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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 안 쓴 폭주족! 위험과 매력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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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 안 쓴 폭주족! 위험과 매력은 하나?

[프레시안 books] 요제프 라이히홀프의 <미의 기원>

시점을 확정할 만큼 내가 사정에 밝진 못하지만, 주목받는 신간의 흐름이나 학계에서 내세우는 화두를 곁눈질 하면서 얻은 낌새를 말하면 이렇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인문 교양 분야의 새 유행을 진화 생물학이 선도한다는 인상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것.

자연과학 범주에 안주하지 않고 인문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거나, 숫제 그것과 통합하는데 앞장서는 자연과학은 단연 생물학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1998년 발간된 책이지만 국내에는 2005년 번역되었다. 진화 생물학의 스타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신간은 예외 없이 신속 번역되어 국제 시장의 베스트셀러 호흡과 나란히 발맞추기까지 한다.

진화 생물학과 인지 심리학을 결합시킨 진화 심리학의 대표 필진에도 리처드 도킨스가 포함된다. 이 분야 대표 학자와 저술물이 한국의 서가에 집중 소개된 시점 역시 2000년대 중반이후이다.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과 <언어 본능>(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 이 책은 1990년대 후반 국내 번역된 적이 있지만, 진화 심리학 유행의 파도가 밀려들기 이전이라 주목 받지 못한 채 쓸쓸히 폐간된 바 있다)이 번역되었으며, 범죄나 성적 욕망처럼 교양 독자층의 순수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주제를 진화 심리학으로 풀이한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홍승효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욕망의 진화>(전중환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가 국내에 소개된 시점 역시 대략 그 무렵이다.

이 모든 지적 유행의 원점이 되는,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의 핵심은 환경에 적응하는 형질이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후대까지 전수된다는 자연 선택론으로 요약될 것이다. 가장 흔한 예가 공업화로 인해 어둡게 변한 주변 환경 속에서 흰색보다 회색 나방이 보호색 효과를 누리며 천적의 눈에 띄지 않아 개체수가 늘어난 전례다. 이는 생물학 교과서에서 익히 봐온 자연 선택의 모범 사례로 기억들 할 것이다.

혹은 돌연변이가 만든 형질이 생존에 유리할 경우, 무리 속의 정상보다 돌연변이가 자연 선택 되는 예도 우리는 안다. 목이 긴 돌연변이 기린이 목이 짧은 정상적 무리보다 생존에 유리해서 그 형질이 자연 선택되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목이 긴 기린이 된 것이다. 또 매우 복잡한 구조의 눈(眼)조차 긴 세월동안 돌연변이가 축적되어 오늘날 정교한 형태의 눈으로 완성된 점 등이 자연 선택의 유명한 사례다.

그런데 자연 선택을 통해 자연의 수수께끼를 풀 마스터키를 획득한 것 같았던 다윈에게 선명한 적수가 나타났다. 자연 선택을 명백히 위배하는 사례들이 육안으로 관찰된 것이다. 수컷 공작의 거대하고 화려한 꼬리는 자연 선택론을 위협하는 실례일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꼬리는 어딜 봐도 수공작의 생존에 저해 요소이기 때문이다. 크고 눈에 잘 띠는 꼬리 덕에 천적의 안테나에 쉽게 잡힐 테고, 육중한 꽁지깃 때문에 천적으로부터 도주마저 번거로울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적응의 산물일 수 있겠나?

자신이 봉착한 이 명백한 딜레마를 해결하려 했던지 <종의 기원> 출간 후 12년이 지나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1871년)을 펴낸다. 그는 본문 중 70여 쪽을 인간의 성 선택에, 500여 쪽을 동물의 성 선택에 배당했다.

자연 선택 이론의 부족분을 보완하는 성 선택 이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개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어떤 형질이 만일 선택되어 후대에 진화되었다면, 그건 번식 성공률을 높이는 요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개) 수컷은 천적의 눈에 잘 띠거나 도주에 방해가 되는 형질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형질을 진화시킨 경우가 너무 많다.

그 형질은 자연이 아닌 이성(암컷)이 선택해서 살아남아 유전된 형질이다. 그 형질은 자연 선택의 견지에선 불리하지만 이성을 매혹하는 장식물로 기능하거나, 또는 짝짓기를 둘러싼 동성 경쟁자들을 위협하는 시각적 무기로 기능하기 때문에 잔류한 형질일 것이다. 그 때문에 성 선택(sexual selection)이라 불린다.

개체는 자연 선택에 불리하기에 단명할지라도 이성에게 매력적인 그 형질 때문에 교미의 기회는 부쩍 늘어난다. 그러니 자기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기회는 훨씬 많이 누릴 수 있다. 정리하면 '장기적인 생존(유전자의 후대 전달)'에선 성공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유전자! 다윈의 성 선택은 이후 1세기나 지나서야 후대 과학자들에 의해 긴 각주가 달린 해설서를 통해 꾸준한 오마주를 받는다. 진화 심리학에서 특화된 해설을 내놓는 분야도 성 선택을 활용한 이론일 때가 많다.

