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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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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다!

[프레시안 books] 토머스 실리의 <꿀벌의 민주주의>

사람은 자연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다른 개체나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법이나 서로 적대하지 않고 경쟁하는 법, 욕심 부리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에너지를 사용하는 법 등은 서로 경쟁하고 적대하며 약육강식의 밀림을 만들어온 인간에게 여러 시사점을 준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이 자연의 동물들에서 냉혹한 생존 경쟁과 적자생존만이 아니라 상호 부조를 확인하고 진화론의 방향을 수정하려 한 점도 인간 사회에 대한 걱정과 맞닿아 있었다.

그런 점에서 토머스 실리의 <꿀벌의 민주주의>(하임수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라는 책 제목이 참 참신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꿀벌에 관심을 둔 적도 없고 건축에서나 참고하지 정치와 민주주의가 꿀벌 세계에서 영감을 얻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대를 품고 책을 펴보니 꿀벌에 미친 생물학자 토머스 실리가 흥분할 만하다 싶을 만큼 꿀벌들은 나름의 의사소통 수단과 공동의 의사 결정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 <꿀벌의 민주주의>(토머스 실리 지음, 하임수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에코리브르
우리는 여왕벌이 꿀벌 세계의 지배자라 여기지만 여왕벌은 번식의 역할을 맡을 뿐, "벌집의 운영은 일벌에 의해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 꿀벌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보금자리의 선택에서도 여왕벌은 지휘나 지도를 하지 않고, 유전적으로 선택되고 그렇게 길러진 정찰벌들이 선택을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찰벌'들'이 선택한다는 점이다. 많은 벌들이 한 가지 결정을 내리려면 서로 간에 의사를 소통하고 결정을 내리는 방법이 있어야 할 텐데 꿀벌에게 그런 어려운 과정을 밟을 방법이 있단 말인가? 실리는 '꿀벌의 춤'이 그 열쇠라고 얘기한다. 꿀벌이 8자 춤을 추는 횟수와 춤을 추는 시간으로 꿀벌들은 보금자리가 위치한 곳과 그 상태를 서로 소통한다. 정찰벌 각자가 찾아온 정보를 토대로 상대방에게 호소해서 하나의 대안을 결정한다.

실리는 이런 과정이 일종의 선거와 같다고 얘기한다. "여러 후보자(집터 후보지), 후보자들의 유세 경쟁(8자 춤), 상이한 후보자를 지지하는 유권자(특정 장소를 지지하는 정찰벌), 여전히 중립적인 유권자 집단(아직 어떤 장소도 지지하지 않는 정찰벌)이 있"기 때문이다. 실리는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나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꿀벌의 집단 결정을 '통합 민주주의(unitary democracy)'라고 부른다.

이런 비교를 통해 실리는 "그 원리를 배움으로써 인간 사회에서 집단 결정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실리는 이런 꿀벌의 교훈을 다섯 가지 교훈으로 정리해서 자신이 학과장으로 있는 교수 회의에 직접 적용했고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그 다섯 가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교훈 : 공동 이익과 상호 존중에 기초한 개인들로 결정 집단을 구성하라.
두 번째 교훈 : 집단적 사고에서 지도자의 영향을 최소화하라.
세 번째 교훈 :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라.
네 번째 교훈 : 논쟁을 통해 집단 지식을 종합하라.
다섯 번째 교훈 : 응집력, 정확도, 속도에 대한 정족수를 활용하라.

