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밀어내기' 파문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남양유업 피해 대리점주들이 대표적이다. 남양유업피해자대리점협의회(피해자협의회)는 지난 19일 "본사가 앞에서는 모든 교섭안을 받아줄 것처럼 여론몰이를 하고 뒤로는 밀어내기 등의 불공정 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협상 결렬을 선언, 7일째 본사 앞에서 단식·밤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남양유업 측은 "피해자협의회 측이 무려 7000억 규모에 달하는, 대리점 매출액의 20퍼센트를 피해 보상액으로 요구했다"며 결렬 배경을 설명했지만, 이 역시 진실 공방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창섭 피해자협의회 회장은 "수천억 요구는 허위 사실"이라며 "협상이 결렬된 근본적 이유는 본사 측이 앞뒤가 다른 기만적 행동을 보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리점-본사 간 불공정 거래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발의된 '남양유업 방지법(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제정 필요성을 두고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다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9월 정기국회로 이관될 조짐이다. 이마저도 9월 국정감사, 10월 재보궐 선거 등에 묻히면, 사실상 연내 통과 동력이 소멸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6월 중 통과가 어렵다면 7월 임시국회를 열어서라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며 "NLL 정쟁에 국회가 휩쓸리면서, 경제 민주화 입법만을 바라보던 중소상공인들은 고사 직전까지 밀려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7일째 단식 중인 이창섭 회장은 "정치 논쟁도 좋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국회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회에서 원래 하기로 했던 일들은 하면서, NLL 논쟁을 벌였으면 좋겠다"며 정치권의 관심을 호소했다.
잇따른 점주 자살과 함께 사회 문제로 떠오른 편의점-점주 불공정 관행 문제도 마찬가지다. 24시간 영업 강제 금지, 과중한 위약금 부과 금지 조항 등을 담은 'CU 방지법(가맹사업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본회의 전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안진걸 처장은 "새누리당은 법사위를 경제 민주화 입법 저지를 위한 '상원'처럼 활용하며 계속되는 점주 자살을 막을 수 있는 CU 방지법 통과마저도 막고 있다"며 "국정원과 NLL 논란을 틈타 단 하나의 경제 민주화 법안도 통과시키지 않으려는 속셈"이라고 비판했다.
안 처장은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이 세상에 드러난 만큼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확인하면 되고, 경제 민주화 입법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은 국정원 잘못도 덮고 경제 민주화 입법도 무산시키는 이중 전략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5월 9일 오후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회원들이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일감 몰아주기', 대폭 후퇴한 채 통과 유력
그나마 이번 회기 중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이는 '일감 몰아주기 방지법(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정부 제시안에서 대폭 후퇴한 채 상임위를 통과해 논란이다.
당초 국회 정무위는 25일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개정안을 처리키로 합의했으나, 이날 민주당이 NLL 대화록 공개 파문과 관련해 긴급 의원총회를 열며 회의가 취소됐다. 민주당 측 정무위 관계자는 "내일 회의를 열고 일감 몰아주기와 FIU(금융정보분석원) 법안을 한꺼번에 처리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26일 개회 자체가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핵심 내용이 상임위를 거치며 대폭 후퇴했기 때문에 이미 실효성을 잃었다는 지적도 있다. 정무위가 개정안 제3장(경제력 집중 억제)에 규제 조항을 신설하지 않고 제5장(불공정 거래 행위의 금지)을 보강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쳤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5일 논평을 내고 "5장 보완만으로는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를 근본적으로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정무위가 실효성 없는 법안을 처리함으로써 재벌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를 되레 심화시키고 경제 민주화 실현을 저해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오늘도 '속도 조절' 중
이처럼 국회는 NLL 대화록 공개 파문으로 들썩이고 중소상공인들은 그런 국회를 상대로 '정상 궤도 복귀'를 호소하는 가운데, 정부는 이날도 경제 민주화 입법 '속도 조절'에 나섰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경제 5단체장과 산업부 장관, 금융위원장, 국세청장, 관세청장과 조찬 간담회를 열고 경제 민주화 및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한 정책 수립 및 집행에서 기업을 세심하게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입법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경제개혁연대는 "(과잉 입법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재계의 저급한 반대 논리와 정부·여야의 의지박약이 겹쳐 경제 민주화 입법이 상당 부분 왜곡·지연·실종된 것에 실망했다"고 논평했다. 또 "경제 민주화 주도권을 쥐었어야 하는 민주당이 여당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지리멸렬의 난맥상을 그대로 노출하고 말았다"며 민주당의 전략 부재를 지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