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대학생 인턴'으로 검색을 해보면 정부 부처, 연구소, 인터넷 업체, 은행 등을 포함해 5~6월에만 수십~수백 명 규모의 대학생 인턴을 채용하겠다는 공고가 뜬다. 많은 대학생이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이 시간에 인턴십을 위한 자기 소개서 작성을 병행하거나 마음을 졸이며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용한 문장의 '짐'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인턴에 합격한 나는 행운아라고.
▲ <청춘 착취자들>(로스 펄린 지음, 안진환 옮김, 사월의책 펴냄). ⓒ사월의책 |
미국뿐일까? 무보수 인턴이 횡행하는 현실을 파헤친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자 기시감을 고백하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정부 기관, 금융 기관, 언론과 '좋은 일'을 한다는 시민 단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금 학기말 리포트를 제출한 대학생이 커피를 타고 복사기를 돌린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이력서에 한 줄 덧붙일 수 있는 경력. 만약 보수도 없을 경우, 이 한 줄을 얻기 위해 남은 시간엔 편의점이나 노래방에서 노동해야 하는 역설이 벌어진다.
'프레시안 books'에서는 <청춘 착취자들>이 제기한 인턴십 제도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이야기해보는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에 참여한 세 사람은 박권일, 양지훈, 정재연 씨. 자신의 인턴 혹은 인턴 취재 경험을 말해줄 수 있는 20~30대인 이들과 함께 인턴십 제도가 한국에 뿌리내리는 양상과 문제점을 알아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사회 진입 전 청춘에게 '열정'이라는 노동 윤리를 강조하면서 '보람'이라는 무형의 보상을 내미는 세태를 비판했다.
박권일 씨는 <88만 원 세대>(박권일·우석훈 지음, 레디앙 펴냄)의 공저자다. <말>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스 라이터이자 계간 <자음과모음 R> 편집위원으로 집필 및 기획 활동을 하고 있다. 박 씨는 다년간 세대 착취를 놓고 취재, 연구를 진행했고 <88만 원 세대>를 출간하고 나서 많은 20~30대와의 토론 기회를 가졌다.
양지훈 씨는 취업 준비 과정을 거쳐 내로라하는 초국적기업과 재벌 기업에 각각 입사했지만, 노동 중독을 강요하는 기업 문화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5년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전북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덕수의 소속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청춘 착취자들>에서 묘사된 사다리식 기업 문화를 안팎에서 지켜봤고, 언젠가는 그 경험을 기록으로 남길 준비를 진행 중이다.
대학 졸업반 정재연 씨는 지난 4월 트위터에서 논란을 일으킨 한 출판사의 부당 해고 사태의 주인공이다. 이른바 '열정 노동'을 강요하는 한국 출판계의 문제점을 온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 <메타볼라>(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 ⓒ황금가지 |
<청춘 착취자들>은 화이트칼라 노동 시장만을 다루고 있다. 청춘 착취라는 문제가 4년제 대학 졸업생의 그것에만 그쳐 왔다는 문제의식 하에, 이번 대화에서는 제도권에서 탈락한 젊은이의 노동을 다룬 일본 소설 <메타볼라>(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를 추가했다. 장르 소설의 외피를 띤 이 소설은 파견 노동과 프리터로 요약되는 일본 청춘 노동 시장의 적나라한 현실을 고발한다.
세 사람은 <청춘 착취자들>, <메타볼라>를 통해서 자신의 어떤 경험을 떠올렸을까? 그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었다. <편집자>
화이트칼라가 되기 위한 다리, 인턴십
프레시안 : 먼저 <청춘 착취자들>과 이 책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 즉 대기업부터 시민단체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벌어지고 있는 '인턴 청춘'의 착취를 이야기해 보자.
▲ 박권일 씨. ⓒ프레시안(최형락) |
지은이의 묘사에 따르면 디즈니랜드는 "눈길 닿는 곳마다 인턴"인데, 디즈니가 어떻게 국가와 유착하고 대학을 끌어들여 그 거대한 부지 속에서 대학생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갔는지 상세히 묘사했다.
