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출판계 멘토님! 먹고살고 싶거든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출판계 멘토님! 먹고살고 싶거든요?

[나는 반론한다] 출판계의 '청춘 착취'를 고발한다!

이 글은 '프레시안 books' 91호에 실린 김류미 어크로스 에디터의 <편집자로 산다는 것> 서평(☞바로 가기)과 그에 대한 '프레시안 books' 92호의 변정수 출판 평론가의 답(☞바로 가기)을 읽고 편집자 이승한 씨가 보내 온 것입니다. 이 씨는 "변정수 평론가의 글 말미에 '출판계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토론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 적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라고 밝혔습니다. <편집자>

나는 출판계에 입문한 지 갓 1년이 된 출판 편집자다. 이 길에 들어서기 전, 도대체 출판 편집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로 가득했었다. 답을 얻기 위해 시중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소위 출판 편집자와 출판 평론가들의 편집자'론'을 보며 좌절과 위로, 자기 다짐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자리에서 감히 기라성 같은 선배 출판 편집자와 출판 평론가, 출판 시장 상황에 누구보다 민감할 출판사 사장에게 '편집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이나 '편집자의 삶의 방식'이 이러저러해야한다는 것에 코멘트를 달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지금껏 1년 동안 겪은 출판계의 현실, 그 기라성 같은 출판계 전설들의 글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경험들에 대해 말하려 한다.

누가, 왜 편집자론을 말하려는 걸까?

▲ <편집자로 산다는 것>(김학원 외 지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출판 편집자로서 처음 입문하기 전, 난 어떠한 출판 교육도 받지 못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출판 지망생들에게 출판계에 입문하려면 한국출판인회의가 만든 SBI라는 출판 전문 학교를 이수하는 것이 필수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곳에 들어갈 비용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일단 출판계에 뛰어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판단에, 준비 없이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출판 편집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숙지하지 못했고 내가 다니는 출판사 내부에서도 실무적 조언과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었다. 굉장히 불만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지요. 일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배운 걸 써먹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라는 선배들의 호통에 주눅들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실제 업무에서 혼란과 불안감에 시달렸고 결국 출판 교육을 담당하는 곳에 가서 사비를 들여 출판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한 달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임금을 받으며, 그것도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출근 시간을 다 지키고 나서 이후에 출판 편집의 숙련을 위해 50만 원이나 하는 비용을 직접 지출하며 두 달간 수업을 이수했다.

따지고 보면 출판사의 70퍼센트가 5인 미만 사업장, 즉 영세 사업장이니, 객관적으로 신입 출판인을 교육시킬 시간이나 자금을 투여한다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그러니 나같이 출판 기술을 배워서 기본적인 실무를 담당할 수 있는 출판 편집자가 되어야겠다고 꿈꾸는 미숙련 노동자가 부지기수일 테니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내가 50만 원을 들고 찾아갔던 출판 강좌에는 책 속에서 나에게 편집자란 무엇이어야 하는지 나를 짓눌렀던 출판계 선배들이라는 사람들이 떡하니 강사로, 출판사 사장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노동으로 피곤한 눈을 부비며 이들 강의를 듣고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난 뭔가 부조리하다는 점을 느꼈다. 이건 마치 교육방송(EBS) 수능 강사님들(=위대한 출판 편집 선배님)이 입시 설명회(=편집자란 무엇인가!)에서 잔뜩 수험생(=출판 지망생/미숙련 출판 노동자)에게 입시 제도(=어떤 편집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는 어이없게도 출제 위원(=SBI를 비롯한 출판 교육 기관)으로 참여해 결과적으로 자기 책과 강의를 팔아먹는 꼴(=2000년대부터 전개된 편집자론의 책과 강좌)이 아닌가 하는 불온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출판업에 뛰어들기 전에는 소위 출판계 선배들이 쓴 편집자론에서 위와 같은 이야기들은 없었다. 편집자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독자와 저자 사이를 오가며 어떻게 소통해야 하고, 좋은 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편집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말했지, 이 분들은 그 편집자의 이론과 실천이 어떤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전인적 편집자? 그런 삶조차 '불안'하다

출판계에 일하게 되면서 많은 선배 편집자들을 만나려 노력했다. "편집자는 10평 남짓의 사무실에 처박혀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편집자의 일터란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좇고 다양한 발견과 경험을 추구하는 장소다!"라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정말로 1년 동안 퇴근 이후(편집자론과는 달리 어느 누가 출판사가 요구하는 근무/야근을 거부할 수 있겠나), 주말이면 주말, 쉬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어떤 선배는 세미나를 3개씩 돌리라고 하고, 어떤 선배는 퇴근하면 원고 발굴과 이해를 위해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니 집에 TV를 없애라고 하고, 어떤 선배는 저자 강연회나 그들이 모여 있는 장소면 새벽까지 술을 먹어서라도 함께 많은 것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방법이야 어찌 됐든, 내가 만난 선배 편집자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편집자의 태도와 삶을 이야기해주었다. 고립되었다고 느꼈던 나에게 그런 만남은 매우 소중했다.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들 선배 편집자들의 처지가 가관이었다. 어떤 분은 합리적 설명도 없이 회사에서 잘리질 않나, 어떤 분은 10년 정도 되었으니 회사에서 알아서 나가라고 압력을 주었단다. 어떤 분은 심지어 회사가 구성원들에게 의견도 묻지 않고 다른 곳과 합병을 하더니, 아무런 통보 없이 구조 조정되었다고 했다. 쉬는 날에 쉬게 해달라고 요구했더니, 편집 팀 전체가 잘린 적도 있다. 표준 계약서를 쓰지 않는 곳도 정말 많았다. 부당 해고, 임금 체불, 밥 먹듯 하는 야근 등 무슨 <전태일 평전>에서 봤던 1970년대 청계 피복 공장처럼 느껴질 정도의 노동 조건이었다. 이건 나를 무척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책에서나 봤던 편집자론을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고 있는 뛰어난 선배 출판 편집자들이 너무 허무하고 어이없이 대접받는다는 게 괴리감이 컸다.

