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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성적 흥분…'그곳'에서 벌어지는 기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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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성적 흥분…'그곳'에서 벌어지는 기적들!

[프레시안 books] 니나 자블론스키의 <스킨>

나는 문신이 있다. 트라이벌 문양이라고 하는 단순한 넝쿨무늬이다. 크기는 가로 15센티미터, 세로 6센티미터쯤 될까.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뒤 허리에 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춰야만 보인다. 그래서 평소에는 의식도 못한다. 그러나 이 문신을 새겼을 때의 기억은 생생하다. 일회용 바늘 끝이 피부를 깊숙이 찔러 상처를 내고 물감을 밀어넣는 동안, 침상에 엎드린 나는 무심결에 앓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에 손수건을 문 채로 소설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시술자는 나더러 꽤 잘 참는다고 격려하면서 말했다. "이레즈미로 호랑이 한 마리 감아도 되겠는데요?"

지금은 그때 문신을 하고 싶었던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가족도 친구들도 대체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러나 가끔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평생 가는 흔적을 새기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말이다. 요즘은 레이저로 얼마든지 지울 수 있다. 그렇다고 애인 이름 따위를 새겨서는 곤란하지만…. 남들의 눈총이 걱정된다는 말도 절반만 맞다. 이두박근에 마릴린 먼로라도 새기지 않는 한 말이다.

내가 볼 때 그런 저항감은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이성적 반응이기보다는 본능적 반응이다. 미용 성형 수술이 널리 퍼져 신체 개조에 대한 거부감이 한없이 낮아진 요즘이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피부에 그림을 그렸다가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달라질 것이라고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피부가 자아를 제일 잘 대변하는 신체 기관이라서일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렇다. 우리가 몸을 본다고 할 때, 사실은 살갗을 보는 것이다. 그 속에 담긴 내장기관, 근육, 신경, 힘줄, 지방은 평생 한 번도 볼까 말까다. 의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그런 몸 속 장기들이 돌아가는 사정도 피부에 드러난 징후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평균적인 성인의 경우 무게가 4킬로그램, 표면적이 0.6평에 달하는 피부는 몸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장기이다. 황지우 시인의 말마따나 나는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에 담긴 존재이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제목마따나 "내가 사는 피부"가 곧 나다.

▲ <스킨 :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니나 자블론스키 지음, 진선미 옮김, 양문 펴냄). ⓒ양문
덕분에 우리는 피부가 하나의 인체 기관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 할 정도로 친숙하지만, 알고 보면 이토록 놀라운 껍질은 또 없다. 피부는 몸이 형체를 유지하도록 붙잡는 자루이고, 빗물 같은 이물질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는 장벽이고, 벌레 같은 공격자들로부터 지켜주는 보호막이다. 피부는 땀을 흘려 몸을 식혀주고, 촉감을 느끼게 해주고, 햇볕에 자연스럽게 그을려 자외선을 막아준다.

성능은 또 어찌나 뛰어난지. 우리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더라도 풍선처럼 부풀지 않으며, 쉼 없이 새로운 피부로 교체되기 때문에 내장기관들과는 달리 기능 부전 상태에 빠지는 일이 없다. 이 모든 일을 해내면서도 두께는 채 4밀리미터가 안된다! (피부는 겉에 있는 표피와 속에 있는 진피의 두 층으로 나뉘는데, 표피 두께는 0.4~1.5밀리미터이고 진피까지 합치면 1.5~4.0밀리미터이다.)

또한 피부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정치적이다. 인류는 역사 초기부터 피부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드러내고 자신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간 피부는 50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살았던 냉동 인간 '외치'의 것인데, 그의 등에도 문신으로 보이는 작은 흔적들이 있다. 그리고 피부색은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행위의 근거로 쓰였다. 피부는 정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심장도, 대뇌겉질도, 허리세움근도, 충수도 모두 소중하다(음, 충수는 취소해야 할까). 그러나 생물학적인 것을 넘어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기관은 피부밖에 없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내가 느닷없이 피부 예찬으로 빠진 까닭은 그처럼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피부'를 예찬한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니나 자블론스키가 쓴 <스킨>이다(부제는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이다).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피부색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위에서 내가 숨가쁘게 나열했던 주제들을 전부 다룬다. 다만 저자가 피부색의 진화를 오랫동안 연구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제일 상세하게 다루기는 한다.