"디즈니의 인턴십 프로그램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연간 7000~8000명에 이르는 대학생들 혹은 갓 졸업한 학생들이 디즈니 왕국에서 최저 시간급을 받으며 온갖 잡다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 디즈니의 인턴은 규율에 따라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휴가나 병가는 달콤한 꿈이고 애로 사항에 관한 소원 수리는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성희롱이나 부당 대우에 관한 적절한 보상 대책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청춘 착취자들> 23~24쪽)
양지훈 : 함께 읽은 <메타볼라>가 대학이라는 제도 바깥에서 어떻게든 생존을 하는 청춘의 이야기라면, <청춘 착취자들>은 그 제도 안에서 좀 더 나은 '화이트칼라 직종'으로 편입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에도 나오듯 인턴이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은, 곧 화이트칼라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세계를 가르고 있는 협곡의 깊이를 잘 알고 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 협곡을 건너기 위해 인턴십이라는 다리를 선택한다. (…) 화이트칼라의 세계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임금 없이 노동을 제공하면서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는 블루칼라의 세계에서 임금을 받고 노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200쪽)
정재연 : 스스로 '청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고 책의 사례가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우리가 소위 '청년 노동'이란 것에 대해 얘기할 때 청년을 대체 어떻게 규정할지 상당히 모호하다. <청춘 착취자들>에서도 그렇지만 대학에 다니거나 대학을 나왔고, 그래서 어떤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사람만을 청년으로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고졸 친구들은 이런 논의의 장에 오를 수조차 없지 않은가.
<청춘 착취자들>에서도 무보수 인턴을 할 수 있는 건 결국 가족의 지원이 있는 '원래 좀 사는' 학생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인턴 경력을 위해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빚을 내야 하니까 말이다. 나 역시 인턴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여기 나온 사례들이 부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70퍼센트의 미국 젊은이들에게 인턴십은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다. 심지어 고등학생 대상의 인턴십 프로그램은 (…) 대부분 사립학교 재학생이나 부유한 학생들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즉, 고등 교육을 받지 않거나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닌 젊은이들은 인턴십에 참가할 기회조차 찾기 힘든 현실인 것이다." (250~251쪽)
미국을 닮아가는 한국
박권일 :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인턴제가 미국의 그것과 좀 다르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 예를 들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이 한 언론사의 면접을 보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전에 다니던 패션 잡지의 편집장으로부터 온 추천 편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듯 미국에선 어디서 일했든지 일 한 경험이 다음 단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 기업에서 인턴 자리는 억지로 짜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무급이지만 그나마 '신용 적립'이라는 보상이 주어지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 착취의 강도가 세지 않을까.
▲ 양지훈 씨.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그런데 한국에서도 최근 인턴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정부가 대기업, 공공 기관의 인턴 제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자리 늘리기', '청년 실업 해소'라는 차원에서 진행된 이런 제도가 과연 취지대로 청년 실업 문제를 다소라도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청춘 착취자들>에서 거론된 부정적인 문제들을 더 증폭시킬까?
양지훈 :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바로 그런 정부 정책이 더 문제를 증폭시킨다. <청춘 착취자들>도 바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국가와 기업과 대학이 20대를 착취하는 인턴제를 '제도화'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인턴이 되지 못하면 학점도 못 따고, 졸업도 못 하는 식으로.
"오늘날 인턴십은 미국의 많은 대학과 학과들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실용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취업은 물론 졸업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인턴십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인턴십 붐이 발생할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다." (140쪽)
박권일 : 2009년 2월 25일, 나중에 '청년 대학살'이라고 칭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30대 그룹의 채용 담당 임원들을 모아 놓고 대기업 대졸 초임을 최대 28퍼센트까지 삭감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이에 공기업에서는 '우리는 30퍼센트까지 삭감하겠다'고 호응했다. 임금 수준이 계속 상승해 왔던 한국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당시 삭감의 취지라고 말한 게 고용 안정을 위한 '워크 셰어링(Work Sharing)'이었다. 인턴을 더 뽑기 위해 정규직 사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워크 셰어링의 원뜻이 뭔가. '1인당 노동 시간을 줄이는 대신 그만큼 고용을 늘리거나 현재의 고용 상태를 유지하는 제도'다. 하지만 전경련의 제도는 '고용 안정'을 위해 '불안정 노동(인턴)'을 더 채용하겠다는 얘기였고, 정확히 말하면 이는 일자리 '쪼개기'다.
