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둘러싸인 지식기반 사회에서 '글을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문해교육(文解敎育)'이라는 말을 들으면 '시골 할머니들'을 떠올릴 것이다. '전기도 잘 들어오지 않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수십 년을 살면 글자를 모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나라 비문해율은 생각보다 높다. 성인 인구의 24.8퍼센트가 글을 읽고 쓰고 셈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완전히 글을 모르는 사람도 8퍼센트가 넘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고등학교 아이들도 상당수가 이런 비문해 상태에서 놓여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가 아이들의 공부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면 문해 상태가 된다고 기대하며, 취학하면 당연히 문해 상태에 이른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이 책, <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지음, 우리교육 펴냄)은 아이들의 '문맹 현실'을 이론으로, 사례로, 인터뷰로 보여주는 책이다. 한마디로 글을 못 익히고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서 글을 읽게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잠시만 생각해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대개의 중산층 아이들은 6~7세면 이미 책을 읽고 한글을 받아쓰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1학년 4월이 되면 글씨 모르는 아이들도 5~6줄이 되는 지문을 읽고 받아쓰기 시험을 봐야하는 것이 '한글 교육의 현실'이다. 그러니 글을 못 읽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한자 한자 글을 익힐 시간도, 기회도 없는 상태로 2학년에 올라가게 된다.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상당수의 아이들은 '글자'를 읽지만, 그 글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영어를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어려운 영어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글자'는 읽어도 '글'을 모르는 경우에도 학교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글쓰기 교육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개의 비문해 아이들은 기초 학력 진단 테스트에서는 "옆 아이의 답을 베끼는 생존 전략"을 이미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2.
▲ <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지음, 우리교육 펴냄). ⓒ우리교육 |
그러면 선생님은? 텃밭을 가꾸거나, 환경미화를 하거나, 행정 처리에 바쁘다. 아이들이 비문해 상태라는 사실을 교사들은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국어교사를 하다가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저자 스스로도 말하듯이 대부분의 교사는 아이들의 읽기 문제에 대하여 '블랙아웃' 상태에 있다. 아이들은 '당연히 읽을 수 있는 존재'여야 하므로 읽기부진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는 더욱더 자신의 담당 교과 이외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읽기 부진이 뭐에요?"라고 되묻거나, 특수교사가 담당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더 극단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실 학교 평가가 학업 우수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 상황 속에서, 학교 평가를 책임지는 교장은 읽기 부진을 인정하기 어렵게 되어있다. '기초 학력 평가'에서 두 번 시험 보는 아이들에게 '정답'을 외워서 쓰도록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인데, 학업 부진에도 못 미치는 읽기 부진을 인정하겠는가? 영재 교육이라면 환대할까, 문해 교육은 되돌아보기도 싫은 영역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독서지원 활동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설명이 끝나자 교장 선생님은 곧바로 묻는 것이다.
"복도에 왁스칠한 것 어때요?"
3.
사면초가.
가정에서 책을 읽는 법을 익히지 않은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학교는 글을 못 읽는 아이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읽기 발달에서 나타나는 개인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화되어간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아이들 읽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방법은 없는가? 근본적으로는 국가가 결단해야 하는 문제다. 물론 국가에는 학습 부진아에 대한 '구제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 학업 부진아로 진단된 아이들은 캠프 등의 교육을 거쳐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단 평가 결과를 보고하면 서류 작업만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여름 캠프는 20여명이 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인별 읽기 프로그램은 진행할 수가 없다. 학업 부진아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국가의 정책은 현장에서는 이렇게 나타난다.
"여름 캠프를 진행한 후에 실시하는 평가도 (…) 도달해야 할 점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하고 답을 알려준 후에 같은 시험지로 다시 시험을 보았다. (…) 그 시험 결과를 아동의 도달 수준으로 제출하고 구제되었다고 보고 하였다. (…) 그 후에도 구제가 되지 않으면, 2학기 종료시에 담임, 교감, 교장은 사유서를 제출하게 되며, 미구제 학교는 장착경고와 행-재정적 지원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371~372쪽)
이것이 '교육 강국 코리아'의 학습 부진아에 대한 정책이다. 읽기 부진은 1년 정도의 프로젝트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읽는 것은 머릿속에 의미의 그물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기승전결의 짜임새나 역사적 사회적 맥락, 사람들의 정서에 대한 이해 등 읽는 내용에 따라 사전적으로 요구되는 지식이 상당히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읽기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자아를 계발해 갈 '교육적 권리'를 가지는 존재이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일방향적으로 '부진'으로 분류한 후 '구제'해야 한다는 발상 속에서 정책을 집행한다. 학습 부진아가 많다고 보고한 솔직한 교사는 '무능한' 교사가 되며, 세상을 완전히 다시 보게 되는 '문해'의 희열과 부진아 구제는 신임교원의 '잡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4.
결국은 다시 '민간'이 나서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고 실패한다. 이 책의 저자 엄훈은 "진이 빠지고", "지치고", "황당"해 하면서 교장과 교사와 만나고 문해 교육의 방법론을 구체화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비문해 아이들이 살아가고 배우는 생생한 이야기도 있지만, 학교가 왜 문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도 있고, 외국의 사례에 대한 소개와 교육 행정의 문제에 대한 비판이 제시되어 있기도 하다. 4장 '읽기발달의 이해'에서는 문해 과정과 읽기문제에 대한 개념과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그간 문해와 관련하여 저자가 해온 일의 전면적 성찰이자, 함께 나아가자는 제안서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 <학교 속의 문맹자들>은 참 소중하다. 이론가가 실천가와 거리를 가지는 것이 당연시된 학적-실천적 풍토에서 그 둘을 아우르는 실행 연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브라질의 문해 운동을 전개하면서 프레이리는 "글을 읽는 것은 세계를 읽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성인들에게 문해란 한을 푸는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문해는 다른 아이들과 교감을 시작하는 일이자, 상상력이고 미래일 것이다.
미국의 피터 도는 읽기부진에 대해 교육당국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하였다(360쪽). 13년간 샌프란시스코 공립학교를 다녔지만, 초등 5학년 수준의 읽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교육적으로 잘못 처치된 것은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이 근거였다. 가슴이 아팠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도 유치원 수준의 글 읽기가 안되는 수많은 우리 아이들…. 우리나라에는 이런 소송이 한건도 없다.
ⓒ프레시안(손문상) |
마이너리티.
불현듯 이 단어가 떠올랐다. 마이너리티는 돈이 없거나 지위가 낮은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은 마이너리티를 벗어날 수 없는 마이너리티가 된다. 세계가 제한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벗어날 생각도 없는 그런 마이너리티. 우리 교육이 혹시 머조리티(다수)를 마이너리티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성인 교육 영역에서도 문해 교육 논의가 한창이다. 이제는 평생교육의 맥락에서 아이들과 성인들에 대한 '글읽기=세계읽기' 프로젝트가 대대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때다. 그게 선진국이고, 교육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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