책의 많은 부분은 꿀벌 연구의 선구자인 마르틴 린다우어와 실리가 했던 실험에 관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자칫 지루할 수 있지만 과학자들의 끈기와 집요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꿀벌의 교훈을 인간 사회에 그리고 민주주의에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일단 실리 스스로 "꿀벌 집단을 단순히 수천 마리가 모인 낱낱의 개체가 아니라 통합된 전체로서 기능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독립체로 생각"해야 꿀벌의 독특한 생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꿀벌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면 어떤 사상이 탄생될까? 시스템적으로 연결된 유기적인 사회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전체의 이름으로 개체성을 부정하는 전체주의는 이런 구상과 무관하지 않다. 즉, 인간 사회가 꿀벌 집단처럼 하나의 초개체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초개체가 과연 바람직한 상태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실리 자신도 꿀벌과 인간 사회의 결정 과정의 차이점을 인정한다. "각 개인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 한 표를 행사"한다는 점이나 "꿀벌 집단의 정찰대가 마을 회의의 시민과 달리 논쟁 중에 이루어지는 정보 교환을 지켜볼 수 없고 그런 탓에 전 과정을 조망할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꿀벌의 의사 결정을 인간 사회와 연결시키는 이유로 실리는 집단 행동의 통제권이 소수의 지도자가 아니라 다수의 구성원에게 분산된다는 점, 꿀벌들이 우호적인 경쟁을 벌인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실리는 꿀벌들이 적대적인 경쟁이나 갈등을 거치지 않고 합의를 이룬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는 발생한다. 민주주의는 우호적인 합의인가? 실리는 합의 형성을 위해 자동적으로 논쟁을 중단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자기 주장을 펼치던 꿀벌들이 스스로 춤을 중단하는 현상('누수')을 긍정한다. 정찰벌들은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려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논쟁을 새로운 벌들에게 넘기는 현상을 보면서 실리는 "정족수 방식이 합의 방식과 달리 결정 속도와 정확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이를 과학 커뮤니티에 대입해 실리는 "나이 든 과학자와 나이 든 정찰대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사람은 억지로 논쟁을 끝내는 반면 꿀벌은 아주 자동적으로 논쟁을 끝낸다. 이런 관점에서, 만약 사람이 조금만 더 꿀벌처럼 행동했다면 과학도 좀 더 빨리 진보했을는지 자못 궁금하다"고 얘기한다.

과학이 더 빨리 발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에서 합의를 위한 포기는 최상의 가치일 수 없다. 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는 소수자들의 끈질긴 문제제기와 도전으로 발전해 왔다. 민주주의라는 꽃은 선거나 합의가 아니라 갈등과 충돌을 통해 피어났다.

실리는 인간 사회에서 모범적으로 의사소통과 의사 결정을 내린 사례로 뉴잉글랜드 마을 회의를 얘기하고 그 회의에 지침을 제공했던 '로버트 의사 규칙'을 얘기한다. 흥미롭게도 파커 파머 역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김찬호 옮김, 글항아리 펴냄)에서 이 규칙에 관해 얘기한다.

파머는 이 규칙이 "귀담아듣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 그리고 더 커다랗고 다양한 갈등으로 점철된 미국 정치의 세계에서 절차를 따르는 것"에 관해 알려주었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파머는 그런 소통과 결정이 가능하려면 먼저 공적인 삶의 층위가 튼튼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낯선 자들과 함께하는 삶,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 공적 영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파머는 정족수나 다수결보다 합의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협력하여 듣고 말하면서 민주적인 마음의 습관을 키"운다고 주장한다.

즉, 꿀벌의 민주주의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치와 민주주의가 단지 '의사소통'과 '의사 결정'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격렬한 시위와 시민 불복종, 직접 행동같은 정치 활동이 정치와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킨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연장선이다. 즉 뜨거운 정치 과정 없이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리고 시민 개인부터 정당, 시민·사회단체, 이익 단체 등 다양한 정치 행위자들이 다양한 필요와 이념을 놓고 다툰다. '적대가 사라진 민주주의'가 과연 민주적일까? 더구나 인간 사회에는 꿀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실험을 하는 린다우어나 실리가 있을 수 없다.

이 책을 보며 느낀 점은 과학자들이 어떤 '결과'를 매우 신뢰하고 이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회과학에는 '결과'가 별로 없고 그런 결과는 주로 통계를 돌리는 행태주의 쪽에서 많이 나온다. 그나마도 그냥 가설일 뿐이고 그 가설을 검증할 과학적인 방법은 없다. 그래서 사회과학이 아무리 객관성과 과학성을 추구해도 그건 가설일 뿐이다.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꿀벌이 아니라 꿀벌을 연구하는 학자이다. 그래서 그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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