이 조치의 결과를 2011년에 나온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공공 기관 신입 초임이 10.3퍼센트 하락했고, 전체 신규 채용이 4분의 1정도 감소됐다. 결국 일자리를 나누기는커녕 청춘의 초봉을 뜯어 비상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것이다. 이런 한국 사정에 비하면 이 책에 나오는 '청춘 착취자들'의 사례는 양반 아닌가. (웃음)
인턴 제국화는 전문 직종부터
프레시안 : 그런데 <청춘 착취자들>에 나오는 풍경이 익숙한 직군이 있다. 예를 들자면, 전문직?
양지훈 : 그렇다. 지금 한국의 변호사 고용 시장이 미국의 인턴 제도를 그대로 갖고 와서 실험하는 중이다. 나는 올해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무법인 덕수의 소속 변호사로서 실무 수습 과정을 밟고 있는데, 이 과정은 '모든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법무부에 등록된 법률 사무 종사 기관에서 6개월의 실무 수습 연수 기간을 거쳐야만 로펌에 정식 취업하거나 단독으로 법률 사무소를 차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개정 변호사법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실무 수습과 관련하여 임금 등의 근로 조건을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2012년 로스쿨 변호사의 고용 시장에서 극소수인 5퍼센트 미만의 대형 로펌에 취직한 변호사들은 좋은 대우를 받으며 실무 수습을 하는 반면에, 많은 이들은 무급 혹은 100만 원 이하의 실비만을 지급받고 있다. 결국, 실무 수습이라는 과정에서도 변호사들의 노동 조건의 양극화가 심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무급 내지 저임금 인턴 과정이 변호사법이라는 법률로 명시된 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돈을 주지 않고도 변호사 일을 시킬 수 있는 산업예비군으로서의 변호사 직군이 법률을 통해 탄생했다는 현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변호사를 최소한 6개월 동안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고서 부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 언론사도 비슷하다. 방학 시즌마다 대학생 인턴을 뽑고 무급 내지는 약간의 실비만을 지급하면서 '잡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으니까.
전문직의 경우에 개인의 역량이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므로 고용주 입장에서는 신규 채용된 노동자가 '인건비만큼의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그것이 정규직 채용 기피와 인턴 제도의 정착화로 이어지는 것 같다. 앞으로 이런 경향이 전문직 노동 시장에서 시작해 다른 직군으로 확산될지 모른다. 사실 출판계가 신규 채용을 기피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 정재연 씨. ⓒ프레시안(최형락) |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검증 과정을 세밀하고 확실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게 정한 절차에 따라서 채용된 이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는 게 기업 아닌가? 왜 그런 책임마저도 구직자에게 떠넘기려 하는가? 인턴십의 확산은 검증을 핑계로 구직자에게 책임 떠넘기기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으리라고 확신한다.
