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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해커'여! 디도스 공격을 감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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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해커'여! 디도스 공격을 감행하라!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사이버 의적' 어노니머스

어노니머스, '무명씨'들은 인터넷상에서의 자유를 추구한다. 그 자유는 소위 '인권 선진국'에서는 카피레프트를 뜻하지만, 인권 후진국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에 더 집중된다. 인터넷 검열을 자행하는 바티칸, 중국, 튀니지 그리고 해킹을 엄격히 단속하는 인터폴, 영국 정부 등의 홈페이지를 공격했던 것은 그 사례이다.

인터넷 검열로 세계적 악명을 떨치는 중국 정부 기관들을 해킹한 뒤에는 이런 문구를 남겼다고 한다. "중국 정부 귀하, 당신들은 무오류의 집단이 아니다. 오늘은 웹사이트가 해킹당했지만 내일은 당신들의 비열한 체제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터넷 검열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가 하면, 아예 해킹 방법을 알리는 등 대중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어노니머스의 해킹 수법은 주로 디도스 공격이다. 한국에서는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디도스 공격을 가했던 자들 덕분에 널리 알려졌다. 동원된 수단은 동일하지만, 그 목적의 수준과 품격이 천양지차이다. 선관위를 공격한 한국의 해커들에게는 아무런 철학도 없고 그저 추악한 이해관계만 있을 뿐이다. 그들이 검은 해커라면, 어노니머스는 하얀 해커이다. 물론 해킹은 불법으로 되어 있지만, 하얀 해커와 검은 해커로 나누는 구분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현상에서 보듯이, 어떤 해킹은 단순한 불법으로만 인식할 수는 없다.

기실 법이란 강자의 이익과 논리가 관철되는 수단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안중근이나 김구의 행동도 당시의 실정법이라는 잣대로 보자면 불법 행위 아니었던가. 간디와 마틴 루터 킹이 투옥된 것도,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했던 것도 역시 법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합법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 '불법이라 규정되어 버린 정의'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 사람들의 이름은 물론 한없이 길어질 것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결코 한 적이 없으며, 박정희의 유신 시기에 어떤 어용 법학자가 날조해낸 말에 불과하다(<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박홍규 지음, 필맥 펴냄). 반면에 마틴 루터 킹이 이렇게 말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자유란 억압받는 자들이 스스로 요구해야 할 문제이며, 억압자들은 결코 자발적으로 자유를 허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왜 날조된 "악법도 법이다"에는 너무도 친숙한 반면, 자유란 싸워 얻는 것이라는 킹 목사의 발언에는 낯선 것일까. 누가 왜 우리를 이렇게 교육했을까. 그런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인간이 된 걸까. '강자의 법'이건 무엇이건 법이라면 죽음을 무릅쓰고 준수하는, 그런 인간형을 박정희는 교육을 통해 만들고 싶었다.

"다음 중 '악법도 법이다'라고 주장한 사람을 고르시오"에서 정답을 찍을 줄 알고, 그 덕분에 인기 대학 인기 학과에 진학하며, 마침내 재벌 기업에 취직하는 '쾌거'를 이루게 되는 삶, 그 '과업'에 성공하면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모으게 되는, 그런 사회를 박정희는 만들어 내고 싶었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에 의해 주조된, 검열할 필요조차 없는 복종의 기계들. 박정희는 그런 기계들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가, 오늘 우리는 그런 인간형에서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죽은 박정희가 산 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어노니머스가 중국 정부에게 했던 말은 박정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당신은 무오류의 존재가 아니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복종의 기계가 아니오, 검열할 필요조차 없는."

하얀 해커들은 이런 맥락에서 안중근, 김구, 간디. 킹 목사 등의 이름과 나란히 설 자격이 있다. 불의에 대한 응징과 저항이라면 어떤 불법은 허용되거나 심지어 장려되어야 한다. 게다가 어노니머스의 해킹은 폭탄 테러 등과는 달리 인명 피해조차 없는 평화적인 방식이다. 그들은 인명 살상을 전혀 하지 않으며, 공권력이나 자본의 불의를 응징하는가 하면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이념을 전파하는 데도 매우 적극적이다. 그것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해낸다.

