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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 이토 히로부미의 부활?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굴욕과 망신의 역사, 교과서 검열

대한제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1900년대 초반 애국 계몽 운동이 일어난다. 그 일환으로 신식 학교 세우기도 활발했다. 국난의 원인은 과학과 이성의 발전에 뒤진 탓이라고 생각한 조선인들은 전통적 서당을 버리고 신식 교육 진흥에 나섰다. 통감부의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1908년 대한제국을 조종하여 사립학교령을 내려 교육 통제에 나선다. 사립학교는 학부대신의 인가를 받도록 의무화하고. 교과서 역시 학부(學部; 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에서 편찬한 것 또는 학부의 검정을 받은 것만 쓰도록 강제했다. 인가 신청을 한 1824개 학교 중에서 337개만을 인가했으며, 널리 쓰이던 항일적 성격의 교재 62종은 사용을 금지해버렸다. 국정 또는 검인정교과서의 출발이다.

1909년에는 아예 출판법을 제정하여 모든 인쇄물은 미리 검열을 받아야 인쇄 유포할 수 있도록 강제했다. 많은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던 안국선의 <금수회의록>, 현채의 <유년필독강의> <월남망국사> 등은 이때 모두 금서로 지정되어 압수 소각되었다. 영국인 베델이 경영하여 일제의 검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대한매일신보>는 이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학부에서 교과서 검열법을 내고 내부(內部; 지금의 행정안전부)에서 출판법을 낸 후에 역사를 저술하는 자가 혹 한국 고금에 볼 만한 사적을 게재하면 하나도 허가치 아니하는 고로 역사는 전혀 진척한 것이 없어 교육의 전도를 차마 말하지 못 하겠다." (1909년 9월 25일)

이런 기원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국정교과서나 검인정교과서 제도, 즉 학생들이 배우는 교재를 국가가 개입하여 결정하는 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로 국정 또는 검인정교과서 제도는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몇몇 나라들만이 채택하고 있다. 서구의 거의 모든 나라는 교사나 교육 기관의 자율적 선택에 맡긴다. 교육이란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활동이며, 이에 대해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권력의 검열이라는 부작용만 불러온다는 공감대 때문이다.

일제가 애국 계몽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국정 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도입하기 이전까지 한국에서는 학교와 교사가 교과서를 채택했던 것이니, 지금의 서구 대부분 나라의 교과서 제도와 비슷했던 셈이다. 마치 지금 대학에서 교수에게 교재 채택의 전권을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제 잔재의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어디 한두 분야겠는가만은 교과서 제도 역시 그러하다.

이처럼 국가가 교육에 깊숙이 개입하는 교과서 검정 제도 자체가 문제인데, 그것도 정권의 이해득실 차원에서 교과서를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강요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가카'는 역시 거칠 것이 없다. 교과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교과서는 5년을 주기로 개편해왔으니 2014년에 새 교과서를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정권은 느닷없이 2013년에 새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며 개정 작업에 나섰다. 임기 안에 손을 보겠다는 뜻이다. 그러니 집필과 수정까지 불과 4개월 안에 해치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질풍과 노도처럼' 밀어붙여야 한다던 4대강 사업을 연상케 하는 속도전이다.

교육감이라는 사람들도 나서서, '좌편향 교과서가 채택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한 지역의 교육행정의 총 책임자란 말인가. 교육은 학자와 연구자에게 맡겨야 할 뿐이지, 정권이 관여한다면 그날로 끝장이라고 버티는 교육감도 없지 않았지만, 대다수는 그저 정권의 지시에 굴종하고 말았다. 어떤 것이 가르칠 가치가 있는 역사인지를 어떻게 일개 정권이 정할 수 있단 말인가. 평생 역사를 다뤄온 학자와 교육자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옳단 말인가. 학문의 자율성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온데간데없다.

더욱이 이런 돌연한 개편이 특정 세력의 요구에 촉발되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예컨대 대한상공회의소가 '반(反) 시장적이고 친(親) 노동적인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적극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현행 교과서조차 지나치게 친 자본적이라는 학계의 지적은 외면되고 있다. 지금도 경제 교과서는 노동조합과 노동3권을 가르치는 내용이 거의 없는 반면에 노사협력은 강조하고 있다. 또한 "최저임금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 주기 위한 제도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제가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 근로자들의 소득은 올라가지만 다른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법문사, 고교 경제교과서)고 설명하기까지 한다. '88만 원 세대'가 크나큰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제의 부작용을 집중 부각하는 교과서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2분의 1, 일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최저임금제 때문에 피해가 우려된다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졸업하면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서 이런 교과서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금도 지나치게 친자본적이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니 더 강화하란다. 교과서 검정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국방부는 반공과 안보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예컨대 박정희는 민족의 근대화에 기여한 대통령으로 묘사하고,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막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기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근세사 교과서가 집중적인 표적이 되었는데 그 집필 기준이 가관이다. 5.18 민주항쟁은 중학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삭제되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조차 빼었다가 비판에 직면하자 마지못해 집어넣었다. 이승만, 박정희의 독재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기준에서 제외해버린 대신에, 자유민주주의 발전 과정에 대한 설명을 포함시켰다. 두 독재정권을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미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다가는 아예 '국민 교육 헌장'을 부활하라는 요구가 나오지 않을까.