보람 있으니 돈 안 받아도 된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 인턴십의 활발한 분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선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진 시민·사회단체다. 사실 시민·사회단체에서의 자원 활동 경험이 한 개인에게 돈 몇 푼과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무형의 보상을 강조하면서 정당한 노동에 대해서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은 관행이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양지훈 : 긍정적인 의미에서 '열정 노동'이 필요한 분야가 분명히 있다. 또 돈과 같은 유형의 보상 못지않은 보람과 같은 무형의 보상의 의미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한국 시민·사회단체에서 인턴을 고용하면서 과연 그런 식의 보상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을까? 오히려 '열정'을 가진 수많은 예비군이 존재하니 쓰다가 버리는 식으로 사고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면에서는 차라리 시민 단체보다 기업이 낫다. 대학 시절 한 기업이 주최한 글로벌 인턴십에 선발되어 외국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한 달 반 정도 교육을 받았는데 솔직히 만족스러웠다. 시민·사회단체가 인턴 혹은 무급 활동가를 뽑는다면, 그들에게 임금 대신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대기업보다 훨씬 더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정재연 : 나는 다른 논점을 제기하고 싶다. 시민 단체에서 일을 하면서 얻는 보람과 같은 무형의 보상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그냥 시민 단체 활동을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시민 단체 활동을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애초의 시민 단체의 역량도 강화되는 게 아닐까? 그런데 현재 시민·사회단체의 모습은 이런 이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한다.
회사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동일시하는 어떤 노동자는 노동 시간 외에도 회사의 일을 고민한다. 반면에 정해진 노동 시간 외에는 자신의 사생활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일에 대한 생각이 저마다 다른데, 한국의 기업은 똑같은 회사 형 인간을 강요하는 획일화된 노동 윤리를 강조한다. 특히 '진보'를 표방하는 기업 혹은 시민·사회단체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이번 해고 사태 때 내가 들은 해고 사유 중 하나도 '우리 출판사는 공동체적인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데 너는 그저 직업으로서 편집자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그래서 안 맞을 것 같다' 이런 얘기였다.
프레시안 : 영국의 한 지역의 사회단체를 취재하던 중에 흥미로운 경험을 했었다. 사회단체 활동가와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수요일 오전에만 가능하다" 이렇게 못을 박더라. 자기는 월·수·금만 일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사생활 따위는 없이 활동에만 매달리는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모습과 대비가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배워야 할 점은 따로 있었다.
영국은 가능한 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임금을 비슷한 분야, 비슷한 경력의 공무원 수준에 맞춘다. 당연히 시민·사회단체 예산의 가장 우선순위는 인건비다. 앞에서 언급한 사회단체의 경우에는 전년과 비교했을 때 예산 비중이 줄자 아예 한 사람이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전환을 했다. 임금을 적게 받으니 일도 적게 하는 게 그들에겐 상식이었다.
그렇다고, 그 사회단체의 역량이나 그 활동가의 열정이 한국과 비교했을 때 못한다고 볼 수도 없다. 파트타임으로 전환한 그는 미뤄뒀던 대학원 학위 과정을 등록했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으면서 심지어 무급으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더니, 그가 정말로 의아하다는 듯이 묻더라.
"그렇게 대접을 받으면서 평생 사회 운동을 어떻게 하나요?"
박권일 : 정확한 지적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좀 더 넓혀서 진보 진영의 노동은 한 마디로 지속 불가능하다. 신념에 기반을 둔 열정을 착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따로 있다. 이렇게 단물 쓴물 다 빼먹는 착취를 당하면서도 이런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 중 많은 수가 '자신은 착취당하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는 사실이다.
영리, 비영리 법인 심지어 시민·사회단체까지 노동 시간에 상응하는 임금이 지급하는 강제적인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러고 보니, 그 영국의 사회단체 활동가는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통합진보당의 누군가가 떠오르는 말이다. (웃음)
"한국의 사회운동가는 다 잘 사나 봐요?"
오해가 없도록 덧붙이자면, 사실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정말로 예산이 적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한국의 시민·사회단체 1세대의 직무유기다. 이들은 명성과 같은 상징 자본을 일찌감치 획득을 했고, 그 힘으로 정부, 기업으로부터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후원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도 어느 정도 있다.
그런데 정작 이들은 시민·사회단체의 후배 활동가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그런 힘을 사용하기보다는, 자기 이름을 더욱더 돋보이게 하는 데 치중한다. 한때 시민·사회단체 1세대가 주도한 '○○재단'은 그 예다. 기업, 정부 후원을 받아서 영세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줄 알았더니, 독자적인 사업을 펼치지 않았나?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에피소드만 더 언급하자. 시민 단체 활동으로 스타가 된 한 명사가 한 지방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 대학생이 조심스럽게 희생을 강요하는 적은 임금 덕분에 시민 단체에 취업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고민을 토로하자, 이 분이 너무나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답변을 하더라.