그렇다면 '피부색에 감춰진 비밀'이란 뭘까. 피부색은 인간이 환경(주로 자외선)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시킨 속성이라는 사실이다. 언뜻 허탈할 만큼 당연한 말로 들린다. 그러나 한때 본질에서 벗어난 엉뚱한 의미를 짊어졌던 이 속성을 적응적 특질로 분명히 규정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피부의 옅고 짙음은 인간의 우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피부색은 개인이 사는 (정확하게는 그 조상이 살았던) 환경의 자외선 지수를 반영할 뿐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근거는 다각적이다. 우선, 자외선 노출이 많을수록 피부가 짙어진다는 가정에 따라 전 세계 피부색 분포를 예측한 결과는 원주민들의 피부색을 측정한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생물학적 근거도 있다. 인체는 햇빛에 포함된 자외선을 너무 많이 쐬어도 안되지만, 너무 적게 쐬어도 안된다. 장파장자외선은 생식에 중요한 엽산과 디엔에이(DNA)를 파괴하는 골칫거리이지만, 단파장자외선은 인체의 칼슘 대사에서 긴요하게 기능하는 비타민D 합성에 꼭 필요하다. 따라서 자외선으로 인한 손상을 막으면서 비타민D 결핍은 방지하도록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천연의 자외선 차단제인 멜라닌 색소가 그 역할을 한다. 즉, 자외선이 많은 적도에서는 멜라닌 색소가 많은 것이 유리하고, 자외선이 적은 극지방으로 갈수록 멜라닌 색소가 적은 것이 유리하다. 저자는 엽산과 칼슘이 둘 다 생식에 중요한 물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때문에 자연선택이 적응압을 발휘하여 멜라닌 색소의 양을 변화시킬 동기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으로 남녀의 피부색 차이도 설명할 수 있다. 여성은 출산 시 남성의 2배에 달하는 칼슘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남성보다 비타민 D 동원 능력이 좋아야 하고, 그 때문에 자외선을 더 많이 흡수하도록 피부가 옅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피부를 말할 때 색깔보다 더 주목을 받아 마땅한 것은 땀이다. 저자는 "많은 수의 땀샘이 다량의 땀을 흘려서 몸을 식혀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 빠르게 달리고 고성능의 두뇌 활동을 하며, 더운 지역에서도 대낮에 맑은 정신으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진화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땀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시나 노래를 짓지 않았지만, 땀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엄숙히 선언한다.

진화생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먼 선조는 피부색이 옅었을 것이고, 털이 많았을 것이고, 땀을 많이 흘리지 않았을 것이다(침팬지 등 인간과 가까운 현대 영장류들도 피부가 옅다). 그러나 인간이 탁 트인 초원을 누비며 사냥과 채집을 하게 되면서, 그리고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커다란 뇌를 돌리게 되면서 그보다 더 효율적인 냉각 방식이 절실해졌다. 그 결과가 많은 땀, 털 없는 살갗(보송보송한 털은 오히려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지만 땀에 젖은 털은 한없이 체온을 올린다), 짙은 피부색(털이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자외선에 대응해야 했던 것이다)이었다(그런데 왜 머리에만 털이 남았을까? 그건 책에서 직접 알아보시길).

자외선 차단이나 냉각 외에도 피부가 수행하는 역할은 많다. 그래서 책은 얼른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환경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 사이에 정서적 유대를 구축하기까지 하는 촉각(성감대를 생각해보라). 식은땀이나 홍조 등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심적 상태를 드러내는 감정적 기능(거짓말탐지기를 생각해보라). 화장, 문신, 피어싱과 같은 신체 미술의 캔버스이자 광고판이 되는 기능. 그리고 비록 이 책이 "정보를 주는 책이지 조언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피부에 관련된 실용적인 쟁점들도 짚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반점에서 피부암까지 각종 피부병을 소개하고, 선탠에서 보톡스까지 갖가지 성형기법도 소개한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다 하기에는 230여 쪽의 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후반부는 거의 주마간산이다. 미주에 실린 이야기들을 본문으로 가져와서 두 배쯤 더 두껍게 쓰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독자가 겨우 알만해서 궁금증이 솟는다 싶은 대목에서 설명이 중단되는 것보다는 말이다.

내게도 오갈 데 없는 의문들이 남았다. 저자는 피부색이 적응적 형질일 뿐이니 인종 구분의 근거로 쓰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조상이 같은 집단이라는 의미에서의 인종은 엄연히 존재하고 피부색도 그 한 가지 특질인 만큼 다른 형질들과의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 아닌가? 피부색과 인종의 관계에 대한 유전학적 연구를 더 꼼꼼하게 소개하면 좋았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래서 과연 콜라겐을 채워준다는 화장품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궁금하고, 자외선 차단제는 어떤 메커니즘으로 보호력을 발휘하는지도 궁금하며, 감질나게 설명된 피부 이식 기술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솟는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피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네이처>의 평에 반대할 마음은 없다. 자연스레 잡힌 주름이나 햇볕에 그을어 가무잡잡해진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이 다재다능한 덮개가 쉴 새 없이 해내는 중요한 기능들에 감탄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책이 알려주는 정보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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