▲ 교진추가 배포한 팸플릿 가운데 일부. ⓒ교과서 진화론 개정 추진 위원회
기회를 놓칠세라 기독교계도 나섰다. 진화론을 삭제하라는 것. '교과서 진화론 개정 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라는 단체가 주동이다. '말(馬)의 진화는 상상적 산물'이라는 교진추의 청원을 교과서 7개 중에서 3개가 받아들여 삭제했고, 시조새가 진화론의 증거로 보기 어렵다는 청원 역시 6개에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다음 단계는 아마 창조론을 가르치자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교진추의 팸플릿을 보면 그들이 진화론 삭제에 나선 목적이 무엇인지 금세 확인된다. "진화론을 가르칠수록 교회는 텅 비게 될 수밖에 없다"면서 "창조주를 모독하는 골리앗 같은 진화론 우리가 맨 앞에서 싸우겠습니다"라고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고생물학회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교진추가 교과부에 제출한 두 건의 청원서에는 해당 과학자 사회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주장과 자료들이 편향적으로 인용되어 있고, 의도적 왜곡이나 무지로 인한 오해로 인해 그나마 언급된 과학적 자료들에 대한 해석도 오염되어 있으며, 논점을 이탈한 주장들도 많아서, 학문적인 면에서는 관련 과학 단체가 응대해줄 가치가 없는 경우이다. 다만, 어떤 이유에서든 청원서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상황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답변을 공식적으로 해줄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다." (2012년 6월 20일)

요컨대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이지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청원서의 요구대로 교과서가 수정되어버렸으니 어쩔 수없이 답변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일까. '듣보잡'에 가까운 교진추라는 단체가 단 한 번의 청원을 통해서 한국의 과학 교과서를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어째서일까. 교과부는 교진추의 청원을 받자 그대로 교과서 출판사에 통보했을 뿐이며 아무런 압력도 행사한 바 없다고 발뺌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교과부는 우편배달부 노릇만 하기로 했단 말인가.

이 뉴스는 <네이처>에 보도되어 국가망신을 자초하는가하면, '레딧 세계뉴스'에서 인기뉴스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진화론 대신에 퇴화론을 넣으면 되겠다, 그게 바로 지금 너희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니까"라고 비아냥거리는 댓글이 있었다. 억울하지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한국 고마워. 우리가 덜 멍청하게 보이게 해줘서"라는 미국인의 댓글도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교진추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길 거부한다거나 진화론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아마 산업 국가 중에서 미국이 유일할 것"(<우리의 미래를 말하다>, 203쪽)이라는 노엄 촘스키의 말을 떠올리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그 댓글은, 이제 한국이 그 목록에 추가되어 '유이'한 나라가 되었으니 미국인들은 외롭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세상에, 감사 인사를 받으면서 이렇게 바보가 되기도 참 쉽지 않을 터이다. "서울을 봉헌"했던 장로 대통령이 이제 한국 교육을 송두리째 봉헌하는 셈이며, 과연 "뼛속까지 친미"인 정권임을 다시 확인하게 해주는 셈이다.

교과서 채택은 교육 담당자들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시 국가가 불가피하게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학계와 교육계의 객관적이고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면서 행정 절차에 국한하는 최소한의 개입에 그쳐야 한다. 교육이 일개 정권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좌지우지된다면 그것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5년소계'로 전락하게 된다. 더욱이 이 정권이 자행하는 교과서 '검정'은 우리 헌법에서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는 '검열'에 불과하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특정 정권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이 과학, 학문, 교육 등 거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자신과 다른 의견들을 모조리 검열하는 사회이다. 다 알 듯이 이는 마녀재판으로 상징되는 봉건시대의 크나큰 폐해였지만, 근대 이후라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근대의 총아인 이성이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을 때 도구화되고, 그 도구화된 이성은 '신념에 의한 독재'의 도구가 될 뿐이다. 그 독재자로서 우리는 히틀러와 스탈린, 일제와 박정희,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4대강을 강행하고 용산참사를 불러왔으며 교과서 검열까지 밀어 붙이는 '가카'역시 그 이름들 뒤에 나란하게 될 듯하니, 그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은 을사년(乙巳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올해는 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20년 만에 다시 맞는 임진년. 이명박 정권은 이토 히로부미를 본받아 교과서 검열을 자행하는가하면, 일본과 군사정보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하려다가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비밀 국무회의를 거쳐 몰래 체결하려다가 들통이 나자 '연기'해버린 것.

새누리당 역시 애당초 찬성이었다가 급선회하여 일단 연기로 방향을 바꾸었다고 한다. 대선을 앞둔 여론 악화가 겁나 '연기'했을 뿐, 체결해야 한다는 분위기는 고스란히 감지된다. '가카'는 독도와 관련하여 '기다려 달라'고 일본 총리에 부탁했다거니와, 새누리당도 정보협정 체결은 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연기(延期)'가 아니라 '연기(演技)'하기로 결정한 게 아닐까.

1910년 이완용 역시 한국을 일본에 강제 병탄하는 조약을 체결하고도, 조선인의 반발을 우려하여 1주일 동안 비밀에 붙이고 발표를 연기했다. 그 사이에 모든 정치집회를 금지하고 반대하는 대신들을 감금하며,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무력시위를 하는 등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새누리당은 과연 얼마동안 '연기'하면서 무슨 준비를 착착 진행하려는가.

이래저래 올해를 계기로 아무래도 '임진년스럽다'는 말이 생겨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무슨 뜻의 신조어일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실 테니, 독자 여러분이 그 정의를 내려 보시길. 참고삼아 말하자면 이미 '임진년 원수다'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적과 같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원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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