"그래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는 배우자를 교사, 약사, 의사, 변호사를 얻어야지!"
참담했다. 이런 1세대 운동가의 도전과 헌신을 폄훼하자는 게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 지금 누리는 명성과 같은 상징 자본이 사실은 수십 년간 자신을 따라서 청춘을 받쳤던 수많은 동료, 후배 활동가들의 열정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부채 의식을 느껴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나는 활동도 하고 명성도 얻었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못하니' 이렇게 타박만 하는 모습이다.
박권일 : 자기가 상징 자본을 다 독점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동료, 후배들이 자기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열악한 구조를 개선할 방안을 내놓아야지!
또 다른 청춘 착취자, 멘토!
프레시안 :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메타볼라>로 돌려보자. 이 소설은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는 청춘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우리나라의 멘토와 겹쳐지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한 명은 주인공 아키미쓰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찾은 공동체 '파라다이스 마니아 로지'의 우두머리 '이즈무'다. 낭만을 찾아 오키나와로 몰려든 젊은이를 무급으로 고용하면서 '환경 보호'나 '지역 공생'이라는 가치를 내세운다. 후반부에서는 록페스티벌에서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거액을 요구하는 등 본색을 드러낸다.
양지훈 : 이즈무와 함께 작가가 비판적으로 그리는 인물이 게스트하우스 '안락 하우스'의 주인인 '가마다'다.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안락 하우스'에서 장기 숙박자를 무급 스태프로 채용하고 '가족 윤리'를 강조한다. 갈등은 가마다가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야망을 품으면서 불거지는데, 그가 TV 토론회에 출연해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을 모조리 '한심한 놈들'로 부정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 역시 이 장면에서 이른바 '멘토'를 떠올렸다. 노동 착취의 맨 마지막 사슬에 걸려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연대해야 할 대상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따르는 멘토는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이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아니다. 한 명의 우두머리를 따르는 구조에 협력하다가 결국 하나하나 탈락하는 과정이 멘토 열풍에 싸여 있는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박권일 : 멘토에 열광하는 20대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많은 이들이 멘토의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서 '아, 저렇게 되어 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미망일 뿐이다. 왜냐 하면, 모두가 그처럼 될 수 있다면 그는 멘토가 아니니까. 이미 충분히 성공한 사람에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20대가 명예, 명성 심지어 돈까지 받치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서, 시급은 어느 정도입니까?"
이즈무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볼런티어지 아르바이트가 아니야. 파라다이스 마니아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볼런티어로 참가하는 거니까. 무료 봉사지. 그 대신 식사와 잠 잘 곳은 보장해."
나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야 공짜일이 아닌가. (<메타볼라>, 115쪽)
노동이 아니라 지옥!
프레시안 : 최근에 대학 구조 조정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술자리에서 대학 구조 조정 얘기를 하다가 교수 임금 얘기가 나왔는데, 한 서울 소재 대학 교수가 취기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1년 연봉이 1억 원에 가깝다. 그런데 학생들이 술집, 노래방 도우미로 일해서 번 돈으로 힘들게 등록금을 마련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과연 그런 돈을 당당히 받을 만큼 노동을 하고 있는가?"
이 교수의 고백처럼, 지금 한국 사회에서 수많은 청춘들이 '막일'이나 '밤일' 같은 여러 형태의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까 <청춘 착취자들>이 제목과 다르게 내용은 한국 사회에 한가하게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일 테고. 그런데 정작 누구도 지금 청춘의 이런 현실을 제대로 전하려고 하지 않는다. <메타볼라>를 <청춘 착취자들>과 같이 읽어보자고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안마방·호스트클럽 등의 유흥업소나 기숙사형 공장, 파견 직원, 단순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청춘의 불안정 노동이 등장하고 니트, 프리터, 집단 자살, 빚으로 인한 폭행 등 불안정 노동으로부터 파생되는 사회 문제도 그려진다. <청춘 착취자들>은 주로 화이트칼라 노동 시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반면에, 이런 노동의 모습이야말로 청춘이 처한 또 다른 현실이니까.