어떤 분이 "편집자란 편집자로 살아가는 것을 해내는 총체적인 과정을 걷고 있는 일련의 사람들"이라고 심오하게 정의내린 것을 보고 사실상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꼈다. 편집자란 근본적으로 편집자라는 '직업'으로써 어떻게 '먹고살고' 있냐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데(당연한 거 아닌가?), 이 근본적 질문이 그 어떤 분의 허울 좋은 정의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내가 접했던 모든 출판 편집자론에도 마찬가지였다. 난 정말 누군가에게 단단히 속았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편집자론이란? 출판 노동자 조직과 출판 경영권을 쟁취하라!

과거 출판 지망생이었을 때 <편집자로 산다는 것> 유의 글들을 보며, 정말 편집자라는 직업은 1인 공장 시스템 같다는 느낌을 받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요즘 편집자는 기획-교정-마케팅-판매 등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맞춰 편집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편집자는 애초에 신입이나 경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책으로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출판사나 출판 자본의 이데올로그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어느 출판 평론가의 말처럼 현실적으로 편집자란 시장에서 자신이 만든 책이 얼마나 팔렸는가/아닌가로 증명된다는 일침은 분명 낭만적으로 편집자를 바라볼 수 있는 예비 출판 지망생/초년 편집자들에게 '출판 노동'의 현실을 일면적으로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편집자 1인 공장 시스템의 논리는 현실에 가면 기괴하게 붕괴한다. 1인 공장 시스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즉, 누구 말마따나 자영업자다. 그런데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편집자가 만든 책의 판매나 기여만큼 편집자에게 그에 합당한 부문이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책의 판매 수익에서 편집자가 어느 정도 공헌도를 가지는지 측정 방법이 있다면 또 모르겠다.

아니 그 방법은 일단 무시하고서 이 논리를 한번 끝까지 밀어붙여보자. 정말로 편집자가 자신이 만드는 책의 생산, 유통, 판매까지 책임지는 1인 공장 시스템 체계라면 출판 편집자는 '출판사 경영'에 참여해야한다. 단적으로 말해, 출판 편집자, 출판 디자이너, 출판 마케터가 '하나의 출판 노동자'로서 출판사 자체의 노동 시간, 임금 분배, 저작의 선택과 방향 등 '출판 경영 전반'에 관해 출판 공동체로써 참여한다는 것이다. 출판 편집자가 독자와 저자 사이, 그리고 물화된 책에 대해 책임과 자기성찰을 요하는 편집자론이 가져야 할 합리적 결론으로 당연하다.

그런데 <편집자로 산다는 것> 유의 글에서도 그런 논의까지 이어진 것을 본 적이 없다. 편집자로서 삶은 이러저러한 것이다, 라는 말들은 만개하면서 오히려 진정으로 편집자적 삶을 실현하기 위한 물적 토대와 관계에 대해서는 무색하다 할 정도로 언급이 없다. 반대로 이런 유의 글들에서 출판 편집자는 하나의 매력적인 프로페셔널 직종, 마치 구도자적 삶을 살아가 듯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는 존재로서만 포장될 뿐이다.

출판 편집자가 출판업 자체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직군들의 분할을 이미 전제한 상태에서(그건 누구의 입장일까?) 편집자는 디자이너와, 마케터와 어떻게 소통을 해야 상품으로써 책을 잘 만들 수 있는가에만 초점이 맞춰질 뿐이다. 우리는 결국 '편집자론'을 설파하는, 출판계 멘토 선배들이라 믿었던 자들이 매우 기만적이게도 대부분 출판 경영 전반을 통제하는 (출판 편집자라는 탈을 쓴) 출판 경영진 및 사장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스스로 결론을 지은 답은, 이들 출판업 간부들이나 출판사 사장, 출판 평론가들이 10년간 계속해서 설파했던 편집자론을 진정으로 실천하려 한다면, 무엇보다 그러한 편집자론의 실천을 근본적으로 방해하고 왜곡하는 출판업의 왜곡된 출판 노동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더 나아가 그 같은 편집자론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출판업에 종사하는 출판 노동자들이 출판 경영 전반에 대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토대에는 '출판 노동자가 이를 자신의 목소리로 조직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10년 동안 우리 자신을 홀리고 다시 실망케 한 편집자론과 그 근간인 출판 노동의 구조적 문제는 계속해서 재생산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