신체 기관이 진화적 적응의 결과물이듯, 마음 역시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라는 것이 진화 심리학의 접근법이다. 따라서 수세기 동안 인문학의 고유 영역인양 간주된 인류 문화사를 재구성하는 작업과, 전적으로 주관적 영역처럼 인정된 종교 체험과 예술 창작과 감동의 메커니즘마저 진화 심리학의 분석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평범한 독자건 업계 관계자건 전에 없이 참신한 비약적 해석으로 읽힐 만했다. 예술은 자연과학적 검증과 판단으로부터 유예된 특권을 누려왔다. 하지만 신체의 기관 같은 물성은 물론이거니와 마음마저 진화적 산물로 이해하는 학문의 시선에서 예술이 누리는 특혜는 온당치 않았을 것이다. 마음을 연구 대상에 포함 시킨 학문이라면 전적으로 마음의 작용일 예술 창작과 감동도 자연스런 분석 대상일 수밖에 없다.

성 선택과 생물체의 장식물(또는 예술)의 연관 관계를 파헤친 화제작은 2000년 출간된 제프리 밀러의 <연애>(김명주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이다. 밀러는 이렇게 주장한다.

"성 선택은 고위험 고수익 전략에 따라 남성의 몸을 만들었다. (…) 위험 부담이 큰 이런 이판사판식 전략은 남성들의 성 경쟁이 흔히 승자독식의 게임이었음을 함축 한다. (…) 우리 몸이 갖고 있는 장식들은 구애를 위해 진화한 마음의 적응 형질들과 비슷하다."

요컨대 수컷의 과도한 장식은 역설적으로 수컷이 지닌 높은 생존력을 과시하는 지표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중한 장식을 지니고도 생존할 정도면, 나(암컷)와 2세의 생존은 쉽게 보장 받겠군' 같은 메시지를 암컷이 수컷의 화려한 장식에서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을 해명하는 이론이 아모츠 자하비의 핸디캡 이론이다.

불리한 형질(핸디캡)이 역설적으로 높은 생존력을 과시하는 지표라는!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원시 인류에서 무리의 우두머리가 굉장히 무거운 돌도끼를 허리에 찬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이 무거운 돌도끼 역시 착용자의 높은 신분을 과시할 장식물이지 실전용 무기로 해석되진 않는다.

너무 멀리가지 말고 가까이서 사례를 찾자. 폭주족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안장을 대각선으로 높이고, 절대로 헬멧을 착용하지 않은 채 고속으로 도로를 질주한다. 폭주족은 10대 남자 청소년이 주 멤버이며, 이들의 폭주에 열광하는 적지 않은 '문제' 여중고생이 뒤에 있다. 설마하니 폭주족 청소년이 '죽음을 불사해서 높은 생존력'을 의식적으로 과시하려고 헬멧을 미착용하는 건 아닐 테다. 다만 그들에게 위험을 무릅쓰되 과시적인 제스처(높은 안장과 헬멧 미착용)를 근사한 매력으로 선호하는 수컷 조상의 형질이 유전된 걸 테다.

▲ <미의 기원>(요제프 라이히홀프 지음, 박종대 옮김, 플래닛 펴냄). ⓒ플래닛
<미의 기원>(박종대 옮김, 플래닛 펴냄)은 독일 진화 생물학자 요제프 라이히홀프가 출간한 성 선택을 다룬 책이다. 호기심을 잡아끄는 제목으로부터 성 선택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저술일 걸로 나는 믿었더랬다.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 글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것들이 실은 선입견일 뿐이라고 과감하게 폭로하는 학계의 이단아"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제는 반석 위에 오른 듯한 성 선택의 여러 사례를 지루하게 반박하는 장문의 본문이 담겨 있다. <연애> 이후 10년 동안 학계에서 성 선택 이론을 어떻게 집대성시켰는지, 추가 발견 증거를 소개하거나 보강하는 것이 이 책의 초점이 아니더란 얘기다. 때문에 진화 심리학에 아직은 일천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실망과 지루함이 컸다.

총 3장으로 구성된 <미의 기원>은 종래 성 선택 이론의 밑그림이 갖는 취약점을 파고들겠다는, 학술적 선의를 띠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넘어서기 힘든 난점이 많다. 이 책의 큰 맹점은 시종 장문으로 전개되는 논지와 불필요하게 장황한 사례 열거다. 관찰된 사례를 압축적으로 소개하며 기발한 해석의 핵심으로 곧바로 돌진하면서 가설의 신빙성을 상승시켜온 , 진화 심리학 베스트셀러들의 통쾌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단백질이 부족하면 추가적인 깃의 형성은 불가능하고 반대로 에너지가 부족하면 수컷들은 구애 행위를 할 때 육체적인 소모가 적은 움직임을 선보인다"며 자하비의 핸디캡 이론이 지닌 핸디캡을 지적하기도 하며, "수컷뿐 아니라 암컷까지 알록달록 옷을 차려입은 종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라며 수컷의 장식 기술을 꼭 성 선택으로 한정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펼친다(화려한 깃 대신 주옥같은 '목청'을 발달시킨 수컷 새일 수도 있지 않나 싶은데, 장식적 암컷의 새 품종이 본문에 적시되지 않아 확인할 길마저 없다.)

성 선택 이론의 전개도에 내가 과문한 탓이 커서일 테지만, <미의 기원>이 성 선택의 취약점을 독창적으로 발굴한 저술로 읽히진 않았다. 오히려 제목의 미끼 효과로 아름다움의 고안과 발전의 역사를 성 선택으로 집대성한 책으로 오해하기 쉽다. 성 선택 이론의 해석에 관심이 발생한 초심자라면 먼저 제프리 밀러의 <연애>부터 접근하길 권한다.

<미의 기원>은 <연애>를 이미 졸업한 독자들이 비교삼아 참고할 책일 것이다. 다만 나는 이론의 변별점을 찾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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