정재연 : 나 역시 <메타볼라>를 읽으면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나와 먼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내 주위의 대학생 중에서도 키스방, 허그방, 노래방 도우미처럼 유흥업소에서 유사 성 노동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이 많다. 더 이상 이 책의 내용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양지훈 : 나는 '옐로 램프'라는 부제가 붙은 9장에 묘사되는 주인공의 노동 환경이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도 <한겨레21> 기자들이 낸 <4천원 인생>(한겨레출판 펴냄)이라는 잠입 노동 취재기가 있지만, <메타볼라>의 생생함은 그 이상이었다. 작가가 직접 공장 노동을 경험해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묘사가 치밀했다.
<메타볼라>는 대학 등의 제도 바깥의 청춘들 이야기다. <청춘 착취자들>에 나오는 무보수 인턴들과도 엄청난 격차가 있다. 정규직 화이트칼라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본이 전혀 없고, 반면에 그들을 착취하려는 어른만 많다. 그나마 주인공들을 받아주는 건 어른이 아니라 똑같은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출구가 안 보이는 구조에 꽉 묶인 청춘의 진짜 모습이랄까.
박권일 :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서해안 벨트'가 생각났다. 기흥 삼성반도체 공장부터 여수 GS칼텍스에 이르기까지 서해안에 중공업 공장이 밀집되어 있는데 여기서 많은 수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를 고용한다. 그 중 한 곳인 충청남도 서산의 한 공장에 다니는 청년 노동자를 취재한 적이 있다. 지방대를 다니던 중 등록금 낼 돈도 없고 취직도 어려워 일단 휴학을 하고 공장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기흥에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얼마 못 가서 가구 공장으로 옮겼다. 또 자동차 업체로 옮기고. 그는 이런 식으로 3~6개월 단위로 서해안 주변을 위아래로 옮겨 다녔다.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일단 서해안 벨트에 들어온 이상, 그는 어쩌면 영원히 그 벨트를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나 있지. 출장 마사지 일을 시작하고서 가끔 생각해. 우리는 밤에 피는 꽃이라고. 한 번 이 길로 들어서면 벗어나지 못한다고. (…) 그리고 이제 다른 데 취직도 못 해. 여기서 죽을 때까지 밤에 피는 꽃으로 있는 건가 생각하면 슬퍼질 때가 있어. 너도 호스트니까 분명 그럴 거야.
(…) 나 요전에 시장에서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애랑 만났다? 본도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애였어. 대학은 도쿄로 갈 거라고 하더라. 나는 너무 부러웠어. 이제 이곳을 못 떠나는 거다, 이런 일을 한 번 시작하면 다른 일은 못 하는 거다 생각하니 그렇잖아. 게다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물장사를 했던 이력이 따라다녀. 돈도 학력도 없고, 나는 계속 그럴 거야." (286쪽)
ⓒ프레시안(최형락) |
세상은 더 나빠질 거야
양지훈 : 가장 강렬했던 장면 중 하나가 주인공 가즈키 유타(이소무라 긴지)가 집단 자살에 참여했다 마지막에 극적으로 탈출하는 장면이다. 본토 출신인 그가 나이 든 사람과 함께 오키나와의 깊숙한 숲속으로 들어가 위스키에 독극물을 섞어 마시고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운다. 같이 갔던 세 사람은 차 안에 남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소리 지르며 필사적으로 뛰쳐나오고 기억을 잃는다.
