분은 자기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나 봅니다.
민정장관 맡으면서 첫 번째 목표가 경찰 개혁, 두 번째 목표가 군정청 인사 개혁이었는데, 경찰 개혁은 이제 포기했고 인사 개혁이라도 제대로 해야죠. 조선어를 과도 정부 공용어로 올려놓았으니까 '통역 정치'의 폐단은 차츰 사라질 겁니다.
김기협 : 과도 정부를 진짜 국가 정부에 비긴다면 민정장관이 총리나 수상에 해당되고 부처장회의가 국무회의나 내각에 해당되는 셈이죠. 그런데 민정장관에게는 재량권이 참 적지 않습니까? 중요한 일에는 위로 군정장관의 승인이 필요하고 아래로 부처장회의의 의결이 필요합니다.
이번 도지사 인사도 부처장회의 의결과 군정장관 승인이 모두 필요한 일이었죠. 군정장관 승인은 마침 러치 소장이 없을 때라 헬믹 준장의 승인 받기가 쉬운 편이었겠는데, 부처장회의 의결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부처장들은 모두 정일형 씨랑 오랫동안 함께 일해 왔고, 기질이나 성향에서 선생님보다 그분에게 가까운 이들이 많은데요?
안재홍 : 그러니까 이번 인사 하나에도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죠. 넉 달 넘게 꾸준히 설득해 온 결과 그들이 인사행정처 혁파에 동의하게 된 데서 그나마 보람을 느낍니다. 취임을 앞두고 김구 선생께 인사드리러 갔을 때 그분께서 "도로무공(徒勞無功)"이 될 거라고 걱정해 주셨는데, 그래도 이만한 성과라도 거두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부처장 중에 내 방침에 찬성하는 이가 처음에는 거의 없었어요. 그러나 몇 달 동안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면서 "아,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깨닫고 내 방침을 따라오는 이가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이범성 사건이나 임청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럽지 않았습니까? 고급 관리들의 뇌물 수수는 확인되지 않아 그 정도로 넘어갔지만, 향응을 받은 사례는 부지기수로 드러났어요. 부패가 더 이상 만연해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 그리고 군정청이 '과도 정부'로 바뀌었으니 통역 정치에서도 벗어나야겠다는 인식이 당사자들 사이에도 늘어나 왔습니다.
(☞바로 가기 :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