어노니머스의 자유 인터넷 운동은 여러 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전적으로 새롭다. 한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삼고 있다는 점, 통일된 조직을 가진 단체라기보다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느슨한 연합체라는 점, 지적 재산권이라는 이름의 검열까지도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종래의 표현 및 사상의 자유 운동이 주로 권력에 대해 항의하고 요구하는 것이었다면, 어노니머스는 이를 넘어서 권력을 조롱하고 압박하며 공세적이다. 게다가 그들은 비장하다기보다 즐기면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전적으로 새로울 수 있었던 근본적인 까닭은 그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자신의 활동무대로 삼았기 때문이리라. 인류적 담론장의 향후 100년을 좌우할 사이버스페이스는 이렇게 권력 투쟁의 장이기도 하며, 이 마당에서 어노니머스는 '세계 사이버 시민'의 이념을 전파하고 있다. 존 페리 바를로의 "사이버스페이스 독립 선언문"은 어노니머스의 철학과 여러 모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정부는 시민의 동의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력을 얻는다. 너희는 우리의 동의를 얻지도 않았고 부름 받지도 않았다. 우리가 언제 너희를 언제 초청했느냐? 너희는 우리에 대해서도 우리의 세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너의 관할권 바깥에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마치 공공 건설 사업쯤으로 생각하여 너희가 그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희는 만들 수 없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자연의 움직임이며 우리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

(…) 우리는 인종, 경제력, 군사력, 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이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그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 너희가 생각하는 재산, 표현, 정체성, 운동, 맥락에 관한 법적인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물질에 기반하는데, 사이버스페이스에는 아무런 물질이 없다." (위키백과 한국어판)


바를로는 산업사회의 정권들의 권위와 관할권을 사이버 세계에서는 인정하지 않겠노라 선언한다. 모든 특권과 편견이 사라지는 이상향을 만들어나갈 수 있노라 믿는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 조선(我 朝鮮)의 독립국임과"로 시작하는 우리 독립 선언문처럼 난해하지 않으며, 비장감도 관념성도 훨씬 덜하다. 오히려 강력한 자신감과 낙관에 가득 차 있다.

▲ 존 페리 바를로. ⓒ위키피디아

바를로는 미국의 시인, 저술가, 사이버 활동가, 정치 활동가, 학자다. 그의 독립 선언은 시인답게 아름답고도 감동적이다. 1960년대의 히피 출신답게 자유와 평화 그리고 무소유라는 유토피아를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구현하고자 한다. 바를로는 카피레프트 운동의 주창자이기도 해서 자신의 글은 아무런 표시 없이 아무나 자유롭게 퍼가도 좋고 심지어는 마음대로 변용시켜도 좋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어노니머스는 바를로와 여러 모로 비슷하지만 훨씬 적극적이다. 바를로가 '네트(net) 위의 히피'라면, 어노니머스는 사이버 공간의 자유와 평등을 침해하는 권력 기관에 공격을 가하여 무력화한다는 점에서 '사이버 의적'이라 불린다. 신출귀몰하는 모습 또한 홍길동이나 장길산, 양산박의 호걸들, 로빈 후드나 윌리엄 텔과 흡사하니 걸맞은 별명이라 하겠다.

한국의 정보통신위와 정보통신심의위원회가 하는 일들은 명백한 검열 행위이다. 블로그의 게시글 일부에 문제가 있다 해서 블로그 전체를 느닷없이 폐쇄시키는가하면, 경찰의 의견을 거의 모두 수용해서 포털의 게시 글들을 삭제해버린다. 이 모든 일을 사법적 판단조차 거치지 않고 행정적 조치로 처리해버린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된다.

물론 사법적 수단에 호소한다고 해서 사정이 그다지 나은 것은 아니다. 한국 검찰은 '미네르바'와 피디수첩과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에 대해 무리한 기소를 연발해서 표현 자유를 극도로 위축시키고 말았다. 물론 언소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죄 판결이 나긴 했지만, 말 한마디 했다가 검찰과 법원에 불려 다녀야 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국민들은 이제 자기 검열에 나서게 되고 말았다. 이 정권 들어 유신 시대로의 회귀를 목격한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표현 자유 역시 매우 심각한 퇴행 현상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노니머스가 한국의 정통위나 정통심위, 검찰 등에 디도스 공격을 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단지 그들이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 정권은 일련의 반민주화 조치를 통해 국제적 망신을 당할 만큼 당하긴 했지만, 만일 어노니머스에게 선정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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