하지만 그 이후 새로 펼쳐진 삶은 어땠나? 앞에서 얘기한 기숙사형 공장과 같은 불안정 노동의 열악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장면은 마치 '지금 그 문을 닫고 죽거나, 아니면 뛰쳐나가서 끊임없이 노동해라' 하는, 지금 대다수 젊은이에게 주어진 두 가지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암울했다. 소설이 왜 이리 암울한 건가? (웃음)
프레시안 : 이 책을 쓴 기리노 나쓰오가 <메타볼라>를 연재하던 중에 한 인터뷰에서, '당신 소설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왜 이렇게 암울한가' 이런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내 딸에게도 늘 '네가 사는 세상은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거야'라고 말해준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현실, 이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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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 원 세대>를 내고 나서 지방대에서 강연을 하다 보면 내게 화내는 젊은 독자가 많았다. 자기들은 성공할 수 있는데 왜 비참하게 묘사했냐고 말이다. '열심히 하면 서울대 나온 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88만 원 세대'에 가장 가까운 이들은 책을 읽지 않거나 그런 묘사에 반발하고, 웬만한 좋은 회사에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명문대 출신이 '짱돌을 들자'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이들이 청년 노동을 다룰 때 고용률을 문제 삼는데, 사실 일자리는 항상 넘친다. <메타볼라>에 나오는 그런 일자리 말이다. 그게 아까 말한 '서해안 벨트'에 널려 있다. 이 수많은 일자리를 생각하면 "청년들이 일할 곳이 없다"는 말은 모순에 처한다. 문제는 일자리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계속 줄어들고 거기에 취직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메타볼라>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편의점 아르바이트, 기숙사형 공장 노동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자리만 늘어나고, 가진 것 없는 자들은 불안정한 상황으로 끊임없이 내몰린다. 우리에게 마련된 '괜찮은 일자리'는 얼마 없다. 그나마도 내 자리가 아닐 것이다. 대책을 세우려면 일단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게 먼저 아닐까?
"나는 납땜을 해봤다. 첫 번째는 잘 되지 않았다. (…) 두 번째 기판은 너무 적게 했다. 그러는 사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오는 기판이 눈앞에 쌓였다. 초조하지 않게 되기까지 30분 넘게 걸렸다. (…) 이 속도로는 쉬지 않고 해봐야 1시간에 12장. 실제 근무 시간을 9시 30분으로 치고, 114장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한 장을 1분 만에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 하라구치는 가끔씩 다른 곳을 보면서 멍하니 정신을 팔고 있었다. 할당량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생각은 머리에 없는 것 같았다. 저 녀석은 금방 탈락할 것이다. 나는 다소 짓궂은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노예가 노예를 비웃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473쪽)
"제조업의 비용 절감 구조는 교묘했다. 누가 가장 나쁜 건지, 어디의 무엇을 따지면 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역시 나는 출구 없는 구멍 속에 갇힌 거나 같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밑바닥에 있었다." (525쪽)
멘토가 아니라 입금!
박권일 : 노동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메타볼라>에 나오는 노동은 지옥이지 노동이 아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직업들이 '일을 해야 먹고 사니까' 이런 이유로 인간의 바닥까지 착취하는 구조로 잔존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 생산력이면 충분히 모든 이들의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 기본 소득 같은 제도로 삶의 기본적인 욕구를 보장해 주고, 그 이후에 좀 더 벌고 싶은 사람은 '열정 노동'을 하든 뭘 하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정재연 : 청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멘토가 아니라 돈이다. 가장 시급한 대책을 생각해 보면, 최저 임금 인상이다. 지금의 수준으로는 최저 임금이 두 배인 1만 원으로 올라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만 해도 한 달에 160만 원 밖에 벌지 못한다.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제된 선택이나 다름없는 대학에 다니려면 이걸론 턱도 없고, 부모님이 대 줄 수 있는 집도 많지 않다. 당연히 대출을 받고 빚을 만들어 낸다. 빚을 안고 사회에 나가면 다른 빚을 얻어 기존의 빚을 메운다.
박권일 : 전적으로 동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얘기에 혹하지 말고, 멘토가 아니라 입금을! 이렇게 외쳐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 제도적 개혁을 위해 이번 총선에서 청년이란 이름을 내건 후보들이 많이 나왔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양지훈 : '청년당'도 조악한 프로젝트였고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의 서바이벌 형 이벤트도 마찬가지였다.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의회에 나서는 사람이 반드시 청년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지금 20대가 '청년'인가? '청년'보다 '알바', '잉여' 같은 명명이 더 정확하단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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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 어쨌든 문제에 처한 당사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텐데 돌파구가 잘 안 보인다.
다만 지금 계속 비숙련화, 비정규직화하는 청년들이 '가진 것 없음의 자산'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안에 급진화의 싹을 갖고 있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유니온 같은 단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지 않을까?
변호사 시장을 예로 들자면, 얼마 전 '희망법(희망을 만드는 법)'이라는 공익 인권 변호사 모임이 출범했다. 희망법에 소속된 여섯 명의 변호사들은 돈 되는 민·형사 사건은 전혀 맡지 않는다. 기업과 인권, 장애, 이주·난민,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등의 영역에서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겠다는 모토를 갖고 있다. 변호사들이 먹고 살 만할 때는 이런 게 나오지 않았는데, 좀 어려워지고 잃을 게 없어지니까 이런 게 나온다. 자살이라는 선택지를 거부했을 때 남는 게 몸부림뿐이라면, '우리들의 OO'이라는 조직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박권일 : 예전에 고졸 청년들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용산에서 컴퓨터 조립하다가 망하고 나서 호텔에서 접시닦이를 하고 있던 한 친구가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출발선이 리셋되지 않겠느냐고. 물론 그 앞에 대고 '전쟁 나면 아마 당신들부터 최전선에 내몰릴 거다'라는 이런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전쟁을 원할 정도로 절망했다면 왜 싸우지 않는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한테 아무리 싸우라고 해도 안 싸울 애들은 안 싸운다. 결국 양지훈 씨 말대로 조직화가 답이다. 불안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조직이 더 많아져야 한다. 영화 노조가 처음 출범했을 때 왜 그동안 노조를 안 만들었냐고 묻자 '그동안은 한국 영화가 성장하는 중이니 일단 허리띠를 졸라매면 낙수 효과가 일어나 나중에 후배들은 편하게 일할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의 멘토인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고 청년으로 살아가는 게 나아질까. 직접적인 채널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상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안 올 거다.
정재연 : '그래도 뭔가 희망이 있을 거야'라는 결론보다 '계속 나빠질 거야'라는 결론이 맞는 것 같다. 전자라면 버티는 수밖에 없겠지만 후자라면 틀에서 벗어날 여지가 생기는 거니까. 뭔가를 계속 거부하고 정지 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학을 거부하고 노동을 거부하고 안정된 틀을 거부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한 가지 부연하자면,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메타볼라>에서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을 연결해 주는 게 휴대폰이다. 지금 20대에게도 조직화를 위한 연결 수단이 있다. 해방 이후 어느 세대보다도 네트워크에 민감하고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하는 게 그들이다. 하지만 그 네트워킹 수단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박권일 : <아웃라이어>(노정태 옮김, 김영사 펴냄)의 말콤 글래드웰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약한 연결'이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자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송영석 옮김, 갤리온 펴냄)의 클레이 셔키가 거기에 반박했다. 나는 반반씩 동의하는데, 지금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한 네트워킹이 글래드웰의 지적처럼 약한 형태인 것은 맞다.
하지만 현재 대학에 공동체라곤 전부 취미·취업 공동체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SNS를 통해 형성되는 조직은 약한 연대이긴 하나 그보다 더 넒은 문제의식과 대학을 넘어서는 참여자를 포괄한다. 한마디로 스마트 기기나 SNS는 하나의 계기 혹은 하나의 툴일 뿐이다. 거기서 좀 더 강한 결속과 힘을 갖기 위한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프레시안 : 이번 대화 역시 청춘 착취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직접 연대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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